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느껴지는 시선에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조금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약간, 아주 약간 반대로 돌린다. 확실히 화제의 전환이 필요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나 싶어 입을 열려는 참에 선배가 마침 타이밍 좋게 발렌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맞아요. 발렌타인 데이죠. 기대되지 않아요?“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아롱범팀에서의 첫 발렌타인 데이인지라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저번 돌아다니다가 쉽게 파베 초콜릿을 만드는 법을 보았는데 좋게 나와주면 좋을텐데. 정신을 차리니 벌써 도착이었다. 주차까지 완벽하게 마친 후 안전밸트를 풀었다. 뒤에 앉아 있는 소매치기범을 슬 보고 경찰서에 넘기면 끝이다. 지은은 소매치기범을 붙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렇게 가는 듯 싶더니 고개를 돌려 월하를 본다.
장난스런 웃음을 삼켜내며 끝까지 갈 인연이라고 대꾸하는 말에 "그런가"라는 짤막한 말을 무표정하게 돌려주었다. 성재라면 모를까, 나 같이 숨기는 게 많은 사람이랑 긴 인연을 유지하면 과연 무엇이 좋은 걸까. 게다가 그 숨기고 있는 것도 절대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좋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조용히 지나간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도 겉으로는 나른하게, 태평한 대답을 한다. "청산가리는 자제해달라고."라면서. 독살 관련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초대?"
반응이 한 박자 정도 늦고 말았다. 입으로 가져가던 젓가락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초대인가. 가만히 생각하니 어딘가 말장난스러움이 느껴진다. 일단 젓가락부터 다시 움직여 음식을 입안에 넣어 우물거렸다. 나지막한 "한 번 생각해보지"라는 소리를 능청스레 읊조렸다.
어느새 반 정도를 먹어치운 것 같다. 십년지기는 물을 들이키더니 다음에는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가볼까, 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너만 괜찮다면, 이라는 말을 덧붙여내면서. 매운 음식을 그닥 못 먹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인은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 라는 것 같은 한국인들의 생각에 대충 들어맞는 사람이 나다. 유혜는 매운 걸 좋아했었나. 초콜릿만큼은 아닐지라도. 아마 매운 걸 먹으면서 고생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은 어딘가 짓궂은 생각에서 나온 제안이니라, 라고 나는 짐작했다.
"거절은 안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매운 걸 먹일 심산이야."
조금 긴장한 기색을 쓴웃음에 은근히 드러내며 차분히 물어보았다. 생긋 짓는 저 미소가 지금만큼은 묘하게 악마스럽게 보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무사히 시골에 도착....!!() 답레와 함께 갱신합니다! 오전이 벌써 10분밖에 안 남았어!
"그래. 마주치지 않는 게 좋겠지만.." 아마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말은 삼킨 채 그녀는 느리게 아껴진다는 것에 고개를 기울이며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하던 말을 해보았습니다.
"나의 도구를 빼앗았구나. 나의 도구를 변질시켰어. 내 걸. 내걸." "현실에서 사랑받으면 안 될 텐데. 현실에 처절히 배신당한다면 좋울 텐데. 영영 갇혀버리도록" 그런 말들을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말이예요. 물론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그 사랑은 물건 정도려나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나아갑니다. 생각해보니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랬군요.. 현실에서 그랬으면 사고나서...였겠지만. 여긴 공간이니 괜찮습니다.
"성류시 근처엔 바다가 았으니까요.. 그 곳이랑 비슷하다면 비슷하지요." 요 근래 조금 더 넓어지기는 했지만요. 라고 덧붙이고는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옆머리가 살짝 부는 바람에 흔들거립니다. 그리고 헤세드의 질문에는 조금 고심합니다만. 비유에 적당한 것을 찾았는지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확히는 아래쪽이지만요. 물에 빠지면 편안해진다. 안기는 듯하다. 라는 비유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체험에서 강이 나타나듯."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는 물이나 마찬가지예요. 들어가도 숨 못 쉬는 일은 없으니까요. 라고 말하고는 커다란 셉터를 든 채 손을 잡으라는 듯 내밀었습니다. 무의식이란 육신보다 의식이 더 중요한 곳. 그리고 언니라는 말을 듣고는.. 간단하게 올더. 혹은 티오라고 부르세요. 라고 덧붙입니다.
"들어가서 그의 시선을 끌 테니 뒤쪽으로 나아가서, 가장..오래된 문으로 들어가세요. 모든 문 안에 그녀가 있을 것만 같지만. 진짜는 단 하나뿐이니까요." 가장 오래된이라고 써붙여지진 않았지만.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다들 새로운 데 반해. 그 문 하나만이 세월을 조금 받았으니까.
시덥잖은 농담이었다. 유혜는 킥킥 웃음을 삼켜내며 얼마 남지 않은 밥을 입에 넣어버린다. 천천히 씹어내며 드는 생각은, 그래도 이런 농담이나 주고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는 것.
“ 끌려가는 거보단, 초대가 낫지 아마? “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몇 점남지 않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냈다.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 자리였기 때문일까. 그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퍼져나간다.
“ 어, 거절은 안하네. 일단 유명한 엽* 떡볶이는 어때? “
한창 중독되었다시피 먹어대던 떡볶이였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기만 해도 전화기를 들어 바로 주문을 걸 정도로. 센하를 놀려먹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한 번쯤은 먹어봐라! 라는 심보도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을 보며 생긋 지어내는 미소는 악마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 오늘 센하 덕분에 끼니도 제대로 채우고, 고마워서 어째? “
나중에 내가 밥을 사줘야하나? 어느샌가 깔끔히 비워진 그릇을 힐끗 내려다보던 유혜가 물컵을 잡아들며 방긋 웃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