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고 허공에 내민 손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자 아리나는 어쩔줄 몰라하며 에일린의 털을 쓰다듬었다. 아리나는 처음으로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폭★☆발 했다.
”후회? 아리나는 후회하지 않아!“
꽤나 자신만만하게 답한 아리나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늑대가 자신의 폼에서 떨어져 나가자 느껴지는 허전함에 아리나는 몇 번 자신의 몸을 톡톡 쳤다. 사실은 이게다 꿈이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면 정말 자신이 미쳐버려서 망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리나가 자신의 몸에서 다시 에일린에게 향했을때에는 거대한 늑대가 있었다. 거대한, 늑대. 아리나는 현실감 없는 관경에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이내 그녀의 무표정은 극적으로 바뀌는 것이었는데.
”멋져!“
에일린이 걱정하던 것과 다르게 밝은 표정으로 바뀐 것이다. 아리나는 겁도 없이 이 듬직하고 늠름한 늑대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소년은 부모님의 이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아버지를 닮았단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폭력과 때때로 찾아와 미안하다며 우는 어머니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소년에겐 득보다 실이 더 크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응당 사람이라면 사람의 불행, 특히 친지의 불행엔 공감하고 슬퍼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소년은 이럴 수는 없다며 울부짖는 어머니를 보는 동안 자신을 매우는 통쾌감과 기묘한 고양감, 그에 비교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연민에 크게 당황했다.
"시몬, 시몬아! 내 불쌍한 아가!!"
봄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꽃이 여름의 저림과 함께 져버렸다. 독화의 향기는 지독했기 때문에 저택의 어떤 사람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안녕하셔요"
그러나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피어나기 마련이다. 어떤 여자는 시몬을 무시했다. 다음 여자는 시몬을 보면 언제 절 내쫓을까 두려워 시몬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다다음 여자는 어린 혈기를 이용하고자 의붓아들의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렸다. 하나같이 독화들, 겉모습은 아름다울지언정 향기가 지독해 코를 찔렀다.
"전 아리아드나 이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눈이 맑고 맑간 뺨이 보드라워 보이는 여자였다. 당장 앞에 놓인 고깃덩이조차 썰지 못해 찬찬히 알려줘야 하는 꼴이 어디에서 아버지의 구미를 당겼는지 눈에 선하다. 올라오는 구역질에 시몬이 냅킨으로 제 입을 닦았다. 어색하게 제 눈치를 보는 새어머니, 스물두 살쯤 된 아리아드네 씨가 시몬의 만들어진 웃음에 그제서야 살포시 미소를 지어냈다.
"시몬 아셰드입니다."
곧 이 저택에서 사라질 이다. 지금이야 아낀다고 해도 얼마 안 가 돈 몇 푼 손에 쥐여주고 내쫓을 제 아비를 알았다. 저 자리는 곧 다른 누군가로 채워지겠지. 저 맑고 어여쁜 낯짝을 쳐다볼 수 없어진 시몬이 접시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 어미의 상실이 채워지기도 전 저 같은 것이 집구석으로 기어들어야 죄송하다던 이가. 거짓을 속삭이는 제 아비에 속은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정략으로 맺어진 여자가 박정하게도 제 자식에게 정 하나 안 줄 거라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이가 이 저택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은 자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시몬이라고 불러주세요."
멍청한 시몬 아셰드. 시몬은 사랑스러운 이를 가여워하지 않는 법은 알아도, 가여운 이를 사랑스러워하지 않는 방법은 몰랐다.
>>654 원래 눈캐 비스무리한 거였지만 일상 돌리다 멱살을 잡는 게 너무 매력적이라서요...사실 화내는 것도 보고싶었는데..(시무룩) 그것도 있고 무기가 너무 갭모에라 취향이였고 안경을 쓴 점도 좋았고 쩔쩔매는 게 너무 귀여웠습니다! 앗 안돼 이 이상은 말할 수 없어!(도망)
정말로, 방금 보였던 진심어린 언동이 거짓처럼 느껴질만큼 익살맞은 태도였다. 그런 모습을 다시 볼수나 있을까 의문까지 든다. 어쩌면 그것마저 그저 장난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것이 비비안이라는 뱀파이어다. 어디까지가 진이고 농인지 종잡을수 없는 태도는, 그 레이첼마저 곤란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그녀의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에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려 공기를 들이 마시었지만, 말을 마저 잇지는 못하였다. 그 둘이 레이첼의 작은 거주지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레이첼로서는 자신의 집이 이렇게나 반가운 순간이 없었다. 나름 합리적으로 이 페이스를 벗어날 기회였으니.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 사는 온기가 제법 느껴지는 소박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때 와인을 나눴던 밤과는 달리 지금은 아직 낮이었기에 같은 공간이었지만 다른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레이첼은 비틀거리는 몸을 들이자마자 거실의 한 켠에 놓여있는 침대에 그 위에 풀썩하고 쓰러졌다. 평소 다치고 들어와도 제대로 상처정도는 돌보던 그녀였기에, 그것은 상당히 지친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뭔 소리야 그거-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거울 앞에 대충 주저앉았다. 확신하건데 저 사람은 성격이 나쁘다. 인망이 두터울 것 같지도 않고. 츤데레-라는, 예전에 들었던 단어가 떠올랐다. 그 쪽 부류인가? 하다가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마음에 드는 쪽은 아니었다.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만하달까, 까칠한데다가.. 아무튼. 거울인 만큼 있는 그대로 까칠하게 가볼까 생각했다가 그만뒀다. 그나마 인사에 표정이 아아주 조금 풀렸다.
"높으신 분이셨군요. 루나티아 님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고개를 갸웃, 거리며 물었다. 귀족정에는 좀 더 품위있는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배신당했다.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집어 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슬그머니 일어서서 걸었다. 저 남자가 보는 거울에 비치는, 내 뒤의 풍경도 그에 따라 바뀌었다. 나는 고풍스런 저택의 복도로 나섰고, 촛불이 아른거리는 길을 지나서 중앙 홀로 나왔다. 그 상태로 더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가, 언제나 변하는 것 없는 장미 정원에서 멈췄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루나티아님-을 보았다.
"오, 루나티아님의 마음에 들게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게다가 저는, 보잘 것 없는 그저그런.. 거울일 뿐이라서."
어깨를 으쓱하며 연극조로 말했다. 그리고선 팔을 펼쳤다. 일렁이기 시작한다. 거울 표면에 황금빛 파분이 퍼지고, 내가 비추는 거울 위에 루나티스님의 형상이 비춰진다.
"다만, 예로부터 거울은 사람을 비추는 것이었던 만큼.. 특이한 걸 비출 수 있을 뿐입니다. ..어딘가에서는 물음에 답하던가, 딴 세상을 비추던가도 하고.."
파문은 진해지다가 결국, 거울을 금빛으로 채우고, 오롯히 루나티아님만 비췄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저 높으신 분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궁금하지만 사실 알 바 아니었다. 나야 단순히 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게 궁금할 뿐이었다. 욕심, 욕망. 바라는 게 없는 이는 없다.
"그러니까, [거울의 비친 꿈은 당신의 것]이니, 자. 소원 체험, 어떠세요?"
{거울 속의 왕자가 당신을 거울 속 세계로 초대했습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