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걸까. 숙여진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러나 곧 그런 걱정을 바보 취급하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 평소와도 같은 비비안이다. 그녀의 웃기지도 않는 말에 레이첼의 그제야 자기가 한 말이 어떤 느낌인지 자각했는지, 황급히 시선을 다른곳으로 옮겼다.
"시끄럽군..."
그 얼굴 또한, 약간은 붉어져 상기되어 있었다. 그것을 숨기려 한 것이겠지만 역시 허사다. 그 뒤에 내밀어진 손. 레이첼은 이번엔 거리낌없이 그것을 잡았다.
하루종일 저택에 쳐박혀 있는 생활도 이제 일상이 되었다. 무언가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건만. 뭐든지 쉽게 질려버리는 터라 어떤 것에도 깊게 재미를 찾지 못했다. 더불어 이 허무감과 무료함또한 달래지지 않았다. 체스나 카드게임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참신하게 이 무료함을 달래줄 일이 필요하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탓에 손에 쥐고있던 만년필을 허공을 향해 던져버렸다. 오랜만에 기분전환도 할겸 외출이라도 해야하는 건가. 고풍스런 글라스에 담겨있는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이 감정이 시작된건 언제부터 였을까. 되돌아 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오래 살아있는 것이 문제였나. 예전에 이렇지 않았는데. 생각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쓸데없이 골머리를 앓아봤자 내게 이득이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대충 근방을 산책하고 돌아오자. 어떻게든 되겠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외출을 택한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검은색 망토를 제복위에 걸치곤 느릿하게 저택을 빠져나왔다.
종착점도 정해두지 않은채 영지를 빠져나와 두서없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조금은 생소한 지역에 다다라있었다. 주변은 쥐죽은듯 고요했고, 별 다른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환상종이라 하더라도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 발을 내딛을 이는 많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발 걸음을 옮기는데, 빛나는 무언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게 뭐지? 그저 평범한 거울인가? 빛의 근원에 다다르자 꽤나 고급스럽게 생긴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간 물건일까. 조금은 흥미로운 표정을 한채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냐, 네놈은."
거울을 움켜쥐려는 순간 그 안에서 무언가 인영이 비춰졌다.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거울안을 빤히 들여다보던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나 했는데. 최저다.
593시이 - 아름다운 아나이스 교황님이 천상계에서 빛나고 계셔...☆
(5942211E+6)
2018-01-15 (모두 수고..) 00:23:18
그녀는 이내 입술이 떨어지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의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곤 이내 제 이마가 손가락으로 톡 밀쳐지자 입술을 또 비죽이다가 말한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애초에 아나이스가 날 좋아해주는데. 그것만으로 난 괜찮아요. 그리고 나 강한 걸요? 아무도 절 괴롭히진 않을거에요."
...정말로 괴롭히진 않았다. 친구가 없을 뿐. 그러니까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다. 애초에 따로 놀아서 그렇다. 아무튼 그녀는 그 잡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살짝 도리질을 한 뒤 이내 아나이스가 그 전에 했던 말들에 답한다.
"...일이 그렇게 많아요? ...일이 그렇게 많으면 좀 쉬는 게 좋을텐데. 역시 교황이란 힘들죠? 여태까지 많이 고생했을텐데. 아나이스, 여태까지 많이 수고했어요. 그런 거라면야... 뭐 남한테 본인 직무를 아예 떠넘기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것 뿐이니까... 헬리오스께서도 조금은 용서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많은 업무라면..."
그녀는 그의 뻔뻔함에 속은 건지, 그리 말하더니 아나이스에게서 떨어져서 아나이스의 등 뒤로 간다. 그러곤 이내 제 입을 아나이스의 귓가에 하고 속삭인다.
"그만큼 고생했으니까, 어깨 주물러 줄게요. 아프면 말해요?"
그러고는 적당한 힘으로 아나이스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합니다. 아프지 않게, 힘을 조절해가면서.
"아무튼 아나이스의 사적인 감정에 의해 일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라면... 분명 용서해주실 거에요. ......그래도 일 폭탄은 좀 아니지만요. 그럴 생각 없죠?"
