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나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데릭을 노려보았다. 사실 이런 말 많이 들어봐서 더 이상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을 뿐. 아, 또 목소리가 들린다. 아리나는 웅웅거리는 머리를 몇 번 긁고 데릭을 바라보았다.
“음? 너 팔 다쳤어? 다쳤는데 왜 등산을 와, 이상한 놈이네.”
관찰력이 조금만 있다면 금방 알 사실일텐데 아리나는 몰랐던 모양이다. 얼마나 남에게 무관심한 건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뒤로 이어지는 말은 데릭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정작 아리나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데릭의 이름을 듣고 아리나는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단심문관중 한명이었겠지.
“그래? 우리 자주 만나겠네. 그때 만나면 이거 한번 더하자?”
아리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쪽 눈으로 윙크를 했다. 참으로 소름 돋는 관경이었다. 아리나는 내려가는 데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설득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걸까. 숙여진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러나 곧 그런 걱정을 바보 취급하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 평소와도 같은 비비안이다. 그녀의 웃기지도 않는 말에 레이첼의 그제야 자기가 한 말이 어떤 느낌인지 자각했는지, 황급히 시선을 다른곳으로 옮겼다.
"시끄럽군..."
그 얼굴 또한, 약간은 붉어져 상기되어 있었다. 그것을 숨기려 한 것이겠지만 역시 허사다. 그 뒤에 내밀어진 손. 레이첼은 이번엔 거리낌없이 그것을 잡았다.
하루종일 저택에 쳐박혀 있는 생활도 이제 일상이 되었다. 무언가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건만. 뭐든지 쉽게 질려버리는 터라 어떤 것에도 깊게 재미를 찾지 못했다. 더불어 이 허무감과 무료함또한 달래지지 않았다. 체스나 카드게임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참신하게 이 무료함을 달래줄 일이 필요하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탓에 손에 쥐고있던 만년필을 허공을 향해 던져버렸다. 오랜만에 기분전환도 할겸 외출이라도 해야하는 건가. 고풍스런 글라스에 담겨있는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이 감정이 시작된건 언제부터 였을까. 되돌아 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오래 살아있는 것이 문제였나. 예전에 이렇지 않았는데. 생각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쓸데없이 골머리를 앓아봤자 내게 이득이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대충 근방을 산책하고 돌아오자. 어떻게든 되겠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외출을 택한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검은색 망토를 제복위에 걸치곤 느릿하게 저택을 빠져나왔다.
종착점도 정해두지 않은채 영지를 빠져나와 두서없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조금은 생소한 지역에 다다라있었다. 주변은 쥐죽은듯 고요했고, 별 다른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환상종이라 하더라도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 발을 내딛을 이는 많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발 걸음을 옮기는데, 빛나는 무언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게 뭐지? 그저 평범한 거울인가? 빛의 근원에 다다르자 꽤나 고급스럽게 생긴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간 물건일까. 조금은 흥미로운 표정을 한채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냐, 네놈은."
거울을 움켜쥐려는 순간 그 안에서 무언가 인영이 비춰졌다.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거울안을 빤히 들여다보던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나 했는데. 최저다.
593시이 - 아름다운 아나이스 교황님이 천상계에서 빛나고 계셔...☆
(5942211E+6)
2018-01-15 (모두 수고..) 00:23:18
그녀는 이내 입술이 떨어지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의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곤 이내 제 이마가 손가락으로 톡 밀쳐지자 입술을 또 비죽이다가 말한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애초에 아나이스가 날 좋아해주는데. 그것만으로 난 괜찮아요. 그리고 나 강한 걸요? 아무도 절 괴롭히진 않을거에요."
...정말로 괴롭히진 않았다. 친구가 없을 뿐. 그러니까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다. 애초에 따로 놀아서 그렇다. 아무튼 그녀는 그 잡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살짝 도리질을 한 뒤 이내 아나이스가 그 전에 했던 말들에 답한다.
"...일이 그렇게 많아요? ...일이 그렇게 많으면 좀 쉬는 게 좋을텐데. 역시 교황이란 힘들죠? 여태까지 많이 고생했을텐데. 아나이스, 여태까지 많이 수고했어요. 그런 거라면야... 뭐 남한테 본인 직무를 아예 떠넘기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것 뿐이니까... 헬리오스께서도 조금은 용서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많은 업무라면..."
그녀는 그의 뻔뻔함에 속은 건지, 그리 말하더니 아나이스에게서 떨어져서 아나이스의 등 뒤로 간다. 그러곤 이내 제 입을 아나이스의 귓가에 하고 속삭인다.
"그만큼 고생했으니까, 어깨 주물러 줄게요. 아프면 말해요?"
그러고는 적당한 힘으로 아나이스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합니다. 아프지 않게, 힘을 조절해가면서.
"아무튼 아나이스의 사적인 감정에 의해 일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라면... 분명 용서해주실 거에요. ......그래도 일 폭탄은 좀 아니지만요. 그럴 생각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