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믿을 만한’이란 게 과연 사람을 수식할 수 있는 말일까. 꼭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변한다.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변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변하더라.
“그래도 범인이 그 아저씨였다면 좋겠더라고, 난. 그 아저씨가 아니라면 우리 학교의 누군가가 쐈다는 거잖아?” “’범인은 이 중에 있다!’같은 걸 실사로 찍고 싶지는 않아.”
같은 학교에 있는 학우들과 선생님들을 의심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함께 생활하는 순간순간에도,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거야 당연지사다. 게다가, 집단 히스테리의 힘은 강력하다. 용서불가 저주를 사용한 사람이 학교에 있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면, 오늘 모였던 학생들 중 언행이 튀거나 의심스러운 아이들-가령, 수업 사이사이에 사라지는 시간이 많은 지애 자신이라든지-을 대상으로 말 그대로의 마녀 사냥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하, ‘마녀’ 사냥. …방금 전 아재개그는 무리수였다. 취소.
“물론, 그 아저씨도 아니고 학교 인사도 아닌 외부인의 소행일수도 있겠지만….” 학교의 방어막에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동화학원 부지를 넘나들며, 경험많은 엘리트인 유키 교수님을 제압할 수 있고, 아무도 보지 못한 찰나에 나타났다 다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사라지는, 그런 대마법사가 용서불가 마법을 밥먹듯이 쏘아 대고 있다니, 그게 더 무섭다.
아, “아무도 보지 못한.” 그래, 아바다 카다브라를 쏜 사람이 꼭 지하감옥에서 보였던 사람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있는 곳은 마법학교고, 마법 사회란 투명망토나 폴리쥬스 포션 따위가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게 되면 범위가 무진장 넓어지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화학원의 전교생과 전 교수진, 근처에 살고 있는 여명의 상인들까지 용의자가 된다. 거기에 덤으로 앞서 말한 외부인 대마법사일수도 있고.
아무도 자신더러 범인을 잡으라고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은 잊은 것인지, 지애는 앓는 소리를 내며 관자놀이를 주물러댔다.
-사이카 “임페리우스 저주?” 조종당하는 저주라면 그것 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자유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고기로 만든 꼭두각시인양 사용해 버리는 저주다. 제 삼자의 시선으로 볼 땐 어떨까. 불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자신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대를 상상해 보니, 기분나쁘도록 익숙해서 고개를 젓는다.
“그건 진짜 기분 나쁘다. 끔찍했겠어, 사이카.”
눈앞에서 아바다 케다브라를 봤을 때보다, 임페리오를 전해 듣고선 더 기분이 상하다니, 자신의 우선순위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지하감옥에서의 그 주문 너무나 순간이었고 현실성이 결여되어서, 감각이 둔해진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편한 대로 말해. 어짜피 일년 차인데.”
-현호 역시, 이상해. 라고 기억 저편에 담아두기로 하지만 그 뿐이다. 말했지만, 현호는 애도 아니고, 자신은 후배에게 성격을 바꾸니 마니 요구할 만큼 절친한 관계도 아니었다. 자기 할 일에나 집중하자, 자신은 더 이상 저학년이 아니니까.
다시 말에 치일 확률은…. 왠만하면 없지 않을까. 말이란 게 원래 들이받는 동물도 아니고.
“그래, 마법의 숲에서 유니콘만 괴롭히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없겠네.” 장난스럽게 맞장구친다.
-영. 당연한 반응인 걸까, 머리로는 완벽히 납득한다. 타인의 몸을 빼앗거나 고문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회복할 수 있겠지만, 이미 죽었는데 회복할 수 있는 사람 따위 없다.
“그런가? 난 아바다 케다브라보다는 나머지 두 주문이 무섭던데.” “나 알고 보니 병원 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타입인 거 아냐?”
“영, 그건 너무 끔찍하잖아.”
