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현애는 성정이 유순하고 착실하고 조용하고 마음이 약해서 열살도 안된 막내 동생이 장로들에게 제품 평가 당하는 거에 충격 받아서 후계자 안하고 싶다고 울던 애였고, 그 뒤로 현예가 있었지만 현예는 현애의 모습을 보고 안해요, 라고 거절했죠.. 장로들이 탐내기는 하지만 시애가 먼저 현에를 후계자로 올리는 걸 반대하며 커버했던 거고 현주가 흔쾌하게 언니들이 안하면 내가 할게요 라고 했으니까.. 음음.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단순히 지팡이를 바꾼다, 라는 수준의 가벼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와 생로병사의 근원에 서 있는 두분─청설 그리고 청운─앞에서 직접 맹세를 하고, 맹세의 증표를 받은 후의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하지만 그 무거움에도 고되지 않고 오히려 내 마음 한 구석에서 기준점을 잡아주는 느낌이 든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달라졌다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숙사의 정원에서 한참 눈을 바라보다 검정색 외투─가슴팍 주머니에 지팡이를 따라 꼬여 올라가는 두 마리 뱀을 하얀 실로 자수 새긴 것─에 눈이 조금 쌓일 때 즈음에 방으로 돌아왔다. 전의 나였다면 칙칙한 것은 싫다며 노란 외투를 금세 입었을텐데, 이번에는 이 것이 지닌 상징의 무게를 조금은 담아두고 싶었다.
"응, 왔어."
책상 위에 놓인 편지와 장식 없는 작은 봉투. 그러고보니 본가에서 엄마가 그렇게나 내 연인에 대해 물었었지. 벌써 보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난 이 건에서 빠지겠다." 같은 분파를 심판해야한다는 것도 별로 좋다고 생각하진 않고, 최고이사 자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곧 임기가 끝난다니 다행이군. 이라고 말하며 곧 딸이 유치원에서 하원할 시간이다..마중나가야.. 라고 하지만 맹세의 의식은 대리할 수 밖에 없는 분파를 제외하면 모든 분파가 모여야 하기에 억지로나마 자리에 앉혀졌습니다. 아빠라고 달려오는 어린 딸이랑 아직 영아라서 제 어미 품에 안긴 어린 쌍둥이 자매랑.. 생각할수록 얼굴 표정이 풀릴 정도로 귀엽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숙해야하는 심판처이니. 아 진짜 어떻게 결혼시킬지 걱정이군.
(맹세의 의식 생략) (그가 말하길. 그걸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가는 유치원 하원시간에 못 맞춘다)(그러니 재판도 대충 생각나는 거 외엔 생략한다)(불만인가?)(정율 버프와 주작 버프까지 합쳐서 한방에 용을 기절시킨 스투페파이라도 먹여주랴?)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고는.. 경휘의 거의 유일한 후계자이면서도 맹약의 대상자를 함부로 늘리려 한 혐의, 맹약의 변질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한 혐의, 예언가능자이면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혐의 등이 존재합니다. 어떻게 이씨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있습니까." (생략) "판결한다." (어쩌구저쩌구 생략)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할 시엔, 즉결처분을 원칙으로 한다." "피고는 판결을 받아들이는가?" 고개를 떨궜지만 긍정하는 것은 보였던 것 같다. 재판을 마치고 무령과 계회가 같이 가는 것을 보고는-나이가 비슷하니 친할 만도 하지.- 어깨를 으쓱이며 마이 스포츠카 부가티 베이론을 타러 가려 했으나..그들을 발견했다.
"괜찮으신가요..?" "난 괜찮아. 다음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심판자에 의해서 즉결처분이라지만.." "그게 뭐가. 괜찮은 건가요!" 그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진의 아들인가? 오랜만이군." "정율의 수장님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진의 아들의 인사를 손을 들어 받고는 경휘를 불타는 있단 착각이 들 정도로 정율의 오팔아이로 내려다보며 입술을 짓씹듯 말했습니다.
