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내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건 쓰다듬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거든."
그런데 왜 지금 입꼬리를 올려서 웃고 있는 건데. 경계심이 한층 더 짙어짐과 동시에 단번에 눈을 날카롭게 치뜬다.
"개인적인 바람만 따지자면 100퍼센트."
정답이려나. 이젠 확실히 덤벼들 듯이 보이는 에일린을 피해 도망치려고 뒤로 몇 발짝 더 물러서려 한다. 등을 돌려 달아나는 행동은 지금은 일단 자제하는 편이 좋겠지.
아나이스는 대비하려는 듯이 등에 메고 있던 활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보다 더 빠르게 에일린이 덮쳐들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경계심을 올리면 뭐하나, 애초에 그냥 신체능력으로 맞붙자면 아나이스가 불리함은 당연했다. 결국 멀리 가기는 커녕 바닥에 성대하게 뒤로 엎어졌다. 하필이면 붙잡으려던 활은 충격에 의해 저 멀리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날라가버린 지 오래였다. 부딪힌 곳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진통에 절로 곡소리가 튀어나왔지만 그것 보다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였다.
"끄응. 저쪽으로 좀 떨어지지..?"
최대한 손에 힘을 줘 그를 밀쳐버리려 애쓰며, 자유로운 발을 이용해 냅다 발길질을 날리려 든다.
'프레드릭 가의 재산을 탕진할려는 것 인가. 저 인형 조금 교육했다고 사실 불만을 품은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아리아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던 그는 '뭐 상관 없으려나'라는 생각을 품으며 식전주를 들이켰다.
"맛있게 드세요 하이드 씨. 정말 저희 도련님은 항상 입맛이 특이하셔서 요리하는데 참 고민이 많아요. '맛있는 카프레제'를 만들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카프레제 니까! 라고 말하시는데. 있잖아요? 카프레제는 모짜렐라 치즈 위에 토마토 얹어둔거라구요? 그게 전부라구요? 그런데 맛있는 카프레제는 뭔가요? 거의 손이 안드는 요리인데?? 정말 저희 도련님은 알고보면 참 좋은 사람인데, 가끔은 환상종에 너무 큰 집착을 안하고 타인에게 친절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복수가 큰 상처가 되었지만.. 산 사람은 자기 인생을 사는게 좋지 않을까요? 도련님의 자기파괴적 행보를 보노라면 저는 너무 슬픈데.."
알폰스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뭐야? 조금 잘해줬다고 기어오르는 건가?! 건방진 인형... 뭐라고 한 마디 쏘아붙여주고는 싶지만 또 뭐라하면 예전 처럼 기죽는게 아닐까?..' '그보다 취한거야? 취한거겠지.. 지금 캐붕이라고 아리아..'
스스로 이상하단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던 알폰스는 우선 자신의 앞에 있는 샐러드를 바라봤다.
"어이- 이건 뭐지." "그건 브로컬리 샐러드에요 도련님" "... 난 브로컬리 싫어한다. 치워." "...그런거였죠... 죄송해요- 저 그것도 모르고. 생각해보니 괜히 들떳네요..."
“농담이 아니였나요? 괜찮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우리의 집단은 그렇게 좋은 곳이였던가요, 그것은 정의(正義)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定義)하냐에 따라 다르겠죠.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뭔가 미묘한데ㅡ 우리는 이대로 아무 목적도 없이 무의미하게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비야냥대는 말꼬리를 늘려잡아가는 것 뿐일까. 나는 그의 비웃음이 담긴 언행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한다, 솔직히 저란 도발에 넘어갈 생각도 없고 말이다.
“역시자지. 당신이 죽어가길 마저 바라지 환상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들도 전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는 법이죠. 늑대는‘삶’위해서 토끼를 잡아먹고 토끼는‘삶’위해서 그 늑대로 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필요에 따른 행위일 뿐. 양쪽이 서로를 처음부터 증오하기 그런 것은 아니죠?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희로애락(喜怒哀樂)를 거치는 우리와 다를게 없는 꽤 지성적인 존재이니까요 그렇기에 색다른 철학적 관점을 유발하죠. 하다못해 우리가 먹기 위해 도살하는 짐승들도 그렇고."
이어지는 그의 거침없는 말로 부터 그의 일체의 양보조차 가늠하지 않는 극단적인 사상이 뿜어져는 듯 했고 나는 그렇게 느꼈다. 피를 피로서 갚는다면 그것은 돌고 돌아 영원한 연쇄적인 ‘증오’를 낳는다. 가는 것이 고와야 오는 것도 곱다. 이란 말이 있다지만…. ‘생태계’라는 거대한 틀에 해당되는 인간과 환상종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본다면 그것은 그다지 기대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며 짐승들과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성’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서로 자신들의 '삶'을 위해 서로보다 더 많이 갖길 원하기 때문이기에. 단순히 짐승들 처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한껏 본능에 취해 움지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후훗, 좋아요. 당신은 정말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줄 알았어요.”
잠시후에 자신의 말을 얼바무리듯 그렇게 말한다. 솔직히 그거 스스로라도 무리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뭐ㅡ. '이성'적이라는 말이 마냥 헛소리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끄때 나는 알았다. 아니, 오히려 이성적이기에 그럴수 있었겠지. 그에 말에 한번 작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나는 그저 웃었다. 할말이 없어서 웃는게 아니라 정말로 먹기 전에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폭소할까봐 간신히 실룩거리는 입술을 다잡아서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알폰스에 대한 하소연 - 내 귀에는 험담- 을 내뱉는 아리아의 모습에 포크를 쥐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후 진정해 헨리 하이드. 나는 알폰스 R 프레드릭의 카프러제인저 카프레제에 대한 평가와 편식 취향을 듣지 못했어. 묘하게 내가 오고나서 질투하는 것 같은 뺀질한 도련님도 못봤고 이때다싶어 편식을 고치려고하는 아리아도 못봤어.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 있는 것들 중 절반은 못먹는 음식이다. 물론 아주 잠깐, 산사람은 자기 인생을 사는게 좋다는 아리아의 말에 포크를 쥐어서 자신도 모르게 구부러트리고 나서야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다시 폈다. 후, 큰일날 뻔했네. 그런데 이 많은 양이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카프러제인지 파프레제인지 모를 것을 먼저 아주 조그맣게 뜬다.
