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한 가지만 얘기할게. 그쪽. 숨기는 카드가 너무 많으면 나도 카드를 드러내기는 싫어지거든. "
간단히 말해서 왜 말을 아끼느냐는 뜻이다. 사실 범죄자를 대하면 어느 부분에서는 말을 길게 늘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갑자기 말을 닫는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라는 합법적인 그늘에 있다곤 하지만 역시 아쉬움은 있기 마련이었다.
" 전문의의 방문을 지금보다 1회 늘리는 것을 추천할게. 그리고 전문의와 요원들이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익스파인 전문의를 붙혀준다면 그들의 신뢰관계를 쌓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거야. 일반적인 의사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힘들테니까. 아니면 일반의와 익스퍼를 같이 붙혀주는 방향도 좋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팀 내부에서 상담사와 협력을 맺는 것도 좋아. 사건이 있고 나서 상담사와의 얘기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잠시 내려두는 것에도 도움이 될테니까. 아니면 이 부분은 내가 맡든지 할게. 사실은 범죄자와 경찰은 상담해보면 큰 차이가 없어. 경찰이 범죄자의 방식에 익숙해진다는 얘기이기도 하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안정이야. 아무리 전문의, 휴가, 고수익이 보장되어도 마음이 쉴 수 없다면 쓰러지는 사람은 한둘이 아닐거야. "
아쉽게도 건강즙은 맛이 없었고 그것은 얼굴에 훤히 들어났다. 찌푸린 얼굴이기는 했지만 깔끔하게 다 마시고는 꿀이 좀 들어가도 괜찮겠다. 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윤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고 머리를 부드럽게 쓸으려 하였다. 이게 오퍼레이터들의 문제. 스스로 쌓이는 피로들을 드러내기 힘든 것이 오퍼레이터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의 불만을 들어주고. 간단히 행동을 해주고. 이런 소소한 행동으로도 상대에게 안정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일이었다.
" 세계를 다시 창조하는 힘이라. 솔직히 웃기는 이야기네. 믿기지도 않고.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면 경계해서 나쁘진 않은 이야기네. 이런 이들의 목적은 혁명. 아니면...불나방이거든. "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는 잠깐 턱을 손가락으로 잡고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과 함께 말을 그쳤다. 아직 이정도의 기록으로는 알 수 있는게 없으니까. 당신의 말을 들은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에 대한 것을 알려줄 순 없잖아요? 그쪽 부분은 프라이버시니까요. 그거 공개는 일단 아빠...강이준 서장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돼요. 그러니까 숨기는 카드라고 해도...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걸요."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아무리 오퍼레이터라고 해도 나에게 많은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지휘하는 것은 아빠기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자도 아빠니까. 나는 솔직히 말하면 서류 담당이나 현장에 모두가 출동했을 때 여기서 바라보면서 서포트로 통신을 보내주는 것에 가까운걸. ....아무튼, 꽤 전문가라는 느낌은 들었다. 이번엔 나의 예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좋은 이가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정신적 안정이라고 해도... 그 부분은... 솔직히 나도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당장 내가 여유를 찾기 힘드니까. R.R.F. 그들에 의해서... 당장 저번만 해도 R.R.F가 대놓고 우리 팀을 저격하고 범죄자를 보내기도 했고...
"그것이 실제로 있어요. 리크리에이터도 그 힘의 일환이니까요."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긴 하지만, 실제로 A급의 이들이 S급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힘. 일단 그 정보가 맞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적어도 그것을 말하는 R.R.F의 멤버. 그러니까 알파와 베타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들이 그것을 목적으로 움직인다고 한다면 그것을 딜단 사실로서 보는 것이 좋겠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을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많이 만나봤다는 말에 감탄하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이것은 그러니까..사랑 이야기지?! 하지만 곧 어흠..어흠... 헛기침을 하면서 자제했다. 지금은 일하는 시간. 일하는 시간.
아무튼 이어, 나는 근처의 보관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얘기했다.
"사랑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물어볼게요. 각오해두세요. 아무튼, 저 보관대에서 테이저 건을 보관하고 있어요. 일단 일반 테이저 건과는 다르게, 우리들의 발산하는 익스파를 에너지로 쏘는 테이저건이에요. 이른바 우리 팀 전용이에요. 서하 씨와 제가 동시에 열쇠로 열지 않으면 안 열리니까, 일단 테이저 건은 다음에 현장에 직접적으로 출동하게 되면 그때 지급할게요. 지금 서하 씨. 휴식 시간이라서 자리에 없으니까요."
이어 나는 저쪽에 있는 내 자리 옆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연하지만 거기에는 지금 아무도 없었다.
요즘 연예부 기자분들 무섭더라구... 내가 옛날에 소극장에서 연기한 것 까지 다 찾아내더라니까? 물론 좋은쪽으로 써진 기사긴했지만... 무서워 요즘기자들. 그러다 너의 차 타고 가자는 말에 조금 움찔했다. 나는 빠른 차랑 빠른 차랑 빠른 차에 약한데, 내가 미처 그걸 말할 타이밍도 못잡은 채로, 아니 말하긴 했는데 우리 로제도 설마 싶은 생각만 하고 그대로 달려버려서... 잠깐 기절했었다.
