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안에선 이름을 좀 다르게 부른다라. 당신이 그 말을 하기 전에 있었던 대화 사이의 작은 공백과, 잠시나마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던 분위기로 보아하니 더 캐묻지 않는 게 여러모로 좋을 성 싶었다. 그야, 누가 봐도 숨기고 싶어하는 걸 억지로 파고드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그게 뭔가 복잡하고 무거운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것을 알려고 들 만한 그릇이 못 되는 거지만.
" 참, 몇 년간 못 보던 모습을 오늘 다 보여주려고 하는거야? 그래, 맞아. 답은 정해져 있어. 기숙사 가서, 물 마시고, 좀 쉬다가 정신 차리고 일어나면 돼. 물론 그 이후에 네가 한 일을 되새기면서 느낄 감정은 책임 못 집니다. "
가자. 니베스의 피해자 씨.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을 적당히 마무리짓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물약인지 음료수인지 뭐시긴지 하나 때문에 애가 이렇게 180도로 달라지다니.
" ...근데, 솔직히 말해서 아주 나쁘기만 하지는 않네. 너 웃는 거 되게 오랜만에 보거든. "
너무 오랜만이라 지나치게 낮설어서 그렇지, 당장 당신에게 일어나는 반응만 두고 보면 이 상황에 대한 제인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으면 했지. 그도 그럴 것이, 하루하루를 딱딱한 무표정으로 살던 친구가 이렇게 행복하단 듯 웃고 있으니까. 이러니저러니해도 나쁘진 않았다. 그럼에도 구태여 당신을 기숙사로 데려가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하는 이유라면, 제인이 오기 전과 같이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그 행복감을 표출하여(..) 일어날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리라.
제법 빨리 걷기는 했는지, 곧 제인은 제 기숙사 휴게실에 도착하여 곧장 당신에게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평소보다 한산한 휴게실은 꽤나 조용했다.
그림자에 불과하구나. 두려운게냐, 두렵습니다.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죽여줘. 한기가 몸을 에워싸는 기분이 들었다. 죽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죽음을 갈망했다. 피가 손 끝에 묻어 질척거림을 알고 있었다. 살점을 파고들어 짓누르고 피부를 뜯고 싶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아, 이번엔 살려달라 부르짖는게냐? 모순적인 것. 죽음을 갈망하며 끝은 생명을 부르짖는 것이 네 형과는 정 반대구나.
어느새 지팡이를 쥔 손의 피가 그의 선수건으로 닦여나갔다. 그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누가 머플리토를 쓴건가? 왜 귀가 먹먹하지? 그 소란에서 누군가 물기어린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듯 하였다.
너 때문에. 빌어먹을 네년 때문에 흰 까마귀가 죽고 말았잖아. 수축하는 눈동자 사이로 지팡이를 쥔 손이 희게 변했다. 아니, 아니야. 사랑하는 나의 니베스. 조금만 기다려주렴. 이 오라버니가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써서라도 너를 구원해줄테니. 아아, 안돼. 제발, 차라리 죽여줘.
"...."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지팡이를 겨누고 주문을 외칠지도 모른다. 자신이 불안정함을 알고 있어서,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고개를 겨우 한 번 끄덕여보이고,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숙인 고개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구더기가 기어다닐터다. 장례를 치룰 때 용기를 내 마지막으로 보았던 형의 얼굴에 태연히 기어다녔듯, 자신의 목에도 기어다닐터다. 어깨를 조심스레 쥐는 손길에 그는 경직된 몸의 힘을 빼려는 듯 덜덜 떨리는 지팡이를 품 안에 안았다.
야호 갱ㅇ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츸사주 아까 말했던 장밟버전ㄴ은 진짜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데 대충 사복버전ㄴ으로 때우면ㄴ 안될까요????? 저 엄청 친절하게 말풍선도 넣어줬거든요.... 아 그리고 그거 알아ㅛ???? 저 컴그림 채색까지 해본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 츸사주 님의 독촉에 매우 ㄳ드립니다 저 진짜 생애 처음으로 채색해봄;;;; 되게 성의 없는 말 뭐하지 했다가 걍 오하요 넣었슴다 근데 전부터 막ㄱ 일알못이면서 일본어 쓰고 그러는데 오해 ㄴㄴ해주세요 저거 그냥 윗부분 허전해보여서 넣음검다 '전문가' 코스프레 아니애오@@@@@@@@@@@@
제발 죽어버렸으면. 싸늘한 다용도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소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악의로 가득찬 목소리가 섬뜩하기 그지없다. 입술이 터져서 질질 흐르던 피는 어느 새 턱에 말라붙어선 손 끝에 그저 까쓸한 촉감만을 남길 뿐이다. 더불어 불쾌한 혈향까지. 역겹다.
구불구불 굽어진 돌담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전단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봇대 옆에 해당화가 곱게 피어 있는 벽돌집. 동네에 얼마 되지 않는 양옥집이라 신기하지만, 거기 사는 개는 물기 때문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양옥집 오른쪽을 돌아서, 책가방을 벗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을 골목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작은 한옥집. 집에 도착했어. 돌아온 거야. 드디어.
돌아왔다고? 떠난 적이 있었었나?
