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대의 숲을 무서운 기세로 가르고 지나가는 검기. 헨리는 거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레이첼은 그 근성에 속으로 감탄했다. 일부러 대각선으로 쏘아낸것은 대각으로 설 수 없는 인간의 무게중심으로는 피하는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무리없이 파고들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힐 수 있을터. 지금 상대인 헨리가 하는 것이 그러했다. 날쌘 몸놀림을 이용하여 거리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빠르게 뛰어올라 톤파를 교차시켰다. 대검을 노린 무장해제의 수인듯 싶었다. 그 톤파 또한 헬리오스의 세례를 받은 물건일터. 방패보다는 못하다곤 하나 프라이머리를 일시적으로 무효화 시킬 수 있을터다. 허나 레이첼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려벤다. 자신의 대검을 양손으로 잡고 자세를 취하더니, 마치 날아오는 공을 쳐내려하는 타자처럼 대검에 무게를 실어 강인하게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프라이머리를 제외하더라도 대검 자체의 화력으로 아예 파고들어 그 사용자에게 대미지를 가하려 하는 공격. 정말로 달처럼 빛나는 대검의 끝이 호선을 그렸다.
"흐음.. 그래? 조금 린네도 흥미가 좀 더 생겨버렸는걸. 노토스의 소식을 격주마다 어느정도 입수할수 있다라. 정기구독 해보도록할까."
굳이 국교신문을 뒤적거려도 영양가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알차지 않다. 그렇다는건 이쪽이 발품팔아서 가져오는 정보가 오히려 유익할수 있는법이다. 다만 어떤정보를 입수함에 있어서 한정성이 필요하다면 필요했다. 무언가 좋은 방법으로 이 쌍둥이와 협력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없으려나. 머리를 살짝 긁적여보고는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아 아닌가 싶어 나는 제안했다.
"하나 부탁해도 되려나. 마소를 대가로 할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조금 고민해봤는데, 신문 오탈자 교정이나 맞춤법 검사 어디까지 하고있어? 그쪽방면으로는 '인간'일적에 제법 경력이 되거든. 빌어먹을 노친네가 시켜서 이것저것 배우는게 있는지라. 문법교정이라던지 오탈자 수정에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도가터서 도와줄수는 있는데, 대신에 노토스 관련 정보를 필요할때 어느 한쪽으로 한정해서 취재를 해줄수 있는지에 대해서 협력관계를 제안하고 싶은걸. 린네는 제법 적이 많거든."
마소를 대가로 할 수 없다는건 인간을 죽임으로서 얻는 마소를 이쪽에서 알면 반감을 살지도 모르기에, 그렇다면 싫더라도 인간일적의 지식을 활용할수밖에 없는 노롯인것이다. 쓸모없다고 생각하고있었는데 죽고나서야 쓰임새를 찾은게 정말이지 웃기는 일이다. 영감쟁이가 살아있을적에 이걸 봤다면 참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고 생각했겠다고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태생적으로 빠르고, 태생적으로 날랜 몸놀림을 이용해서 나는 그대로 대검을 짓눌렀는데 이 환상종의 힘은 확실히 인외의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혀를 소리없이 차면서 나는 교차시켜서 누르고 있던 톤파와 함께, 마치 공을 후려치는 것처럼 뿌리치는 대검에서 빛나는 달빛이 호선을 그리고 나는 톤파를 교차한 팔에 힘을 줬다. 셔츠 깃과 옷깃이 한꺼번에 베어져 나가는 바람에 목의 흉터가 잘 드러났다.
힘을 줘서, 나는 그대로 호선을 그리는 대검을 피해 방금 전 했던 것처럼 환상종의 배후로 돌아갔다. 톤파를 떼어내고 대검이 휘둘러지는 타이밍을 맞춰 말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돌려버린 것이다. 어떻게 떨어질지 몰라서 내 스스로도 잘 안하는 공중돌기였고, 이건 거의 도박이였다. 허공으로 올라가버리면 빈틈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제까지 봤던 환상종의 타입은 마치 기사와 같은 느낌.
환상종의 뒤로 떨어지자마자 이번에는 톤파 하나를 내 옆구리 근처로 놓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산탄이 쏘아졌다. 그런 뒤, 바닥에서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다른 톤파로는 환상종의 손목을 노렸다. 톤파 특유의 회전력을 이용한 타격이였다.
