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안에 비친 사내, 이준의 모습에 서하와 하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상당히 긴박한 분위기가 주변에 흐르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말 그대로 배신한 이가 모두의 앞에 서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자는 매우 강한 이였으니까. SS급 익스퍼의 힘은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 오버 익스파로 모두를 전멸시킬뻔 했던 기억은 어쩌면 모두에게도 남아있으리라.
모두가 대치하거나 경계하는 분위기를 보이는 상황 속에서 이준은 피식 웃으면서 모두를 바라보며 아주 여유롭게 왼손을 검은색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한 손을 집어넣었다고 해도 그는 SS급 익스퍼였으니까.
"다 망한다고 했나? ....센하 군. 자네는 늘 말하지만 그렇게 센 척이 흠이라면 흠이네. ...글쎄? 다 망할까? 그리고 끝까지 막는다고 했나? 권 주 군. ...해보게나. 눈을 꼬옥 감는 시점에서 그 정도의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질문인가? 메이비 양?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아직 바뀌지 않았나라고 했나? 글쎄. 그것을 추측하는 것은 자네들이 해야 할 일 아니겠나? 그리고 유혜 양.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는 이미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네만... 그리고 타미엘 양. ...잘 지낸 것은 아닌가? 허허허. 그럴만도 하군."
태연하게 모두의 말의 일부에 대답을 하면서 이준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자신을 향해서 총이 겨눠진 상태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제와서 자네들에게 나에게로 오라고는 하지 않겠네. 자네들이 그럴 이들이 아닌 것은 잘 아니까. 일단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의 반은 달성했네. 그녀는, 아직 쓸 곳이 있거든. ...남은 반은... 이러게 되면 내가 저 연구원을 제거하는 것이다만..자네들은 그것을 막으려고 들겠지. 허나 말일세.. ...자네들은 왜 아직도 이 무대에 올라와있나?"
피식... 비웃는 듯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내가 자네들을 배신했으니까 자네들은 나에게 적대감이 있겠지. 이해하네. ...그래. 자네들 입장에선 우리가 하고자 하는 행동을 넘길 수 없겠지. 경찰이니까. 하지만 결국 자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뭐지? ...솔직하게 까고 이야기하겠네. 자네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저 배신당한 것으로 인해서...아니. 틀리지. 처음부터 난 이쪽 사이드였으니까. ....자네들은 알고 있나? 바로 눈 앞에서 아내를 버리고 가야만 한 상황. 딸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도망가야만 했던 상황. 그리고, 그 사랑하는 이의 능력이 사랑하는 이를 죽여버린 이들에게 쓰이고, 이제 와서는 내 딸조차도 자신들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는 그들에 대한 내 분노를...?"
이내 그의 오른손이 녹색의 막으로 덮였다. 이어 그는 그 손으로 근처의 나무를 힘껏 쳤다. 상당히 강한 힘인지, 나무의 밑둥에 살짝 금이 가고, 나무는 저 편으로 넘어가버렸다.
".....나는 이 순간만을 위해서, 그때의 치욕과 고통, 그리고 모든 것을... '암시'로서 잊어지게 했네. 성류시에 범죄를 일으켜서, 익스퍼들의 범죄를 계속해서 일으켜서, 익스퍼 경찰들로 만들어진 팀을 결성하게 유도하고.. 거기의 서장으로서 내가 지원했네. 그래. 이래보여도 나는 경찰의 임무에도 꽤나 충실한 편이네. 그렇기에 '암시'로 그때의 기억을 잊은 나는 모집을 할 때, 거기에 당당하게 지원했고 나의 힘으로 붙었네. 아주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경찰로서 이전할 수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이 순간이 왔네. ...그래. 모든 것에 대한 결말을 일으키기 위해서... 내 딸 하윤이와 죽어버린 나의 아내, 유리를 위해서...나는 각오를 다졌네. 설사 내가 비난받는 한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 딸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이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도록..!! 나는 내 모든 것을 저버릴 생각이네. 실제로, 나는 자네들에게도 등을 졌네. 그 정도의 각오가 나에게는 있어. ...말해두지.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여기서 물러나게. 자네들에게도 소중한 이가 있겠지. 소중한 것이 있겠지. 그런 소중한 이와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도 목숨은 소중히 해야하지 않겠나. ...경험자로서 말하지. 남아있는 자는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게 되네. ...아니면 자네들은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를 막겠다는 사명감이 있나? 되도 않는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내 앞에 서 있는 거라면 꺼지게."
지은은의 손에 들린 총은 흔들림 없이 이준을 향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은의 의지가 그 만큼 굳건한 것은 아니었다. 지은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이준의 말에 대꾸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 쪽들이 열심히 일해주신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더라? 설마 잊은 건 아니죠? 당신도 결국 그 자들과 같아요. 당신이 증오하고, 복수하고 싶어하는 그 사람들과 말이죠."
지은이 비실비실 웃었다. 물론, 저 마음은 이해한다. 나또한 복수로 눈에 멀었던 자였으니, 그리고 지금도 역시 망가진 삶을 한탄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며 살아가는 자였으니. 하지만 행복은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범죄자를 증오했지만 선량한 자들을 사랑하는 만큼은 아니게 되었다. 경찰로서 일해온 그간의 성과가 차근차근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명감? 당연히 있죠. 당신네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떻게 될 줄 알고요? 그리고... 정말로. 정말로 경찰로서 일해오는 동안 느끼신 게 없으신거에요? 정말로?"
