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이 타오르는것도 한 순간이었지만,사그라드는것도 정말 한순간이었다.아무래도 콩나물을 기르는 건 귀찮단 말야.콩나물이 먹고 싶다면 그냥 가게 가서 사오면 그만이었다.아마 그래서 자신의 방에 화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정적인 건 그닥 선호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니까.
"넵!작은별 괜찮....엗."
그 말에 잠깐 대답이 끊겼다.프랑스어라고..?프란스어...그것까지는 어떻게 배워본 적이 없다.프랑스어는 아랍어..만큼은 아니지만 암튼 꽤나 어려웠기에 금새 포기했었는데..어쩐다.어쩐다.자신 있게 말했지만 사실 가능한 언어는 한국어 영어 일어 그렇게 셋 뿐이었다.도윤은 이내 난처하게 웃었다.
"ㅎ..하하,네,네!당근 가능하죠!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독촉에도 불구하고 도윤은 이내 생각에 푹 잠겼다.프랑스어.프랑스어 노래는 어떻게 부르면 되는가.어떻게 불러야 프랑스어 좀 잘 한다고 소문날까.한참을 고민하다가 외국어는 농담이었다는 말이 들려오자 안심한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헷,아쉽네요!제 끝장나는 프랑스어 실력을 보여드릴수 있었는데!"
그러고는 이내 다른 말 하기전에 한국어 가사로 작은별을 열심히 부르기 시작했다.얼른 시작하지 않으면 프랑스어로 불러달라고 그럴지도 몰라. 노래가 끝나고,곧 들린 어려운 요구라는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인다.
"에에,그런가요?뭐,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정도는 이해할수 있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쭉 잡아올리는 모습에 풉 한다.초콜릿 다 먹어서 다행이야.응,정말 다행이야. 으음,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쁜 웃음이라는 거 좋잖아!좋은 거잖아,그치! 곧 지어지는 웃음에 흠 하고 제 입가를 가볍게 톡톡 두들긴다.
"뭐,그 정도라면 환해진거 같기는 하네요..?"
뭔가 평범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앞서 지었던 웃음들보다는 확실히 조금 더 나아진것같은 기분이니까..그냥 오케이 하기로 하지 뭐. 그나저나 이러니까 왠지 행복 전도사가 된 기분이 든다.음,이참에 그냥 행복 전도사로 취업(?)할까?
지하로 통하는 계단은 낡고 삐그덕대고 있었다.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한지라 발길이 절로 빨라졌다. 벽을 더듬으며 촛불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계단 끝까지 내려가자 촛불의 빛이 손바닥만한 복도를 가득 채웠다. 육중한 철문의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자 소리 없이 문이 열리는 것은 아주 오래 전, 혹여 이 안에 잠든 자가 깨어나 홀로 나오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기름칠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엔 달큰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겠지만 지금은 쥐와 벌레가 기어다니고 퀴퀴한 곰팡이가 피어나 답답한 냄새가 가득했다. 어느새 그 냄새들은 폐속으로 파고들어 숨을 쉬는 것을 방해하였고, 작게 기침을 하며 눈 앞에 보이는 관을 바라보았다. 이 장소에 사람과 집요정의 발길이 끊긴지 10년이 더 넘었다. 먼지 쌓인 천을 걷어내자 그제서야 관짝에 음각으로 파인 문자가 드러났다.
Aufgabe Ray Altair.
얼굴도 아닌 고작 이름 하나를 마주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미어졌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따금 제 아들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죽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실날같은 희망은 던진지 오래였고, 마지막 희망조차 강풍 앞의 촛불처럼 무력하게 꺼져버리고 말았다. 베아트리스는 마음을 굳게 다잡곤 관을 열었다. 먼지가 주변을 희뿌옇게 물들였고, 관속에선 각종 벌레가 혼비백산으로 기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은 새하얀 백골이 되어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백골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백골은 머리를 제외하고 산산히 부숴졌다. ***
니플헤임의 표정은 평소와는 달리 일그러져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복도 구석에서 호울러를 받은 터라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것이다. 베아트리스의 격노한 목소리는 형용할 수 없는 각종 저주를 담고 있었고,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은 꽤 역겹기 그지 없던 것들이었다. 쟤도 저런 것을 받나보네? 따위의 시선 말이다. 편지를 무시하고 기숙사로 돌아갔지만 떽떽대며 쫓아오는 편지는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잔뜩 비꼬는 투의 사랑하는 네 엄마가를 끝으로 목소리는 잠잠해졌지만 분위기는 잠잠해질 수가 없었다. 기숙사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향한 니플헤임은 차갑게 식어버린 머리에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젖은 머리와 몸을 말리고 욕실을 나온 니플헤임은 지친 듯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가려운 목과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동안 침대에 엎어져 머리를 박고 있으니 그제서야 속이 진정이 되는 느낌이 들어 니플헤임은 자리에서 일어서 앉아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가,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인가를 생각해도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잘못 된 것인지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베아트리스는 가문의 금기를 깼고,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 사실 하나로도 자신이 하는 일은 정당화 할 수 있었다. 사실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는 여러가지였지. 개인적인 원한까지 포함 한다면 말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자식을 살해하려 공모한 행위는 말 할것도 없고. 다시금 몸에서 힘을 빼 침대에 눕자 잠이 쏟아졌다.
