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티를 선택한 이성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긴 소매나, 원피스 같은 밑단이나. 정녕 40cm의 키차이는 사람을 이리 행복하게 한다는건가! 자신의 왼쪽에 앉는 당신을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던 그는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행동이 마냥 사랑스럽다는 듯 눈을 휘어 웃었다.
"누나."
이사라. 꼼질대는 당신의 손을 한 손으로 가볍게 잡고 허리 부근으로 손을 옮긴 그는 눈을 휘어 웃어보이며 당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쩜 이리 작고 사랑스러울까. 그것도 있었지만 역시 혼자 두기에는 내심 두려울 따름이었다. 떨어져 있으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나랑 살래요?"
나 혼자 있는 거 너무 외롭단 말야. 짧게 덧붙이곤 그는 얄밉게 입꼬리를 올렸다. 차라리 자신과 같이 산다면, 위험해질 일은 없을 터였다. 아니, 위험해. 충분히 위험하다고. 한가닥 남은 이성이 그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네 자신이 위험하다고, 망할 꽃돌아!!!
옆의 물컵을 들어 들이켰다. 그래,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너는 그것을 위해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까지 경찰대에 들어온 것이였지. 그게 그 흉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지은이 흉터에 대해 저에게 말을 했던 기억은 없지만, 암묵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였다.
정말 행복한거야?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그럭저럭 이지."
잘 지낸다. 고 단언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였지만. 정말 그냥저냥,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덜 잘 살고 있는, 딱 그 정도의 삶. 하지만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어. 저한테는 이 정도의 인생도 과분합니다. "...나는 내가 경찰이 될거라곤 생각 못했어."
그렇다고 딱히 미술계로 진출 할 수 있을거란 생각도 해보지는 않았다. 붙잡지 못할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가끔, 어째서 나는 경찰이 된걸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돈 때문이라면 굳이 그 경찰 경찰 공무원 시험을 뚫고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을텐데. 그런 의문을 계속 머리에 채우고 있으면 오히려 그 답이 뿌옇게 되어 알 수가 없었기에, 결국 의문을 던지는것은 그만두었다.
이사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가, 같이 살자고? 아, 아니 물론 좋지만! 정말 기쁘지만! 안그래도 버벅거려 과부화되던 머릿속은 같이 살래? 라는 말에 완전히 혼돈의 소용돌이가 되어버렸다. 침착하자 이지현. 이건 언젠가 나올 이야기였어. 그냥 타이밍이 좀 빨랐을 뿐이야. 하지만 머리로만 알고있으면 뭐하나...
"ㄴ, 내는, ㅈ, 좋다...!"
이 이상 말을 더 하면 정말 이성이고 뭐고 날아갈 것 같아서 그대로 너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으으, 얼굴 화끈거려...
문득 갓 성인이 된 시절이 떠올라 작은 실소가 나와버렸다. 그때에는 정말 열심히였다. 아등바등 살아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어쩌면 너도 그랬을까. 눈을 돌려 권주를 보지만 알 길이 없었다. 고개를 으쓱이고는 나도 물병을 가져와 물컵을 채웠다.
그럭저럭이라.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너는 여전하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여본다. 너가 좋아하던 것이 뭐가 있더라. 너는 감정표현이 드물어서인지 아는 것이 몇 없었다. 오랜기간 알고 지내왔지만 너무 모르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그때에는 내가 너무 관심이 없기도 했고 친구가 익숙치 않았으니. 남몰래 정당화를 시켜보는 지은이었다.
"그래도 요즘 경찰되기가 너무 힘드니까. 그리고 돈도 많이 받지!"
미술을 포기한 너의 모습에 괜히 씁쓸해졌다. 애써 좋은 이야기를 해본다. 아직도 그 경쟁력을 생각하면 질릴 정도다.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
"나보다 먼저 경찰이 된 것은 조금 부럽단말이지."
그것도 설마 같은 팀일줄이야. 과거 친구가 같은 직장 동료가 된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같은 익스퍼라니 신의 장난이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 너가 나랑 같았다니. 내가 엄청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조금 김 샌 느낌... 무엇보다도 나보다 멋지잖아!"
갑자기 심술이나서 툭 쏘아붙였다. 권주의 잘못은 없었다. 그냥 지은의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하자.
가까이에서 보니 확실히 안색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더랬다. 그에, 아실리아의 얼굴에는 짐짓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역시 어딘가 많이 안 좋은 건가. 아니면 무슨 고민이 있나요. 가만 보면 은근히 속으로만 앓는 사람이다. 뭐, 그게 천성인지 아니면 외부 요인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러다가도 제 손을 잡는 느낌에는 살풋 웃음을 흘렸더랬다. 손과 손 사이를 가로막는 검은 장갑 때문에 그 온기를 느끼지 못 하는 것이 새삼 아쉬울 정도로 손과 손을 잡고 있는 느낌은 몹시 부드러웠다. 공개 연애는 편하네. 문득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서하의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며 걸어갔다. 그러다가 살짝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런 인사를 건넨 하윤에게는 적당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언제부터 네가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지? 퇴근길의 공기는 아직 차갑겠지. 어디는 또 눈이 온다던데, 여기는 눈 소식은 없나. 그런 생각으로 올려다 본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질 듯 반짝거렸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이 마치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정말 신기하지, 도시인데도 시골 밤하늘 마냥 이런 절경이 펼쳐진다는 게 말이야. 문으로 걸어가며 무슨 일이 있느냐 묻는 말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아실리아는 남는 손으로 문을 밀고 경찰서를 나섰다. 그리고 완전히 그 문과 멀어지고 나서야, 서하를 올려다보면서 가만히 입을 열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