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근처에 전문점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는 말에, "그럼 안내 부탁"이라고 짤막하게 반응하였다. 돈은 넉넉히 들고 왔으니까 그곳에서 얼마나 불러도 상관없다. 그저 맛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다 내 무게없는 말에 장난스럽게 이왕이면 앞에 오늘은ㅡ 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말로 받아치는 십년지기를 보고 그런가, 라고 차분히 대꾸하였다. 자신이 초등학생들의 일기의 구조를 알고 있는 것은 성재의 일기를 보아서이다. 그야 자신은 초등학생 시절은커녕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도 없으니까.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재의 초등학생 시절 일기를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성재의 필사적으로 빼앗으려 드는 모습을 향해 얄미운 조소를 던졌더라. 그 전형적인 초등학생의 일기를 보고 안 것이다. 그 '참 재미있었다'는. 춥다면서 외투를 동여매는 십년지기를 향해 "안 그래도 얇게 입고 오셨네. 그러니까 빨리 안내해"라고 심술궂게 말해주면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없어서."
머리와 배를 가격한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냐는 물음에 작은 목소리로 나답지 않게 자신없이 대답하였다. 화제를 돌린 주제에 그 말에 또 대답하는 것도 우습지만. 하지만 이어서 오는 버터쿠키에 대한 불만터지는 말에 금방 얄미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가 운이 너무 없었던 거겠지. 팀원들에게 물어봐, 버터쿠키는 정녕 없었던 거냐고. 내 운을 원망해야지 나를 원망하면 안 되지."
얄미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태평하게 대꾸한다. 하지만 다루마에 대한 감상은 좋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귀여웠다는 감상. 눈을 두 개 다 그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보니 이미 소원을 빌었나보다. 그리고 나를 향해 가볍게 질문을 던진다. 센하는, 빌 소원 있어?
"...글쎄, 어떨까."
눈을 살짝 감으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기는 한데, '소원'이라는 희망찬 단어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 소원이 궁금하다면 먼저 네 소원을 밝혀보시지, 눈을 다시 원래대로 뜨면서 은근히 도발하는 것 같기도 한 어조로 덧붙였다.
눈을 가느다래 휘며 웃는다.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나름대로 괜찮은 농담이었으니. 속으로 다시금 떠올리니 웃음이 터져 나와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고개를 창가에 기대며 남은 웃음을 털어내고는 슬몃 고갤 돌려 지은을 살핀다. 사람이 되게 밝은 게, 저가 아니었어도 다들 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시선을 기댄 창으로 돌린다. 거울 마냥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군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았던 반지들이며 팔찌를 살피다, 시야 밖에서 건네져온 무언가에 고갤 든다. 도넛이 담긴 박스. 순찰차에 도넛이라. 지은의 말에 영화에서 봤던 장면을 잠깐 떠올리다 방글이 웃는다. 로망이었나 보네.
"커피랑 같이 먹고 그랬죠. 응. 선글라스도 끼고. 지금은 밤이라 끼긴 뭐 하지만. 하튼 저야 당연 좋죠. 응."
아마 이정도 페이스로 이동한다면 십 분내에는 커다란 간판이 보일 것이다. 그럼 3층으로 가서, 밖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면 될 일이었다.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유혜가 밝은 미소를 피워낸다.
“ 하기야, 뭐. “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센하에게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거니와, 괜한 죄책감을 건들고 싶지도 않았다. 유혜는 저의 운을 탓하라는 센하의 말에 픽 토라지듯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옮긴다.
“ 명색이 십년지기인데. 나만 몰래 버터쿠키를 줄 수는 없었던거야? “
팀원들 대부분이 이상한 쿠키를 먹은 거 같던데? 라는 말은 꺼내지 않으며 유혜가 장난스레 미소를 짓는다. 센하에게로 옮겨진 시선은 다시금 두리번 거리며 함께 저녁을 먹을 가게를 찾아나선다.
