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모션마냥 천천히, 다솔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며칠 만이었을까. 오랜만에 따스한 날씨였다. 창문을 힘겹게 비집고 들어온 따뜻한 햇살이 다솔의 뺨 쪽에 비춰졌다. 이런 날은 얼음이 금방 녹는단 말이지. 손으로 뺨을 짓누르는 자세를 취하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돌려 말하자면 오늘은 딱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곤 다솔은 얇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분명 손을 넣으면서 무언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는데, 기대 외로 저번에 무언가 물건( 쫑이 간식이었나? )을 사고 넣어둔 남은 거스름돈이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었지, 다솔은 손 안에서 종이 몇 장과 동전들을 굴리면서 가장 가성비 있는 점심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다. 서 앞에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던가. 있었던 것 같고.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다솔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밥..은 싫으니까, 누군가를 구해서 같이 먹으러 가자는 속셈이었다.
아니 왜 갑자기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거야!! 내가 한 말이 잘못되었나? 뭘 잘못했는진 몰라도 제가 잘못했습니다!!! 속으로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친다. 마구마구 흔들리는 동공을 바로잡고 이 분위기를 띠워보자 싶어 한 개그였건만... (거짓말 치지 마! 그냥 반응이 궁금해서였잖아!) 서하 씨의 거한 반응의 상황만 더 악화된 기분이었다.
“...”
아무 말도 못하고 서하의 웃는 모습을 보던 지은은 순간 이 장면을 찍어서 아롱범팀 단체 카톡(있나?)에 얼리면 제법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로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었는데 지은의 손은 생각보다 성실하고, 재빨랐다. 스마트 폰을 들고 ’서하_선배의_뻣뻣한_웃음.jpg’짤을 찍으려 했다.
“아, 이거는 저도 모르게.”
정말 몰랐다. 지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핸드폰을 황급히 내려본다.
“그리고 선배님 죄송해하시지 마세요! 제가 죄송합니다.... 으... 역시 이런 타이밍에 이런 개그를 하는 게 아니었나.”
분위기 싸해진다고! 그래, 요즘 말로는 갑분싸였나? 지은은 미간을 찡그리고는 속을 진정시키려 오렌지 주스를 벌컥 들이켰다. 다른 주제나 찾아보자 싶어 뜬금없이 물어보았다.
“서하 선배는 어... 어떨 때가 가장 행복하셔요?”
그러고 보니 엄청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질문은 너무 뜬금없지 않나...?
난 봤다. 분명히 봤어. 핸드폰으로 뭔가를 찍으려고 하는 모습을 분명히 봤어. 일단 찰칵하는 소리는 안 들렸으니까 상관없지만... 우선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싶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러모로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여기로 오지 않았으면..나았을까?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꾸려는 지은 씨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어 지은 씨에게 이야기했다.
"...아뇨. 그냥 이쪽의 사정이 있어서. ...오히려 분위기 밝게 하려고 해주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음... 이쪽이 더 죄송합니다."
이어 고개를 숙여서 지은 씨에게 사과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한탄했다. 이러면 분위기가 더 어두워지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헛기침 소리를 여러번 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입을 열어 지은 씨에에게 이야기했다.
"...뭐, 이런 분위기 계속 신경 쓰는 거 귀찮으니까...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하죠. 그냥. ...그리고 행복이라고 했나요? 행복이라..."
어떨 때가 가장 행복하냐라... 그것에 대한 답은 정해져있었다. 정말로... 하지만 그것을 내가 입으로 담아도 괜찮을까. 잠시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가 피식 웃으면서 지은 씨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일단 물은 것에 답을 하는 것이니 말이야. 그렇기에 나는 나의 행복을 지은 씨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런 거짓도, 꾸밈도 없는 행복을...
"...가장 행복한 것은 역시, 아실리아와 둘이서 있을 때겠죠. 같이 근무라던가, 같이 당직이라던가... 사귀기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
자연스럽게, 왼손에 끼고 있는 반지로 시선이 향했다. 그녀가 나에게 준 반지를 바라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기에,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서워. 아실리아. 지금은 말이야. 하지만, 너는...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겠지.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다가 다시 눈을 뜨고 이번엔 지은 씨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목소리 톤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아롱범 팀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네요. ...여기 꽤 좋은 분위기니까요. 전에 있던 곳에 비하면 말이에요. ...뭐, 그런 느낌이에요. 그러는 지은 씨는 어떤데요?"