크루시오까지 쓰면 세트 완성이라는 영이의 농담에 웃지만, 그 웃음이 눈에 까지 닿지는 않는다. 오늘 일어난 일을 종합해보자면, 우리 학교 구석 어딘가에 어느 불쌍한 녀석이 관절을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꺾은 채로 기절해 있을 가능성도, 진짜로 있을 것 같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않이진짜 본격적으로 시공이냐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져버리네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68 얻 세연주 잘은 몰라도 약이 몸에 안받으시면 그땐 약 종류를 바꿔보시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저같은 경우는 알러지가 있어서 알러지약을 먹는데, 전에 건 너무 졸려서 진짜 버스에서 서 있는 채로 잘 지경이었는데 이번에 약을 바꿔 봤더니 이건 괜찮더라고요! 그리고 오오오... 독백! 세연주를 수치스럽게 한 약은 나쁘지만 세연이의 독백이 많아지게 하는 약은 보배롭다..(뭐래)
>>174 아닠ㅋㅋㅋㅋ 현호주ㅋㅋㅋㅋㅋㅋ 진짜로 불러주실 줄은ㅋㅋㅋㅋㅋㅋㅋ >>175 아아... 세연주 아직 독감 안나으셨군요.. ;ㅁ; 확실히 컨디션 안 좋으면 글도 안나오죠. 대표적인 정신노동이잖아요. 머리가 피곤할때 나올 리가... 네네 세연주 이번 주 푹 쉬세요! 알바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무슨 알바인진 모르지만 사장님 안 보실때 확 농땡이 부려버려요!(<-그건 안돼지;;;)
잠깐의 침묵 후에 답을 내놨다. 유채헌의 인생은 언제나 계획에 없던 사랑과 예상치 못한 인연으로 가득했다. 그 중에 행복하거나 즐겁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사랑은 지긋지긋했고, 새로운 인연이라고는 지치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제 작은 세계만 유지한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데 새로운 것들이 끼어드니 피로할만 했다. 잠시 구겨진 편지로 가있던 시선이 츠카사에게로 옮겨갔다.
“심심하긴 한데, 네가 그러니까 갑자기 방으로 올라가고 싶어지네.”
그러면서도 의자에서 일어날 기미는 안 보이니 가벼운 농지거리에 불과했다. 지금 올라가봤자 방은 어두웠고, 불빛에 잠든지 얼마 안 된 나나가 짜증을 낼 게 뻔했다. 차라리 휴게실에서 밤을 새다가 아침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을 끝낸 채헌이 먼저 말을 붙였다.
“안 자? 늦었는데.”
이쪽은 가벼운 불면이 있다지만 저쪽의 상황은 모르겠다. 가을 날씨를 유지한다던 휴게실 내부는 쌀쌀했고, 반팔에 가디건 하나 걸치고 나온 사람이 버티기에는 조금 추웠다. 또 감기라도 걸리면 병동에 틀어박혀 3일쯤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또 다시 말에 치일 일은 없다..... 맞는 말이긴 했다. 이번 사건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미친 말한테 치여서 보건실로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를 또 한 번 칠지도 모르는 말은 이미 죽었다. 전혀 우습지 않게, 죽었다. 아로 시작하는 그것에 맞아서. 본인이 극구 괜찮다고 하니 걱정은 거두어야 했다. 사이카가 그의 부상 정도를 알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치료를 받기 전에 그의 상태가 어땠는지 알았더라면, 아마 매달려서라도 쉬라고 닦달을 하지 않았을까.
크루시오 쓰는 거 본 사람? 자신을 영이라 소개한 학생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마 농담일 것이 분명한 그 말에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정신 나간 학교, 그 말에 심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카는 동의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뜻을 담아 고개를 작게 저었다. 한탄이었다. 양쪽으로 묶인 머리카락이, 그녀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나가도 제대로 나갔지. 근데 여기,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닌 데였어? 아,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맞기는 한데...."
사이카는 이전부터 학교 생활이 힘들 때마다 자퇴할까, 그런 말을 장난 삼아 하곤 했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정말로 학교를 나갈 생각은 없었지만서도. 그러나 이번 일은 경우가 달랐다.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제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호들갑을 떤다며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미친 살인마가 흉기를 들고 학교에 숨어 있다는데 안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사건이 빨리 해결될 가능성도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엔 그게 당연했고, 결과적으로 학교의 보안 수준에 심각한 불신을 갖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이카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불신을 갖는 쪽이 더 나았다. 원래의 평범하게 정신 나간 학교가 벌써부터 그리웠다.
