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誠實. Sincerity.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다. 사전에 적힌 성실, 성실하다의 어원이였다. 그리고 그건나를 지칭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 하나였다.
아직 어린게 성실하네. 이쪽을 보고 목소리를 낮출 생각도 없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반듯하던 시선을 내린다. 검은 머리카락, 동공과 홍채가 구분가지 않는 짙은 검은색 눈동자. 어느쪽을 둘러보든지 그런 눈동자와 그런 머리카락일 뿐이다. 특징이라고 한다. 온통 똑같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을 처음봤을 때 누군가가 대신 대답을 한다. 커다란 손과 큰 키의 어떤 중년 남성이였다. 그 중년 남자도 똑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벽의 한쪽에 서서 복작거리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 특징인가. 그런데, 왜 같은 특징을 가진 여자들은 저기에 있고 남자들은 왜 이쪽에 있지.
답은 이미 알고 있는 주제에. 물어봤자 누구도 대답하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는 주제에.
그저 남자애는 듬직하게 자라야돼. 너는 공부를 못해도 된다. 애가 아주 올바르고 성실해. 무릎에 올려놓은 책을 읽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그 옆에 놓은 책은 [마법의 역사], 또 그 옆에 놓인 건 [현가의 족보]. 왜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공부하다가, 마법의 역사를 공부하고 족보를 공부하는 건지 묻지 말길 바란다. 어차피 모두 궁금했던 거니까. 책을 읽는다. 한장, 한장 넘기는 종이의 소리. 응? 어둠의 마법 방어술? 그거 하나도 공부안해서 누나 책은 엄청 깨끗한데요. 그래도 줄까요? 반듯한 안경 너머의 동공과 홍채의 구분이 안가는 검은색 눈동자. 마법의 역사? 괜찮긴 한데, 갑자기 왜요? 어차피 학원 들어가면 하기싫어도 할텐데 왜 벌써부터 공부에요? 쓰다듬는 손길. 족보? 그래! 가주님에게는 비밀이야? 그렇게 해서 얻은 세개의 책들을 바라봤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내려놓고, 차마 무서워서 손을 댈 수 없었던 족보를 펼쳐 들었다.
[.... 고려시대때부터 이어져오던 한국의 순수혈통 가문 중 하나로 아주 옛날부터 순수혈통주의를 주장하는 온건파와 머글들과의 관계개선에 치중하는 개혁파로 나뉘어 끊임없이 논쟁을 펼쳐왔다. 본가와 방계로 나뉘어질 정도는 아니였지만, 그 맥이 흔들릴 정도로 이어져오던 피없는 논쟁은 60년 전 마법사 전쟁을 시작으로 완벽하게 갈라섰다. [.........건파와 개혁파로 나뉘어져 있을 때에는 가문의 문양이 서로 달랐지만, 지금은 개혁파의 문양을 따르고 있다. 눈이 없는 검은색 삼족오의 날개에 눈동자들이 박혀있는 문양으로 소년의 말에 의하면 소름끼치는 문양. 날개에 박힌 눈동자들은 전부 검은색으로, 현가의 피를 이은 이들은 동공과 홍채가 구분이 가지않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같은 검은색 눈동자를 지니고 태어난다. ....모계 혈통을 중시하며 모계쪽으로 이어져간다.]
검은색 삼족오. 눈동자들이 박힌 문양. 족보의 표지에 그려진 문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족보를 덮는다. 이따가 가져다줘야겠다. 책을 읽을 기분이 들지 않아서 나는 그저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에는 검은색 삼족오, 날개에 달린 수많은 눈동자들의 문양이 있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게 있었다. 옛날이였다면, 그 문양을 몸에 새기던가, 들고 다녀야했을거라고. 어머니만해도 후계자이자, 차기 가주였기에 언제나 문양이 수놓아진 천이나, 손수건을 들고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은 완화되어서 후계자들은 필수였고, 그 외의 여자 자녀들은 선택이였고 남자 아이들은 하지 말아야할 규칙이였다. 그래, 하지 말아야할. 나에게 자신이 직접 놓은 자수라며 반창고로 뒤덮힌 손으로 건넨 하얀 손수건을 받아들고 그 손수건에 그려진 가문의 문양을 보고 어머니는 이제껏 볼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내셨다. 남자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는거냐, 남자애는 이런걸 가질 자격이 없다. 자격. 나는 자격이 없었다. 손수건을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누님은 우셨다.
"순수혈통주의가 아니기는."
성실. 誠實. Sincerity.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다. 나는 '성실하다'. 조용히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던 낡은 손수건을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성실. 誠實. Sincerity.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다. 나는 '성실해' . 지팡이를 꺼내 들어 나는 손수건을 겨냥했다.
"Lacanum inflamore."
이건 성실하지 않은 행동이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대뇌였다. 손수건이 불에 타들어간다. 매캐한 천이 타는 내음이 잔뜩 풍겼다. 무릎을 끌어안고 나는 그것을 지긋하게 바라봤다. 어머니가 그랬다. 어째서 퀴디치 선수가 되지 않았니? 가문의 누군가가 그랬다. 공부를 못해도 돼. 너는 그냥 그대로 자라면 된다. 또 누군가가 그랬다. 올바르고 성실하니 어디 가도 만점은 아니여도 빠지는 남자는 안될거다.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친구들도 사귀고 사고도 좀 치고 학원생활을 즐기렴.
나는,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알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서 눈을 떴다.
알고 있잖아? 네 미래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너에게 미래를 결정한 권리같은게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 집안의 사람들이 너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었잖아?
시끄러워.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알수 없는 분위기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사화가 침대 위로 뛰어올라서 소년의 가슴팍에 앉아서 소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야, 미야앙. 다급해보이는 울음소리에 소년은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손과,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푸른색과 노란색 눈과 깊은 검은색 눈동자가 마주했다. 소년은 제 얼굴을 솜방망이로 툭툭 치는 사화의 모습에 미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응, 괜찮아. 사화야."
Lacanum inflamore. 그때 중얼거렸던 주문은 절대로 잊지 못할테지만. 성실. 誠實. Sincerity.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다.
>>335 심적 고통......(현호봄) 아뇨 저게 되게 어릴때부터 세뇌(?) 되다시피 한거라서 본인도 이해는 하고 있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 뿐입니다. 어째서? 라는 물음이 어릴때 계속 되어야했는데 지금에서야 발발한거니까...???
>>346 전혀 고퀼 독백이 아닌데요...? 저 색을 넣고 싶었는데 색 넣는거 포기했어요.. (털썩) 스레주 웹박에도 보내기는 했지만.. 아, 위키에 추가해야되는데 귀찮아...(뒹굴뒹굴) 둘째 누님의 성격에 언니에게만 각별하다가 있어서.... 가장 현씨 집안 다운 마음가짐(어머니랑 같은 루트)을 가지고 있는건 둘째누님이라는 설정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