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쁜 천둥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하늘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새카맣고 불쾌했다. 유혜는 긴장한 듯 두 눈을 살며시 감는다.
차에서 내려 조금 걷자, 제 앞으로 떨어진 낙뢰에 유혜가 두 눈을 깜빡였다. 분명, 일부러 빗맞춘 공격이었다. 이야, 여유도 있어 아주. 유혜가 두 눈을 흐려 새카맣게 타버린 바닥을 노려본다. 이내, 건물의 문이 열리고 아까 전 그 불쾌한 통화내용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기절한 듯 축 늘어진 여자아이를 안고. 기절한 아이가 제 눈에 들아오자 빠득, 이를 가는 유혜였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를 가지고 협박질인가? 후우. 아무리 진정하려 숨을 내쉬어도 모든 피가 위로 몰려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 미친놈... “
저 아이를 구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머릿 속이 꽉 찬 가운데, 정말로 거북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전해진다.
“ ...아, 너가 성아를 죽인 놈이었어? 아, 하하. 정말..., “
저 놈이었구나. 순간적으로 알트를 향한 시선이 다시 저 고슴도치에게로 돌아간다. 알트씨의 아내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를 죽인 놈이. 다른 이들의 행복을 처참히 깨트린 놈이. 저놈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유혜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린 여자아이. 불현듯, 내 과거의 어떤 사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지현, 정신차려. 저건 그 놈이 아냐.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S랭크로 올라오고나서 터득한 능력의 새로운 사용방식을 써보자. 주변을 스캐닝하듯... 최대한 많이 유용한 정보를 찾아낸다.
맑은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이윽고 목표 지점에 가까워지자 거대한 검은 먹구름이 주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분나쁘기 짝이 없는 구름임과 동시에 자신의 가족들이 죽었을때도 이렇게 썩 맑은 날씨는 아니었다는 것에서 그는 아픈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인상을 찡그렸다.
차에서 내렸다.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다. 자칫했으면 크세 다쳤을지도 모르지만,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행동했다고는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자 골목길, 인상깊은 빨간색의 머리카락을 한 채 한 손에는 어린아이를 질질 끌고오고있는 더러운 인상의 님성이 눈에 들어왔다.
틀림없어요, 그가 최태훈이에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화풀이일 뿐인 나쁜말을 집어삼키고 알트는 그를 노려보았다.
- 너의 더러운 피를 이은 딸래미가.
- 나를 죽이고 싶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눈동자를 굴려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와 관계없었다. 지금 당장 눈 앞의 남성을 죽일수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세 발짝 앞으로 나섰다.
"하나 묻고 싶은게 있다. 어째서 아니, 대체 왜 사람을... 죽인거야?"
바보같은 물음이라고 한다면 바보같은 물음이었다. 침착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음을 내던지며 그는 조용히 꽉 쥐고있던 주먹을 펼쳐 손가락 하나하나에 희미한 입자를 담았다. 그런 최태훈을 바라보는 알트의 눈빛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위험해보였다.
추악해. 여유로웠다가도 진심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으득 이를 갈았다. 인질극이라니. 그 특성상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최태현을 살피면서 손 안의 테이저건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어디 한 눈을 팔지 않나. 아이를 보호하는 순간, 바로 날려버린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뒤늦게 절은 복을 챙겨 입었다. 되게 불안한 느낌. 이런 기분 아쿠아리움 이후론 처음인데. 오늘 누가 크게 다칠 것 같단 생각이 치밀자 불안해진다. 제 모자챙을 매만지며 꾹 입을 다물고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다. 재건축 지역. 뒤 자석에 놓아둔 구급상자를 챙겨든다. 쓸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분명 쓰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차에서 내리려다 멈짓 한다. 통신으로 들려온 말에 휙 고갤 들어 창밖을 살핀다. 전화를 걸어온 범인. 그 범인의 손에 붙잡힌 누군가. 무어라 말하는 게 잘 들리진 않지만. 섣불리 움직이단 큰일 날 거 같아서. 차에 탄 그대로 테이저건을 꺼내 들곤, 언제든 뛰쳐 나갈 수 있게 자셀 잡곤 잠시 상황을 살폈다.
