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리트리버인 렛쉬는 이제, 완전히 순찰이라는 것에 적응을 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어째야할지 모르고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확실하게 순찰을 잘 돌고 있다. 저번에는 소매치기를 보고 으르렁 짖으면서 달려들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단번에 제압을 하기도 했고... 이러니저러니해도 머리가 좋으니, 경찰견으로서는 정말 나무랄 것이 없다.
조용히 바람을 쐬면서 앞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참으로 고요했다. 원래 오퍼레이터 일을 하는 나는 순찰은 잘 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순찰을 하고는 한다. 사람이 없거나 할 때 한정으로... 서에 있을 서하 씨는 일 잘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요즘엔 잘 들지 않았다.
요즘은 계속 복잡한 생각만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아무래도 그 사실을 듣게 되어서겠지. 내가 SSS급 익스퍼의 딸.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엄마의 모습조차도... 이미지는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
나도 모르게 리크리에이터가 발동할 때 울리는 그 곡을 조용히 부르면서, 입으로 부르면서 앞으로 걸었다. 이 곡을 들으면, 혹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나도 모르게 익숙한 이 곡. 마치 자장가를 연상시키는 이 곡을 부르면서 그저 앞으로 조용히, 조용히 걸었다. 복잡한 생각도, 머리 아픈 이 순간도 이 곡에 태워서 날려보내고 싶었기에... 그렇기에....
오늘의 타미엘의 머리카락은 잘 틀어올려묶은 뒤 남은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하는 한편, 땅에 닿지 않도록 닿기 전에 중간 부분을 목 뒤 후드에 넣어두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중간이 접힌 형태려나요?
마트에서 쓸 법한 굉장히 커다란 카트 안에 병에 잔뜩 담긴 우주사탕이 카트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수만 보아도 수십 병 안에 든 것이라서 수백개는 가볍겠네요. 경찰서 복도 안에 마트에서나 쓰일 법한 카드가 두어 개 있는 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 카트 안의 사탕들을 빼낸다면 다시 넣어서 돌려놓으면 되는 일이기에 그녀는 그 카트들을 끌고 복도의 사탕함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많이 만들었네요.." 그 중 고르고 고른 것만 해도 사탕병을 가아아아득 채우고 채웠으니 괜찮은 것들의 수는 엄청났겠지요. 그래서 이렇게나 많지만요. 사실 몇 번 더 왔다갔다 해야해요. 누군가 발견한다면 타미엘이 조금 갸웃거릴지도요?
온 몸이 찌뿌둥한 날이었다. 어젯밤, 호기롭게 과일 사탕을 만들겠다며 좁은 주방을 뒤집어놓았다가 졸지에 잠도 몇 시간 채 자지 못하고 출근을 하게 된 그녀였다. 요리라고는 인스턴트 조리나 할 줄 알던 그녀에게 사탕을 만들라는 미션은 너무 어려웠던 걸까, 결국에 정체를 모를 괴상한 설탕 덩어리만 한가득 만들어내고야 말았더란다. 그녀의 얼굴에 잔뜩 드리워진 그늘이 한 없이 어두워보였다.
“ 으응...? “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거닐던 와중, 하마터면 그녀는 제 오른손에 들린 편의점 커피를 떨어트릴 뻔했더란다. 제 눈 앞으로 보이는 마트용 카트에 잔뜩 담긴 저 사탕들. 우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일지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는 저 사탕들은 한 눈에 보이기에도 수 십병은 거뜬히 넘을 만한 양이었다.
“ 안녕하세요, 타미엘씨... “
이 부서에 들어온지도 꽤 오래 되었건만, 사건 때를 제외하고는 사적인 대화 한 번 나누어보지 못한 팀원이었다. ...그래, 저번 왕게임 때 한 번 대화를 나누어 보긴 했다만. 그녀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흘깃 카트 안의 수 많은 사탕들을 훑어보았다.
“ 와아, 이거 다 사탕이에요? “
그러고보니 제가 만든 사탕은 차마 들고 올 수가 없었지. 신기하다는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시선을 올려 타미엘을 바라보는 그녀였다.
많은 사탕들. 엄청나게 많이 있지요.. 라고 생각하고는 끌고 가려다가 그녀에게 말을 거는 이의 존재를 눈치챈 듯이 조금 멈칫합니다.
"네. 사탕이예요."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 뒤, 유혜를 올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습니다. 하나 드실래요? 라고 말하고는 그림자에서 툭 튀어나온 손에서 영롱히 빛나는 지구를 담은 듯한 우주사탕을 유혜에게 건네려 합니다.
"...네 열심히 만들다 보니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네요." 상냥한 미소를 무감정한 얼굴에 나름 띄우려 노력하면서 그 외에도 젤리나, 다른 사탕이나.. 많이 만들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우주사탕이 담긴 카트 말고의 카트 안에 우주사탕 뿐만 아니라 다른 스위츠들도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겠지요.. 임팩트만 보면 우주사탕이 압도적이었기에 그것을 많이 만들었었죠?