***
또 다시 길을 걷고 있었다. 피비린내와 썩은내가 곳곳에서 진동하고, 맨 발에는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 묻었다. 또 그 꿈이었다. 단 한 번도 길의 끝에 도착하지 못하고 꿈은 흐드러져 잠에서 깨버리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니플헤임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무언가가 다름을 직감했다. 길이 평소보다 넓었다. 아니, 자신의 몸이 작았다. 어린 아이의 몸집보다 큰 예복은 반쯤 벗겨져 걸쳐져 있었고, 질질 끌리던 그것은 이리저리 뭉개진 살점이 묻어 있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즈음 누군가 니플헤임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로막은 것의 형체는 흐릿하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있었다.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도 네 어미가 고생할 필요는 없었겠지!
아니야.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그림자는 점점 늘어났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당황할 수도 없었다. 몸이 굳은 것 마냥 그 자리에 담담히 서서 그림자들을 올려다보았다. 제각기 다른 형체였지만 어느정도 알아볼 수는 있었다.
그정도로 그들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마법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림자 주제에 무슨 대역을 한다는거야?
조용히 해.
쌍둥이가 벼슬이라고 생각하나보지.
네가 뭘 안다고.
저런 애가 어떻게 형의 대역을 하지? 가주님은 생각이 있으신건가?
"제발 그만."
일순 정적이 일었다. 정적 이후 들리는 것은 작은 아이를 비웃는 웃음소리였다. 제각기 다른 웃음소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둬. 그만두라고. 애타게 외쳐도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그림자 주제에! 어차피 형 대신 죽을 고기방패가 아니던가요?
웃던 자들이 격노하였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제각기 분노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형의 대용품을 어찌 가주에 앉히겠다는 것이냐!!! 생각이 있는게냐, 베아트리스!!! 아버지가 실망하실거다, 저 멀리서 땅을 치고 오열하시겠지!! 가문이 기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
모든것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 검은 색이었다가, 하얘졌다가, 붉어졌다가, 시간이 1초씩 흐르듯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린다. 혼란스럽구나. 아아. 그림자가 모이고 모여 가장 익숙한 형체를 띄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홀로 잠드는 것이 두려워 어머니와 아버지의 방을 찾았을 때, 불이 켜져있어 몰래 엿들었던 그 대화를 잊을 수 없었다.
어차피 레이는 가망이 없고, 세이는 자질이 없어. 차라리 새 아이를 낳자. 고작 6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새 아이 보다는 니베스를 가주로 앉히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라요. 저에게 6년은 너무 길었으니.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거세게 밀어내고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겐 너무나도 큰 옷을 질질 끌며 달리자 하얀 옷이 붉은 피에 젖어들었다.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작은 소년은 넘어지고 말았다. 그림자는 자신을 향해 다가왔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역병이 일었다!!! 역병이다, 끔찍하고 역겨운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는구나!! 구더기가 기어다닌다, 저 멀리서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악취가 풍기는구나,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전염되었다!!역병이 돌고 있었다. 고작 쥐 한마리 때문에, 모든 것이 멸하게 될 것이다.저 자들은 역병에 걸려 죽어가는 지도 모르고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다!!하루 빨리 역병을 몰고 다니는 쥐를 잡아야 한다! 하루 빨리 죽여야한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최대한 빨리 쳐야해.지금 당장이라도!!!
***
"으흐윽!!!"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니플헤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식은땀에 젖은 살갖 위로 머리카락이 이곳저곳 달라붙어있었다.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니플헤임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가리고 침묵을 유지했다. 입안에서 신물이 절로 고이고, 속이 울렁거렸다. 대체 왜. 짧은 질문이 머리를 채웠다. 대체 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입 안의 신물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틀어막은 손가 사이로 흐르기 시작했다. 급히 뛰는 소리와 토악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간히 괴로운 듯 숨을 헐떡이는 소리마저 들렸다. 한참 뒤에서야 입을 헹구고 다시금 침대로 향했다.
