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는 아니지. 그저 너의 그저 뇌수 속 사로잡힌 관념이 애늙은이라는 이름을 선택할수밖에 없었던거야. 나는 그런걸로 형용할수는 없으니까."
그 표현은 아니다라는 듯 소녀는 정정하듯 알폰스의 말에 반박하고는, 도미노가 '딱'하는 나무 소리를 내게 의도하며 다시한번 위에 또다른 도미노를 쌓아올린다. 어느새 기형적 구조물은 테이블 위에 소녀의 눈높이 까지 올라와있었다. 제법 높아졌다.
"그럼 첫번째 이야기. 어떤 양끝은 서로 연결되어있으면서도 도달할수없는 양끝에 성립하기때문에 서로를 원했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않아서 양끝은 도달할수없다고 알려주었어, 그것으로 슬픈일이 일어났지만 나한테는 굳이 잘못이 없는거같아. 그래야만 특이점에 도달할수있으니까 조금 지루하지않은 나날을 관측할 수 있어. 서로만 좋아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내 행위에는 잘못이 있을까? 양쪽도 만족을 해야하지만 나도 만족하는 상황이 필요하니까 저지른거지.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지않을래?"
소녀가 말한 첫번째 이야기. 그것은 난해하기 그지없고, 무언가 비유로 점철되었지만 소녀가 무언가 저질렀고, 그에 대한 잘못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감상평을 요구했다. 범인의 감성으론 정신이 아득해지는 말이지만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는듯 그저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밖에 인식하지않았다.
"꼬마라는것도 네 인식적 논리에 지나지않아. 이세계는 어차피 수명과 외모가 달리한 자들도 얼마든지 있잖아? 세상을 더 넓게 볼필요가 있어. 까마귀 친구. 당신의 생각은 조금 좁기 그지없네. 그렇기에 영영없으리. 라고 말하는걸까."
늑대는 싫다. 자신보다 빠르며, 눈을 속여도 냄새로 쫒아오고, 더욱이 한 번 따돌렸다고 믿더라도 이미 자신은 늑대 무리의 포위망 안에 갇혀 있곤한다. 짚으로 기워만든 신 한 짝과 넝마쪼가리 하나만 걸친채 냄새를 속여도 대가없이 그들로부터 도망친 적은 없거늘 이 불편한 옷차림으로 난폭한 보레아스의 괴물 늑대를 따돌릴 수 있을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에레보스는 금새 여러 등분으로 쪼개진 자신의 머릿 속에 그리고는 낯빛이 검게 물들고 마는 것이였다. 그 괴물 늑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기 전까지.
"아."
늑대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가 곂친다. 잠깐만, 평정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이 곳은 보레아스에서도 굴지의 문명이 이룩되어 있는 곳. 지성있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쉴새없이 굴러다니던 에레보스의 눈동자가 초점이 잡히고 창백하던 낯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감정한 백색으로 돌아간다. 심지어는 약간 불만을 담은 듯한 -으레 사무용으로 사용하곤 하는- 표정으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 마침내 나타나셨군. 이토록 성대한 환대에 어찌 감사해야할지. 덕택에 지난 1시간동안 숲 공기와 먼지따위는 잘 받았네. 그러면 이제 슬슬 나를 이 숲의 관리자에게 데려다주지 않겠나."
마치 상대가 지각했다는 듯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며 있지도 않은 약속따위를 -심지어 이 숲에 관리자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채로- 운운하였다. 어지간한 동네라면 힘이건 무엇이건 대표되는 자가 있을테고, 그런 자면 대화가 통할 정도 지성이 있을테니 그를 통해 자리를 모면해보려는 심산으로, 에레보스는 상대가 말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먹어치우지 않을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이 근방에서 가장 영향력 있을 자와 약속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건드리지는 않겠지... 그리고 나는 약속 장소를 잘못 알아놓고 혼자 불평하는 숲길에 익숙하지 않은 귀공자... 좋아, 됐어, 이 설정으로 밀어붙이면 먹힐거야...!'