“ 싱거워. “
살풋 미소를 떠올리며, 유혜가 짤막히 대꾸한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에는, 글쎄—. 라며 말을 흐리더니 천천히 두 눈을 깜빡여낸다. 내가 빈 소원은,
“ 내 주위 사람들이 온전히 내 곁에 있게 해달라는 소원? 거기에는 센하 너도 있고. 고맙지? “
유혜가 다시금 장난스런 말투로 미소를 짓는다. 정말로, 평범한 소원이었다. 새카만 밤하늘을 떠올리며 빌었던 소원. 그 하나 남은 눈을 칠하는 날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소원으로 까지 빌어 제 염원을 이루어낸 나는, 행복할까. 천연덕스레 자, 이제 센하차례! 라는 말이나 던지던 유혜가 이쪽이라며 센하의 팔을 잡고 끈다. 큰 간판이 걸린 5~6층 규모의 건물. 이내 3층에 가게가 있다는 말을 남기며 유혜가 센하를 이끌고 건물로 들어가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유혜를 바라보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는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일부러 지어보였다. 능청스러운 분위기에 말끝까지 늘이면서 완전히 얄밉게 보이게. 그러고 보니 코미키 유우카가 이런 모습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았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나는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뭐, 다음에는 운이 좋기를 바라"라고 그 장난스러운 미소를 향해 모호하게 답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가 도발 같이 던진 말에 응하듯이 유혜는 싱겁다는 말 뒤에 자신의 소원을 밝혔다. 자신의 주위의 사람들이 온전히 자신의 곁에 있게 해달라는 소원이라고. 덧붙이는 말에는 거기에는 나도 있단다. 고맙지? 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어오자 나는 "그것 참 고맙네"라고 무심한 미소를 옅게 지으면서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나저나 굉장히 소박한 소원이네. 동시에 모호한 소원이기도 하고. 그게 이루어지는 시기가 애매하잖아. 완벽하게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확신하려면 인생의 끝에서 남은 눈을 그려넣어야하는 걸. 이상하잖아. 그런 생각을 가만히 하고 있었는데 이제 센하 차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그렇네. 유혜가 밝혔으니 나도 말해야하는 건가. 설마 정말로 대답할 줄은 몰랐다. 지나가는 말투였는데. 이쪽이라며 팔을 잡히고 이끌리면서 나는 눈을 반쯤 감았다. 좋아...뭐라고 말하지.
큰 간판이 걸린 건물에 들어갔다. 3층에 가게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 묵묵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끌려서 건물의 엘리베이터까지 들어갔다. 십년지기가 3층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고 나는 입을 열었다.
"소원이라는 희망찬 단어랑은 그닥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기는 한데..."
말끝을 흐리면서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깔았다.
"...정말로 '아키오토 센하'가 되어버리고 싶다는 게, 내 소원이야."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이내 어서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이런, 이게 무슨 소리일까"라고 능청스레 덧붙였다. 마침 그 때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렸고, 나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3층, 유혜가 말한 그 가게다.
장난스런 대꾸와 함께 유혜가 키득 웃음을 삼킨다. 지인찬스, 그런 거 없는거야? 다음에는 운이 좋길 바란다는 그의 말에 미소를 지어 화답한다.
“ 고마운 거 맞아? 반응이 시큰둥한데. “
뭐, 센하는 원래 그랬지만. 그럼에도 반응이 좋지 않다는 말을 꺼내는 건 그를 조금 놀려보고 싶었기 때문일까. 유혜가 입꼬리를 생긋 올리며 장난스레 대꾸한다. 그러고는, 뒤이어질 그의 대답에 귀기울이며 엘레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 소박하네, 센하는 센하니까. 누가뭐래도, 적어도 나한테 너는 나랑 10년을 알고 지낸 아키오토 센하잖아? “
유혜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살풋 미소를 짓는다. 그가 어떠한 진의로 그런 말을 했을지, 어떤 사정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그녀 자신도 깊숙히 알 수 없을 일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인생의 절반쯤을 같이한 친구였으니까. 진짜 아키오토 센하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리 대꾸하며, 큰 유리창으로 바깥이 훤히 보이는 자리 —제일 인기가 많은—로 걸음을 재촉한다.
“ 센하 너는 뭐 먹을거야? 나는 쇼가야키 정식. “
어딘가 들뜬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인스턴트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기쁨일까. 라멘이나 덮밥과 같은 메뉴들이 즐비한 메뉴판을 훑어보던 유혜가 쇼가야키 정식이란 글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센하를 바라본다.
나름 괜찮았다는 말에 지은은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다행이다. 괜히 선배에게 밉보였다가 좋은 일 없다. 비록 상대가 자신보다 어리기는 했지만 지은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야 자신이 동경해온 경찰이니까. 상대의 반응이 좋으니 자신의 기분도 절로 좋아져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양 볼에 보기좋게 걸린 입꼬리가 지은의 기분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저 이런 농담 좋아하거든요!"
흘깃 눈을 돌려 손에 걸린 악세사리를 살피는 월하를 보았다. 문득 의문이 들어 함께 악세사리를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제 출발할 때이다. 월하가 도넛을 고르기를 기다리며 도넛 박스를 좌석 사이에 두었다.
"정말요?"
선글라스를 끼고 커피와 도넛을 든 월하가 연상되었다.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영화 주인공 같아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경이 느껴져 자신도 언젠가는 선글라스를 사고 마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동안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지은은 입을 열어 월하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