"누구나 간혹 그럴 때가 있지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그렇게까지 신경쓰지는 않지만-다만 뭐라뭐라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는 꽤나 신경쓰였다.- 바보같은 일이지.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서 반영하기리도 하는 걸까요? 만일 기어오른다면 밟는다는 생각을 알았다면, 우감스럽게도.. 라는 생각을 분명 했을 것이었습니다.
"이 사탕이 다 타버릴 때... 누군가의..목숨도 끝나겠네요." 어떤 신화의 영웅이 이와 비슷한 예언을 받았었지. 라고 생각하고는 사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사탕을 먹지 않을 테니 계속 있을 것이고, 나중에 그것은 유품으로 불태워질 것 같거든요. 살갑게 대하라는 것에 아우프가베 선배에게 어릴 적에 했던 듯이 오라버니라고 불러드리기라도 할까요? 라고 정말로 진심은 아닌 걸 딱 알 수 있는 말투로 느긋하게 말했습니다. 그거에 화를 내던 능글맞게 넘기던. 별 의미는 없으니까요.
"돌아가면 책을 읽고, 이것도 분석하고 그래야겠지요." 액체가 찰랑이는 크리스탈 병을 살짝 눈높이에서 흔들고는 장난이 늘었다는 말에 유감스럽다는 듯 청룡에 비하면 장난이라 할 것도 아니랍니다. 라고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새들을 날려보내고, 창문을 확인하고. 쫓기는 듯한 영이의 행동에, 자신의 입에 걸려 있던 미소가 굳었다가, '미행'이라는 단어에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
세연 후배 일도 그렇고. 정말로 이곳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어떤 식의 사고 방식을 가져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도 싫은 일.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말 그대로, 이상한 나라다. ’Wonder’ 보다는 ‘disgust’에 가깝겠지만은. 믿기 힘든 이야기일지언정 나는 널 믿는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믿어 달라고, 제발, 믿어 달라고. 눈이 멀어버린 거냐고. 머리를 다친 거냐고. 당신들 눈에는 저게, 저게 보이지 않냐고. 애걸하던 말을 주목받고 싶어하는 아이의 거짓말로, 광인의 중언부언으로 치부했던 그치들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다.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하 영,” “영아. 더 자세히 말해 줘.”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
돕는 것 만으로는 간이 안 차지. 사실은 ‘지키고’ 싶고 ‘구하고’ 싶은 거다. 권지애에게 있어서 세상은 ‘우리’와 ‘그들’로 나뉘어져 있는 이분법적 공간이었고, 지애 자신은 자신들과 자신들을 해치려는 '그들' 사이에 선 마지막 문턱, 그 문지기였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차갑고 무관심한 세상에서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지애는 자각하지 못했지만-자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세계관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참으로 치졸하고 유치한 영웅심리라고 할 수 있었다.
>>44 1. 별로 없습니다. 아빠와 단둘이 손 잡고 가서, 다른 아이들처럼 정오 지팡이상점에서 구했어요. 2. 데이 AU때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루시오 안 날리면 다행(…)(어짜피 트라우마 때문에 쏘지 못하겠지만) 3. (애도) 4. 대애박 대애박 저 괴담 진짜 좋아하거든요! 완!전!!!! 환영입니다!!
사실 안좋은 과거라서 흥미가 있으면 안됀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모르고 하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상대가 저 같은 레질리먼서도 아니고. 아니 물론 아니라는 데에는 확신이 없지만 그래도...
"그리고 뭐 진짜로 채찍질하기엔... 길이가 부족하니까요."
아닌가 부족하지 않은가. 그딴 건 상관없다.
"그, 그리고 그런가요...? 절 위해 그렇게 해 주실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녀는 이윽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도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도 푸욱 한숨을 내쉽니다. 나도 저 나이 땐 좋았지... 가 아니라, 잠깐. 저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나 좋았던 거 아냐? 그러니까 아무래도 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이건 아냐. 이건 정말로 아냐! 난 저 나이 때 좋았던 게 아니라 언제나 안 좋았던거고 그나마 밝게 있을 수 있던 때가 몇년 전에 이미 지나갔다는 거 알아!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의 펜던트가 걸린 부분을 옷 속에서 꺼내어 만지작거립니다. 열쇠와 자물쇠. ......참 독특한 디자인이지. 아니 그닥 독특한 건 아닌가.
"아무튼 기다리는 건 잘 하니까."
적당히 기다리도록 하자. ...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미행을 하려 했던 타깃이 지나갔어...?! 잠깐만. 뭐지? 그녀는 금방금방 그 쪽을 돌아보다가 살짝 주시하더니 뭔갈 알아낸 듯 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