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 세계를 개변하는 힘은 자칫 잘못 건드리면 아예 존재 자체가 무너져버릴 정도의 강력한 힘이니까요. 처음엔 그 누군가를 해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지만... 하윤이가 태어난 뒤에는 설사 나쁜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불가하지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없어진다고 한다면 자신들은 도망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되면 하윤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테니까요. 그런 느낌으로 세계를 개변하는 힘은 정말로 위험하면서도 강력하답니다. 물론 유리가 심성이 참으로 착한 것도 있긴 합니다만..
.....엄.... 애초에 저는 저녁을 언제 먹을지 확실하지 않아요. 가족끼리 먹는다고 하면 먹는거죠. ...근데 이렇게까지 서장님을 만나서 뭘 하려는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서장님을 만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거나 하지 않는점은 일단 말하겠습니다. 아무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옮기는 발걸음이 무겁다. 머리속으로는 그것이 제일 타당한 루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완벽하게 맞아드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머리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럴리 없다고 부정하고 있었다. 생각이 충돌하는 그때에도 그녀는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로? ...............
"서장님!"
그녀는 서장실 앞에서 멈춰섰다가, 밝은 모습을 보이며 노트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재꼈다. 당연하지만 고의가 아니라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앞선 결과물.
"술 마시러 가죠! 제가 살테니..... 아!"
그제서야 그녀는 노크를 안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서장님이 어딨나 시선을 옮겼다. 뭐 그래봤자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하고 계시겠지.
참고로 지금은 퇴근한 상태기에,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차려입었다고 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 아니 조금보단 많이 꾸며져 있는 상태였다.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사태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서류를 잠시 미뤄두고 아령을 들면서 전신거울 앞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웠다. 일도 일이지만, 역시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요 근래에는 계속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니 계속 일이 쌓여서 몸이 쑤셔 살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도중, 갑자기 문이 열렸고 나는 놀라서 황급하게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메이비 양이었다. 거, 되게도 많이 들어오는군. 그런 생각을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을 떠올리면서 메이비 양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손에 쥐고 있는 30kg 아령 2개를 땅에 내려놓고, 침착하게, 정말로 침착하게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메이비 양. 거, 상사의 방에 들어올 때는 좀 노크를 하면 안되겠나? 이건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일세. 아무튼, 그래. 무슨 일로... 술이라고 했나? ...거, 자네. 자주 나와 술상을 같이 하려고 하는군. 밑의 대원들끼리 편하게 먹으면 될 것을."
잠시 책상의 서류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처리가 되었지만 또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 그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고, 근처에 걸려있는 내 코트를 입었다.
"아직 일은 조금 남아있네만, 조금이라면 상관없겠지. 좋아. 가도록 하겠네. 술은 나쁘지 않으니 말이야. 허허."
그녀는 아령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곤 일단 바로 죄송하다고 공손하게 인사한뒤에 자주 운동하시는 편이신가? 하고 생각한다. 뭐 운동하는게 나쁜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역시 갑자기 들어와서 보이면 기분이 나쁘실수도 있겠거니 하고 생각은 했다. 다만 그녀가 가장 걱정한건 서류였는데. 혹시 일거리가 남아있으니 가는건 힘들겠다고 말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것이었다.
"바쁘신거 같은데 죄송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서장님이 오케이하자 평소 이상으로 좋아하는 기색을 내보이며 어서 가자는듯 고개를 끄덕이곤 서장실을 나섰다. 그냥 같은 동료라면 서류작업 정도는 도와준다고 하겠지만.. 서장님이 관리하는 서류를 도울 순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그.. 아무래도 제가 저번에 너무 생각없이 말했던것도 있고 말입니다. 안그래도 심란하실텐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요새 서류가 너무 많단 말일세! 어! 요새 자꾸 사건이 터져서 내가 쉴 틈이 없어! 쉴 틈이!"
도데체가 왜 이리도 쉴 틈이 없는지. 이전 같았으면 서하 군을 불러다가 몰래 천장의 비밀 공간에서 이야기도 하고, 좀 하윤이에 대한 것도 듣고 그랬을텐데... 요새는 계속해서 뭔가 터지니 도저히 쉴 틈이 없었다. 이 망할 R.R.F인지 뭔지, 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잡던가 해야지. 이거 사람이 쉴 수가 있나. 아무튼 코트를 확실하게 챙겨입고, 서장실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오늘따라, 참으로 좋아하는 기색이 보이는데... 술을 같이 먹는 이가 필요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메이비 양을 바라보는 도중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됐네. 경찰은 정의를 위해서 그 누구라도 의심해야하는 법이지. 합리적인 의심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네. 설사 그 대상이 나라고 할지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의심을 해야 하는 법이지. 그것이 경찰이고, 그것이 자네들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자세일세."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경찰은 절대로 폼으로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만큼의 자세를 보여야 하고, 그만큼의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아무리 친한 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의심하고, 수상한 점이 있으면 묻고 파해쳐야만 하는 직업. 그것이 경찰이고, 치안을 지키는 자의 자세다.
"뭐, 이런 이야기는 이쯤 하지. 그에 대한 것은 나중에 내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볼 생각일세. ....그래서 술집은 전에 갔던 거기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그녀는 서장님의 말에 작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 일할때나 윗사람에게 경어를 쓸때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습니다 ~ 습니까? 이런식을 자주 사용했고. 방금 전까지도 그랬으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말투를 살짝 바꾸며 묶어두었던 머리를 풀며 정돈했다. 하지만 확실이 사건이 너무 연달아 터지고 있는것은 곤란한 일이었으므로. 그녀는 곧 웃음소리를 감췄다. 어쨌든 피해받는 이가 있다는거니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범인이 누구라고 한들 피도 눈물도 없는 처벌을 내려야 하는걸까.
"그렇겠죠, 음.. 뭐. 그 점은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할게요."
그 대상이 나라고 할지어도 인가. 그녀는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을 숨기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경례하듯이 손을 올렸다가 내리며 한 술집앞에서 멈출 뿐이었다. 흔히들 술집이라기보단 Bar 라고 부르는 장소. 그녀는 여기 괜찮냐고 물으며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기억하게. 자네들이 입고 있는 그 제복과 자네들에게 주어진 그 자리는, 절대로 폼으로서 주어지고, 입혀진 것이 아니네. 자네들은 경찰. 민중을 위해서 싸우고, 민중을 위해서 움직여야하는 존재들이네."
그것은 나의 경찰로서의 철학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 딸인 하윤이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참으로 마음씨만큼은 정말로 강하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죽은 아내도, 그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하겠지. 물론 지금 이 순간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야. 아무튼 멈춰선 술집은 보아하니, 전의 갔던 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장소였다. 내가 좋아하고 주로 가는 술집과는 다른 곳이 아닌가. 여긴. 그러니까..외국계의 Bar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곳을 가는 건가?
"괜찮네. 가진 않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의 코드에 맞추는 것도 가끔은 여흥이겠지. 하지만 나보다는 다른 이들이 더 즐기지 않을까 싶군. 여긴."
솔직히 내가 여기서 술을 잘 즐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꼰대적인 마인드는 가지고 싶지 않다. 이런 세대적 차이는 인정해야겠지. 이 참에 이런 곳의 술을 마시는 것도 좋을테고 말이야. 이런 곳은 칵테일을 팔던가...? 그쪽 계열을 잘 먹질 않아서 모르겠기에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곳의 술은 잘 몰라서 말이야. 소개를 좀 부탁하겠네. 그래도 괜찮다면야..."
이어 간판과 가게의 입구 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젊은이들이 자주 갈만한 장소라는 느낌과 함께 조금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