그래, 떠났었지.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기름칠이 반질반질하게 되어 있는 철제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서있다. 감회에 젖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문을 열기가 두려워서-
-윽, 하고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달려온 너와 세게 부딪힌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한번도 보지 못한 나의 친구.
오랜만이다, 잘 지냈니, 가족분들은 잘 지내시니.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간의 나이스 투 미츄, 하우 두 유 두 따위의 형식적인 인사이지만, 너와 함께 하니 뜻깊은 대화 같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애틋하다. 마음이 두둥실 부풀어 오른다.
인사치례가 끝나고, 그제서야 넌 내 목 둘레에 걸었던 헤드락을 풀며 -둘째 가면 서러워 할 장난꾸러기였던 너에게는 아마도 포옹과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넌 아마도 네가 가장 궁금했을, 가장 먼저 하고 싶었을 말을 내뱉는다.
-너, 마법사였다며.
어떻게 그런 걸 숨길 수 있냐, 서운하다는 네 말에 사과 대신 간단한 마법을 보여 주기로 한다. 비밀 유지 조항이니, 신변보호조치니. 나에게도 사정은 있었지만 이미 다 끝난 일이고,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던 너는 아마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일 테다. 오르키디어스. 지팡이 끝에서 꽃잎이 흩날린다. 넌 손뼉을 치며 아이같이 기뻐하고, 난 그런 너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더 좋아. 너와 나, 머글과 마법사는 드디어 눈에 눈을 마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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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연회장 바닥에서, 지애는 눈을 떴다. 멍하다.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 같은 상황이 수 초간 지속된다.
찌뿌드드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연회장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는다. 습관적으로 뒤통수를 매만지니, 틀어올렸던 머리는 반쯤 풀어져 있고, 손에는 역한 냄새를 풍기는 끈적한 젤 상태에 가까운 무언가가 묻어 나왔다. 멈뭄신의 연회 동안 연회장은 그런 난리가 없으니, 누군가 음료를 엎어 놓은 곳에 자신이 쓰러져 잠을 청했거나, 아니면 누군가 잠들어있는 자신 위로 음료를 엎은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형언하기 힘든 질감과 향을 자랑하는 걸로 봐서 여러 음료가 섞여 들어간 것 같았다. 아니면-어깨 너머로 무지개색 토를 게워내는 같은 기숙사생을 보고는 소스라치며 생각했다-다른 게 섞여 들어갔을 수도 있고.
“…애도 아니고, 그런 꿈을 꾸냐.”
어서 머리를 감아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린다. 정말이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제멋대로인 꿈이다. 무언가를 원한다면 포기하는 것도 있는 게 당연할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다.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심보다. 게다가, 애초에 불가능한 꿈을 꾸려면은 아빠가 깨끗하게 나은 꿈이나 엄마가 돌아오는 꿈,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꿈도 있었을 텐데. 자신은 가족을 사랑하긴 하는 건지 한순간 진지하게 고민한다. 렘 수면 상태의 두뇌에게도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걸까. 한번 일어난 일은 잊지 않는-원하지 않는 데이터라도 측정값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본인의 성정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기분 좋은 꿈이었고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한 용기를 주는 꿈이었다. 그 덕분에 계속할 힘을 얻는다면, 이뤄지지 않을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낮에 써놓고 쪽팔려서 쟁여두고 있었는데, 잠결에 수치심이 퇴화된 틈을 타 던져놓고 도망치겠습니다; 아 진짜 권지애 얘 중2병이 낫긴 나아야 하는데 말이죠;;;;;;
끌려가는(?) 와중에도 그는 자유로운 한 손을 들어—정확히는 약지와 소지로 지팡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한 손 꽃받침(????)을 해 보이며 웃었다. "몇 년간 못 보여줬잖아. 딱딱한 대표님이 이렇게 멋지고 자상하고 유쾌한 모습도 있다는 걸." 따위의 말은 꽤나 능글맞았더란다. 기숙사 가서 물 마시고, 쉬다가 정신을 차리라니. 제정신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거람.
"에이, 책임지지 않아도 돼. 당하게 되는건 나인데 어떻게 너한테 책임을 묻겠냐."
네에, 네. 갑니다. 걸음을 재촉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쫓아 그 또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걷는 것 하나하나도 이렇게 기쁜 일이라니. 그는 잠시 앞의 길을 쳐다보는게 아니라 그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내가 오랜만에 웃은건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며 그는 엄지와 검지로 제 턱을 매만졌다. 흠..그래,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웃어줄 수 있는데."
물론 네가 질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말야. 얼음으로 만들어진 사람마냥 차가운 태도보단 상냥하게(?) 사고를 수습하는게 더 편하지 않겠어?—이 와중에도 사고 타령이었다.— 웃는 연습을 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눈꼬리를 휘어보이길 반복하던 그는 꽤나 빠르게 도착한 기숙사 휴게실을 둘러보곤 자신에게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을 건네자 평소라면 줄 없이 번지점프를 뛰게 될 것이라 협박해도 보여주지 않을 해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 제인."
제 주인이 온걸 알았다는 것 마냥 기숙사 휴게실로 유유히 날아온 그의 동반자는 제인과 그의 주변을 향해 다가오다 궤도를 휘어 저 멀리 떨어진 장소에 착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