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주 씨의 말에 나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애석하지만, 주 씨는 마음이 약해지면 안된다. ...주 씨는 경찰이니까. 경찰이기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노력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굳이 거기서 더 추궁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은 내가 누군가에게 추궁을 할 입장도 아니니까. ....죄를 저지르려고 한 죄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괜히 커피를 더 마시고 싶어서 입맛을 다시다가 주 씨를 다시 조용히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주 씨는, 정말로 마음이 따뜻한 모양이네요. ...저와는 다르게."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착각일수도 있다. 하지만 착각이라도 상관없다.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니까. 주 씨나 다른 이들이 나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주 씨에 대해서 전부 아는 것은 아니니까...그러니까..
그것은 어쩌면 나의 불안함 속에서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라면 좋겠지만 불길한 마음은 계속해서 커져갔고 나도 모르게 오른쪽 눈으로 손이 이동했다. ...정말 저주스럽고 흉측한 이 문양.. ...정말로 눈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어 두 눈을 꽉 감았다.
".....뭐, 귀찮으니까 더 이런 말은 안할게요. ...이 이상 말해도 주 씨에게 부담만 될 듯 하니까요."
//막레를 잇고 싶다면 이으셔도 됩니다! 선택권은 권주주에게 돌리겠습니다! 전 더 이어도 괜찮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까? 조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지은 씨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고, 나에게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냐고 물었다. 딱히 거기까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뭔가 사과를 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지은 씨는 나에게 엄청나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말들을 하면서... 뭔가 이런저런 길고 긴 말들이 이어졌고 나는 그것을 조용히 들었다. 뭔가 엄청 쌓인게 많았구나 싶어서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것에 이러쿵저러쿵 할 처지도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가장 끝 부분이었다. 퉁명스럽게 나에게 한 대만 더 때려도 되냐고 묻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지은 씨를 바라보았다. 필시 그 눈은 도끼 눈이었을 것이다.
"...이쪽이 한 일이 있으니까 때리는 것은 상관없어요. 한 대가 아니라, 두 대, 열 대라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린다면야... 이유야 어찌되었건 지은 씨가 말한대로 전 모두를 속였으니까요. ...그것에 대해서 변명을 할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때리고 싶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을 길게 하는 거...안 번거로워요?"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좀 여러 의미로 대단한 느낌이었다. 이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조용히 이어나갔다.
"...뭐, 애초에 속이려고 한 거니까요. 지은 씨가 애석하다고 생각되는 그 상황을 유도했고요. ...그것만이, 제가 당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길이었으니까. ...차라리 제가 악당이 되더라도,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말을 잠시 끊고서 눈을 감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리고 다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지은 씨에게 이야기했다.
”한 대면 충분해요! 그리고 때리고 싶다고 이렇게 길게 말한 것도 아니에요! 다 제 진심이었어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면 저희를 배신하거나 속이거나 그런 짓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주세요.“
지은이 제 허리춤에 손을 얹고 따박따박 말대꾸했다. 이미 선배를 바라보는 존경은 사라졌다. 오히려, 오래 지내온 친구를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어지간히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항상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지은이 이렇게 험악하게 굴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럼, 아주 약하게 때릴게요.“
지은이 주먹을 쥐고 눈을 지긋 감았다. 선배니까 약하게. 선배니까 약하게. 서하에게 들릴지도 모를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꺼풀이 걷히고 다시 나타난 지은의 눈은 중학생 시절의 그것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옥상으로 끌려가 비오는 날 먼지 털리듯이 맞을 것이 분명하였다.
”죄송합니다, 서하 선배님!!!“
주먹으로 서하를 때릴 것 같더니 세상에, 날아간 것은 주먹이 아닌 다리였다. 지은의 다리는 서하의 무릎 뒤편을 찼다.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을 수 있게 한 것뿐이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호신술이니 당연한 것이겠지.
”됐어요. 이걸로 끝낼게요.“
지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흥, 그럼 뭐라 부를까, 서하?“
평소라면 절대 이렇게 부르지 않았을 것인데, 오늘은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언제는 그렇게 존경한다며 우러러보더니 이제는 아주 권주 대하듯이-권주야 미안- 군다. 지은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긁으며 (가발은 의외로 튼튼했다) 등을 돌렸다.
"아 너 짜증나! 이걸 진짜 때릴 수도 없고...! 그냥 때리는 대신에 반말로 퉁칠게."
...그날밤 지은은 밤새도록 이불을 차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와아 급전게 짱짱~~ (????) 갑자기 건방지게 반말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 ㅠㅠㅠㅠㅠㅠ 이걸로 막레해도 좋을 것 같아요...ㅎㅎㅎ((쓰러짐
지은 씨는 오늘따라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아니. 원래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전에도 제대로 대화를 나눴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멍하니 지은 씨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약하게 때린다고 하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거기서 사족을 붙여봐야 좋을 것도 없고 귀찮았으니까. 이어 죄송하다는 그 말에 나는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다. 주먹이 날아올 거라고 판단하고... 하지만 날아온 것은 다름 아닌 다리였다. 무릎 뒷편을 맞고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버렸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서 멍하니 지은 씨를 바라보았다.
".....????"
아니..이것도 때린거긴 때린거지만..설마 여기를 때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그저 멍하니 지은 씨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프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니다. 일단 맞긴 맞았으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지은 씨는 갑자기 퉁명스럽게 반말로 나에게 말을 했다. 평소에 말을 높여서 사용하던 지은 씨가 반말을 쓰는 것에 순간 당황해서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물론 내가 편하게 부르라고는 했지만...
"......??"
정말로 영문을 알 수 없어서 그저 멍하니,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 이어 때리는 대신에 반말로 퉁퉁친다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어...네...네...펴, 편한대로... 그리고 그냥 때려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왜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는 것일까? 묘한 압박감이 지은 씨에게서 느껴졌다. 아니..뭐, 잘은 모르겠지만...그걸로 퉁친다고 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겠지. 그런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저 멍하니 지은 씨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괜히 더 생각하지 말까.. 귀찮으니까..."
작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이 이상 얘기를 해봐야 의미는 없을 듯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