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앵전 ~ 시공이 멈춘 앵화성역 이벤트 진행중. (1페이즈 1/22 ~ 1/25) 자세한 사항은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95%B5%EC%A0%84%20~%20%EC%8B%9C%EA%B3%B5%EC%9D%B4%20%EB%A9%88%EC%B6%98%20%EC%95%B5%ED%99%94%EC%84%B1%EC%97%AD 를 참조해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어쩌면 끝나기도 전에 잘라먹다시피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의 데시벨이 예상보다 컸는지, 귀가 따갑다는 듯 움찔거리는 레이첼이었다. 짧고, 간결하고, 크다. 그보다 마음이 잘 전해지는 대답은 없을것이다. 레이첼은 거기에 다행이라며 덧붙이고는, 앉아있던 그녀의 무릎에서 몸을 일으켰다.
"차를 내오지. 마시고나서 잠들도록 해라."
아직 그녀가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상당한 양의 출혈로 몸의 피로가 누적됐을것이다. 거기에 무엇보다, 부족한 마소를 보급하는대에는 수면만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사람을 일부러 먹지않는 레이첼이 나름 가져온 노하우였다. 그게 조금은 우습기도했다.
비비안은 레이첼이 잠이 들고나면 가만히 입을 대고 몇번이고 사랑을 속삭인 뒤 사냥을 하러 나갔다. 마소의 충족을 위해 그녀는 일주일에 몇번씩 인간을 먹고 마소를 충족한다. 하지만 이래서야, 나가기도 곤란하네요-. 오늘도 레이첼이 잠이 들때까지 그 단정한 얼굴이나 감상해야겠다고, 비비안은 생각한다.
단정하고 강인한 등이나, 얼굴을 구경하는 것만큼 비비안에게 흥미로운 것은 없다. 인정해요. 레이첼은 나의 역린이죠. 검은머리의 중장이 했던 말이 사실이라.
비비안은 언제나와 같은 희극적이고 연극적인 태도를 유지할수 없었다. 이것은 그녀의 그녀에게도 할수 없는 말.
인간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은 영생을 사는 이들의 취향이였고 비비안또한 취향이였으니. 비비안은 일어나며 차를 내오겠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까르륵 웃었다.
그 웃음은 곧, 햇살이 넘어가며 남기는 노을처럼 산산히 흩어진다. 비비안은 제 어깨의 상처를 매만지다가 시선을 돌렸다.
"레이첼."
그녀의 목소리가 낮고 조용하게 울린다.
"사랑해요."
비비안은 그렇게 말하고 베시시 웃은 뒤 레이첼이 올때까지 무릎을 끌어안았다. 반지로라도 확 묶어버릴까요? 시마.
"하긴. 날이 추운 편이니까, 보통 이런 날씨에 차가운 걸 먹지는 않죠? ......그래도 전 좋아하니까. 네."
시이는 그렇게 말하곤 가만가만 웃다가 이내 자리를 옮길까요, 라는 말에 그러자는 듯 고개를 몇번 끄덕끄덕거립니다. 갑자기 바람이 살랑, 도 아닌 쌔앵, 하고 불어오자 싸늘한 바람이 뺨에 닿은 것이 기분이 묘한 듯 몸을 파르르르 떨다가 이내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는 그 말에 잠시 좀 고민한다.
"뭐, 어쨌던 그러면 가 볼까요. 일단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면."
미리 알아뒀다가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겠고. 여기에서 그닥 멀지 않다면 충분히 갈 수도 있겠고. 좋아, 완벽하네. 그러면 알아두는 게 좋겠어.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어디일까, 하고 고민합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메모장과 작은 필통을 꺼내어서 대략적인 위치를 적을 것을 준비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추운 날씨라면 얼어죽을지도 모르니 빨리빨리 가죠. 어디인지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알고있다. 네 차의 취향도. 내가 잠든 새벽에 인간들을 사냥하고 돌아오는 것도. 숲을 감시하고 환상종을 부정하며 마주치는 인간을 돌려보내는 숲 지킴이가, 사람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와 같이 공생한다는 것. 하물며 사랑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일까? 나는 제대로 '부정'하고 있는걸까? 어느새 머릿속에서 그런 의문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모순의 길을 걷겠다고, 레이첼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세상이 내게 그래왔던것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끈을 집어올려 머리를 뒤로 묶어올리곤 불을 지핀다. 어느새인가 끓고있는 물의 소리가 방 안을 매우고 있을때, 등 뒤에서부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물게도 진솔되고, 조용했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레 시선이 이끌린것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고있던 레이첼은 다시 앞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찻잔에 물을 흘려넣기 시작하며 말했다.
"나도다. 비비안."
사랑한다. 마찬가지로 낮고 조용했다. 그런 그녀는 티스푼을 띄워앉힌 찻잔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가, 말없이 눈 앞에 건네주었다. 은은하고 달짝지근한 향이 코 앞에서 어른거렸다.
시마, 레이첼은 모순이에요. 환상종이 가득한 숲을 지키고 서서, 인간들의 출입을 가로막고 그들을 돌려보내는 그 숲지킴이가 마소의 섭취를 거리낌없이 하는 뱀파이어와의 공생,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이 가득한 그 행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차라리 부정하지 그랬어요, 레이첼. 당신의 사랑을, 나의 애정을. 그대로. 무시했더라면 당신은 스스로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을텐데. 시마, 그래도 좋았을까요? 아뇨. 시마는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하니까요.
"네에- 알아요."
건네어지는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달큰한 향을 맡으며 비비안은 그렇게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저런 등을, 시마. 당신이 놓칠수 있었을까요?
"언제나 고마운걸요! 레이첼!!"
차를 한모금 마시다가 비비안은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만 움직여서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난기 가득히 속삭였다. 단맛이 부족해서~. 모르는 척, 자신의 신념을 굽혀줘서. 그러니까, 저 시마. 이 욕망은 조금 잠재워둘게요. 당신 등에 이를 세워서 상처를 내고, 내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