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 씨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와 유나는 오늘 이 연구소에서, 정확히는 천체연구소로 위장하고 있는 이 연구소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일단 우리가 갇혀있던 방에서 강운 씨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방에서 나오는 것보다, 출구까지 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구원들도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성급하게 움직였다간 단번에 경보장치가 울릴 거고, 연구원들이 우리가 나가지 못하게 막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강운 씨는 강한 사람이다. 경비 일을 할 정도인걸. 하지만 아무리 강운 씨라도 사람이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을 알고 있는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강운 씨는 물론이고 내 여동생인 유나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힘이 필요했다. 연구원들이 막아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나에겐 있긴 했지만...그래도 이 힘을 사람에게 써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연구원들을 지워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힘은....
"유리야. 부탁이 있어."
"네? 무슨..."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운 씨가 나를 바라보면서 부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뭔지에 대해서 나는 물어보았다. 이어 강운 씨는 나에게 생각도 못한 말을 했다. 그것은..용서받지 못한 무언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의 힘. 세계를 개변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걸로... 나에게도 그와 비슷한 힘을 주지 않을래?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말이야."
"..네?"
"....강운 오빠?"
나는 물론이고 유나 역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강운 씨를 바라보았다. 나의 힘으로, 강운 씨도 비슷한 힘을? 물론 가능할지도 모른다. 세계를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 정도는 아주 간단하다면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강운 씨가 이 괴물과도 같은 힘을 가질 이유가 어디에 있어요?"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야. 이대로는 나갈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연구원들도 바보는 아니야. 경보 시스템에, 다른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있겠지. 그러니까...이대로는 붙잡힐 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연구원을 없애는 것은 착한 심성의 너는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렇다면 나에게 힘을 줘. 내가 너희를 지키면서, 그들을 막아내면서 탈출시켜줄테니까."
"하...하지만, 그렇게 되면... 강운 씨는..."
"알아. 정말로 도망자 신세가 되겠지. 그렇기에 나는...이곳에서 탈출한 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작위적으로 네가 가지고 있는 힘과 비슷한 힘을 받도록 세계를 개변했으면 해. 그렇다면 그 혼란으로 인해서 쉽게 우리를 쫓진 못할 거야. 아니, 도망친 후에 이름을 바꾸고, 조용히 지내면 아무도 우릴 찾지 못해. 방법은 이것 뿐이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이대로는 나갈 수 없고, 난 연구원들을 없앨 수도 없다. 그리고 도망친 후에,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힘을 가진다고 한다면,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면 세계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우릴 뒤쫓는 것이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할테니까. 그리고 그 동안에 우리는 도망쳐서 자취를 감추게 되면....
"........."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 세계를... 단순히 나와 유나가 도망치기 위해서 혼란에 빠뜨려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곧 그 생각은 사라졌다. 겁먹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나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유나도 나와 비슷한 힘을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연구로 인해서... 세계의 개변이라는 힘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와 비슷한... 그러니까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 어린애가 그 능력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지를 생각해보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좋아요. 강운 씨의 말대로 할게요. 당신에게 우리와 같은 힘을 주도록 할게요."
구속구는 이미 빠져있었다. 방에서 나올 때, 강운 씨가 열쇠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풀어줬기에 나는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자 강운 씨는 부탁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나는 강하게 바랬다. 눈앞에 있는 강운 씨가 나와 유나처럼, 특이한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해달라고.... 정말로 강력하게 바라고 또 바랬다.
이어, 강운 씨의 손에 녹색의 에너지 막 같은 것이 펼쳐졌다. 그에 강운 씨는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
"....제가 부여한 당신의 힘이에요. 뇌의 뇌파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하면 그 힘을 쓸 수 있을 거예요. 강운 씨."
"잘 모르겠지만, 이 에너지 막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이겠지. 알았어. 해보도록 하지. 무슨 힘인지는 대충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으니 말이야."