’그래 꼭‘이야. 아리나는 여전히 밝은 미소로 에리린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까지는 평온을 가장할 수 있었지만 이어지는 에일린의 이름 어택으로 그 평온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아리나은 조심스레 자신의 심장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아, 여기서 죽어도 여한은 없을지도.
”기억해주다니 기뻐!“
아리나는 가까스로 에일린에게 답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일단 집에 가면 강아지부터 사자. 이런 강아지라면 평생 날 귀찮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쫑긋거리는 에일린의 귀와 꼬리를 수시로 주시하며 에일린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음, 그렇구나! 에일린도 돌아다닐 때 커져서 돌아다니는 구나.“
에일린이 한쪽 손을 최대한 높게 들어 올리자 정말 그정도의 크기를 예상한 아리나는 귀엽다는 표정으로 에일린을 보았다. 이렇게 귀여운 종족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이어지는 에일린의 대답에 순간 굳어버렸다.
”어... 몇백살?“
어린애가 아니었어? 아리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에일린의 눈을 쳐다보았다. 분명 작고 귀여운 생물체인데.
”작았던 나무가 엄청 커졌다고...?“
아리나는 고개를 기울여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들은 말에 확신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591 꺄악!!! 개그캐 좋아요!! 사실 아리나도 어느정도 개그캐라서...! 개그를 위해서라면 장갑이라도 핥을 수 있....(실화) 흠흠,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리나도 진지한 과거 1도 없고 트라우마도 딱히 없고 있다면 환청이랑 환각이랄까, 별로 심각하진 않죠... 심지어 성격도 지멋대로라 캐붕해도 우길 수 있고!! 개그캐 짱 편해!!! 개그캐 짱좋아!!! 라는 느낌입니다.
>>601 쉿, 조용히 하세요. 제 흑역사입니다. 아리나는 뿌듯해했지만... 사실 비비헨리주가 이렇게 웃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처음 썼을때 아, 이러다가 나 매장당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예상했던 반응 아, 뭐야 이사람 또라인가봐;; 였는데 다행이에요! 비비헨리주의 좋은 반응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다음에는 장갑 말고도 다른 것도! (아리나 : 죽어)
잠깐 쉴까하는 생각이 들어 적당한 곳에 등(거울 뒷면)을 기대고 기지개를 켰을 때 사람이 다가왔다. 확실히 인간은 아니었다. 중성적인 외모에 은발을 지닌, 검붉은색 눈의 예쁘장한 남자였다. 키는- 거울과 비슷한 정도였고 얇은 느낌이 들도록 호리호리했다. 이런 곳에 평범한 사람이 올 리는 없었다. 환상종이거나, 좀 특이한 종류의 인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멀리서 보이는 남자의 표정은 무료함에 잠식된 것 처럼 보였는데, 빛이 나는 나를 발견하자 흥미로 눈속을 채웠다. 손이 내게 뻗어졌지만, 남자는 나를 잡지도 않고 고개를 홱 돌렸다. 불쾌한 것 같았다. 어째서-라는 생각을 하다가 둥실 떠올랐다.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뭐 어쨌든, 저 남자가 자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기대를 하다가 실망해서 인상을 찡그렸든, 나는 남자에게 흥미가 생겼으므로 아무래도 좋았다. 초면인 남자의 앞으로 거울째로 움직여 바로 섰다. 그리고 조금 과장되게, 예법에 맞춰 인사했다. 고개를 들고 웃었다.
"에드윈. 지나가던 거울입니다."
무료함이 꾹꾹 눌린 것 같은 남자를 바라봤다. 거울 표면에 손을 올리고, 반대쪽 손바닥을 위로하 옆으로 움직였다. 마치 안내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였다. 거울 안 쪽, 화려한 침실을 향해 손짓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르킨 것은 이런-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었다. 내 표면이자, 심층이었다. 거울의 가장자리에서부터 금빛 파문이 일었다. 거울은 순간 나를 비치지 않고 저 이름 모를 남자를 비추다가, 다시 나를 비췄다.
"제가 비추는 건 당신의 꿈. 바람, 심심해보이시는데, 한 번 거울을 보시는 건 어떨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