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몸과 마치 텅비어있는 것 같은 머리,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고역이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멍하니 거울을 바라본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쾡한 눈동자- 정말 어딜가서 당당하지 못할법한 인상이다. 우선 세면장으로 가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나왔다. 방에 돌아와 침대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을려는 순간 창문에 똑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치우자 밝은 태양빛이 눈을 따갑게 한다. 이른 아침부터 누가 이 난리일까하고 보니 러셀이다. 녀석은 한쪽 다리에 신문을 잡아두고 부리로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참 영리한 녀석이 아침부터 이렇게 잘보이려고 노력하는건 뭔가 노리는게 있을 것 이다. 창문을 열어주자 러셀은 자연스럽게 들어와 테이블에 자리잡은 뒤, 나를 제촉하듯 날개를 퍼덕였다. 청결을 중시하는 내 방에 깃털이 몇올 떨어지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러셀을 내보냈다.
똑똑-
"저, 알폰스? 아침식사가 준비됐어요?"
나는 하는 수 없이, 가운을 입고 식당으로 갔다. 쾡한 눈동자로 한 손에 든 신문을 멍하니 보며, 다른 한손으로는 커피를 집어 든 내 모습을 아리아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 무슨 신문을 그렇게 보시나요?" "메데치아 가 주식 입니다." "- ..그게, 음, 참 많은 일이 있었죠?" " - "
뜬금 없다. 이 전술인형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그게,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알폰스도 저에게 상냥하게 대해주고.. 또 처음처럼 저를 막 미끼로 사용하거나 하시지도 않고.." " - "
상냥? 내가? 그래? 조금 쾡한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다, 반사적으로 러셀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러셀은 'ㅇㅇ 그래여' 라고 말하는 듯 부리를 끄덕인다.
"처음에는 늑대씨 와 싸울 때 저를 막 다루시거나 하셨는데 최근엔 안그러시잖아요." "효율적인 전투법의 추구입니다-" "무작정 환상종과 싸우는 횟수도 줄어들으셨고" "저도 늙었으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알리시아양과 싸울때는 저를 되찾기 위해 열심히셨고" "남이 가져가면 속 쓰리니까요."
" .. 그으.. 억지로라도 '그렇군요 저도 조금 물러진 모양입니다'라고 하셔도 좋으니까 인정해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저는 불친절한 사람입니다."
"..거짓말해서 알폰스의 이상에 동조하는 척 했던 저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주기도 했고-" " - "
우- 이건 조금 강하게 들어온다. 사실 동조했다기 보다는 내가 망가지는 걸 보기 싫어서 그냥 둔거겠지. 그러나 가만히 두고만 보니까 더욱더 무너져서 결국 사실을 말해준거고. 결과적으로 아리아의 진실고백은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이 컸지만.
나는 커피잔을 내려두고 신문을 접어서 식탁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잠시 의수의 상태를 체크한 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알폰스, 궁금한게 있어요. 왜 당신은 하필 저를 되살린건가요..?" " - "
그 때 다시 들려오는 질문. 나는 고개를 돌리지않고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그때 숨이 붙어있고 재정신인건 당신 밖에 없었으니까요. 골절도 많고 장기손상도 커서 산송장이라고 밖에 말이 안나왔지만.." "음- 그렇군요."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도련님- 뭘 하게
살려낼꺼야. 프레드릭 저택에는 다양한 고서가 있고, 아는사람이 기계를 잘만지니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지인인가?
마을에서 홀로 살아남은 그녀라면 내 이상에 동조해줄꺼야- 그리고 기다려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결국 인형의 몸이라면 영원히 혼자가 될 수도 있는데?
목적을 전부 다 이루면- 그땐 같이 죽을꺼야
알폰스는 떠오르는 과거에 허탈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문고리에서 조용히 손을 치웠다. 먼 옛날 우연찮게 대면했던 마을의 뒷산- 그 때 자신의 포부를 알려주던 소년과 소년의 치기어린 꿈에 순수하게 박수를 쳐주던 여인은 더 이상 없다. 마을이 불타던 그날을 기점으로 망가진 까마귀 신사와 기억하지 못하는 기계장치의 숙녀만이 이승에 미련이 남아 남아있을 뿐이다.
"그냥 그랬던건가요... 아, 그리고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내가 좋아서 만들어주고팠던 것 뿐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뭘 먹고 기뻐하는 게 좋아요. 그게 제가 대접한 거라면 더욱, 그리고 제가 만들었던 거라면 더더욱. 그래서 만들어주고싶었어요. ......단순한 자기만족이네요. 하지만 기뻐해주셨으면 해서..."
그러곤 가벼이 웃어보인다. 달콤한 맛이 녹아들어간 쿠키는 분명 맛있겠지. 기뻐해주셨으면 좋겠어. 그녀는 이내 아나이스가 한 입 먹겠냐는 듯 하자 고개를 갸웃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쿠키는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보다 역시 그런 건가요.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네요? 뭐 당연하겠지만..."
크게 신경쓸 건 없다니 정말 그런걸까. 좀 의심되는걸... 그래도 의심은 나쁘다는 걸 알고 있어. 응, 충분히 자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의심하지 말자. 그냥, 그냥 언제나처럼.
"아무튼... 나도 아나이스를 특별하게 대할 거에요. 아나이스도 나를 특별하게 대해주니까...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건 이렇게나 기쁜 거였네요. 그 전까지는, 그닥 잘 몰랐었는데..."
활짝 웃어보이다가도 볼을 찔리자 입을 비죽인다. 그러면서 표정도 살짝 구깃구깃해지는 것이 묘하다.
"어쨌던 그러면 가죠. 아이스크림, 좋아하거든요. 되게. 아나이스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나요? ......그리고 거절해도 된다는 말은 필요 없어요. 안 갈리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