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는 그저 조용히 턱을 괴고 있을 뿐 이였다. 헨리의 말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건 아니다. 그저, 아리아가 장을 보러 나가서 해석해줄 사람이 없다는게 문제일 것 이다. 그러나 알폰스는 마치 헨리의 수화를 알아들은 듯, 또 무척 고민하고 있는 듯 턱을 괴고 가만히 헨리를 보고 있기로 했다.
" - "
말은 아끼기로 했다. 괜히 이상한 대답을 하거나 질문을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질게 분명하니. 저 멀리 다시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리아가 빨리 오긴 빨리 오려나 보다.
알폰스는 지금 그 어떤 상황보다 격하게 아리아의 귀환을 바라고 있었다.
"아리아가 오는 모양이로군요. 가사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니 저녁식사를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붉은 양털."
점점 묘하게 줄어드는 헨리를 향한 칭호를 꺼내며, 알폰스는 잠깐 나가더니 술병과 잔 두개를 들고왔다.
"아페리티프 입니다. 식사전에 드는 술이니까 아리아가 식사 준비를 끝내기 전까진 이걸 마시면서 기다리도록 하죠."
늑대의 눈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손으로 향한다. 신중하게 살피는 듯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깃든 눈빛을 한 늑대의 귀가 살짝 내려갔다가 체념이라도 한 듯이 다시 쫑긋. 하고 올라간다.
"...그렇습니까..?"
나름 노력한 결과.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하겠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 상대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어지간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을 테니.
"........"
등 뒤로 숨어버리는 팔. 눈빛을 바꾸지 않으며 그것을 빤히 쳐다보던 늑대의 눈이, 아나이스의 눈으로 향한다. 반 발짝 물러나고, 질린 듯한 표정과 함께 한번 더 뒤로 물러나는 발걸음. 늑대는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꼬리를 두어번 살랑이며 귀를 쫑긋이고는 입꼬리를 올린다.
"그대. 이단심문관이여, 제가 문제 하나를 내죠. 지금 이 거리에서 제가 당신을 덮친다면-"
[그대가 도망칠 수 있을 확률은 어느정도일까요.]
물러서라는 듯한 손짓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늑대는 이빨을 드러내며 캬르릉거렸고, 상대를 바라보는 눈길은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변해 푸른 안광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웃었다.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정말 재미있는 연극 배우가 실수한 장면을 혼자서 발견했을 때 나올법한 그런 웃음이 알폰스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후자가 농담이라, 애석하군요. 이 힘든 시대에 저희 이단심문관 보다 정의에 가까운 조직이 어디있단 말입니까?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하는 환상종, 그리고 그 환상종을 공격하며 시민을 지키는 이단심문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구도라면 당연하게도 이단심문관을 영웅이라고 사람들은 칭송하죠."
시민들에게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자들.. 그렇다면 그 스스로도 영웅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 아무래도 그건 좀 무리인 것 같다.
"단단하다? 탄성? 저런. 아직 이름을 모르는 이단심문관님. 잘 모르시는 모양이니까 한마디 드리자면. 좋은 환상종은 오직 죽은 환상종 뿐입니다. 그 외의 다른 환상종은 생사의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는 족속들이죠. 무고한 시민들을 사냥하는 그들에 의해 오늘도 저희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노라면 저는 이단심문관 된 자로 서, 시민을 사랑하는 귀족으로서 그들을 향해 칼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린 군인양? 오직 - 강철과 피 만이 환상종 멸종이라는 과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드러움? 유연함? 그건 강철에도 피에도 어울리지 않군요."
흡사 광신도와 같은 그의 주장. 가면에 언뜻 비춰보이는 자색의 눈동자가 광기를 머금어 조금 붉게 비춰진다.
"-.... 농담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헨리 때나 주교와의 면담을 통해 이런 자신의 이론에 동조하는 자가 극히 일부분 (사실 없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농담이라며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앞으로 붉은 양털 헨리라고 불러드리겠습니다. 설마 자기 이름을 귀히 여길줄은.. 붉은 양털은 마음에 드는 모양이로군요."
알폰스는 식전주를 자기잔에만 따르며 거절하는 헨리를 향해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식전주는 식욕을 증진시키고 입맛을 좋게한답니다. 아마도 아리아가 식사준비를 끝낼 때 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 (준비 끝났어요!) 어?"
그러나 알폰스의 생각과 반대로 아리아는 엄청난 속도로 식사준비를 끝내버렸다. 오늘따라 텐션이 높은 어색한 아리아의 모습에 알폰스는 혀를 차며 식기를 내려두는 아리아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다.
"헨리 씨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 많이 하긴 했지만.. 헨리 씨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아리아 잠깐-" "정말, 다른 시종들이 다 녹초가 될 때 까지 열심히 만들어서.. 다 드셔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따라 당신 너무 들뜬 것 같.."
알폰스의 만류에도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음식의 숫자는 줄지 않는다. 너무나도 많은 음식에 사색이 된 알폰스. 그는 헨리를 노려보며 '다 네 탓이다'라는 눈빛을 보냈다.
위트니는 엘라리스의 저택의 정문 앞에 몸을 기대 엘라리스를 기다렸다. 분명 산책을 하고 올 테니 8시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위트니가 고개를 들어 금색 테로 장식되어 있는 바로크 양식의 시계를 확인했다. 곡선으로 휘어져있는 분침이 정확히 '12'를 가리키기 2분 23초 전이었다. 위트니는 무료함을 숨기지 못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종래에는 복도에 걸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기까지 이르렀다. 찰랑거리며 흘러내리는 백금발이 마음에 들었다.
“아, 벌써 8시네.”
퍼뜩 놀라서 시계를 쳐다보자 그제야 8시가 조금 넘었다. 다시 자리에 돌아가 자세를 잡았다. 어서 도련님이 돌아오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