지애라는 학생은 벌써부터 무언가 짐작을 하고 있기라도 하는 건지 무언가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음, 뭘까. 추리라도 하는 건가? 사이카의 내면에 잠시 궁금증이 일었으나, 굳이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알게 된다 해도 자신은 끼어들 필요가 없는 문제니까. 해결은 저가 할 일이 아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어수선한 분위기도 끝이 나고, 교수진들은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공지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본 여러 가지 것들이 생략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모르지?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일 수도 있고. "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사이카는 당시 둘이 서로를 보고 먼저 내놓은 반응이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였던 걸로 기억한다. 제대로 친한 건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막 상념에서 벗어나려니 곧 지애가 걱정을 담은 말을 건네었다. 끔찍했나? 물론 끔찍했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경악했던 이유는 그 주문이 절대 시도조차 하면 안 되는 금지된 것이고, 그것이 제 주위에서 사용되었다는 데에 있었다. 똑같이 남의 의사에 따라 움직인다면 의식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낫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직접 당하지도 않은 자신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놓을 자격 따위는 없었기에, 사이카는 그에 관해선 그저 침묵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편안해져 그런대로 괜찮았던 그녀의 낯빛이 갑작스레 창백해졌다. 아. 이런. 지금까지 계속 정신이 없어서 그만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얼른 찾아야 한다며 뛰어다녔던 주제에. 고작 그런 일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걸 잊어버리다니 정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왜 혼란스러워 했었는가? 제 주변에 놓인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어서였다. 당장의 정황만을 살핀다면 비나는 무사할 것이다. 감옥에도 없었고, 연회장의 사건에 휘말리지도 않았으니. 연회장이 혼잡스러워졌던 그때 인파에 자연스레 묻어 이동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그를 찾아야 했다. 일단 수소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 난 이만 가볼게. 급한 일이 있어."
웬만한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 있을테니 우선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 짧은 인사를 남기고 들러야 할 곳을 셈하며, 사이카가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그리 빠르지도 오래 지속되지도 못할 행동이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빠를 거다. 생각하는 새에 숨이 차 한 번 멈추었으나 다시 이어 달렸다. 젠장,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갸아ㅏ으악 늦었다!!!!!!!! 흑흑ㄱ 사이카는 여기서 빠지는 걸로 가겠슴다!!!!!!! 저ㅓ어가 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어요..... ;▽;
팔짱을 꼈던 팔을 천천히 풀면서 소년은 말에게 치인, 말이 거의 들이박아 벽에 처박히다시피했던 상처부근을 만지면서 걱정하지마시라며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영의 특유의 무심하고 담담한 말투, 하지만 그 속내에 있는 차분한 걱정을 모른 척하기에는 티가 날 정도였다. 소년은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상처부근을 만지던 팔로 도로 단단히 팔짱을 꼈다.
임페리오, 아바다케다브라. 용서받지 못할, 용서할수도 없는 저주 중 두개나 학원 내에서 발발했다.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한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함과 알수 없는 경계와 공포, 두려움 하지만, 소년은 유니콘의 근처에서 거울에 비춰졌던 그 어두운 형상 을 잊을 수 없었다. 알려고 하지마.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에,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낀 팔에 힘을 준다. 신경쓰지마렴. 안온한 학원생활을 하면 돼. 사고도 좀 치고.
소년은 지하감옥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온한 학원생활이라고 하셨습니까. 이게, 정말 어머니께서 원하신 안온한 학원생활입니까. 생각하는 소년의 표정은 담담한 무표정에,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유니콘은 순결한 소녀를 좋아하니, 소년인 저에게 다가올 일도, 제가 그 유니콘을 건드릴 수도 없을테니 또다시 치일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평온한 표정으로, 그저 담담히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농담식으로 들려오는 영의 크루시오, 라는 말에 소년은 팔짱을 낀 채 시선을 아래로 슬쩍 내렸다. 크루시오에 걸려 부자연스럽게 어딘가에 쓰러져있을 학생이 없다고 단언하진 못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학생이다. 오러도 아니고 하다못해 그 소리없이 침입한 침입자를 견제할 정도로 많이 배운 학생들도 아니다. 이건, 자신에게만 통용되는 이야기. 소년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그럴리가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던, 소년은 낯빛이 창백하게 변하는 사이카를 조금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언가 생각난게 있었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사이카는 가보겠다며 다급하게 복도를 뛰어갔기에 소년은 그 뒤에 대고 인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인사를 놓친 것보다 저렇게 뛰다가 다칠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그게 더 맞는 말 같은데. 비꼬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탄탄한 계획을 세워놓아도 언제나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계획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원하던 목표를 손에 넣는다면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내가 원하던걸 가지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지. 잠시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채 가만히 금빛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던 중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안 올라갈 거 다 아는데. 정말 간다고 해도 보내주지 않을거지만."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아직까지 크게 졸리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푹 자고 일어나고 싶은데. 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역시 중간에 잠에서 깨어난게 문제였다. 이러다가 밤을 새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얼굴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나도 좀 자고싶은데 잠이 오질 않네. 따분하게 생긴 네 얼굴을 계속 보고있으면 잠이 좀 오려나?"
