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을 돌다가 적당한 높이의 바위를 보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이제 슬슬 이것도 마무리하고 돌아가야지.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졌고 가로등들이 대신 길을 밝히고 있었다.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어두웠다면 나는 밤중의 순찰을 거부했겠지. 어두운 건 싫어서...아니, 별로 무서워한다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내 말은...그 누가 어둠을 좋아하겠느냔 말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깊은 어둠을.
안 그래도 그늘진 것 같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바로 나른한 얼굴로 돌아와 일부러 숨을 크게 쉬었다. 하얀 입김을 바라보며 아이 같은 미소를 잠시 지었다. 몇 분만 더 있자.
ㅡ야옹.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순간 놀랐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검은색 고양이가 그곳에 있었다. 분명 길고양이다. 내가 앉은 자리와 1미터 가량 떨어진 자리에 우뚝 서서 황색 눈을 나에게로 향한다. ...검은...고양, 이...
"...보지 마."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 눈이 커졌다.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제 손목을 다른 손으로 잡았다.
ㅡ야아옹.
나는 새파랗게 질린채로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났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날선 목소리로 외치고는 강박적으로 잡은 손목을 문질렀다. 그대로 굳어있다시피 하다가 정신을 퍼뜩 차렸다. 복잡한 눈빛으로 고양이를 응시하다가 발걸음을 돌려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아니야. 정신차려, 아키오토 센하. 저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야. 그 때의 그 고양이가 아니야. 그저 색깔이 같을 뿐이야. 다른 고양이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야.
그 고양이는 이미 죽었으니까.
호흡이 거칠어졌다.
●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은 노인 여성. 완전히 타버린 고양이. 전신이 끔찍하게 타버린 여성. 잔인하게 온몸을 난도질 당한 남성. 마찬가지의 상태인 여성. 그리고 같은 결과의 소녀.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소녀.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남성. 똑같이 피투성이가 된 여성. 피와 가루로 뒤덮힌 여성. 비슷한 상태의 소년.
평화가 지속되면 그 평화가 계속해서 유지되면 참으로 좋겠지만 성류시는 그에 해당하지 않았다. R.R.F가 뒤에 있는지, 아니면 범죄자들이 최근 날뛰는지, 그것도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건이 일어나는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만 해도 TV에선 긴급속보가 계속해서 방송되고 있었다. TV의 화면에는 눈을 감고 쓰러져있는 환자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침대를 빼꼼하게 채운 그 환자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카메라에 담긴채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성류시에선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사들도 도저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상황이기에, 단순히 기절하거나 잠을 자는 것과는 다르며, 일단 의료기기를 통해서 산소를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지만 만약 이 사태가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환자들이 전원 뇌사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발표가 있어 큰 충격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건이었다. 경찰들이 조사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곳에 익스파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 사건은 익스퍼와 연관된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쪽에서 미소짓는 이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완벽하군. 이 상태면 조만간에...훗."
이를테면 식당에서 TV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감마, 용성을 예로 들 수 있었다. 그들이 또 무엇을 꾸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 다시 뭔가 엄청난 일이 성류시에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닌 듯 보였다.
묘하게도 조금 이르게 퇴근을 한 날이었다. 일렀다고는 하나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계절 탓에 하늘은 어두웠고 집으로 가는 길은 더더욱 어두웠다.
어두운 그 길을 혼자 가는 것이 싫어 홀로 선술집에 들렀던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을까. 다 아물지도 않은 속에 쓴 술을 흘려넘기며 한병 두병 비우다보니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있었다. 립스틱 자국이 남은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엔 아마 자정 가까이 늦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
그 즈음엔 역시 거리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선술집을 나와 쌀쌀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거리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걸음이 느리고 발이 살짝 꼬이긴 했지만 걸어가는데는 문제 없었다. 술냄새 섞인 숨을 내뱉으며 무의식중에 얼굴로 손을 올렸다가 내린다. 마스크, 오늘은 안 했었지.
"......"
입을 다물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걸음은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집이 아닌 어딘가로. 그렇게 걷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인적 없는 광장 같은 곳에 와 있었다. 가운데 분수대를 기점으로 둥글게 만들어진...가장자리에 벤치가 쭉 늘어선.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긴 집과 반대여도 정 반대였다.
"...에휴."
어지간히도 집에 가기 싫었니. 내 다리야. 내 발아. 누가 들으면 헛소리 같을 말을 중얼거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벤치에 쓰러지듯 앉았다. 차가운 나무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떠랴.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 등받이에 기대고선 허공에 긴 숨을 뱉어내었다. 아, 그냥 여기서 자버릴까. 몽롱한 정신 속에 그런 생각이 지나쳤지만 그것 뿐.
"......"
목이 꺾어져라 뒤로 젖히고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많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도 모르고,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