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의 통신을 들은 서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그의 뜻은 알 수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은 아니었다. 상대가 R.R.F와 연결되어있는 익스퍼라고 한다면 더욱 더 지금은 한 명의 전력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바로 원조에게 통신을 넣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요. 원조 씨. 당신이 다른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지만... 전에도 말했죠. ...당신은 구급요원이 아니라 경찰이에요. ...R.R.F와 연결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전력은 하나라도 더 필요해요. ...귀찮기도 하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당신이 경찰이라면, 경찰로서의 일을 우선시 하세요. ...그것이 더 많은 피해자를 낳지 않는 길이니까요."
그것은 말 그대로,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나름의 통보와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그것을 원조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원조의 자유였다. 서하는 상관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3번 출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를 하고 있고, 울프가 가장 먼저 접촉했다. 그러자 찬기는 잠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신가요? 마침 저도 역무원에게 찾아가는 길이거든요. 그럼 저랑 같이 가실까요? 그리고..."
이어 자신에게 달라붙은 앨리스를 바라보던 그는 잠시 또 말 없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신종 마약 80KG이라고 했나요? 후훗. 아무래도 경위님이 뭔가를 착각하시는 모양이네요. 제가 무엇을 옮겼는지 기억하냐고 했나요? 글쎄요? 저는 택배상자를 옮겼을 뿐, 그 내용물은 모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위님은, 마약을 전담하는 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보통은 마약견을 데리고 오지 않나요? 마약 수사를 하면..? 그 마약견이 저에게서 반응을 잡으면... 그때부터 저는 수상한 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공기 중으로 쉽게 퍼진다라. 그리고 제가 중독될 수도 있다라. 그러면 피라도 뽑으면 될까요? 아. 그 전에, 그런 것이 있다면 틀림없이 저희 회사에서 연락이 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전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관련으로 조사를 부탁하실 생각이시면, 먼저 그 관련 자료를 저에게 보여주겠어요? 조사를 할 정도면 저희 회사가 모를리가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어 그는 고개를 돌려 울프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가보도록 할까요?"
깔끔하게 앨리스를 무시하면서, 그리고 나름의 논리로 반박하면서 그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뒤이어, 그는 역 안에 있는 역무원에게 택배를 건내줬다. 그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상자를 건네주고, 싸인을 받는 행위. 이어 그는 꾸벅 인사를 하면서 역무원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는 울프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다.
"아가씨가 누군지도 알아요. 경찰이죠? 후훗. 전에 수사를 하는 모습, 본 적 있어요. 정확히는 수족관 때 말이에요. 음.. 당시엔 여러모로 보통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고 말이에요. 그래서, 저에겐 무슨 볼일인가요? 경찰인 분이, 설마 진짜로 길을 잃었을린 없고...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닌가요? 아. 80KG 마약 그거 사실인가요? 하지만 그거 진짜로 아닌 것 같은데."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이 보통 능글맞은 것이 아니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반응하면서 그는 싱긋 그녀를 보면서 웃어보였다.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습니다. 고로 각자의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자고로 일련의 행동은 일단 원조를 제외하면 모두 보고 있다는 것으로 부탁하겠습니다.
중간에 앨리스의 접촉이 있었지만 권찬기는 예상 외로 깔끔히 그 접촉을 회피했다. 그러면서 내게 가자고 하는 모습은 그냥 사람 좋은 택배 배달원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내 안에서는 아주 약간의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 사람이 범인일까? 행여나... 저쪽의 교란 작전이라면?
나를 혼란케 하는 모습은 역무원에게 택배를 건네준 후에도 있었다.
"...이런, 내 생각이 짧았군요. 알고 있었을 줄은."
태연스럽게 내가 경찰일 것을 알고 있었다, 제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느냐고 묻는 모습이 보통내기 같지 않았다. 어차피 들킨 거 숨길 필요가 뭐 있으랴. 나는 이어셋을 다시 끼우며 그를 보고 말했다.
"당신이 생각한대로 마약 건은 아니에요. 이쯤 되면 숨기는 건 의미가 없겠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최근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급작스러운 기절 사건, 그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 당신이 떠올랐어요. 증거는 피해자의 집마다 그날 택배를 받았는데, 그 택배의 배달원이 당신이라는 것과 당신의 익스파가 사건에 연관성을 보인다는 것. 사실대로 말할지, 거짓을 말하고 이 자리를 피할지는 당신의 자유에요. 그러나 당신이 진범이라면 우리는 끝까지 쫓아 잡을 겁니다."
도망친다고 해서 순순히 보내줄 생각도 없지만 말이에요. 담담히 말을 마치곤 어쩔 거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지은은 지하철역 벽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그저 핸드폰을 하며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은은 눈을 흘깃 돌려 권찬기와 울프 선배를 보았다. 가깝지 않은 거리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길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렵잖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멀어지는 그를 따라가기 위해 적당히 텀을 두었다가 벽에서 등을 떼었다. 여전히 손에는 핸드폰이 들린 상태였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가는 지은이라 권찬기가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이제 상대의 목소리가 겨우 들릴 듯한 거리가 되자 지은은 그 거리를 유지했다. 괜히 더 가까이 갔다가는 걸릴 위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