이제와서 뭐가 어떻게되든 상관없었다. 그냥 잠에 집착하지 말고 흘러가는대로 행동하자, 마음먹이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오른쪽 손으로 살며시 턱은 괸 채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뼈가 부러졌으면 더더욱 쉬어야 하는게 아닌가, 보면 볼수록 현호후배는 참 차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닐텐데도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상처부근에 눈길이 갔으나 잠깐일뿐 오래 두지는 않았다.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두었다. 걱정은 무슨 걱정, 그냥 골골대는게 보기 싫을 뿐이다. 빨리 가서 쉬던가. 그건 그렇고 진심이 아닌 농에 손을 드는 사람이 없어 정말로 다행이었다. 진짜였으면 오늘부로 자퇴할거란 소리가 나왔을 터다. 뭐어 끔찍하다면 끔찍하겠지, 뭐든간에 죽기보다는 나을것이다만. 희미히 입꼬리를 올리며 그렇냐는듯 천천히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팩트만 나열하자면 용서받을수 없는 저주 TOP3을 쓸수있는 자가 이 학교에 있다는 말이 될것이다. 오늘 본 외부인이라면 그 자가 유일하지만, 그자는 전혀 다른 주문을 쓴 듯한 느낌이 강했으니. 만약 내부에 있다면 그건 학생이나 교수진 중 하나가 되겠지. 그 어린나이에 살인 저주를 쓸 수 있는 자라면 보통내기가 아닐것이다. 어쩌면 제 정체를 감추고 조용히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라면 잡는데 까다롭겠지. 상당히 애를 먹을것이라 여겼다.
"지애는 잡고 싶나보네. 범인. "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다 네게 말했다. 그저 혼잣말을 들었을 뿐이지만 답은 훤히 나왔다. 지애는 지금 범인에 대해 추리를 하고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밝혀졌음 좋을것같아. 편히 다니고 싶어 학교. "
범인말이야, 나는 정말 안전하게 다니고 싶었기에 이런 말을 했다. 애시당초 안전해지고 싶어 왔기도 하고. 학교가 정말 위험하다면 다시 헤멤의 연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싫으니까, 되도록이면 빨리 나와줬음 좋다 여겼다, 그 살인 저주 쓴 사람. 나갈 때는 아니냐는 말에는 긍정도, 부정의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심히 가, 많이 어수선할거야 지금. "
낯빛이 창백해져선 황급히 어딘가로 향하는 그녀의 뒤로 오른손을 흔들어보이며 인사하였다. 급한 일이라면 타자他者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무탈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리 여기며 주머니를 뒤지는 후배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사탕이라, 효과가 있을까.
"얼마든지, 너도 먹는게 좋지 않을까. "
한 개 집어가면서 무심히 말을 던졌다. 여기 중에 심신 안정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 아무래도.
나나를 이렇게 아낄 계획도, 낯선 사람과 같이 살 계획도, 하다 못해 동화학원에 입학할 계획조차 없었다. 기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이상했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못 지킬 확률이 더 높고. 마주친 시선에 상대의 눈을 바라보던 채헌이 시선을 빗겨 내렸다. 마법사와 눈을 마주치면 꼭 레질리먼시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학원이라면 교수진을 제외하고 제대로 시전할 사람이 거의 없을텐데도 그랬다. 하여간 이게 다 - 때문이다.
"와, 감금죄로 고소할까."
가도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말에 채헌이 질린 얼굴을 했다. 처음에 사색을 위해 가달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여기서 잠들면 버리고 갈 거니까 안심해.”
제일 잠이 안왔을 때는 자기 자신에게 스투페파이를 쏘고 기절하는 것도 생각을 해봤는데,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지팡이가 그걸 들어줄 지도 모르겠고. 사기노미야가 빤히 바라보는 것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유채헌은 시선을 다른 쪽으로 피했다. 정말 저러다 잠들기라도 하면 버리고 갈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