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감이 만연한 얼굴에도 소년은 그저 평이하고 기이할 만큼의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심이 없는, 마음이 없는 위로란 기만이다. 상대에 대한 예우가 아니며 품을 바라는 이를 기만하는 그런 행위를 소년은 할 수 없었다. 지독한 성실함으로 인한 이질감이 물씬 느껴질 정도의 기이한 포옹에도 아우프가베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소년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깨를 쥐고 있는 소년의 손 안에서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부러, 소년은 시선을 피해 저 멀리 복도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몸의 떨림이 잦아들고 있었으니 눈에 가득하던 이유모를 떨림도 충분히 잦아들었을 터. 괜찮습니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과연 누구를 위함이니, 아가야. 너를 위함이니? 듬뿍 받았던 애정조차 지워버릴만큼 너는 무엇이더냐. 아가야. 환청의 속삭임과 가벼이 혀를 차는 소리. 소년은 한손을 떼어내어 소년이 형님으로 부르는 아우프가베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큰 제스처없는, 위로도 뭣도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기만은 아닌 행위를 해보였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것에, 소년은 이제 토닥이던 손으로 등을 쓸어내리듯이 움직였다.가쁜 숨을 몰아쉬라는 듯, 모든 것은 괜찮을 거라는 듯이. 기만이고 기만이다. 소년은 스스로에게 해보이던 그 괜찮습니다라는 단어를 두어번 반복한 것만으로도 잦아드는 그의 떨림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아무것도 없는 눈동자가 복도의 어딘가를 응시한다.
"예. 형님. 괜찮으실겁니다."
괜찮고 말고. 당연히 괜찮아야지. 당연히. 괜찮을테지. 너는.
"괜찮습니다."
소년은 평이하게 차분하고 조용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제 품에서 아우프가베의 몸을 떼어내려한다.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형님. 소년은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진정해야 할 것이다. 진정해야만 한다. 그동안 겪어왔지 아니하던가, 그림자는 언제나 교육을 받지 아니하였던가, 숨겨라, 감추고, 드러내지 말고 들여보내지 말아라.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그 또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겐가. 자신을 감시하는 동반자를 공격하고, 타인에게 처음으로 아우프가베가 아닌 모습을 드러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아우프가베가 아니던가, 어찌하여. 이 모습은 무엇이지, 나는 니플헤임이거늘, 아니, 이젠 자신을 잊어야 하거늘. 그것은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 숨겨라, 감추고,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아라. 수십번을 마음 속으로 되내인다. 어디선가 기어와 발목을 붙잡고 점점 자신의 어깨에 매달리는 이유모를 상실감을 뿌리쳤다.
자신을 잃는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이름을 바꾼 이후로, 나는 죽었으니. 더이상 니플헤임은 존재하지 않으니.
더 이상 내 안으로 들어오지 말거라. 그는 다시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세이, 잘 들어. 너는 나야. 오열하라, 그의 즐거움을 위해. 괴로워해라, 나의 배덕을 위해. 그리고 사라져라. 가문의 영광을 위해.
너는 이런 아이가 되어야 해. 그래야 그 누구도 너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거야. 사랑하는 나의... 그림자야.
제 형이 불안할때면 기억해달라 말하였던 문장들을 생각해내며 그는 떨림이 잦아드는 주먹에서 힘을 뺐다. 새하얗게 물든 손가락에 점점 옅은 붉은기가 어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가 다시금 미안합니다, 라고 조곤거렸다. 몰아쉬는 숨 사이로 내뱉던 사과는 닿을 수도 없는 터였다. 누구에게 하는지, 어떤 의미인지. 그 자신도 모를 사과였으니. 슬슬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숨을 몰아쉬자 눈에 띄게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의식속에 억눌러버리고, 다시금 가면을 주워 쓰는 일은 꽤나 빨랐다. 그가 자신을 품에서 천천히 떼어내고 보인 모습은, 예전과 비슷하게 냉랭한 모습이었다. 아직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지만 괜찮아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게다.
"......."
한참동안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고맙구나."
그리고 미안하구나. 못 볼 꼴을 보였구나. 그는 겨우 그 한 마디를 꺼내며 소리없이 한숨을 쉬었다.
느릿하게 소년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우프가베의 냉랭한 특유의 그 모습이였다. 혼란, 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소년이 알수 없는 감정을 온 얼굴에 가득 담고 있었지만 방금 전 이유 없이 떨고, 패밀리아를 공격하던 형님이라고 부르는 이의 표정을 보던 소년이, 완전히 양손을 그에게서 떼어냈다. 더이상의 기만과도 같은 위로는 그에게 필요없다고 판단했고 그와 동시에 행해진 소년의 행동이였다. 한참동안 이어지지 않는 그의 모습에도 소년은 그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성실하게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이어진, 고맙다는 말을 듣고 매정하리만치 양손을 떼어낸 소년이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고개를 가만히 내저었다.
고맙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무엇에 대한 고마움입니까.
울지 못해 떠는 분께, 온 힘을 다해 끌어안지 않은 저를 향한 고마움입니까. 그렇다면, 그 고마움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소년은 가만히 내젖던 고개를 멈추고 아우프가베와 시선을 맞추려 고개를 숙였다. 느릿하고 천천히, 감정의 기복이 전혀 없는 방금 전의 그 모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흔들림이 없는 고요한 눈빛이 그를 향한다. 단지 그것 뿐. 소년은 다시 시선을 들고 그의 어깨를 가만히 손으로 감쌌다가 놓았다.
"형님."
한호흡, 소년은 말을 멈추고 걸음을 먼저 앞으로 디뎌 아우프가베를 지나치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속삭였다.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소년은 그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소년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과연, 진실이니, 아가야? 정말로 너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니?
오. 그렇겠지. 너는 그런 아이니까. 불쌍한 것. 속삭이는 환청이 천천히 멀어졌다. 한숨을 쉬는 아우프가베의 모습을 모르는 척, 못본 척 시선을 옮기는 것조차 소년은 완벽하고 철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