"진짜지이---?"
또 과속하면 나 진짜 삐질거야. 그렇게 너에게 한 번 묻고 나서야 만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는 너에게 안긴거지만. 이럴 때 만큼은 내가 조그마하다는게 정말 좋았다.
이야기를 끝가지 들은 다음 종이에 간단히 무언가를 정리하고는 그것을 다시 적당히 정리해두었다. 이번에 일이 바뀌었으니까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고. 꽤 귀여운 동생도 생긴 것 같으니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책상을 살짝 톡톡 두드렸다. 생각은 아직도 머릿속을, 그러니까 의문점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이 의문을 드러낼 순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만큼은 아직. 나도 공개할 수 없는 카드가 될 것이다. 아직 연애 얘기에도 관심이 있으면서 자신은 경찰이니까. 라는 사실로 무덤덤히 받아버리는 이들이 많았다. 사실 여기까지 끌고온 일이야말로 이 아가씨의 도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멋지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조금은 멋지다는 미소와 함께.
"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일하는 도중 아니면 괜찮으니까. 나는 일단은 다들 편하게 지냈으면 해. 스카웃을 받은 이유도 내 손으로 정의를 이룬다. 보다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거든. "
판단은 대충 끝났으니 볼 용무는 끝났었다. 그래도 나 혼자만 질문을 마구 던졌으니 나에게 궁금한 점도 있지는 않을까 싶었다.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으니까 나도 편하게 언니로 부르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테니까. 좋아. 앞으로 시은 언니라고 부르자. 확실하게 기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런 이유로 스카웃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구나. ...과연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조금 궁금해졌다. 깐깐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 감은 맞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시은 언니에게서 질문이 있냐는 물음이 오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싱긋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연애....이야기는 나중에 사적 자리에서 묻기로 하고, 언니는 매일매일 어떻게든 일 안하려고 농땡이 피우는 동료가 있으면 어떻게 응징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세요?"
이 언니라면 아주 좋은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뭔가 엄청 멋있어. 이 언니. 되게 걸크래쉬 같은 면도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호칭정리를 간단히 끝내버리고는 미리 가져온 주전부리를 입에 집어넣었다. 와삭소리를 내며 씹힌 과자의 맛이 나쁘진 않았다. 일단은 할 수 있는 일들은 처리하겠지만 할 수 없는 일들은 남의 도움을 받는 쪽이 좋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오퍼레이터의 호감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쪽이었다. 마침 대화를 하면서도 진행하던 서류 작업을 끝내고는 의자를 돌려 너를 바라봤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고는 그게 저 다른 오퍼레이터구나 하면서 말을 이었다.
" 하책은 역린을 건드리는거야. 해야만 하는 이유와 소중한 것을 연결시키는 것. 아마 그런다면 그로서도 화를 내면서도 일을 하는 방향밖에 없겠지. 중책은 그가 일에 의욕을 느낄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사실상 불가능해. 상책은 간단해. 시말서를 실컷 쓰게 만들던 뭘 하던. 사실상 피곤하게 만들어버리면서도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 돼. 자기가 하던 강도보단 쉬우면서도 하려면 이트집 저트집 다 잡으면서 차라리 일이 좋다고 만드는거지. "
과거에 이런 방법을 써서 놈팽이를 부지런하게 만든 기억이 있었다. 물론 효과는 좋지만 그만큼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필요한 방법이었다.
" 상관과 입을 맞춰서 뭐 서류를 받아오게 만들거나 외부근무를 계속 돌려도 돼. 그러면서도 일정은 빡빡하게 만드는거지. 게으름? 피우라고 해. 그러면 게으름 피우실 정도로 능력있는 직원이니. 몇배로 써먹는거야. "
역시 서하 씨는 대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어떻게든 일을 하도록,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편하도록 계속 수법을 쓰지만, 서하 씨. 꿈쩍도 안하는걸.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이것만은 서하 씨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표현하진 않았다. 일단 언니도 신경써서 답해준 거니까. 저대로 이미 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또 아무런 말도 안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한번 그것을 개량해서 생각해볼게요. 후훗. 조언 고마워요. 언니!"
...서하 씨에게 정말로 순수하게 감탄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면 정말로 답이 없는걸까. 정말로 약오르는 것은 그렇게 게으름 피워도 어떻게든 기한 내에는 모든 일을 다 한다는 점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다. ...역시 서울에서 내려온 에이스는 다른걸까. ...에이스 맞겠지? 그래도 서울에서 여기로 보낸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너무 자리를 비우는 것도 안될 일이라면 안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슬슬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시은 언니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당장 얘기해야 할 사안은 어떻게든 정리가 되었네요. 혹시 또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와서 얘기해주세요. 최대한 알기 쉽게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잘 부탁해요!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