"경휘. 처신을 잘하거라. 네가 맹약을 파기하고 나가는 건 내 소관은 아니지만, 경휘를 이을 이 정도는 낳아놓고 나가길 바란다." "분파가 줄어드는 거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당돌한 그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불타는 오팔아이를 빛내면서, 그의 덩치에 걸맞을 정도로 길고 두꺼운 검을 한순간에 뽑아 그의 어깨에 대었다. 묵직한 무게에 으.. 하는 침음이 들렸고 진의 아들이 자신을 말리려 했다. 한 손으로 붙잡혔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 구구절절히 말할 수 없지만. 한가지나마 경고해두마." 제대로 처신하지 않는다면 너로 인해...최소 셋이 인생을 말아먹겠지. 잘 처신하여라. 나도 아는 일을 예언적인 능력이 출중한 너희가 모를 리가 없겠지. 진의 아들을 힐끔 보았다. 그러고보니 본가 장녀 아가씨의 정략으로 생각하고 있던가. 적어도 정략의 정석적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보는 게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하거라." 나는 딸을 마중나가야 한다. 라고 말을 남기고는 마법을 잔뜩 걸어둔 차에 탑승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엌ㅋㅋㅋㅋ 아니에요! 세연주 늦었지만 어서오세요!!! 실은 저도 오늘은 지애 설정이랑 독백 좀 쓰고 있어서 늦게 봤네요. 저 피고는 아마도 세연이 아버지겠죠? 세연이 독백은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역시나 세연주 금손님..!(세연이 독백을 본다)(자신이 쓰던 걸 본다)(백스페이스를 지긋이 눌러주자)
요즘 넌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노란 외투를 입는 날이 줄어든 것도 그렇고(오늘만 해도 노란외투가 아닌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외투였다) 공기도 그렇고 여러모로, 통통 튀는 느낌이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너는 너였다. 예전과 다름없이. 벽장을 열고 나온 뒤에 달라진 건 사이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편지엔 2주 전에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적혀있었으니 그사이 꽤 많은 일이 지나갔음을 짐작할수 있었다. 자세를 달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럽다고. 아니 부럽지 않다. 부러워하면 안된다.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살아있음에 감사해도 모자랄것을.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네게로 향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더라. 본가에 놀러오면 어떤가 하고. 방학때. "
편지를 가리키며 덤덤히 말을 잇는다. 문자에 적힌 그대로 말했으니 거짓된 소리가 아니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널 더 무겁게 하고싶지않다. 흔쾌히 저희 관계를 인정해주신 것까진 좋으나 그 뒤는 너무 이른 느낌이 없지않다. 이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고해둬야겠지. 물론 네게 말하진 않는다. 네게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입꼬릴 올리며 나직이 물었다.
"가도 될까. 너만 좋다면 놀러가고 싶어. 단기방학에라도. "
제 가족과 함께 가겠단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애당초 함께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올해는 정확히 5년째 되는 해였다. 회색이 같이 움직여야 좋을 일이 없다. 시선은 저 혼자 받아도 충분했으니 저 혼자 움직이기로했다. 바꿀 생각은 없다.
편지의 처음이 이상한 말이여서 미안하다. 편지를 쓰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인 거 같구나. 그래서 그런지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구나. 일단 너의 선물에 감사하마. 목도리, 잘쓰고 있단다. 호야. 우리는 아직도 그때의 너를 똑바로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래, 선물은 잘 받았다.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시고 계시더구나. 현주나 어머니나 바빠서 너에게 편지를 못보내니 나에게 대신 전해라하셨지만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몇가지만 이야기하마.
애 언니가 걱정한다. 너는 애 언니의 아픈 손가락이다. 주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머니는. 그래, 졸업하기 전까지만안온한 생활을 하기만을 바라시더구나. 예의 그 건 에 대한 너의 생각 또한 잘 알았다고 전해달라 하셨다.
길게 써서 무엇하겠니. 호야. 나는 가문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리고 애 언니만큼 너를 신경쓰지 않았고 주처럼 행동하지 않았지. 가문이 중하듯, 나에게는 애 언니가 중하단다. 호야. 너는 알고 있겠지. 나는, 단지 애 언니가 힘든게 싫을 뿐이며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야. 단지 그 받았던 애정만큼은 네가 기억하고 있기를
이만 줄이마. 호야.
현 예
Ps. 나에 대해선 신경쓰지말아라 너에게 중한 것은 학원이니까]
소년은 편지의 서두에 적힌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년은 학원에 들어온 직후, 처음으로 받아보는 누님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소년은 점차 어두워져 가는 창문 사이로 날아가는 가문의 부엉이 owl의 날개짓을 바라볼 뿐이였다.
받았던 애정만큼은 네가 기억하고 있기를. 담백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흘리듯이 쓴 편지는, 소년이 처음으로 현 예에게 받은 편지였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현 예 특유의 문체와 담백하고 건조하지만, 담담한 애정을 소년도 알고 있었다.
"예, 누님. 알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편지를 받은 소년은 그저 침대에 누운 채 나직하게 한숨을 쉴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