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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같은 눈빛을 하는 에이미의 모습에고개를 갸웃했다. 곱슬기가 강한 붉은색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고, 무슨 일 있어요? 라는 눈빛으로 에이미를 바라보며, 나는 방긋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응? 큰 무언가? 아까 안아준 게 그렇게 큰거였어? 어라? 그게 아닌데? 뭐지?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물음표를 마구 띄우면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에이미에게 딱히 해준 것이 없다. 그래봤자 처음 만났을 때에 도와줬고, 지금도 그저 위로 밖에 해주지 않았는데.
[저는 에이미에게 감사를 받을 정도로 뭔가를 크게 한적이 없는데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에이미를 스치듯이 마주친적이 있나? 아니 헬리오스시여. 이게 뭐죠? 아니 뭐냐고! 나는 그렇게 수화를 하다가, 에이미의 손에 어어? 할 새도 없이 어정쩡하게 끌려가고 말았다. 아으, 이상태에서는 수화도 잘 안되는데. 아니 잠깐만. 나는, 끌려가는 걸음을 돌려서, 매끄럽게 자세를 바꾸고 에이미의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어릴때는 단걸 좋아했지만 지금은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목에 문제가 있어서[
미안해요, 라고 마저 적은 뒤에 나는 자신의 팔을 잡은 에이미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려한다.
풀잎에서는 이슬이 떨어진다. 달빛이 깨어져 비산하는 것, 이름 모를 청록빛 반딧불은 녹슨 톱니바퀴 사이로 헤메인다.
요정 여왕과 요정왕이 밤의 창을 넘어 행진하는 시간, 어릴 적 그를 매료한 새벽이 이르렀다.
레오닉은 그와 어울리게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탄탄한 매트리스에 누워있다. 새벽이 깊어오니 점차 그의 의식도 거무죽죽하게 녹아내렸다. 창문에 이르러 산산히 부서지는 월광과 짙푸른 새벽 하늘의 경관 만이 그의 방에 당도했다. 그 무엇도 그에게 침범할 수 없었다.
잠이 들기까지 서너 시간을 지새웠고, 그 동안 바래진 책을 펼쳤다. 스산한 얼굴들이 레오닉을 주시했다. 레오닉의 정신 속에서 그들은 모두 훈련 받은 정예 심문관이었다. 양 손에 검푸른 총칼을 쥐고, 순흑의 복식 틈새에서 그들의 손에 끼워진 은빛 반지가 번뜩였다. 하늘은 불타오르고 나무마다 불길이 번졌지만 그들이 선 땅에는 물이 고여있다. 얕게 깔린 물길 속에 거세게 발도장을 찍어가며 그들의 지휘자가 걸어왔다. 머리는 인디고의 침잠하는 듯한 푸른빛이었고, 손에는 자그마한 책이 한 권 들려있을 뿐 너무나 자유로워보였다.
"환상종 레오닉."
네 발의, 그것 말고는 이렇다할 형태가 없는 무언가가 귀로 추정되는 것을 쫑긋했다. 그것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색의 영롱한 빛을 수없이 뿜어내었고, 그것이 내뱉는 숨은 빛의 물결이었다. 주변이 오로라 같은 파장으로 휘감겼다.
그것은 갈기가 있었고, 뿔이 있었고, 눈이 있었으며, 그 모든 얼굴은 두개였다. 하나는 정오의 하늘이었고, 하나는 황혼의 노을이었다.
"기만자 레오닉."
레오닉은 그 헤진 책을 펼쳤다. 거기에 그것에 대한 모든 죄목이 부과되어 있었고, 그것을 말살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심문관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것은 꿰찔렸고, 부서졌으며, 연신 고통스럽게 울음을 뱉었다. 사방으로 빛의 물결이 더욱 진하게 흐드러졌다. 두 얼굴 중에 하나는 울었고, 하나는 눈을 감은 채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만족스럽다는 듯이.
"살인자 레오닉."
그것은 그르렁, 으르렁 분노와 설움을 토해내며 그들을 피해 달렸다. 어둠은 끝이 없었고, 그것은 영원히 달려야 했다. 심문관들의 추격은 지칠 줄 몰랐으며 섬뜩하게 울려퍼지는 총성, 칼이 흩날리고 헤아릴 수 없는 총탄들이 그것의 발걸음마다 가득 매워졌다.