"추측이라.. 그렇다면 저는 제 마음대로 아직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것이 변하지 않았을거라 믿겠습니다."
그녀는 이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하고는 승산이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암시라.. 뭐 대충 제가 생각하던건 맞았나보네요. 만약 서장님이 배신.. 아니 배신이라고 할 수 없나요? 어쨌든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그럴거라고. 뭐 어쨌든.. 승산이라고 하셨습니까? 승산이라면 당연히 있지요. 그렇기에 저희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시는거 아닌가요? 아니면 그냥 토끼를 사냥할때도 전력을 다한다는건가? 어느쪽이든 상관없어요. 저는 당신이 한 말을 믿습니다. 우리라면 SS급이라도 이길 수 있을거라고 했던 말을. 그 가능성을 말했던 당신이 가짜가 아니었으니까. 그때의 그 모습도 진지한 당신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절대 그저 인격이 바뀐다거나 한건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죽은 사람의 힘을 자신들이 원하는곳에 쓰고. 그래. 확실히 분노할것이다. 참을 수 없겠지.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공감은 할 수 있을것이다. 아니 공감도 못하려나? 그것은 슬플지도 모르겠다.
"저는 당신이 그저, 그 유지부에게 복수하고. 자신의 아내를 이용해서 만든 리크리에이터를 되찾아 오는것이 목적이라면. 진지하게 도왔을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나간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확실하게 말하죠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가만히 있을수는 없어요."
분노로 논리적인 사고를 잃은걸까. 아니면 지극히 논리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걸까. 어느쪽이든 슬플 뿐.
"당신은 모든것을 바꾸는, 아니 부순다는 일념 때문에 가장 중요한것을 2순위로 밀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당신이 지키고 싶어했던것. 그 대상이 지금 어떤 기분일지 상상은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내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나요? 아내를 위해서라던지 딸을 위해서라던지 그렇게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확실하게 말씀드리죠. 당신의 그 생각은 오로지 당신을 위한것입니다. 차민경씨도 당신도 그저 그냥 자신의 고통에 미쳐 날뛰고 있을뿐이라는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어요."
후우- 그녀는 잠시 숨을 내뱉었다.
"소중한것.. 이라. 아시지 않습니까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제가 이곳에 서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그 사람이 지키고 싶어하던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 사람이 잊어버렸다면 제가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분노? 배신감? 그런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여자란.. [사랑]에 [목숨] 정도는 내걸 배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장님이었으니까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정보들을. 다만.. 자신이 생각하기로는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별로 긍정적인 생각을 잘 들지 아니하기에... 그래. 상대방 쪽이 어떻게 된다면 아마.. 그걸로 그녀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겠지? 아니다. 너는 그것 이상으로 전부 다 새로 만들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연구원에게 하는 건 애먼 화풀이일 뿐이잖아요." 화풀이라도 해서 감정이 나아진다면 모르지만 직접적인 원인을 내버려두고 하는 화풀이는 오히려 감정을 악화시킨다..라고 했던가요. 느릿하게 말을 잇고는 연구원을 힐끔 바라봅니다. 기회를 봐서 쑥 수납해버리면 되려나요.. 기회를 노리지만 겉으론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감정 자체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뒤도, 옆도 보지 아니한 그것은 정의도, 대의도 아니지요. 분노와 배신감은 생각보다는 옅었습니다. 그렇지요? 처음 느낀 것만큼이나 빠르게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냉랭함이 채웠군요.
"...유감스럽지만..무대를 떠난다면, 그건 지겨운 리프레인이 될 뿐이지요." 넌 역시 그의 딸이야.
나는 차갑게 읊조리면서 권총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총구는 여전히 강이준을 똑바로 향해있었다. 그는 배신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저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은 더더욱 없어지지. 나는 눈을 잠시 가느다랗게 떴다.
"뭐...그래, 솔직해질게. 당신의 사정은 잘 알겠어. 복수하고 싶은 심정도 잘 알겠어. 그 점만은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당신도 잘 알다시피...나 또한 복수에 미친 사람이니까."
사실 그 때 권찬기를 죽이지 못한 일을 아직도 조금씩 후회하고 있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금 차가운 표정으로 강이준을 똑바로 보았다.
"...하지만 당신의 사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당신이 당한 일과 같은 일을 만들지 않겠다면서, 왜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 거지? 당신의 아내와 딸이 불행해지는 것은 죽어도 싫지만, 다른 이들은 괜찮다, 이거야? 웃긴다고, 아주 웃겨. 하하하하하...! 있잖아, 당신...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시키는 건 그만두지 그래? 이건 인정해. 당신은 당신의 원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지옥에 떨어져야하는 범죄자야. 방금 이야기는 왜 한 거야? 우리를 납득시키려고? 웃기지 마. 오히려 당신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더욱 잘 알게 되었어."
이를 으득 갈았다. ...적어도 나는 다른 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야망을 이루지는 않아. 너야말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네, 토오야.
"목숨을 걸 수 있냐고? 당연하지. 나라는 인간의 가치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질만큼 떨어졌어...! 이미 과거에 처참하게 지내온 인생, 이미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