"원하는 거? R.R.F였나? 거기서 너희들을 좀 짓밟아달라고 말해서 말이야. 사실 관심없었는데 말이지. 알트가 있어서 말이야. 하하하. 그래서, 승낙했지. 어차피 경찰들을 짓밟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이미 한번 날려버린 적이 있거든. 경찰은 고작 그런 개미같은 존재야. 나에겐 말이야! 하하하하! 그때 전멸시킨 경찰들의 비명소리. 아주 찌릿찌릿하단 말이야. 아무튼 너희들도 매한가지지. 하지만, 일단 나는 알트만 죽여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리고 피카츄라. 기왕이면 라이츄라고 해주실까? 피카츄의 전기와 비교하면 곤란해. 그리고 그쪽의 경찰 아가씨. 협상할 처지야? 내가 죽어? ...해보던지. 지금 여기서 이 아이를 태워죽인 다음에 내가 죽나 안 죽나 한번 해볼까? 응? 그쪽을 인질로 할 마음은 없어. 내가 이 꼬맹이를 풀어줄 이유도 없고 말이야. 함부로 입 놀리지 마. 그리고 성아라... 아아. 죽였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게 성아를 위한 길이었거든! 하하하! 그리고 악취미라도 상관없어."
참으로 여유있게 모두의 말에 대답하면서 태훈은 이어 알트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왜 사람을 죽였냐고 묻는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아이를 잡고 있는 손에 스파크를 튀겼다. 그러자 아이는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철처럼 그의 손으로 끌려가고 달라붙었다. 그것은 마치 전자석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아이가 목에 차고 있는 금속 펜던트가 문제인것일까? 아무튼 그 상태로 아이를 자신에게 밀착시킨 후에, 그는 알트의 말에 답했다.
"그게 아니지. 알트. 네가 알고 싶은 것은 왜 성아와 너의 그 더러운 피를 이은 딸내미를 죽였냐. 이거잖아? 안 그래? 모든 게 네 탓이야. 네 탓. 내가 성아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성아는 내가 아니라 널 선택했어. 그때부터야. 그때부터. 나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던 것은.. 내가 돈이 부족했나..?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 은행을 털었고 그 이후로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살아왔지.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노력을 해도, 성아는 결국 나를 선택하지 않았어. 너를 배신할 수 없다고 하더군. 그럼 나는? 나는 배신당해도 좋은 거야? 나의 사랑은 선택받지 못하고 배신받아도 좋은거냐? 그러니까 죽였지. 내 것이 되지 못한다면, 그 누구의 아내로 살게 둘 수 없으니까. 내가 얻지 못한 것을 네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거냐? 네 딸내미는 말할 필요도 없잖아? 너의 더러운 피를 이은 딸내미. ...당연히 죽여야지. 그 딸내미만 없었어도 성아는 널 버리고 나에게 올 수도 있었어! ...그리고 이제 남은 건 너 뿐이야. 너만 없어지면..이제 성아를 기억하는 남자는 나 뿐이야. 하하하. 그래. 죽은 그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나 하나 뿐이야. ...그러니까 넌 죽어 없어져야해. 하지만..알트. 너의 그 위험한 눈빛을 보면 말이지. 지금 뭔가를 노리는 것 같거든."
이어 그는 팔을 올렸고 자신의 손에 붙어있는 그 여자아이를 방패로 삼듯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자. 기회를 주지. 움직이지 않도록 하지. 날 명중시켜서 죽여봐. 하지만...이 아이도 살진 못하겠지. ...어차피 너와는 상관없잖아? 자. 쏘라고. 쏴. 너의 능력도 알고 있어. 하하하. 결국 너도 나와 똑같은 족속인거다. 목적을 위해서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너 역시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결국 너는 나를 원망할 자격이 없다 이거지. 너는 성아를 죽이고 너의 딸을 죽인 나와 동급이다. 저주하던 나와 같은 이가 되어서, 너 역시 성아에게 거절당하는 거야. 하하하하하!"
한편 지현은 주변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옆, 6층 건물의 옥상 부근에 피뢰침이 달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근방에 있는 파이프, 태훈의 바로 옆쪽에 있는 파이프가 그 건물 6층의 옥상에 고정되어있듯이 연결되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만약 옥상에서 고정이 되어있는 나사못들을 제거한다면 그 파이프는 추락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은 중간에 파이프에 힘을 줘서 끊어낸다고 해도 중력의 힘으로 건물을 타고 내려오는 그 길고 긴 파이프는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