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사람이라면 휴게실에 볼 일이 있다고 해도 이런 새벽에 올 리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일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 흔한가. 남 일에 관심 없다고 말하면서도 헛소문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떠들던 사람이 있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새벽에 올 정도로 급한 사람이 남의 상황에 신경 쓰나.
"둘 다 내가 질 게 뻔한데, 간단한 걸 선택하는 게 낫지."
확률 낮은 답을 말해놓고 걱정하고 긴장하는 것은 영 성미에 안 맞았다. 어디선가 바늘이 날아오고, 사기노미야가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가 나오는 과정을 모두 지켜 본 채헌이 실소를 머금었다. 저 작은 바늘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날아온 방향을 보면 기숙사 쪽에서 온 것 같았다. 손가락에 난 피를 보여주자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채헌이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만족스러운 얼굴이 조금 재수가 없긴 했다만 자고 일어나면 잊혀질 일이었다.
"벌칙을 안 들었네. 뭘로 할 생각이야?"
질문을 마친 채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옷을 정리한 채헌이 재촉을 하는 듯 사기노미야를 바라봤다. 상상력이 풍부한 편은 아니어서 벌칙의 내용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내기의 내용 정도는 아니어도 적당히 가벼운 내용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왜 드는 시간에 비해 분량이 없는것.... 손이 정말 효율이 없네용 답레랑 같이 갱신합니다!
"글쎄. 난 그럼 우리 불쌍한 유채헌양이 곤란해 하고 있길래 잠깐 도와주는 중이었다고 변명하지뭐.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던게 의외로 도움이 됐나~? 차츰차츰 신뢰가 올라가는 기분이야."
솔직히 작년까지만 해도 스스로 생각해도 답이 없을정도로 미친 사람 같은 성격이었지만 올해 들어선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행동하는 중이었다. 뭐, 이게 연기라는 것 쯤은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런 사소한 것 까지 신경쓸 정도로 여유넘치는 사람은 아니지, 내가. 여튼간에 행동거지를 제대로 하니 학생대표라는 감투도 주어지고, 밑바닥을 기어다니던 교내서의 평판도 점차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기특하다. 빠진다고 말만했지 수업도 제대로 들어가는 중이고, 성적도 잘 받고 있고. 신입생들이 본다면 완전히 속아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흐음~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을텐데. 왜 굳이 내 장단에 맞춰준거야? 사실 유채헌양도 내기를 즐기고 있던거 아냐?"
왼쪽 검지에 맺힌 붉은 피를 살짝 핥아내곤 가볍게 어께를 으쓱였다. 어찌됐든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벌칙은 딱히 생각해두지 않았는데. 어떤 벌을 내려주면 좋을까.
"벌칙은 많지? '내 노예가 되기' 부터 시작해서 '무릎 꿇기' 까지. 아주 다양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처음이기도 하고..~ 옛정을 생각해서 가벼운 벌칙을 내려줄까?"
뭐가 그리 신이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앞에 말한 것들을 시켜봤자 그녀가 순순히 따라줄거란 보장도 없다. 그냥 간단히 놀려먹을 수 있는 가벼운 벌칙을 내리는게 좋을까. 새벽이라 그런가. 마땅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나중을 위해 소원권을 미뤄도 괜찮을 것 같은데. 뒤 돌아서 모른척 할지도 모르니 이왕이면 지금 바로 사용하고 싶다.
"오늘부터 3일동안 내 시종이 되는건 어때? 다른 사람이면 목줄까지 채우려고 했는데... 내가 우리 채헌양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짓 까진 못하겠더라고. 하... 나도 참 최후의 순간에 정에 이끌린다니까. 너무 착한 것 같은데. 그렇지?"
>>322 야호 치찬주 안녕하세요!!!!!! 어....어..... 제가 축알못이라서 다른 방법은 잘 모르겟네요..... 졸리시면 뭔가 잠을 깰만한 걸 해보시는 거 어떨까요?? 일단 서서 방을 3바퀴정도 뛰어다닌ㄴ다거나....(?????