"방황하는 레오닉."
마침내 그들의 숱한 공세 중 하나가 그 환상종의 얼굴 하나를 완전히 깨뜨렸다. 유리가 조각나듯,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그 구분된 조각대로 편린이 되어 흩어지듯이, 그저 미소를 머금었던 오월 하늘이 졌다. 붉으면서도 푸른빛이 감도는 황혼이 아직 건재하니, 그것은 여전히 달렸다. 시간을 아득히 초월하고 기억을 초월하고 감각을 초월해서 달렸다. 거칠어진 숨결이 발하는 노을빛 정경이 점차 배경의 어둠을 물들여갔다.
"실패한 레오닉."
눈보다 소금보다 하얀 발걸음이 잔디를 밟았다.
꽃들이 타오르고 아담한 나무 집들에도 업화가 일렁이고, 흐릿하게 별들이 반짝이는 황혼 무렵 하늘 아래에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무덤가 근처에, 어느 때인가 사람을 해치던 혜성은 실로 아름다우매 강렬하니 눈물의 별자리를 한 두 방울 떨어뜨리니,
청마와 달은 천구의 영속한 정원을 거니노라,
그러자 푸르른 그 짐승, 기어코 무릎을 꿇고 먹구름 사이에 놓였노라.
짐승은 불을 뱉었다. 불처럼 붉고 아스라이 흔들리는 마지막 한 줄기의 숨결이었다. 끝으로, 그가 채 밝혀내지 못했던 자신의 발치 아래의 무한한 어둠이 땅을 뚫고 손을 뻗었다. 어둠이 풀들을 짚고 일어났다. 보랏빛, 황금빛, 푸른빛이 뒤섞인 고혹적이고도 오묘한 달을 불러들였다.
그것은 결국 악몽의 도래를 막아내지 못했다. 다시 한번 캄캄한 악몽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고 불분명하고 곡조 높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것은 그를 지켜내라고 손짓했다.
고개를 돌리니 심문관들은 한없이 추레했다. 그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죽었으며, 팔과 다리가 온전치 않았다. 비로소 밝아진 하늘이 비춘 땅의 그 물 웅덩이는 진하고 끈끈한 붉은색이었다. 때 이른 낙엽이 바람에 섞여 땅에 즐비했다.
가장 작은 아이야, 석양 노을의 임금이 될 아이야, 밤하늘의 요정왕, 산 것들의 사자였어야 할 나의 레온.
내게서 손을 떼지 말아라 눈을 마주하고 나와 같이 숨을 쉬어라. 저들을 나약하다고 여기고, 너의 생애를 빛내어라. 이렇게 가녀린 손을 뻗어 모든 불순한 것이 없도록 하렴.
레오닉은 책을 덮었다. 휘몰아치는 불길의 물결 가운데에 오직 그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하늘은 아직 낮은 넘고 밤은 이른 황혼이었다.
손가락에는 때묻은 은빛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죽은 그의 친우들에게 환상종을 살해하는 무구가 꽂혀있었다. 한명 한명에게 눈을 기울일 때마다 괴기한 환상종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것의 목소리 같기도 하며, 애초에 그것 또한 환상종이었다.
그는 기나긴 어둠을 헤치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대략 1시간 가량이 조금 넘게 흘렀을 뿐 창가 너머는 여전히 짙푸른 새벽이었다.
자정이 지난 고해의 시간, 그의 밤은 아직도 깊고 고요했다.
또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으리라 여긴 레오닉은 작은 전등을 키고 집무실을 어슬렁거리며 자신을 현실에 묶어놓을 그 잔업들에 몰두했다. 시간을 헌납한 대가로 그가 누리는 시간은 그의 바래진 책에 쓰여진 그대로였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을까..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역시 이것도 나의 잘못인걸까? 너를 더 옆에서 돌봐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면..조금 덜었던 짐이 떨어지는 돌처럼 가속도가 붙어 그녀의 심장을 쥐어 비트는것같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