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쓰지 말라니. 그는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 나쁠 것은 없었다. 베아트리스는 고귀한 순혈의 대를 잇기 위해 순혈 혼처를 찾겠다 하였고, 니베스는 사고를 쳐 결국 가문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금 다시 짐을 싸고 있겠지. 아버지는 늘 그렇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편지에 단 한 줄을 쓴 것을 제외하면. 그림자임을 들키지 말아라.
"..."
자신의 손을 부드러이 잡는 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자근 깨물던 입술을 다시 원상태로 두고, 다치십니다. 라는 목소리에 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지, 니플헤임. 너는 이제 슬슬 한계에 닿기 시작한거야. 무려 13년동안 거짓 이름을 덧쓰고 살았으니.
"....미안하구나."
드문 사과였다. 폐를 끼쳤구나. 라고 덧붙이며 그는 어느새 복도 창가에 앉아 자신을 노려보는 세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제 주인을 이해하겠다는 듯 그 새는 눈을 감았다.
"역겨운 가문이지. 모순과 모순을 거듭해놓고 자신들이 정의라는 것 마냥 행세하니. 가주가 된다면 제일 먼저 모순의 싹을 칠 것이다."
작게 속삭이듯 입술이 달싹였다. 즐거운 듯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조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고맙구나."
그리고 그의 동반자가 날갯짓을 하며 사붓이 뒷목을 발톱으로 훑고 지나가자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알아, 안다고. 드러내면 아니되는걸 드러낸걸 안다고.
그저 안온한 학교 생활을 하렴. 유니콘에게 들이받혀지고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눈 앞에서 보고 여명의 귀곡산장에서부터 시작된 환청에도 저는 [안온한 학교생활]을.
다만 태어난 곳이 그곳이였으니, 그저. 소년은 느릿하게 제 검은 눈동자를 깜빡이고 드문 아우프가베의 사과에 고개를 기울였다. 무엇이? 소년은 아주 잠깐 그러한 생각을 떠올렸으나 그뿐이다. 현 호, 라는 이름의 소년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필요 이상으로 선을 넘지도 않는다. 그런 성격이니까.
"아닙니다."
소년은 그의 손을 천천히 놓으면서 그저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였고 그 이후부터는 그의 말을 성실하게 들었다. 그는 지쳐있는걸지도 모른다. 지치는게 뭔지도 모르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감정.
조소를 머금는 그의 모습에 소년은 그저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디.
"그렇습니까?"
소년은 한호흡을 끊고 아우프가베와 시선을 곧게 맞춘다.
"편하실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어느쪽이든, 형님의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으로 저는 되었다고 봅니다. 혹여, 아우의 의견을 물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소한 떼씀으로 이렇게 피가 날 정도의 활동을 하는 게 더 문제잖아!" 변명같지도 않은 변명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서, 어이없다는 듯이 쏘아붙인다.
마법사건, 머글이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피가 이렇게나 날 정도의 상처를 입어놓고 병원도, 양호실도 찾아가지 않았다는 건 아마...., 그거겠지, 자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세연은 빈혈기에 휘청거리는 모양이지만, 자신은 관자놀이의 혈관이 쿵쿵 울려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것만 같다.
"아니..., 잠깐만, 옷 벗을 필요 없으니까!"
아무리 동성 학우와 집요정밖에 없다고 해도 그렇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의까지 벗으려는 세연을 멈춰세우고는, 주문을 외운다.
"Tergio."
테르지오. 섬유에 묻은 기름때나 먼지, 마른 피 등을 빨아낼 때 쓰이는 주문이다. 딱 이런 상황을 위해서 고안된 주문이라는 것이다. 지팡이를 가볍게 세연의 내복에 갖다 대니, 마치 작은 진공청소기라도 된 양 옷에 눌어붙은 핏자국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세연의 옷을 닦아내다가 입을 연다.
세연에게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정확하게는ㅡ 망이로군요. 불투명한 얼굴이 약간 빨갛게 물들어 있습니다. 아주 제대로 취한 듯 베싯베싯 웃고 있습니다.
' 오래된 가문의 어린 마법사야 ~ '
망이는 조용히 세연의 얼굴을 바라보는 듯 하다가 다시 방싯 미소지었습니다. 그러다가 표정을 확 굳혔습니다. 마치, 취하지 않은 것도 같군요.
' 선물이란다 '
그 유령은 무언가를 건네주려는 듯 세연의 근처 바닥을 툭툭, 건들었습니다. 살펴볼까요?
안에는 아마 세연이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는 붉은 액체가 들어있습니다. 그러고보니, 한 번 받았을지도 모르겠군요.
!!!! 축하합니다!!! 세연은 리엠의 피를 얻었습니다!!!!
[ 세연 ]
' 부엉 '
리엠의 피를 발견한 세연의 옆에 학교 소유의 부엉이가 얌전히 앉았습니다. 무언가, 발목에 달고 있는 것 같군요. 꺼내볼까요?
두둑한 동전 소리가 들립니다.
' 부엉 '
부엉이는 제 일을 모두 마쳤다는 듯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습니다. 학교 소유의 부엉이로 누가 보낸 걸까요?
!!! 축하합니다!!! 세연은 300갈레온을 얻었습니다 !!!!
[소담]
' 새로운 어린 현무 학생인가요? '
현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생글생글 웃으며 소담에게 물었습니다. 기숙사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묻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어쩌면 소담의 지팡이를 봤거나, 유키마츠 교수님께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에 해당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