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류 한장을 남겨두고서 갑자기 외근이니 뭐니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역시 서장으로서 조금은 꾸짖어야 할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작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일단 온 모양이긴 한데...일단 들어오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갑자기 그렇게 행동을 취한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나라도 비슷하게 했을테니.. 하지만....
"그래. 들어오게나. ...그리고 자네의 행동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게나. 혹은, 지금 이렇게 찾아온 것에 대한 이유를 말해도 좋고. 어느쪽이건 들어보도록 하지."
나름대로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지현 양을 바라보면서 일단 의자에 앉으라고 말을 한 후에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하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웃음일지도 모르는 그런 것을 느끼면서... 작게 웃어보였다.
"...말없이 서류 한장만 놓고 외근 다녀온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도 쉬려고 외근을 놓은건 아니라서요."
나는 서장님의 책상 위로 쿵 소리가 나도록 캐리어를 올려놓았다. 이 캐리어 안에 내가 다녀온 목적이 들어있다.
"보통 사건을 보고할 때, 대부분은 진짜로 중요도가 높은 것만 정식 보고기록에 올립니다. 나머지 차중요 기록은 보통 해당 관할서에서 보관하다 요청이 오면 받아가라고 하거든요. 제가 부산에 다녀온 건... 보고서에 올라가지 않은 차중요 기록들을 싹 다 긁어오느라 그랬습니다."
범인은 늘 흔적을 남긴다. 그걸 모두 기록했던 과거의 나, 아니 강서경찰서가 그 때의 생생한 기록을 무기삼아 이제 반격을 준비한다.
"지금 보시는 이것들은 새훈, 아니 해문이 과거 저질렀던 범행기록에 대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자세한 자료입니다."
범행 수법, 프로파일링 기록, 피해자들의 상세한 기록, 범행 장소 주변 15km내의 대부분의 것을 기록한 사진 수백~천여장 등등. 이정도로 방대한 자료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곧바로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이다.
그녀가 제공한 서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많군. 이것들을 다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서하 군과 하윤이에게도 도맡아서 체크하게 해야겠어. 이어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조용히 진지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자네에게 확실하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만... 자네는 단순히 이것을 나에게 제출하기 위해서 온 것인가...?"
만약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로 훌륭한 경찰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긁어서 올 정도니까. 하지만, 그것에는 다른 집념도 느껴졌다. 그래. 그것은 내가... 아내의 죽음을 조사할 때..그때 느꼈던 그... 감정...그렇기에 나는 경찰로서 확실하게 물어야만 했다.
"지현 양. 나는 자네에게 한 가지를 확실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네. 자네는 성격상, 분명히 우리가 이번에 수사하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해서... 절대로 빠지지 않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자네의 기록은 나도 체크해서 알고 있네. 자네는... 경찰로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겠나?"
유난히 R.R.F는 이번엔 우리들의 멤버들을 저격해서 일을 벌이고 있다. 마치, 우리들을 내부에서 분열시키려는 듯이... 그렇게 하려는 듯이... 혹은 경찰로서 파멸시키려는 것처럼...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로 그 잔꾀가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유혜 양에게도 나는 말한 적이 있네. ...경찰로서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없다면 나는 수사에서 뺄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자네는 그것을 지킬 수 있겠나?"
"...물론 저도 처음엔, 머릿속에 복수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복수가 다가 아니더라구요. 제겐 가족같은 강서경찰서 사람들, 지금의 아롱범 팀 동료들, 순찰을 나갈 때마다 수고한다고 격려하던 사람들, 날 사랑해주는 연인, 그리고...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저 혼자 복수의 길을 택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생각이 정리 되더라구요."
"자네의 말은 알겠네. 하지만, 나도 서장이고, 그렇기에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주게."
부하의 말은 믿어주고 싶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렇지 않은가. 당장 나만 해도... 내 아내를 그렇게 만든 이를 직접 본다고 한다면..경찰로서의 자세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 사실, 지금은... 약간의 처방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만약 이것이 풀리게 된다고 한다면...나는, 나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감이 들 때도 있다. 그렇기에, 나 자신부터 그러하기에...난 지현 양을 바라보면서 확실히 신뢰할 수 없음을 밝혔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복수가 아니라 체포다...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해보이게. 자네의 행동으로서.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자네를 억제해줄 수 있는 이를 임명해주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네. 서장인 나 조차도.. 내 감정을 다스리기 힘드네. ...그런 상황인만큼 자네가 자네의 모든 것을 억제할 수 있으리란 법은 없네. 무엇보다...지금 이 상황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니까. 어쩌면, 정말로 대거적으로 투입해야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확실하게 선을 그은 후에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조금 무겁고 진지한 무게를 풀고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생각도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대체 우리 서에는 연애를 하는 이가 몇 명이야?! 전에 서하 군에 대한 것을 내가 하윤이에게 들은 기억이 있는데..이제는 지현 양도...인가..?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크게 당황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것을 느끼면서, 헛기침을 여러번 냈다. 어흠. 쿨럭. 쿨럭. 안되지. 아무리 그래도 이 자리에 있을 때는... 평소엔 두더지 굴 파기 놀이 같은 것을 한다고 쳐도 이 자리. 내 자리에서만큼은....
"어흠...그런가. 연인이 있었나. 좋네. 그럼 그 사람으로 하도록 하게. 그리고 해당 자료는 체크하도록 하지. 하지만... 과연 이번에도 같은 느낌으로 나올질 알 순 없네. 명심하게. 자네가 쫓고자 하는 이의 뒤에는 R.R.F가 있네.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여러모로 뛰어난 이들이라고 생각하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연속으로 찾아내는진 모르겠네만... 그들이 있는만큼 조금 위험할지도 몰라."
만약 그들이 정말로... 우리의 멤버들을 내부에서부터 파괴할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시그니처가 남을지는 잘 모르겟지만... 아마, 그것을 R.R.F가 가만히 두고 볼리가 없다. 요 근래 우리를 저격한 4번의 사건. 그 스케일은 보통이 아니었고, 참으로 집요하고 날카롭게, 그리고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틀림없이..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찾기 위함이겠지. 월드 리크리에이터.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 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세계를 개변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도데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 정도로 강한 익스파가 존재한단 말인가? 조금 혼란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나는 지현 양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어 복잡한 생각을 저버리고 나는 서류를 검토했다. 아마도, 타이밍상..일단 이 사건부터 먼저 수사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이 이상의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나는 좀 더 검토하고 찾아보기로 했다. 나의 정보망대로... 물론...그것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