그 시각. 강운 씨는 정말로 엄청난 힘으로 모든 것을 뚫어나갔다. 나도 모르게 바란 또 하나의 소망일지도 모르지만, 연구원들이 나타나도, 경보가 울려도 강운 씨는 아주 간단하게 그 힘을 이용해서 받아쳐냈다. 말 그대로 반사의 힘이었다. 그 반사의 힘을 이용해서 나와 유나, 그리고 강운 씨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손쉬운 일이었다. 당황하는 연구원들이 아무리 뭘 해보려고 해도 우리들의 힘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힘을 쓰지 않았지만....
연구원 밖으로 나오자 정말로 맑고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도망치는 와중에 강운 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힘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게 하는 것. 그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아기일 수도 있고, 기존의 사람일 수도 있다. 그저, 그저... 우리가 도망치기 위해서 혼란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앞으로도 쭈욱...쭈욱...그런 현상이 유지되는 것을 소망했다.
"...끝났어요."
"그래? 잘했어. 자. 이제 도망가자. 유리야. 유나야. 이제 너희 둘은 자유야."
자유. 그 단어가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실험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니까. 더 이상 갇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에 나는 눈을 돌리기로 했다. 죄를 지으면 어떤가. 우리가 당한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내 동생인 유나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정말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사람을 해치고 없애는 것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이외라면 정말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정말. 이렇게 추워서야 순찰 도는 동안 괜찮으련지. 고갤 슬쩍 기울인 채 걱정스럽단 표정으로 지은을 바라본다. 저야 외투를 걸치고 있으니 조금은 따뜻하다만. 코를 훌쩍이는 모습이며 오들오들 떨어대는 게. 어째 저보다 추위를 잘 타는 거 같으니까. 저러다간 감기 걸리는 건 아니냔 생각이 들어 앓는 소리를 세어 낸다. 외투라도 벗어 내려다, 지은이 말을 걸어와 의아스레 바라본다. 뒤따라 들려오는 말에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저야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목도리 예쁘네요."
밝은 색을 골라낸 지은을 가만 바라보다 툭 말을 건넨다. 머리색이랑 되게 잘 어울린단 생각을 하다 아차 한다. 다시금 외투를 벗어 건네주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다 들려온 비명에 고갤 휙 돌린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고는 눈가를 찌푸려낸다. 말없이 소매치기를 향해 달려가며 허리 츰에 테이저건을 잡아낸다.
오늘부터 2월 14일까지 발렌타인데이 이벤트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웹박수에 [발렌타인 이벤트]라는 머리말을 붙인 후에 주고 싶은 초콜릿을 써서 보내시면 되겠습니다. 이 초콜릿은 특정의 누군가에게 보내도 좋고, 전체에게 돌려도 좋습니다. 어떻게 초콜릿이 배분되었는지는 2월 14일 당일날에 공개하겠습니다. 덧붙여서 저기 저 선물도 2월 14일에 모두에게 배분되는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아.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밝혀도 좋고 밝히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받는 이의 이름은 확실하게 적어주세요. 그래야 분배가 가능할테니까요! 초콜릿과 함께 특정 메시지를 남기셔도 좋습니다!
십년의 진한 우정이라는 표현에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금세 능청스러운 무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냥 알고 있냐는 의미야"라고 놀리듯이 덧붙였지만. 덧붙인 말 그대로, 별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던진 소리다. 농담 삼아서. 십년의 진한 우정이라...아, 그렇기는 그렇다. 벌써 10년이네. 성재를 통해서 이 녀석을 만난지가. 시간도 참 빠르다. 새삼스레 그런 생각도 든다.
반응이 시큰둥한데 고마운 게 맞냐는, 놀리는 것 같기도 한 말이 건네져온다. 입꼬리를 생긋 올린 그 밝은 미소를 향해 차분한 쓴웃음을 옅게 지었다. 비교적 어렵사리 꺼낸 내 소원에 관한 이야기ㅡ아, 그런데 역시 소원이라는 단어는 안 어울린다ㅡ에는 소박하다는 평을 남긴다. 누가 뭐래도 적어도 자신에게는 10년을 알고 지낸 아키오토 센하라면서. 그 말을 들으며 부드럽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없이. 그래, 저런 반응이 정상이겠지. 한국에 오기 전의 나를 모르니까.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다니는지 모르니까.
