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다시끔 웃으며 교과서를 조금 더 그녀의 가까이에 가져다댔다. 이해 못 한 거야? 들어달라는 거잖아. 내가 너무 피곤해서 들고있을 힘이 없거든. 눈치없기는. 옅은 실소를 흘리며 입에 물고있던 막대사탕을 쏙 빼네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얘는 말을 너무 어렵게 한단 말이야. 그냥 간단하게 길을 잃었다. 라고 말하면 될 걸. 다시끔 나른하게 하품을 하곤 방금 전까지 입에 물려있던 막대사탕을 그녀를 향해 장난스레 건네었다. 너도 줄까? 가볍게 덧붙이며 다시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래? 그러면 그렇다고 치자. 지금은? 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질문하곤 창틀에 살짝 걸터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여기서 마주치다니. 꽤 별 일이네. 길을 잘 못 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무어, 진짜 길을 잘 못 든 건지. 백호 기숙사에 용건이 있던건지. 그녀의 행동에 조금 의구심이 들었지만 세세히 캐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그냥 흘려 넘기기로 결정했다.
"글쎄~ 딱히 큰 일은 없었는데. 우와, 내 걱정까지 해준거야? 이거 살짝 감동~ 일지도."
희미하게 미소지어진 얼굴을 마주보며 창틀에서 내려와 그녀의 앞에 섰다.
"사실 피곤해서~ 기숙사로 들어가려던 참이었거든. 근데 이렇게 만나니~ 또 헤어지기가 아쉽네. 너도 그렇지? 그러니까~ 현무 기숙사까지 바래다 줄까?"
"저런.. 그렇게나 힘이 없으시다면 제가 들어는 드리지요." 본래 위에 있는 이는 아랫것들을 돌보는 것이랍니다. 까지는 말하진 않았지만. 딱히 안 들어준다고 해서 나빠지지도, 들어줘서 좋아지지도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는 대신 제가 보이는 대로 채색은 해도 되려나요. 라고 나긋나긋하게 말하지만 딱히 뭔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귿이 해서 악연을 쌓을 필요는 없거든요. 너도 줄까? 라는 것에서 초콜릿이라면 요즘 간혹 먹지만 요즘은 사탕은 별로 땡기지 않네요. 라고 답한 뒤 걱정했냐는 말에. 고개를 기울이며 마치 학생이 아니라면 꼭 원수를 걱정하는 듯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아무리 그래도 학생이기 때문에 걱정은 합당한 일이니까요." 라고 답했습니다. 어디까지나 학생이기에. 동화학원 내에서의 즉사 저주스러운 주문이 일어나거나 십자가형의 주문이나 조종 주문에 해를 입으면 걱정은 아무래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동을 바란 건 아닌 당연한 것이었지만요.
"그렇지요. 기숙사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해야지요."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바래다 줄까? 라는 것에 제가 사기노미야씨의 책을 들고 있으니 이걸 받으시려면 부득이하게라도, 저를 따라와야 하지 않을런지요? 라고 여전히 나긋나긋하게 말했습니다.
콩에 싹을 틔우는 것쯤이야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것도 콩나물로 키우겠다면 더더욱. 거의 방치 수준으로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크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풀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니 의욕만큼은 참으로 활발하게 넘쳐났다. 적당히 알겠다 하며 넘기고는 말을 마쳤다.
이미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낀 것이라지만 그는 아무래도 소심함이나 부끄럼이 없는 듯했다. 온 몸이 털이 난 상태로 퍼덕거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상태에서 목마를 타서는 또 노래를 부른다니. 자신이 시행한다 가정하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행동을 태연하게 해내는 것이 새삼 대단하다 느껴졌다. 어찌됐든 싫어하지 않고 말을 잘 들어주니 어려움이 없어 좋았다.
"음,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데.... 그럼 작은 별 어때?"
프랑스어 가사로 부탁할게. 장난스레 놓아 말하고는 이내 독촉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하며. 왜 별 노래를 요구하는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까닭을 알 수는 없었다. 아마 밤하늘이 좋아 그래서였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확연히 그랬기에 나온 말이었다. 외국어로 해달란 말은 농담이었다며 뒤늦게 석명이 덧붙었다.
"그건 좀 어려운 요구 아니야? 나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그렇게나 이상한가. 손가락으로 입의 양 끝을 쭉 잡아벌리다 갸웃했다. 예쁘고 환하게 웃는다라. 예쁜 웃음은 잘 모르겠으나 환히 웃는다는 건 다소 감이 잡히는 듯도 하였다.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희열을 느끼면 표정이 밝아지기 마련이니, 요컨대 즐거운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기쁨, 환희, 화락을 느낄 때가 예사로는 언제였나. 그래, 아마.....
"이렇게?"
생각하자니 떠오르는 상황이 꽤 많았다. 과거에 때려눕혔던 몇몇과 현재까지도 대치하고 있는 얼굴 두엇이 물 흐르듯 스쳐갔다. 나는 이기는 게 참 즐거웠다. 지어지는 표정은 당연히 그에 맞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그래서 평범하게 웃기에는 글렀다는 소리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는 그러지 말아달라는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다른 학생으로부터 빼앗은 교과서였기에 그녀가 무슨 짓을 해놓든 상관은 없었지만. 남이 내 물건에 손대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거절해버렸다. 여튼간에 의외로 짓궂단 말이지. 그런 면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기어오른다면 밟아줄 필요가 있겠지. 아직까진 귀엽게 봐줄만한 수준이라 그냥 넘겨버릴 수 있었다. 사탕이 거절당하자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잠시 아무말 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내 생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꺼낸 여분의 막대사탕을 억지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주는 물건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분고분 움켜 쥐어야지. 어디서 건방지게 거절따위를 하고있는 거야. 짜증나게.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마~ 재미없게. 좀 더 살갑게 대해줘~ 방긋방긋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말을 적당히 흘러넘기며 가볍게 어깨를 으슥였다. 애초에 내가 누군가에게 걱정받을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걸. 걱정은 피해자들에게나 하는 거지. 난 언제나 가해자니까. 걱정받을 필요도, 걱정 받을 이유도 없었다.
"돌아가면 무얼 할 거야? 흐음~ 못 본 사이에 얼굴만 예뻐진 줄 알았더니 장난도 꽤 늘었구나?"
설마 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어? 돌려주지 않는다면 강제로 빼앗아 버리면 되는걸.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무 기숙사로 향하는 방향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