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 지애도 이정도면 회복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읍읍 읍읍읍읍 읍읍였다면... >>897 헑 소담이 너무 귀엽잖습니까! 불화의 씨앗이 되어서 미안해, 소담아... >>894 세연이 죽음의 신부ㄷㄷㄷㄷㄷ >>889냉미'남'이라뇨! 하 영주 보이시한 여자가 최고 미녀인거 모르십니까. 실망이네요.
음 괜히 까칠하게 굴어 사이카의 멘탈을 몰아붙인건가 걱정이네요. 하지만 빠르게 꼬리를 내렸습니다! 사이카와 지애의 행복한! 머글덕! 라이프를 위해!!!(뭐래)
묻는 말이 끝나자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중한 목소리. 제 짓궂은 장난에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던 그의 말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서 자리의 모인 모든 이들과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말에 대해서는 모른다. 뜬금없는 답에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곧 자신이 방금 물었던 질문이 유니콘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멍청하긴. 방금 꺼낸 말도 잊어버리는구나. 당황해서 이토록 횡설수설하는 경험은 간만이었다. 꼭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불쾌했다.
키가 큰 여학생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를 보는 시선이 냉랭하다. 높은 시선이 차가운 말을 담아 자신을 내려다본다. 고압적인 여자. 그 사람이 생각나는 눈빛이다.
......그러나 저 안면은 창백했다. 저 말씨도 다르다. 함부로 남을 그 자와 연결짓는 것은 크나큰 무례다. 사이카는 예의를 차리는 성격이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안정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아. 싸우자는 거 아니야. 그냥 아무 말이나 했어."
아무 말. 그래, 자신은 본래 생각 없이 나돌아 다니며 아무런 소리나 툭툭 내뱉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 이가 되는 것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니었던가. 본분을 되찾아야 했다. 사이카는 조금, 초조감을 느끼고 있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러니 괜찮다.
"나도 미안. 그런데....."
제 말에도 날이 서 있었나보다. 스트레스 상황. 납득할 만한 이유다. 지금의 자신 역시도 그러했으니. 용서받지 못할 저주, 그것이 저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검은 말에게도 저주와 관련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이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선은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밑에서도 큰일이 있었나 보네? 저주 말이야."
그들이 왜 지하에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자신 역시도 교수진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연회장에 남았었으니,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위에 있다 왔었어. 또 잊을지도 몰라 짤막하게 덧붙였다. 지독한 추위였고, 추위는 불안이 되어 주위를 휩쓸어갔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 불안에 직격으로 공격당했었나 보다. 노란 시선이 옆으로 움직여 검은 소년을 향했다.
소년은 영의 기숙사에 가서 쉬면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봤다. 괜찮을리가 없지만 소년은 그저 바라보던 시선을 돌리며 차분하게 덧붙힌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소년은 잠시 입술을 앙 하고 꾹 다물었다. 적을 비추는 거울에 비춰진 형상이 신경쓰인다. 그 직후 낯선 남자가 쓴 주문은 '그' 주문이 아니다. 누가? 라는 의문. 사그라드는 의문. 익숙하다.
소년은 제게 짓밟힌,이라고 말하려다가 빠르게 말을 바꾸는 지애의 말에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경계하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경계하지 않았다는 말에 소년은 천천히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의심이 퍼져나가면 겉잡을 수가 없다. 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예. 병동에 갔다왔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일단 영의 이야기로 인해 지애와 사이카의 분위기는 사그라든 상태였고, 소년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했다. 소년은 오랜만이라며 몸은 괜찮냐는 사이카의 말에 그렇게 심각했나라는 생각이 소년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으며, 소년이 어깨를 느릿하게 으쓱였다.
그딴 저주를 쓴 사람으로 오해받는 건 실례잖아. 잔잔히 얘기하였으나 불쾌감이 없지않아있는 목소리였다. 살인 저주를 쓴 사람으로 오해받는 건 사양이었기에 단호히 제 감정을 말했을 뿐이다. 물론 너를 향한 감정은 아니었기에 오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나직히 네가 중얼인 소리가 들린 듯 싶었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렇냐며 고개를 끄덕일 뿐.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괜찮다니 다행이야. 많이 걱정했어."
