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를 문질러 닦으며 나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프레이였다. 용케 시간 맞춰 왔네. 실없는 소릴 하며 다가가니 그가 내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가자." "...응."
달리 말할 힘도 없어 그냥 그렇게 말하고 오토바이에 탔다. 팀원들이 나오기 전에 그가 먼저 출발했다. 거의 기대다시피 그를 붙잡고 오는 동안 나도 그도 말이 없었다.
"......"
오는 내내 내쉬는 숨은 비릿했고 속은 뜨거웠다. 갈수록 머리도 뜨끈해지는 것 같았다. 아, 몸살 나는 건가. 슬슬 감기는 눈 사이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확실히 요즘 랭크 오르고 무리하긴 했지.
프레이는 말하지 않아도 병원이 아닌 집으로 날 데려다놓았다. 그가 특별히 한 것은 없었다. 맥없는 몸뚱이를 업어다 침대까지만 눕혀놓고 끝. 나는 몸이 푹신한 이불에 감싸이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었을 때는 이미 사방이 어두컴컴해진 후였다.
"......"
부스스 일어나서 먼저 보인 건 옷이었다.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 잠들었으니 깨어서도 그대로였다. 갑갑한 그것들을 훌훌 벗고 욕실로 들어간다. 온수를 기다리지 않고 무작정 머리 위에서부터 물을 맞으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물 사이로 시야가 뿌옇다. 생각 없이 서 있다가, 왈칵 올라오는 토악질에 몸이 휘청였다. 웩, 케헥. 입을 가림이 무색하게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덩어리들이 새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명하게 울리는 그 소리에 파르르 떨리는 눈커풀을 드니 발밑이 새빨갛다. 붉다 못해 검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이 그 붉음을 점점히 번져뜨리고 있었다.
"...에휴..."
보통이라면 기겁할 그 광경이 나는 놀랍지도 않았다. 마치 지긋지긋한 것을 보듯 한숨을 내쉬고, 물로 입을 헹굴 뿐이었다.
그저 그냥, A랭크 보다는 확실히 버겁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엔 가끔이었는데..."
이제는 쓸 때마다 이러는 걸까. ...에이, 모르겠다.
발로 바닥을 흩어버리곤 마저 씻었다. 현장의 흙먼지와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내고 머리에 수건을 헐겁게 두른 채 나왔다.
나 외에는 기척 없는 집 안은 조용하다. 물기 남은 발로 차박거리며 부엌으로 가, 불을 켜고 냉장고를 열었다. 작은 냄비에 어제 끓인 토마토 스프가 있어 그걸 가스렌지에 올리고 끓을 동안 식탁에 앉아서 기다렸다.
"......"
조용한 부엌에 머리칼의 물 떨어지는 소리와 냄비를 데우는 불의 소리만이 잔잔하게 흐른다. 그 적막함 때문인지, 싹 씻고 나왔는데도 정신은 영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촛점 없이 허공을 보며 앞뒤 없는 생각들을 머릿속에 주워섬기고 있었다.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어느 것 하나도 도움 되는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잘도 흘러 냄비 속 스프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아."
소리를 들은 것에 비해 한박자 늦게 정신이 들어, 서둘러 일어나 렌지로 다가간다. 불을 끄고 타진 않았는지 속을 들여다보곤 냄비를 들으려다가-
"!!"
또다시 목을 넘어오는 감각에 냄비가 아닌 허공을 짚으며 넘어졌다. 이번엔 눈 앞이 핑 돌아 제자리에 서 있기도 버거웠다. 쿨럭, 큭. 기침과 함께 뱉어낸 것은 아까보다 양은 적었지만 색만이 선명하게 붉었다.
젠장.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손을 모아 쥐고 일어나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찬물로 손도 입안도 헹구고나니 식욕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옆에서 풍기는 토마토 냄새와 부글거리는 그 색에 욕지기가 더 치미는 것 같아 서둘러 부엌을 나갔다.
간신히 침실로 돌아온 나는 정신없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리는 덜 말랐고, 옷도 거의 속옷 바람이었지만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뜨거운 속에 비해 차가운 몸이 이질적이어서 싫었고, 손에 닿는 것마저 멀게 느껴져서, 그저 잠들고만 싶었다.
>>492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S급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다라는 느낌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정상적으로 랭크가 오른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곧 익숙해질테니..곧 과부하는 없어집니다. 없어질 거예요... 8ㅁ8 물론 이건 전의 스토리에서 모두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고 캐릭터 개별에 대한 설정은 또 다르니까요.
"그냥 놓아주고..심연은.. 있으란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내 딸아. 사이렉스의 모습을 빌린(그의 말로는 그냥 나올 수 없다고 하였던가요.) 심연은, 부드럽게 정말 딸인 양 대하면서도 저를 공간의 벽에 내팽개쳤습니다.
"커흑.." 제멋대로 내팽개쳐져서 완전 엉망이긴 하지만 이건 무의식일 뿐입니다. 실제로의 신체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그러나 영향이 아예 없을 수 없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그래도 이건 좀..." 나뒹구는 살점이라던가. 바닥을 곱게 물들인 색이라던가. 금방이리도 부서질 듯(실제로도 몇 번 박살났었다)금갈대로 금 간 몸이라던가. 무의식만 아니었으면 r-19먹어도 할말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잘 안보이는 쪽 눈이 몇십 번 정도 분리되었던가요. 이젠 거의 안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감각조차 둔해지는 것을.. 튕겨봤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난 이렇게나 열심인 걸까요. 란 자조적인 웃음을 내뱉었습니다.
바닷가와 그 심해의 심연에 접속하기 위해 몇 번이고 갔지만 접근하기도 전에 시스템 메세지가 가득 뜨고, 겨우 접속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처참하게 돌아오다니. 정말 포기해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기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자신은 사라질 존재. 아무런 의미 없잖아요. 라고 중얼거렸지만..
알고 있잖아요.
-주인님. 우리의 주인님. 모든 원인과 모든 이유와 모든 결과가 합당하실 근원적인 주인님.. 어찌하여 소일거리와 함께 기다리시는 것이나이까. -대저 근 50년 이상을 기다렸던 것을 겨우 몇 주일 더 기다린다 하여도 무어가 바뀌겠느냐?
튕겨나온 몸이 침대에 안착하면 웅크리고 핏기가 삭 빠져나간 듯 차갑고 창백한 몸을 추스렸답니다. 몇 번을 했나요? 몇 번이 남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