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안다고 말했니? 뭘 안다고?" 셩격 나쁜 듯한 표정을 짓고 말꼬리를 잡고는-진짜 쥐잡듯 잡는 건 아니었지만- 귀를 막은 그를 보면서 키힛. 하고 몸서리치듯 짧게 웃었습니다. 뭐가 들리는 거니? 라고 물었습니다. 세연 그녀의 공감각적 경험에 의거한 물음이었기에.. 대답을 바라진 않았습니다.
"그래. 데스이터는 레지스탕스를 상대하는 데 있어 불리함이 적다고 말하기도 하지."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포함해서 말이야. 이 곳에선 사용할 수 없지만. 이라고 말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는 말을 한 현호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유감이야. 난 머글도, 혼혈도, 순수혈통도 모두 다 죽이고 싶고, 세상을 사랑하기에 그 세상을 죽여서 전부 침몰시킬 거거든." 그렇게 나아간다면 분명 레지스탕스도 데스이터도 날 적대하려나? 우습다는 듯 말하고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죽이고 싶어진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인을 마쳤으니 이곳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나와 그는 틀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몸을 틀려니 들려오는 물음이 있었다. 저를 이르는 수식어를 유독 강조하는 목소리는 분명히 그의 것이다. 사기노미야. 돌아보자 과연 그가 거기에 서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 명했고, 자신도 그에 응했건만 속으로 부르는 말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제 불안을 고의적으로 자극하며 즐기는 이에게 친밀감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저에게서 완전히 떠난 후로부터는 저는 그에게서 이전만큼의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를 보며 느끼는 감각은 경멸이 되었을 뿐이다. 아니, 어제부로 그녀는 다시 제게로 돌아왔으니 나는 다시 그를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벼운 고민이 뇌중을 스치고, 단안斷案은 빠르게 내려졌다.
"안녕."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그녀'를 닮아갈 생각이니. 자신이 그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가 그녀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그와 승리를 위해. 새로운 뜻을 찾은 와중에 그를 혐오한다면 모를까 무서워하며 떨 이유가 호무하다. 그럼에도 그를 싫어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는 이전에도 지금에도 자신이 혐오하는 인간상이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저 또한 혐오하기로 했다. 들뜬 기분은 단숨에 삭아들어 사라져버렸다. 한껏 지었던 미소만큼은 채 달아나지 않아서, 겉으로 옅은 미소가 남아 감정과 표면의 괴리가 심했다. 말하는 목소리는 그와 대조되도록 차분했다.
"은인을 만났거든."
좋은 일이라. 있기는 있었다. 그의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터져나간 공터의 흔적으로 흘끗 눈을 돌렸다. 자신이 직접 베어내고 터뜨리려 했던 그 소년. 저는 아직까지도 그를 잘 알지 못했으나 그에게서는 자신이 앓아왔던 친근한 고통이 엿보였었다. 싸움을 원하지 않았고, 고통을 가하지 않으며 헐떡이던 그는 제게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몰아붙이려 했고, 그러므로 상처입히려 애썼다. 그는 제게 있어 명실상부한 은인이었으나 저는 내가 미웠다. 그는 제게 깨달음을 주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이겼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 언뜻 자랑스레 고하는 듯한 모양새기도 했으나 그 속이 어떨지는 저 역시도 몰랐다. 마냥 부정적인 쪽은 아닐 것이다.
네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하루종일 걱정했는걸. 끌어안은 너의 품이 혹여나 사라질까, 차가운 육신만 남을까 늘 마음 졸였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내 뺨을 쓸어주는 이 손을 다시는 느끼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늘 머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어. 너의 그 한마디에, 다행이다 라는 마음과 혼자 짊어지고 가려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내 마음을 스쳐가. 부디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프진 않았어?"
마음은 디터니를 당장 사용해 빠르게 치료해 주고 싶었지만, 위급한 환자를 위해 아껴 두어야 할 것 같아. 머트랩 용액을 팔 사이즈의 기다란 용기에 부어낸 다음, 너의 팔이 다친 부분을 잡고 조심스레 담궈.
"그래. 느낌에 의거한 것이라면 그뿐이겠지." 정확하면서 동시에 부정확하니까. 무의미하다는 눈빛에 그걸 수긍합니다. 말 그대로 꼬투리만 잡는 거였잖아요? 들린다는 듯한 움찔거림을 보고는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는-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련의 과정은 충족했습니다.-
"그런 건 그냥 관점만 달리하면.. 정말 쓰레기일 뿐이야." 들어봐야 아무 의미 없는 것에 매달리면 그건 파편만을 남길 뿐이었어. 마치 자기 이야기를. 오. 마치는 빼야죠. 자기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해도 말하면 부정하겠지만요.
"부정은 한두번 정도 할거라 생각했는데. 빗나갔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저 공물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으니 뽑아내거나, 덮어버려야겠지. 라고 중얼거리고는 박혀있던 검을 뽑아냅니다. 매끈해 보이지만 꽤나 상처를 찢는 거라는 소문도 있지요? 피를 털어내고는 칼집에 넣었습니다.
"시끄럽게 굴 수 없으니 파닥거리는 거려나." 네가 완전히 제압할래? 라고 그에게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