뭐, 이와 관련해서는 각설하기로 하였다. 유혜는 큰 유리창 너머로 바깥이 훤히 보이는 자리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분명 저런 자리가 인기가 좋은 곳이겠지. 어느 자리든지 상관하지 않았던 나는 따라서 걸어갔다. 자리에 앉고 메뉴판을 펴니, 주문할 음식에 관한 화제로 대화는 전환되었다. 쇼가야키 정식을 시킬 거란 십년지기의 말에 팔짱을 낀채 '흐음'거리면서 그녀가 들고 있는 메뉴판을 넘겨다보았다. 유혜가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글자는 당연히 쇼가야키 정식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모국어도 보인다. 어딘가 묘한 느낌이네.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유혜가 들고 있는 메뉴판을 계속 훑었다.
"그럼 나도 같은 걸로...는 농담이고 나는 가라아게 정식. 나란히 정식 먹자고. 든든하게."
옅은 미소를 잠시 지으면서 능청스레 농담을 던졌다가 그 뒤로는 무덤덤하게 중얼거리듯이 내가 시킬 메뉴를 읊조렸다. "쇼가야키 정식과 가라아게 정식, 주문하고 올게"라고 무표정하게 말을 던지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직원을 향해 간단하게 주문을 마치고는 자리에 돌아왔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함께하지 말자라니, 유혜가 키득 장난스레 웃으며 대꾸한다. 1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유혜에게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남들의 10년과 저의 10년의 무게는 생각보다도 무거웠고, 사실상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 했을 시간이었으니. 유혜가 옅은 미소를 삼켜낸다.
“ 좋아, 저녁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
맛있겠다, 라는 짧은 한마디를 덧붙이며 유혜가 방긋 미소를 짓는다. 컵라면을 벗어난 게 얼마만인지, 레트로 식품을 벗어난 게 얼마만인지! 비록 식당에서 먹는 가정식이었지만 가정식이 그토록 그리웠던 유혜였다. 집에서는 직접 밥 하나 지어먹기가 그리도 귀찮다보니, 어느새 배달업계의 vvip가 되어 있었단다. 주문을 하고 온다는 센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던 유혜가 자연스레 젓가락과 숟가락을 꺼내 각각 저와 센하의 자리에 세팅한다. 이쯤되면 버릇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 그나저나 성재 안만난지도 꽤 됐네. 너는 아직 연락 많이 해? “
사회로 나오면서 조금 데면데면해진 면이 없잖아 있었단다. 센하와 저는 같은 대학을 나왔으니 그렇다해도, 성재와는 거의 연락이 끊긴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학교 졸업 이후로는 셋이서 만는 일도 드물었지. 오랜만에 성재 생각이 난건지 유혜는 센하가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질문을 던진다.
“ 언제 셋이 만나서 놀아야 하는데. “
추억에 젖은 한마디였다.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는 법이니. 유혜가 컵에 물을 따르며 중얼이듯 내뱉는다.
단수가 풀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샤워실로 향하고, 덕분에 자리가 충분했을터였던 샤워실에선 보기 힘든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병원의 샤워실이 조용해진것은 새벽 즈음. 모처럼이니 떡진 머리카락이라도 감을 생각으로 발을 옮겼다.
대충 웃통을 벗고 세면대 앞에 선다. 그러다 무심코 눈 앞의 거울을 보았다. 평소에는 가려져 드러나지 않은 흔적 -길이 약 9cm의 목젖과 목 오른쪽을 잇는 기다란 창상- 은 되도록이면 의식하지 않으려 했었던데다 집 안 욕실은 이미 거울이 떼어져 있어 꽤나 오랜만에 보는 것이였다. 더 이상 보기가 거북해져 금새 거울에서 시선을 돌린다. 빠르게 씻고, 빨리 나가는거야. 그래도,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 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문질러 닦다, 고개를 들었다.
낮설다. 라는 감상이 거울을 본 감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처음 보는 얼굴인 것 처럼, 아니 그보다는 골짜기 깊숙히 무언가의 불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보기가 껄끄러운 느낌.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걸까. 병원에 가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는데. 자신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게 몇년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