저 병들 가득 차있는 것들이 사탕이라는 말에 유혜가 탄성을 내뱉었다. 와, 저렇게 많이 만들 수가 있나? 분명 자신은 틀 하나 분량의 사탕을 만드는 것도 버거워했건만, 역시 요리는 타고나야 해.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나 품던 유혜는 이내 제게 건내주는 사탕을 받아들며 밝게 미소를 지어올렸다.
“ 고마워요, 저는 사탕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서 다 망쳐 버렸거든요. “
점점 갈 수록 자신감을 잃어가듯 말소리가 작아지는 그녀였다. 대신에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 사탕을 입안으로 집어넣은 그녀가 몇 번 사탕을 굴려내고는 반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 나름의 맛있다는 표현법이었다.
“ 모양도 너무 예쁜데 진짜 비싼 사탕같아요. 적당히 달고! “
그러면서 다시금 카트를 한 번 훑어보니, 우주 사탕 외에도 젤리나 다른 사탕들도 더러 보이는 그녀였다. 우와, 오래 걸렸을텐데. 그녀가 다시금 제 입안의 사탕을 굴려냈다.
“ 타미엘씨도 화이트데이라 사탕 만드신거예요? “
물론, 그녀도 화이트데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젯밤 그 고생을 했던거지만. 타미엘의 반짝이는 머리칼을 바라보며 그녀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사탕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우니까요." 자신도 설탕을 몇 킬로그램을 쓴 건지.. 라고 생각하면서 잘못하면 데기도 하고(본인은 닉시를 두르고 해서 안 데였다).. 그래서 위험하긴 해요. 저도 하루 종일 만들었는걸요.. 라고 조곤조곤 말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토치도 써야 했고요. 라고 덧붙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주려고 했나요?" 고개를 갸웃. 하면서 왜 만들려고 했는지 물으려 합니다. 그런 뒤 유혜가 맞있다고 하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려 합니다. 그래도. 먹어주고 맛있다 하면 기쁘잖아요?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그거 오프라인에서 파는 건 한 개인가.. 두 개인가에 2천원이라고 하던가요? 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기억해내려 해봅니다만 곧 어디서 흘러들은 거라 포기하고는 화이트데이여서 사탕을 만들었냐는 물음에 어..음.. 이라고 잠깐 침묵하다가
"네...에... 화이트데이라서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짓으로 닉시를 두엇 불러서 이야기를 나눌 동안 카트를 끌고 가서 놓아두라고 한 뒤 유혜를 바라보고는 눈을 조금 피합니다. 그래도.. 아직 대놓고 말하기에는.. 조금..은.. 부끄러운걸요..
답지 않게 야근에서 도망치고 있던건 누구일까. 처리하지 못한 일을 뒤로 한 채로, 평소에는 묶고 있던 머리카락마저 단정치 못하게 풀어 해친 채로, 벤치에 앉아 그저 하염없이 하염없이 밤 하늘의 별들을 눈으로 세어나가고 있었다. 이 도시의 별들은 어릴 적 산기슭 공터에서 보던 그것들과 똑 닮아 있어서, 슬픈 기분이 들어도 눈을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문득, 하용성의 말을 떠올렸다. 이 별들은 SSS급,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작품이였다, 라고. 정말 믿을 수 없던 이야기였지. 솔직히 말하면 여태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질 않았었다. 리크리에이터가 많은 이의 기억을 지우는 것을 목격했을때도, 처음 R.R.F의 목적을 들었을 때도, 보안 유지부의 속내를 들었을 때도. ...멀게만 느껴졌던 심각성을 인지 했을 때는 그 SSS급의 혈육이 우리들의 오퍼레이터였고, 희생될 수도 있다는 말이였다.
우리들은...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지?
...멀리서 익숙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뒤로 젖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렛쉬와 하윤 씨.
입으로 음악소리를 내면서 걸어가는 도중, 저 앞 쪽에서 주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말은 금방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마치 나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이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주 씨. 오늘은 야근이지 않았나? 그리 생각을 하면서, 잠시 주 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뭐예요? 그거? 후훗. 저,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 있어요? 여기까지 와서 그런 표정 지으면서 그런 말 하고.."
"왈...?"
나만이 아니라 렛쉬도 조금 의문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의 주 씨. 뭔가 묘한 느낌이니까.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지금 내 눈치 보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아. 이건, 일 안하고 있는데 나와 마주쳐서 그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두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제가 잔소리 마왕으로 보여요? 아. 물론 서하 씨에겐 잔소리 마왕 맞지만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서하 씨가 얼마나 귀차니즘 환자인데. 일 시키는 이쪽도 힘들다고요.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여기까지 나오시고? 주 씨가 땡땡이 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