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닉 말에 알겠다는 듯 아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나는 크게 하품을 한 번하고는 테이블에 그대로 엎어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졸린 듯 해보였다. 아니면 단순히 취기가 심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풍성한 머리카락에 얼굴이 모두 가려 해변에 떠밀려온 해조류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리나는 총이 먼저 나간 후에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성격 때문에 실제로 징계를 많이 먹었고 심지어 지금도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다.
“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고 날 존경한다면 고마워.”
갑작스러운 레오닉의 칭찬에 벌떡 일어난 아리나-머리카락이 장관이었다―가 입 꼬리를 올려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어쩜 저리 다양한 미소를 짓는 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감자 진짜로 좋아하지- 어렸을 때는 싫어했는데 커보니까 계속 먹고 싶더라고!”
눈을 반짝이며 몸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던 아리나가 기대어린 표정을 지었다. 분명 곧 나올 찐 감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을 식히려는 듯 손을 들어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괜찮다! 나 건강하다고 말했지 않나!”
아까보다 사투리가 심해졌다. 아리나도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가 다시 표준어를 못 쓰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입을 빠르게 닫았다. 세상에 내가 어떻게 표준어를 써온 거지.
“니가 먼저 취하면 내가 잘 데려다 줄게, 걱정 마.”
대체 어떻게 잘 데려다 준다는 소리며, 저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나는 제법 당당해 보였다.
“이야, 니 머리색깔 이쁘다.”
더 이상 아리나의 본능을 컨트롤 해줄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의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바로 내뱉을 수밖에 없다.
원한다면 성을 문서 상에서 지워버릴까? 하고 말했다면 분명히 반대하겠지. 한참 전에 일거리를 몰아 주는 것 정도로도 뭐라고 그랬으니까. 아나이스는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시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확답을 원한다면, 그래."
당연하다는 듯, 망설임 없는 답변이였다.
"좋아하는 데 하지 말라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뜻으로 말 한 것인지는 알겠지만. 아나이스는 히죽 미소지으며 약올리듯이 시이의 손을 피해 움직이려 한다. 정말로 직접 먹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부끄러워하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기에 망설임없이. 그래도 이건 비밀로 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였다.
".....어라."
순식간에 입에 과자가 물리고, 또 그것을 반쯤 코 앞에서 베어물어간 시이의 담대한 행동 덕에 아나이스는 이럴 거라곤 몰랐다는 듯이 조금 멍해 보였다. 반 뿐이 안 남은 과자를 먹고 있기는 했지만. 아나이스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물들어 감정을 드러내는 시이의 얼굴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있지, 시이. 그렇게 훅 다가오면.."
짧게 한숨을 쉬다가 잠시 침묵한 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곤 시이의 볼을 꼬집으려 든다.
엘라리스가 깊은 한숨을 쉬자 흠칫 몸을 떤 위트니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분명 도련님이라면 속으로 잔뜩 자신을 욕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도련님에 오히려 웃음이 나와 순간 입 밖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면 또 화내실 텐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복도 너머로 위트니의 작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분명 엘라리스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엘라리스가 언짢은 듯 그의 얼굴을 쓸어내리자 위트니는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계속 웃었다가는 경을 칠 것이었다.
“하지만 진담이었는걸요.”
자신이 한 말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이제는 목뒤를 비비듯이 긁었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 밝은 미소가 걸려있는 상태로 분주히 알레리스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옛날까지만 해도 이렇게 짜증내는 도련님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도리어 친숙하기만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 자신에게 선물도 자주 주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안 그래도 미남인데, 저렇게 잘해주면 위트니로서는 행복하면서도 곤란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진행된다면 위트니는 제 마음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갑자기 위트니 앞에서 엘라리스가 멈쳤다. 위트니는 무슨 일인가 해서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가 자신에게 미소를 짓고 손을 내미는 것 아닌가. 위트니는 다시 붉어져오는 얼굴을 느끼며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도련님.”
나 이러다가 정말... 위트니는 행복하면서도 무서웠다. 이 감정이 어느 감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만, 그녀는 무서웠다.
연극적 톤으로 농인지 진인지 모를 말로 되물어오는 그녀. 그 말에 심장이 잠깐이었지만 두근거렸다. 그런 답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그리고, 꽤 나쁜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도 있었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면 그녀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것은 달콤한 것 이었기에.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너는 홀로 잠을 청하는걸 즐기지 않았나."
그러나 레이첼은 바로 승낙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그저 농담같아 보이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알기에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같은 자리에서 잠들지 못한다. 자신의 집에는 침대가 하나 뿐이었다. 거기에, 그 마저도 좁다. 모든것이 나홀로하는 생활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방이었기에 그녀가 다소 불편하게 느낄수도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리고 그때, 손 끝에서 상냥한 작은 통각이 느껴진다. 어느새인가 사람의 피를 취하는 완전한 뱀파이어의 얼굴을 하고서 제 몸을 쓰다듬는 비비안이 있었다. 레이첼은, 당황하지 않았다.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고 노을빛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그녀는 뱀파이어의 입술을 훔쳤다. 아주 갑작스럽게. 긴장하지 않았다면 정도로.
"얕보다간 당한다."
그 끝에 서서히 멀어지는 레이첼이 말했고, 여전히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 눈동자에선 푸른 불꽃이 이는것 같았다.
[ 부름에 응해줘서 고맙네 알폰스 심문관 다름이 아니라- ] [ 피해자들의 사인은 전부 과다출혈, 목에 흡혈의 흔적이 있는 시체도 다수- ]
[ 최근 일어나는 사건의 수사를 부탁하고 싶어서 말이야. ] [ 환상종의 짓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시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느끼며, 잭 더 리퍼 사건이라고 - ]
[ 흐음- 그건 제 전문입니다. ]
교단의 보유하고 있는 이단심문관이자 프레드릭가의 당주, 알폰스 R 프레드릭은 내지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의 조사를 담당하게 된다. 환상종의 짓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조사하던 와중 알폰스 R 프레드릭은 자신의 과거에 연관되어 있는 그 환상종 역시 사건에 연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분투하며 포위망을 좁혀나가는 알폰스. 그리고 결국 월야의 나라를 비추는 달 빛 아래에서 알폰스는 과거의 잔상과 대면한다.
[ 여어- 도련님. 많이 컸구나? 실력은 늘었어? 이단심문관 힘들지 않아? 어라? 그 가면 써주는거야? 기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