그렇게 나의 행복을 거론하면서, 어쩌면, 내가 입에 담는 것 조차... 용서받지 못할 그런 행복을 입에 담으면서 난 지은 씨에게 방금 내가 받은 질문을 돌려주었다.
땀을 삐질 흘리며 시선을 멀리한다. 저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지만 아직 반 밖에 저지르지 않았잖아? 괜찮을 거야. 스스로 다독이며 사과하는 서하 선배를 어색하게 보았다. 아, 오늘 한강 온도 어느 정도지? 가는데 너무 먼데, 이 근처에 깊은 강 없을까. 지은은 자신을 질책하며 하얗게 불태워지는 것이었다. 좋아, 이대로 투명화를 하고 사라지는 거야... 사라지는 거야... 너무 당황해서 일반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은이 투명화를 하기 직전에 서하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좋아, 이번에야 말로 정말 밝은 분위기로 다시 시작하자 싶어 입꼬리를 높이 올려 서하의 이야기를 경창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핑크핑크한 분위기로 다시 시작할 줄은 몰랐지. 이지은(모태솔로. 24세. 女)은 저절로 구겨지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종래에는 정말 흉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중학교 시절의 그 얼굴일 것이다.
“아.”
입밖에 말을 내뱉고 보니 불량하기 그지 없는 말투였다. 지은은 그제야 표정을 바로 잡고 억지로 웃으며 웃는 것이었다.
“하하, 정말 행복해 보이시네요.”
그럴 듯한 연기였다. 하지만 아까의 표정은 분명 화가 난(질투지만) 누군가의 일그러진 얼굴이 틀림없었다.
“제... 행복이요? 글쎄요, 전 사소한 것에 쉽게 행복해하니까요!”
사소한 것. 일상에서 놓칠 수 있는 사소한 것을 자세히 보다보면 행복했다.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경찰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된 경찰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을 돕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그들은 날 정말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인정받고 감사인사를 받는 일이 낯설면서도 행복했다.
“저번에... 도와드린 할머니가 고맙다고 인사 오셨더라고요. 그런 사소한 일이 행복해요...”
할머니를 돕고, 그에 감사 인사를 받은 것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은 참으로 경찰다운 자세였다. 적어도 나보다 훨씬 더. 은은한 미소를 입에 담은 지은 씨를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런 것에 행복을 느끼고, 정말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지금의 나는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경찰로서 있고 싶지만, 경찰로서 있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결국..나는...아마도...
"...그런가요? 좋은 행복이네요. 그거. ...뭐, 저라면 귀찮아서 일일히 도운 사람을 다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보람이 느껴지는 일이긴 하네요. 그거."
나도 한때는, 지은 씨같은 경찰로서 있었다. 그런 것에 행복을 느끼고, 강하게 정의감을 가지고, 범죄에 맞서 싸우고..그런 멋진 경찰. 지은 씨 같은 경찰로서 활동한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경찰다운 경찰로서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정말로 어떠한가.. 요원이 된 이후의 나는 어떠한가... 참으로 괴롭기 그지 없는 현실만이 눈앞에 보였다. 이 상황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해방될 수 없는 나의 상황. 더 나아가, 해방되기 위해서, 하윤이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상황. 대체 이 얼마나 잔인한 상황인가. 아주 살작 씁쓸한 미소가 번지는 듯 했지만 애써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애써,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자세. 언제까지나 간직하길 바랄게요. ...경찰로서 말이에요."
나는 비록 경찰로서의 자세를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눈앞의 은은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그녀만큼은, 언제까지나 그 자세를 유지하길 바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지은 씨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
>>50 ㅋㅋㅋㅋㅋ 아닙니다..! 아닙니다..! 노트북이라서 빨리 쓰는 거예요! 저 폰이면 엄청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금손이 아닙니다! 그리고...음..아무래도 서하의 상황이 썩 좋진 않죠. 하지만 예정되어있던 일. 사실 지금 스토리가 막 끝나서 그렇지. 또 이후에 일상을 보면 안 그럽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