공격받지 않았다면 그걸로 된거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안전한 듯 보였으니까. 나직이 속삭이곤 그저 조용히 상황이 풀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저쪽 여학생과 현호후배가 구면인 것 같아 상황은 어찌 이걸로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서로들 진정시키고 있는 눈치였으니 됐다. 이 이상 심각해지는 건 원치않는다. 별 거 아닌걸로 욕보이고 싶지 않으니. 나는 그저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 "
상황은 가라앉았으나 여전히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매섭기만 했다. 의도적인 변명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다. 그저 눈앞의 학생이 감정에 치우쳤으리라 여길 뿐이다. 방금 전까지 초록 빛 앞에서 제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냈던 터라 크게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든 감정적이 될수밖에 없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는듯 응답했다. 그래, 웬 큰 애가 날뛰었지. 그리고 죽었고.
"위에 있다 왔었구나. 거기도 그랬어 혹시. "
꼭 어떤 상황이 있었다는 듯 확신하는 목소리가 덤덤하기만 했다. 교장교감이 다 내려올 정도면 필히 위에도 어떤 일이 생겼었다는 것이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마 해결된 뒤에 내려온 거겠거니 싶었다. 고개를 까딱이며 눈앞의 후배에 눈길을 줬다. 병동에 갔다고, 어쩐지 멀쩡하더라. 얼마 전까진 피투성이더니.
"기숙사 가서 푹 쉬어, 회복됬다 해도 많이 힘들거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
무심히 말했으나 걱정하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야 우리는 방금전까지 유니콘에게 치여 피투성이인 모습을 마주했었으니 후배를 걱정하는게 당연했다만. 뭐어 네가 괜찮다면 됐다. 어서 가서 쉬던가, 아파하지말고.
벌써 세시간 째 잠이 안왔다. 채헌은 결국 안대를 벗어 던지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불면증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가끔 이렇게 침대에 누워도 몇 시간동안 잠이 안 올 때가 있었다. 이럴 때면 안 그래도 흐릿한 한 쪽 시야가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지팡이를 까딱이며 고민하던 채헌이 옷장으로 향했다. 아무거나 걸쳐 입고 기숙사 휴게실에라도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나나가 깨 있으면 데려 갔을텐데, 자고 있는 걸 보니 깨웠다가는 성질을 낼 것 같았다. 가디건을 대충 입은 채헌이 지팡이를 챙겨 방을 나왔다.
휴게실은 조용했다. 저녁에 있었던 사건 때문인지 학생은 거의 없었고, 그마저도 다들 방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채헌은 아무 의자에 걸터 앉았다. 상황에 휩쓸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수 하나가 임페리오에 걸려 공격한다고 해도, 결국 채헌에게는 피해가 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나도 멀쩡하고, 나도 안 다쳤고…. 음. 채헌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아이들-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과 사이카, 라는 아이 사이가 주였지만-간의 불온한 기류가 진정되었다. 다행이야.
"그래 맞아. 스트레스 상황이었으니까." "무서웠지." 특별한 대상 없이 허공에 질문한다.
"어렸을때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인데, 무서운 일을 겪었을때 무섭다고 말하면 도움 된대." "아-. 무섭다."
동참할 사람 없어?라고 물어보듯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음, 역시 별 효과는 없다. 어렸을 적에도 아무 효과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나저나, 아까 전에 분명히 처음 보는 아저씨 있었지. 누구였을까." "짐작가는 거 없어?" 그나마 그 외부인과 같은 윗층에서 내려왔을 사이카 쪽을 바라보긴 했지만, 영이의 의견도 동시에 묻고 있는 꼴이다. 이번에는 의심한다기보다는, 같은 편의 공조자에게 정보를 구한다는 톤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