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월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니까요. 가장 싫은 존재도 자기 자신이지만... 그러니까 방아쇠를 누르면 흑역사 삭제+가장 싫은 사람도 같이 삭제=시너지라는 느낌. 흑역사라기보다는 트라우마겠지만(비설 통과되는 걸 기준으로 합니다) 본인이 흑역사로 생각하니까
건조한 세연의 목소리에 답하는 소년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이하고 차분할 뿐이였다. 감정기복이 적은,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 세연의 목소리와는 상반되어있다면 상반된 목소리였다. 제게 매달리듯이 기어오르는 사화를 어르듯이 달래면서 소년은 자신의 패밀리어의 귀와 귀 사이를 가볍게 손을 구부린 상태에서 쓰다듬어준다. 괜찮아.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도 방금 전에 중얼거린 목소리와 다를바 없었다. 세연을 바라보며 소년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따뜻하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어깨를 천천히 으쓱이고 세연이 검을 잡아 검집에 꽂는 것까지 소년은 이미 익숙해져버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스릉, 하고 서슬퍼렇던 검날이 스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단지 제게 익숙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였다.
"패밀리어를 위해서임과 동시에 산책이라고 하면 이상합니까."
이쪽으로 산책을 자주 나옵니다. 덧붙히면서 제 가디건을 걸친 세연을 보고 소년은 한호흡을 끊었다. 차분하고 고요한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가 이내 소년은 사화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리며 천천히 몸을 낮춘다. 어려운 사람. 다른 기숙사지만, 동급생이면서 소년이 파악하기 힘든 타입은 몇 되지 않았다. 눈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들, 감정을 파악하기 힘들다. 소년은 몸을 살짝 낮춘 채, 느리게 입을 열었다.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으니까. 그렇다. 외엔 말하긴 그렇죠." 어깨를 으쓱이면서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라고 여전히 건조하게 중얼거리고는, 그런 반면 거짓말 굉장히 많이 하고 있잖아요. 란 생각을 떨쳐내려 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해하려고 앉아있었을지도 모르죠. 거짓말같나요? 란 소리가 후훗 거리면서 들린 기분이었습니다. 현호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부드럽게 저으면서
"이상하지는 않아요. 그저.. 좀 더 깊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희미한 표정을 띄웠습니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흩어질 듯 옅기는 했지만,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낮춘 몸을 올려다보며 그의 질문에 여전히 건조하게 답했습니다.
별 일 없는 이상, 그것은 식까지 이어질 것이었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이대로 있다간)얼음동상이 되어버릴 거예요." 파랗게 질린 입술하며, 손끝이 얼어붙는 기분이며. 충분히 자기를 해쳤습니다. 참으로 다양하네요. 비꼬는 듯한 소리를 무시하고는 사각사각하게 녹았다 언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집으며 순순히 인정하고는 바위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 합니다.
소년은 건조한 세연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사화의 털을 어르듯이 쓰다듬던 손으로 제 짧기만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길 뿐이였다.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세연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였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 소년은 잠시 자신과 세연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지나가면 있는 숲을 바라보면서 평이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이세연양께는 그리 위험하진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다른 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소년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차분하게 중얼거린 뒤에 낮췄던 몸을 천천히 세워 반듯하게 자세를 곧게 편다. 희미하게 표정을 띄운 모습에, 소년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차분하고 평이한, 목소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침묵이였다. 건조한, 목소리. 무슨 일이 있는걸까, 하는 궁금증을 이내 소년은 지웠다. 말하지 않으면 묻지 않는다. 궁금해하지 않는다. 소년의 철칙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
일어나려는 세연의 모습에, 소년은 사화를 안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세연을 향해 내밀었다.
"잡으십시오. 바위가 차가워서 이세연양이 말씀하신 것처럼 손까지 얼어붙을 것 같습니다."
지나친 배려는 독이 되지 않을까. 소년은, 세연에게 이정도의 배려가 괜찮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미 몸에 배인 행동으로 소년의 손은 이미 세연을 향해 내밀고 있는 상태였다. 어깨 위에 올라탄 사화가 불만스럽고 경계어리게 미양 - 우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하지. 인정해." 딱히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는 듯 짧은 긍정이었습니다. 사실은 아닌 것을... 잘 알..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 생각들을 떨쳐낸 듯 은은한 빛의 달보석이 눈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무시하는 것 뿐이지요. 몇십분도 더 전부터 그랬음에도 사라질 리가. 막대한 부담도..바라보던 시선도 잊을 수 없었어요. 현호가 내민 손을 보고는 별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바위를 바라보았습니다.
"난..괜찮아. 얼어버린다 하여도 결국 녹게 마련이지." 영영 얼어붙은 채로 남아있을 건 아니니까. 라고 말을 잇고는. 바위를 짚고 일어나려 합니다. 그렇지만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면목없으려나. 라고 생각하고는 일어서서는 자신의 차갑고 바위를 짚어 약간 얼어 붉게 변한 손을 내려다보고는
"그럼 녹여줄래?" 라고 물음을 던졌습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널 좋아하나 보구나. 라고 왠지 사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