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이 같이 사는 것이 그리 이상한가? 물론 언젠가 독립은 시킬 생각이지만 아직은 아닐세."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것은 확실하게 부정했다. 그것보다... 보통은 아버지와 딸이 있으면 같이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건가? 음.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군. 하지만 요새는 독립하는 이들도 많으니 말이야. 아무튼 확실하게 같이 산다는 것을 밝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는 별개로 다시 한 번,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녀가 상자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인가 싶어서 받아서 그 내용물을 확인하자, 세련된 느낌의 시계가 보였다. 그 시계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올려 메이비 양을 바라보았다.
"이건 나에게 주는 선물인가? 메이비 양? 허허. 고맙긴 하네만... 오늘은 내 생일도 아니고, 갑자기 이런 것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군. 혹시 나에게 주는 뇌물이라면 곤란한데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일단 받은 물건을 거절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불순한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야. 이어 상자 속에서 시계를 꺼내서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메이미 양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이번엔 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이 시계를 나에게 선물로 주는 이유가 뭔가? 자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진 않을테고 말일세. ...그리 비싸보이진 않지만 시계인 이상, 싼 값은 아닐테고... 음.. 혹시 자네, 뭔가 실수를 해서 나에게 뇌물로 주는건가? 허허허. 농담이네. 아무튼 고맙네. 받아두도록 하지. 자네가 불순한 목적으로 나에게 이런 것을 줄리는 없겠지."
그녀에게 부모님은 일찍 사라진 존재였으니까, 친척에게서 독립도 빨리 했었고.. 그렇기에 아마 조금 성급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것이다.
"시계에는 불순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냥 갑자기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농담인지 진짜 의심했던건지 약간 애매한 느낌이지만, 그녀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손을 저었다. 이 말에 거짓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불순한 의도는 결단코 없지만. 그냥 .. 어째선지 후일에 만나지 못하게 될거 같았으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조금 서둘러서 장만한 선물이었다. 제발 그 생각이 맞지 않기를 바랄 뿐... 그것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것이 너무나도 절망적이었지만.
"그리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시계랑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에요, 서장님."
그녀는 칵테일 잔을 비우고나서, 주변을 한번 흘끔 살펴본뒤 말을 이었다. 그녀가 여기로 서장님을 부른 최후의 이유.
"솔직히 지금까지 남의 의사에 못이겨서긴해도 연애를 꽤 해봤거든요.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었어요. 왜 그런지는 지금에 와서도 잘 모르겠네요. 뭐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그 남자들이 제 취향이 아니었던걸지도 모르고요."
사랑을 받고싶어한적은 꽤 있었지. 하지만 하고 싶은적은 없었다. 너무나도 이기적이게도.
"그런데 최근... 좋아해보고 싶어진 사람이 생겼어요. 처음엔 그냥 이런 사람이 남편이면 엄청 행복하겠다.. 정도 였지만."
후-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비스듬히 돌렸던 시야를, 서장님에게로 맞췄다.
"좋아합니다, 결혼해주세요."
굳이 무언가를 더 붙이진 않았다. 그저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뿐. 물론 그녀는 이것이 결코 잘하는 행동이 아니란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영원히 아내만을 사랑할것이라고 말했고. 그것이 답이 될거라는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이건 그저 서장님을 귀찮게만 하는 행동일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말한것은 그녀의 욕심. 확실하게 거절당하고 싶었으니까.
치사한 짓을 해버렸을지도.
// 서장님이 델타인걸 확신하면서도, 연플이 안된다는걸 들으면서도. 결국은 여기까지 와버린 나 자신을 때리고 싶은 날이네요!
조용히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칵테일을 마셨다. 시계에 불순한 의미는 없다...라는 것을 납득했지만, 그 이후의 말은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이거, 프로포즈인가. 칵테일을 어느정도 마시고 잔을 아래로 내려놓자 보이는 모습에서 거짓은 찾을 수 없었다.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인가. 아니. 결혼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장난스럽게 말할리가 없겠지. 솔직히 조금 놀라서 잔을 떨어뜨릴뻔 하긴 했지만 애써 침착을 가정했다. 이것을 장난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경찰로 지내면서 사람을 보는 눈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저 말에 거짓은 없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나를 자주 찾아오는 것도 전부 그런 것일까...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눈빛.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하리라 생각하며 나는 시계를 잠시 테이블에 내려놓고서 메이비 양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자네처럼 젊은 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허허허. 이것이 몰래 카메라라면 나도 장난스럽게 생각해보겠다고 말했겠지만... 이것이 몰래카메라일린 없겠지. 나는 기본적으로 부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네. 하지만, 여기서 어설프게 말을 돌리고 싶진 않네. 아마도 나는 자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일세. 그래도 진지하게 나온 자네에 대한 답은 이것밖엔 없네."
잠시 거기서 한 호흡을 끊었다. 그리고 메이비 양을 바라보면서 조금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미안하네. 나는 내 아내를, 오래전에 나와 하윤이를 떠난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네. ...자네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네. 내가 젊은 시절에 내 아내를 만나기 전에 자네를 만나고 그 제안을 들었다면 어쩌면 자네와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지. ...허나, 나에게 있어서 내가 사랑하는 여성은... 내 아내 뿐일세."
그 생각만큼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것은 예정되고 약속된 대답이었다. 조금 쓰긴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해야만 하겠지.
"...다른 멋진 남성을 찾으라고는 하지 않겠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것에 응해줄 수 없는 나를...이해해줬으면 하네."
//음...네..서장님은 연플이 불가한 캐릭터랍니다. ......미안해요. 메이비주.. 곤란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음..이런 일상이 되지 않을까..조금 예상하긴 했는데 역시나로군요. .....정말로 좋아해주셨던 것 같은데..이런 답이 되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서장님은...네. 연플이 불가해요. 그런 캐릭터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네.
델타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바로 서의 방에 틀어박혔다. 구석에 앉아 무릎을 가슴쪽으로 당겼다. 제 손목을 강박적으로 문지르면서, 내 눈동자에는 그 어떤 것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저 음침한 웃음을 미친 듯이 흘릴 뿐이었다.
"...하하...아하하...하하하하하..."
제 자신이 바보 같았다. 구제할 수 없는 멍청이였다, 나는. 그 때 충격을 살짝 먹었다는 건, 내가 '그 인간'을 조금은 신뢰하고 있었다는 의미 아닌가. 이후 본래부터 있던 범죄자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나는 '그 인간'을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멍청하게도.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델타. 강이준. 당신도 지옥으로 떨어뜨려주지. 하하하하...!"
광인 같이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불현듯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밖의 어두운 하늘을 노려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