그 뒤에 잊어버린 척을 하자, 조금 입가를 찡그리며 아나이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모든 말을 다 제대로 들어 되새기곤 뭘 해야 할 지를 생각한다. 그러곤 이내 앉자며 가리킨 쇼파 쪽을 보다가, 아나이스의 뺨에 쪽 하고 짧게 입맞춘 뒤 도망치듯 쇼파에 가 앉는다. 그러곤 이내 아나이스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내가 너무 어린애가 되는 것 같아서 싫어요. ...이젠 나 19살이잖아요. 봐봐, 나 벌써 거의 어른...? 에 근접한 수준인걸요! 예-에전에 봤던 12살 13살 꼬마랑은 다르죠? 그때는 키도 작았고, 머리도 짧은 단발이었고... 그랬었는데."
그러곤 이내 고민하다가 이내 조금 시선을 내리깔며 아나이스에게 묻는다. 눈 마주치면서 묻기엔 애매한 질문이야.
"...아나이스. 아나이스는 어릴 적 나랑 지금 나랑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의 내가 더 좋은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몇살 때 내가 제일 좋은 이미지였냐를 묻는 거에요."
시이는 그리 묻더니, 이내 아나이스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질문을 할 때 자체에는 뭔가 그런 느낌이었지만, 일단 질문하고 나니까 뭔가 마음이 편해지네.
알폰스는 무덤을 힐끗 바라봤다. 이곳저곳에 금이가있는 연식있어보이는 묘비는 마치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할려는 듯 보였지만.. 알폰스는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하였다. 어차피 이제와서 돌아가기도 늦은 것 같으니까. 거기다 환상종에 대한 증오가 없으면 알폰스 R 프레드릭은 뭐가 남는걸까.
"어린 군인양? 당신은 꽤나 환상종에 대해 자비로운 입장이로군요. 대단하다고 해야할까요 관대하다고 해야할까요? 뭐 어디에 소속되든 제가 취할 입장은 하나 뿐 입니다. 저는 환상종이 싫습니다. 너무나도 싫습니다. 그래서 간혹 '환상종도 생명체에요'라고 주장하는 이단심문관을 보면 무심코 주먹을 쥐게 됩니다. 그리고 확인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들 역시 환상종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저를 붙잡거든요. 어린 군인양-"
오늘따라 저택에 박혀있기 너무나도 따분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지겹고, 가문원들과 카드게임을 하는건 진작에 질려버렸다. 어떻게 시간을 죽여야 지루하지 않을까. 소파에 드리누운채 멍 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무얼 해야할까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저택에 틀어박혀 있는건 진저리가 난다. 그렇다고 외출하고 싶은 기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의미없이 소파에 누워있는 것 보단 선선한 바람이라도 쐐고 오는게 나아보였다. 잠깐 근처를 산책하고 돌아와 식사를 한 뒤, 잠을 자야겠다. 저택을 나서기 직전, 근처에 있던 메이드 위트니에게 8시에 맞춰 들어오겠노라, 이야기를 전하고 천천히 저택을 빠져나왔다. 막상 바람을 쐐라 밖에 나오긴 했지만 적당한 목적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걸음 닿는대로 걷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라는 생각에 두서없이 걸음걸이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위트니가 이 저택에서 일한지 얼마나 되었지. 꽤나 빛바랜 기억이지만 그 날 있었던 일은 아직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무슨 소문을 듣고 찾아온건지 모르겠지만 날 보자마자 대뜸 저택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말을 들었을땐 정말 기가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고용된 메이드의 숫자는 충분했기에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시험삼아 시켜본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모습이 꽤나 유능해보였고, 반반한 얼굴도 마음에 들어 그냥 고용해버린 것 같다.
"슬슬 돌아가야겠다."
함께 가지고 나온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8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걸 확인하곤 작게 혀를차며 저택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고작 메이드 따위랑 약속한 시간을 지켜야할 의무는 없지만. 슬슬 산책도 지겨워지는 참이고, 배고 고프고 하니 특별히 약속 시간에 맞춰주자. 요즘 자주 산책을 했더니 걸음걸이가 빨라진 것일까? 조금 늦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에 맞춰 저택 대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천히 열리는 대문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가니, 내 명령에따라 정원사가 심어둔 장미밭이 눈에 띄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장미를 하나 꺾어 손에 쥔채 정문으로 다가가자 날 기다리고 있는 메이드의 모습이 보인다.
"선물."
방금 꺾어왔던 장미를 그녀의 발 밑에 툭 던져주었다. 그리곤 걸치고 있던 흰색 망토를 벗어 천천히 그녀에게 건네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8시가 조금 넘어있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738 아리나랑 위트니는... 호오 그렇군요! 위트니는 웬만한 건 다 좋은 것 같네요. 싫어도 취향이니까 주문받으면 해준다는 그 모습 멋져요! 그리고 아리나는... 음, 뭔가 싫어하는 게 더 많은 느낌이에요. 어린애 입맛이라는 느낌일까요. 어린애들은 가리는 게 많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