애늙은이 정도가 아니다- 뭔가 그것을 아득히 넘은.. 기묘한 그런 존재를 대면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인상이 구겨지며 알폰스는 소녀에게 무언가를 질문하려고 했으나 그 질문마저 허용을 안하는 듯, 형용할수 없는 소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추리나 판단력 같은걸로는 이 이야기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지 못한다. 무엇을 비유했는지 무엇을 저지른건지 그런건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그저 직감적으로.
"꼬맹이가 조금 심술부린 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즉 A와 B는 극과 극이지만 서로를 원했던 극과 극이였군요. 당신은 그 A와 B가 가까워지는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진실을 말해주자 슬픈일이 일어났다. 흑막놀음 입니까? 뭐 상당히 불유쾌한 심술부린 이야기 였지만 저로써는 꼬맹이의 애교정도로 눈감아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하던 알폰스 였으나 이어지는 소녀의 말에 조금 당황한 듯 침묵한다.
"마치 뭐든지 다 아는 듯이 이야기 하는군요. 그럼 꼬마? 저에 대한 이야기도 말할 수 있습니까?"
싸늘하게 식어가는 커피, 서리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이 장소는 소름끼치게 조용하다.
"꼬마의 심술 쯤 이야 애교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이해를 해주겠죠. 당신의 모습으로 보건데 그렇게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거든요"
거짓말이다- 이 침묵, 소녀가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머리속에 비상벨을 두드린다. 정체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전부 하나하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내 머리는 소녀가 말한 기억하지 못한다라고 했던 그 농담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찬가? 과거? 우습군요. 저의 정의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까? 으음- 점쟁이의 뻔한 레퍼토리 입니다. 친한 여자아이? 친한 여자아이 한 명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저를 동요하게 만들고 싶다면 확실하게 말해주십쇼. 하지만 질문이니까 대답은 해드리겠습니다. 네. 있습니다. 그게 문제라도?"
"하지만 그런 감상평에 대해서는 정답풀이를 하자면 선생은이런 평가를 할껄?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추궁하듯이 진상을 여기선 들춰내야겠지. 왜? 벌써부터 내가 처음으로 말했던 너는 모든것을 잊어버린다 라는 관념에 너는 잡혀있는 걸까? 까마귀친구. 조금더 대담해질 필요가있어. 내 유희에 어울릴려면 그런 흔해빠진 가식어린 말로는 나를 만족시킬수 없는걸?"
근심어린 눈동자. 거기에 대비대는 듯한 미소짓는 얼굴. 그리고 무미건조 그자체로 마치 기계가 읽어내는 듯한 언어. 분명 소녀는 남자가 생각한대로, 소름끼치는 그자체였다. 존재자체가 소녀의 말 처럼 형용할수 없다. 그러니까 문장으로 담을수없는 어떤 편린을 맛본것처럼 무언가 쉽게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 했기때문이다. 어디서 어디서 부터가 그냥 하는 말인지가. 아니면 진담을 담고있는지 부터가 알수가 없는 미지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대략 머리속에서 1024개의 가능성을 집어넣고 하나만 선택했는데 정곡인가보네. 뭐, 애초에 알고있었지만. 네 소중한 소녀가 결국 너를 지탱하는 이야기라는걸. 형용할수 없는 내가 조언을 하자면 네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야기를 듣지않으면 너는 그녀를 잃게되는 이야기에 도달할거야. 점쟁이같다는 말을 듣겠지만 그런 이야기로 너의 구성성분이 짜여져있어. 마치 물이 수소원자 둘과 산소원자 하나로 성립되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구성되어있거든. 자 그럼-."
너를 당황시킬 이야기를 해볼까. 라며 소녀는 운을 띄운다.
"결국 네가 믿고있는 신념은 자기만족이며, 결국 과거에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철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하는 마지막 안식처에 불과하다. 어때 체크메이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