>>324 엫 그런 사연이 잇었습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 저 사실 태형씨도 동급으로 좋아하고 있어요 흑흑 너무 예뻐.... 엫 운동금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 튼튼건강한게 좋기는 한데 너무 날아다니다가 다치면 안되니까... 아 맞아요 지민씨도 아름다우십니다 저 피땀눈물에서 목 돌리는ㄴ부분 보고 헐ㄹ;;;;;;;;;;하고 눈물흘렷음이에요......
확실히 예전에 비해 성격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채헌 역시 그 모습이 연기라고 생각하긴 했어도 본인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해서. 갑자기 태도를 왜 바꾼 건지는 몰라도 최악에 가까운 평판을 끌어올린 건 꽤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싫어하는 편은 아니기도 했고. 진심으로 싫어했다면 처음부터 말조차 붙이지 않고 무시했을 게 뻔했다.
"도박도 가끔 하면 재밌거든."
하는 족족 결과가 안 좋기는 했지만 가끔 그 손해를 넘길 정도로 성공을 할 때가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이 잘 안 왔다. 지기는 했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3일 정도야 상관 없긴 한데, 음. 후자는… 내가 좀 객관적이라."
동의를 구하는 말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다분히 꾸며낸 태도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채헌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어머니는 고소를 당할지언정 어디서 지지는 말라고 했지만 싸우는 것도 아니고, 내기에서 진 정도야 넘길 수 있었다. 목줄까지 갔으면 조금 많이 위험할 뻔하긴 했지만.
그보다 아까 서로에게 착하다라는 말을 쓸 일은 평생 없겠다고 한 거 같은데. 그대로 덧붙일까 입을 열었지만 다시 다물었다. 구태여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잖아?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준 것 뿐이야. 아, 조금 감동하도록 '네게 거짓말을 하고싶진 않으니까.' 같은 멘트를 해줄걸 그랬나?"
하지만 그런 다정한 컨셉은 나와 어울리지 않거든. 재미삼아 저런 말을 입에 담은 것 조차 손발이 오그라들어 견딜 수가 없다. 으- 하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어버렸다. 도박이 재밌는건 사실이지만 오늘처럼 승률이 제로에 가까운 도박은 피하는게 좋을텐데. 유채헌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단순한 인간인 것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터무니 없는 내 벌칙에 경기를 일으키는게 정상일텐데. 의외로 담담한 그녀의 반응에 살짝 진이 빠졌다. 정말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거야? 솔직히 내가 봐도 그건 말이 안 되는데. 내가 다른 누군가와의 내기에서 패배해, 그 사람의 시종이 되는 벌칙에 걸렸다는 상상을 해보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난 죽어도 수행할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승부를 장담하지 못할 내기에 임할리도 없고.
"오늘의 결과는 꽝이었네. 난 내가 이기는 게임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거든."
그래도 3일동안 나름 재밌을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거절하지 않은거 아니야? 가볍게 말을 덧붙이며 주머니에서 초콜릿 2개를 꺼낸 뒤 그녀에게 내밀었다.
"내 노예가 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야. 3일동안 많은 선물을 해 줄 생각인데. 기대해도 좋아~"
목줄은 차마 주지 못하겠고. 강아지가 입는 옷이라도 선물해줄까? 쭈욱 기지개를 켜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스윽 훑어보았다.유채헌과는 서로 시비를 걸고, 걸리는 일만 일어날 줄 알았는데. 주인 노릇도 해보고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아? 시종주제에 너무 건방진걸~ 주인이 착하다고 하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어디서 시종 주제에 객관적인 의견을 내는 거야? 기가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음 일단 치찬이랑 지애는 같은 현무 기숙사네요. 다만... 지애도 치찬이처럼 관심 외적인 분야에는 아예 관심을 끄는 편이라서, 기숙사가 같다고 해서 무조건 친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기숙사에서 마주치더라도 서로 관심이 없으니... 성격이 닮아서 접점이 적다는건 또 무슨 아이러니랍니까;ㅁ; 음 치찬이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나요? 혹시라도 겹치기라도 하면 이게 아주 확 견적이 나올텐데요! 치찬이도 패밀리어랑 애증(?)관계에 있네요.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공통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