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씨에 저런 가벼운 차림이라니 뭘까, 싶다. 굉장히 추워 보이는 모습이야. ...그래도 본인이 저렇게 입고 다니는데 뭐 상관없지 않을까 싶지만... ...근데 여기 어디였지? 근처에 술집... 어... 나 언제 여기까지 왔지? 일단 주변에 사람이... 아, 저 여성분이 보이네. 응. 물어볼까.
"...저기. 죄송하지만 길 좀 물어도 될까요? 길을 잃어서..."
시이는 이내 그렇게 서있던 에이미에게 다가간다. 그러곤 이내 절박한 눈으로 가만히 에이미에게 묻는다. 물론 시이라고 해도 꽤나 추운 옷차림이었기에 이대로 길을 못 찾으면 얼어죽을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더욱 절박했다.
싫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의문이 들었을 뿐. 요즘 자꾸만 내게 의문을 남기는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성격 때문인지 가문의 뱀파이어들, 시녀들 할 것 없이 저택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나를 어려워했다. 집사만 제외하고는. 특히 시녀들 같은 경우엔 내가 곁을 지나가기만 해도 눈치를 살살 보는게 느껴진다. 근데 그녀는 그들과 달라졌다. 아니 그녀 역시 처음엔 그들이 보이는 태도와 비슷했던 것 같다. 뭔가 잘못먹었는지 점차 바뀌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나 요즘은 건방이 정점을 찍은듯 내게 너무 무례하다. 내가 알게 모르게 너무 챙겨준 탓에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는게, 그녀가 건방을 떠는 모습이 싫지만은 않아서 딱히 혼을 내지도 못하겠다. 여튼 한 가지 확실한건 그녀는 요즘 날 너무 혼란스럽게 만든다. 물론 그 덕분에 허무감을 느끼는 빈도가 줄긴 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조금 고맙기도 하다. 갑자기 그녀가 시선을 돌리려하자 그러지 말라는듯 고개를 내저으며 보라색 눈동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네 취향."
내가 궁금한 것? 그녀의 말에 고민없이 가볍게 대답했다. 이왕이면 그녀가 좋아해주는걸 선물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아 예전부터 물어보려고 했었던 것인데, 타이밍이 좋았다. 날 보필하고있는 그녀야 내 취향이나, 나에대한 것들을 자세히 알고있겠지만, 난 그녀에 대한 자세한것 하나하나까진 알지 못한다.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이런 모습을 가깝게 지내는 뱀파이어들에게 들킨다면 일개 시종에게 너무 관심주는 것 아니냐고 날 비꼴테지만 지금 그딴건 중요한게 아니다. 그녀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쉬는 시간에 무얼 하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알아보고 싶었다. 급하게 마음먹을 필요없다. 일단 그녀로부터 취향에 대한 대답을 들은 뒤, 천천히 자연스럽게 모두 물어보면 될 일이다.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하니까."
깜짝놀란듯 날 보는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대답했다. 솔직히 저렇게 유능한 시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엔 아깝다. 그녀가 저택생활을 그만두게 된다면 앞으로 날 보필할 사람이 없어진다. 사실 시녀들이야 넘쳐났지만 이제 그녀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겠다. 작은 목소리로 긍정의 대답이 들려오자 천천히 고개를 까딱이고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덧씌웠다. 내가 바라던 대답을 들려줘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녀가 거절할지라도,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짐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야. 하루종일 고생해야 되니까 원하는 것 하나쯤은 사줄 수 있어. 가장 가지고 싶은걸 말해봐."
상점가 근처에 다다르자 주위를 스윽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시간인데도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시끄러운 잡음에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향해 힐끔 곁눈질 했다.
당돌한 답변이었다. 도련님이 싫었다면 난 진작에 짤리고도 남았지만 자신을 보아라. 아주 오랜 세월간 그의 옆을 지키고 있지 않는가. 제 동료들은 그를 무서워했지만 위트니는 그렇지 않았다. 조금 까다로운 것 빼고는 좋은 주인이었다. 그리고 위트니는 그런 주인이 싫지 않았다. 좋다. 위트니는 엘라리스가 좋았다. 짜증내는 엘라리스, 상냥하게 손을 내미는 엘라리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내 눈을 뚫어져라 보고있는 엘라리스도. 모두 좋았다. 위트니는 전해지지 않을 마음을 담아 그와 마찬가지로 그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름다운 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련님의 눈 색이라 아름다운걸지도. 누가들으면 낯부끄러워할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해버린 위트니였지만 그녀는 부끄럽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고 이런 생각은 수도 없이 해왔으니.
"제 취향이요?"
그가 날 궁금해한다. 위트니는 발끝에서부터 저릿하게 차오르는 만족감에 눈꼬리를 곱게 접었다. 설마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귀엽고 아기자기한 거요! 귀여운 동물이라던가 복슬복슬하다거나."
조그맣게 붉은색도요. 라고 덧붙였다. 그가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들어 더더욱 자제가 안된다. 그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욕심이 이성의 고삐를 자꾸 벗어나려 한다. 특히 도련님이 지금과 같은 말을 할때는 더더욱.
"저도요."
나또한 그의 옆에 있고 싶다. 어쩌면 100년, 어쩌면 1000년, 어쩌면 평생. 욕심이 점점 커진다. 평소라면 머리에서 어서 멈추라고 명령을 내리겠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진다. 위트니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도 못하고 헤실헤실 웃는것이 스스로 원망스러워졌다. 조금만 더, 하는 마음에 그의 손을 조금더 강하게 잡았다. 미묘한 차이다.
"저 열심히 들게요!"
위트니가 의지로 가득차서는 외쳤다.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상점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감탄을 하는 것이 순진한 시골 아가씨같은 모습이다. 그녀의 시선이 악세사리샵에 머무르더니 다시 엘라리스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