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떠는 끼가없이 앞선 상황을 수습한 방랑자는 뒷 이야기는 물론 앞선 이야기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마을에 분 역병을 퍼뜨린건 어떤 이단심문관. 하지만, 그는 사실 혼돈인 자신에게 힘을 추구하기 위해 받은것을 바탕으로 그 마을에 실험을 했다고라고만 알고있었다. 결국엔 그 스스로도 그 병에 이르러 죽고 말았지만. 완성품은 아니였다. 최근에서야 완성하는데 성공했으니까. 그저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미지의 시선으로 추적해봤지만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파멸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다만 그 산물로서 눈앞의 기계장치 소녀와 까마귀 남자가 새롭게 이야기를 써나갔다는 점은 혼돈에게도 뜻밖의 미지였기에 좋아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기에 배우는 선정해두는게 좋은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번 사색에 잠겼다. 과연 자신이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인형일까. 어쩌면 그를 방해하는건 다름아닌 자신이 아닐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말을 아낄려고 했다. 그러나-
"하지만, 이야기가 맞물린다고 했었죠 여행자님?.. 저는 지금당장 일어나는 비극이라 하여도 그것을 극복한다면 분명 언젠가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맞물려서 안좋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누군가가 다른 이야기를 또 맞물려준다면 기필코 언젠가는 좋은 이야기가 되주겠죠? .. 조금 낙관적일려나요?"
그러니까 언젠가 무너져가는 알폰스의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계속 맞물린다면 틀림없이 언젠가는 좋은 이야기가 될 것 이다- 그렇게 믿기에 인형은 오늘도 계속 그자리를 지킨다
"붉은 날개의 인형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건 진행중이라는 걸까요? 재미있네요 흥미있어요 그런 이야기.."
그거야 당연한 것이였다. 이렇게까지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이를 빼면 달리 또 누가 있겠는가. 애초에 그녀를 제외하고는 깊숙히 감추어 둔 속내조차 내비친 적도 없었다.
"당연히 널 누구에게도 줄 생각은 없어. 절대로."
시이의 확답을 들으면 한층 더 마음이 안정되었다. 누구에게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연애 감정과 더불어, 소유욕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감정이 속마음을 비집고 빠져나오고 말았던 것이였다. 더불어 안심했다. 적어도 아나이스 혼자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와서 완벽하게 알 수 있었기에.
"내가 온전히 신용하고, 사랑하고, 소유욕이 들고, 특별히 여기는 건 시이 너 뿐이니까."
처음 말문을 트는 것이 어려웠을 뿐, 아나이스는 제 속내를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이 아이스크림이 그렇게나 맛있었나."
아까 전엔 익숙하지 않다고 거절했음에도 지금은 흔쾌히 그러라는 것이 묘하게 신경쓰였으나, 결국 원하는 일을 달성했다는 그 쾌감에 순순히 넘어가기로 한다. 어쨌든 먹여줄 수 있다는 것엔 상당히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래도 괜히 한 번 아이스크림을 째려 보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숟가락으로 시이의 아이스크림을 퍼서 먹여주려 든다.
"사실은 바닷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냥 강변을 따라 걷고 싶었다. 언젠가 날이 따뜻해지면 같이 해변가로 놀러가지 않을래? 아나이스는 시이에게 은근히 제안했다.
"시이가 말한 대로 그냥 연애 사실이 다 퍼진다면 이렇게 몰래 나올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이런 식의 데이트도 꽤나 즐거우니까, 한동안은 즐기고 싶었다. 저 멀리, 빛이 반사되어 여러 색으로 물든 강가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사람인지는 알았으니, 슬슬 마무리나 지어보자고 방랑자는 말투를 바꾼다. 그게 원래 말투였다는 듯. 인식이 확달라졌다.
"이야기가 맞물린다는 건 결국 이야기의 배우가 된다는 것. 언젠가 좋은 이야기가 된다라. 그런 가짓수는 144,000분의 1정도인가. 안타깝지만, 남자가 완성되더라도 내가 특이점을 잡는한은 행복한 이야기라는 건 성립되기 힘들어. 안타깝게됬네. 무대장치를 꾸미는건 말이야. 자신들이 써나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변할수있거든. 그러니까 행복한 이야기인가. 물론 가능성은 앞서 말했던것처럼 있지만, 희박해. 나는 그저 합당하게 너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너는 절망이라는 결론에 도착할지도."
믿음을 부숨으로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 어차피 잊어버릴 이야기라면 한번쯤 관찰해두고 싶던것이기에, 혼돈은 그대로 본디 인격을 드러내었다.
"머지않아, 이 노토스에는 거대한 바람이 불게 설계되있거든. 글쎄. 그 난관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성립할수있을까? 성립하든 하지않던 상관없어. 그저 태양과 새벽이 나를 관측하는 시점이 온다면 말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너희 배우들이 이 그랑기뇰을 잘 움직여주는 만큼, 그들은 나를 의식하게 될테니까."
"아름답네. 이렇게 이야기를 망가뜨려보는것도. 조금은 만족스러워. 조금쯤 대답해줄까. 여행객은 맞지. 다만, 분기점으로 엮여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나서는 여행객이라는 표현이 맞아. 거짓말은 하지않았어. 결국 유물발굴이라는 것도 미지의 이야기를 볼수있는 원석을 찾아내는거니까. 틀린말은 아니거든. 하지만, 여기서 너를 절망으로 그리고 저항하는 이야기로는 표현해서는 안되겠지. 이야기에 대한 실례니까."
그저 비웃는 얼굴로, 방랑자-. 아니 말이나 글로서 표현하기 힘든 형용할 수 없는 혼돈은 이것을 놀이라고 생각할뿐이었다. 어차피 이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될테니까.
"있잖아. 총을 예로 들어볼까. 어차피 쏘아질 총이라면 방아쇠를 당기는데 누군가가 도움을 준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건 아니잖아. 어떤식으로든 총은 발사되기 마련이야. 그저 나는 그렇게 발사되려고 갈망하는 총에게 도움을 주었을뿐이라고? 그게 그리도 잘못된 일인가?"
혼돈의 눈동자는 그저 심연 그자체로 보는이의 의식을 절망으로 이르기에 충분했다.
"아니 내가 그럴일은 없어, 너희들이 성공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결국 내 이야기를 써나가는데에는 큰 문제는 없거든. 그러니까-."
그리고 아리아의 동공의 자신의 동공을 맞추어 노려보면서 혼돈은 한마디를 더한다.
"형편없는 연극이라도 좋아 한번이라도 더 미지를 보여줘. 내가 읽을수 없는 분기점을 찾아내서 도달해보라고. 그래서 창조주들이 인식하게 해봐. 그럼 게임은 여기까지야."
무언가 말하려던 아리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닫아버리고는, 혼돈은 지금 찾아오는 이가 그랬던 것처럼 인식을 저하시키는 언령을 담는다.
『지금은 나를 만나고 들은 이야기는 모두 없던것. 너는 기억하지도 적지도 못해. 흔적도 남지않아.』
그것을 끝으로 남자가 돌아오기 전에 혼돈은 흔적하나 남기지않고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단서는 아무것도 남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