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하는 외출이라는 것 자체가 제한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 나온 것은 충동으로 몰래 한 독단 행위. 제한되는 것은 외출 뿐만이 아니었다. 저택 안에서의 삶, 사사로운 것까지 전부. 무조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는 자유롭지 못한 삶인 모양이었다. 용돈이라도 많이 받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다. 아니, 설령 많이 받는다고 해도 외출부터 제한되는 이상 쓸데가 없기는 하지. 잠시 주저하다가 센하는 나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것을 들은 나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상상하던 대기업 회장의 손자의 삶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래도 괜찮아."
당사자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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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하는 그 때 몰래 행한 외출을, 처음이자 마지막의 독단 행위로 하겠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용납하지 못했다. 붙임성이 좋다보면 자연스럽게 오지랖도 넓어지는 걸까. 그 녀석의 무덤덤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눈동자는 차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진심은 다를 거야, 라는 확신. 나는 그 녀석에게 가끔씩 나랑 같이 놀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다. 처음 느낀 인상보다 자기 주장이 확고했던 그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부탁해보았다. 짧은 시간에 똑같은 대답을 수없이 듣다가 센하는 드디어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한숨을 쉬더니.
"...진짜 독하네, 너. 뭐, 어쩔 수 없이 어울려주지...며칠만."
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눈동자는 한결 차분해진 것 같아서 나는 미소지었다. 그 뒤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나는 집밖으로 몰래 나온 센하와 만나서 거의 매일 놀았다. 한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센하를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같이 보거나 하였다. 사족으로 그러면서 그 녀석의 한국어 실력이 괴물 같이 성장해서 나는 당황하기도 하였다. 한편 며칠만 어울리겠다던 말은 그 녀석이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빈말이었던 것인지 이렇게 같이 놀다보니 어느새 한여름이 되어있었다. 그래, 여름축제를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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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키 가는 손자손녀들을 여름축제에마저 보내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축제까지 보내지 않는 걸까. 센하의 말에 따르면 남들이 축제를 즐기는 시간에 공부를 한다고 한다. ...중학교 과정을. 와, 괴물도 아니고.
하지만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거다. 센하는 오늘도 몰래 나와서 나와 같이 여름축제를 즐겼다. 그 녀석을 맞이한 시간은 이미 어두워진 때였다. 축제가 슬슬 절정에 치닫을 시간. 금붕어를 낚아보고, 타코야키도 사보고, 도박성 놀이도 해보는 등 축제를 여러모로 즐기다가 우리는 강가로 빠져나와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나는 캠프파이어를 피워보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강가여서 괜찮다. 그리고 내 능력이라면. 그런데 이걸 센하에게 보이면 곤란한 구석이 있었기에 나는 그 녀석에게 장작을 좀 가져와달라는 구실을 붙여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만들었다. 자, 그럼 이제 불을 붙여볼까. 두 손바닥을 펼쳐서 불을 생성해내었다. 그러고 보니, 센하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나지막한 한마디를 흘렸었다. '오랜만이네, 여름축제'. 나는 그것을 떠올려보았다. 코미키 가는 아이들을 여름축제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센하는 어째서 오랜만에 여름축제에 왔다는 이야기를 입에 올렸을까. 설마 꿈에서 가봤다든지 하는 건 아니겠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어서 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
"어? 성재 불 쓰네?"
장작을 안고 온 센하가 어느새 옆에 와서 저런 말을 던졌다. 조금 놀란 듯한 눈치. 그런데 있잖아, 나는 더 놀랐어.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 이제 혼나는 거야? 혼나는 거지? 그치? 아아아아아아아아, 익스퍼인 거 들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에에에에에. 우와아아아아아, 지금까지 열심히 숨기면서 다녔는데에에에에. 이렇게 허무하게 들키냐. 응? 아아아아아아...
"흐음...너도 익스퍼였구나."
...아아아아...응? 센하가...익스퍼를 안다...? 그렇다는 건?
"어어어엄...센하...도?"
센하는 대답없이 장작 하나만을 손에 남기고 나머지는 내가 붙인 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남겼던 장작 하나를 저 멀리로 던졌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손가락을 튕긴다. 나무가 폭탄처럼 펑 터졌다.
"이거."
나지막히 말한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가 익스퍼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장작을 좀 더 넣으니 불은 더욱 크게 타올랐다. 센하를 보니 그 녀석은 묵묵히 그 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큭. 웃는다. 조소하듯이. 그 녀석은 소리를 낮춘채 계속 히죽히죽 웃었다. 눈은 불에 똑바로 고정되어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 녀석이 보인 모습은 아이의 순수한 웃음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너무 무서운 웃음이라서.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옆에서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다른 화제로 혼잣말하였다.
"조금 이따가 불꽃놀이 하겠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발사되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위로 올렸다. 얼마 후에 하늘에는 아름다운 불의 자수가 놓여졌다. 뒤늦게 들려오는 터지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센하도 웃음소리를 그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펑. 펑. 펑. 불꽃놀이는 길게 이어졌다. 아름다웠다. 센하는 어떻게 생각할까. 센하쪽을 다시 바라보며 물어보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툭 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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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섬뜩한 미소를 옅게 지은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발음이 연신 울리면서 불꽃놀이가 여름축제의 절정을 장식한다. 아아, 그래. 그 때도 불꽃놀이를 구경했었어. 소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절경이다. 그런데. 무언가 따뜻한 것이 볼을 타고 내려가 툭 떨어졌다. 소년은 흠칫하더니 한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그러나 눈물은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결국은 포기한 듯 소년은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억지로 삼켜가며 하염없이 계속 운다. 소년의 친구는 당황스러워하다 어색하게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름축제의 불꽃놀이는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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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밤,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의 거울 앞에 앉았다. 손에 들고 있었던 것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잘그락. 종류가 두 가지인 피어싱 여섯 개. 소년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제 조부와 부친을 지독하게도 닮은 얼굴이다. 그들과 확실하게 다른 곳은...채도 낮은 자색 눈이겠지. 아아, 공허하기도 하여라. 소년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노려보았다.
소년은 결심한듯 오른손을 올려 귀 뒤로 가져가더니 왼손을 그 귀로 뻗었다. 그 손에서 가느다란 무언가가 옅게 반짝인다. 피어싱용 바늘이었다. ...조부나 부친이 이에 대해 추궁하면, 적당히 둘러대고 용서해달라고 하면 될테다. 분명.
ㅡ토오야, 이건 어른이 되면 해야하는 거야. 알겠지? 우리 약속할까? ㅡ응, 약속할게.
무감각한 눈빛인채 소년은 제 귀를 뚫었다. 사사로운 거였지만, 그 사람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약속은 어기지만, 증오스러운 그 사람의 선물을 귀에 끼운다. 아, 어쩌면 이렇게 모순되는 걸까. 마지막 여섯번째 피어싱을 귀에 끼웠다. 다시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았다. 아아, 여전하다. 자색 눈동자는. 자고 일어나면 다시 검은색 렌즈로 가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