플래닛 매거진 1면 미리보기 ┌────────────────────────────┐ │ *☆플 래 닛 매 거 진☆* │ │????년 ??월 ??일자 별의 우체국 발행 │ ├────────────────────────────┤ │*보레아스 남쪽에서 살인사건 발생 │ │ 피해자는 에스카 아모르(145세, 위치) 사건 현│ │장의 상태로 보아 마법에 의한 과실치사로 추 │ │정되며 피의자는 밝혀지지 않음. │ │ (하략) │ └────────────────────────────┘
화살이 날아온 쪽을 보며 위협적으로 크르릉거리던 늑대는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적의 가득한 목소리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귀를 쫑긋인다. 결론은, 이 남성에게 볼일이 있으니 시체를 넘기라는 것 아닌가. 늑대의 은빛 눈이 조금 가늘어졌고, 벌려진 입에서는 말 대신 위협의 뜻이 담긴 늑대의 소리만이 흘러나온다.
[크르르르....컹!]
인간만 돌려주면 물러나겠다. 라는 말에 웃기지 말라는 듯이 사납게 한번 짖어보인 늑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응시하다가, 그것을 이빨로 물어채 바닥으로 퉤, 하고 뱉는다.
[넌....그때 그 인간..]
나뭇가지 사이에서 드러난 모습에, 늑대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다시 가늘어진다. 침착한 목소리와는 달리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이 빳빳하게 선 귀와 흥분해 흔들리는 두 개의 꼬리. 늑대는 몸을 피며 두어걸음 나무 쪽으로 다가갔고, 몸을 낮췄다가 빠르게 아나이스가 서 있는 가지를 향해 뛰어오르며 앞발을 휘두르려 한다.
"그럼 매주 일요일에는 일손을 거들도록할게. 그정도면 되려나. 조율할 필요있다거나 추가적으로 필요한부분이 있으면 논의하는거고."
어차피 따분한 참이라 이런 일을 하는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처음보는 사람이 이렇게 제안하는데 곧잘 받아주는게 정말이지 착한 아이들이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나 환상종에게나 그리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나라는건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어느정도는 알고있을테지만.
"원하는 쪽은 해양이나 항구관련 소식이려나. 그쪽으로 조금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말이지."
사실 나는 찾고있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내 가문은 어떻게 사라졌는가에 대해서. 이 몸이 되고나서 부터는 그런 정보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신문을 몇번인가 뒤져보고있었던게 컸다. 물론 다른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도 인간일적 버릇인지 주입인지 계속해서 보게되고 있지만서도.
시몬이 자신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는 시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시이를 보내도 안 들어오니 최종 보스께서 강림하셨다. 시몬 가는 곳이야 뻔할 뻔자이니 시몬이 부스러기일 시절부터 옆을 지켜온 사람은 금방 알아챌 수 밖엔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아쉬운 것이다. 시몬이 시이에겦 소근거렸다.
"아쉽게도 비선실세께서 오시네요. 대화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시몬이 손으로 태양을 가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흥미로운 듯 콧소리를 냈다. 마냥 책상머리에 앉아만 있던 샌님이라 지구력에서 딸려 번번히 이를 갈더니만 운동이라도 한 모양이다. 아까까진 이쑤시개처럼 보이더니 자신을 발견하곤 치렁치렁 불편한 차림으로 잘도 달렸다.
"그럼, 시이양. 부디 헬리오스님께서 돌보시길."
시몬이 빠른 속도로 타이와 시계를 풀러 자켓의 주머니에 쑤셔박았다. 아무래도 작정하고 도망칠 모양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끝낸 시몬이 한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려 도망쳐 버렸다. 꼴에 주교가 채신머리도 없는지 달리는 폼이 선수 못지 않았다.
대검이 높게 올려짐과 함께 그녀는 날아오르듯, 공중으로 향했다. 들어오는 힘을 이용한것이었다. 확실히 보기드문 좋은 센스다. 그러나 그런것에 일일히 감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 검은 정확히 말하면 칼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운석. 그 견고함은 지상의 것과 비할바가 못된다고 한다. 첫 조우했을때 날아온 산탄을 쳐내고도 별다른 손실없이 멀쩡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레이첼이 대검을 대각으로 세워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자 그 도신에 수많은 탄환들이 들이받는다. 손을 타고 그 강렬함이 전해졌다. 확실히 인간의 물건이다. 레이첼도 잘 알고있었다. 그 뒤에도 쉴 틈없이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들어오는 후속타. 스텝을 밟아 뒤로 빠져 그것을 피한 레이첼은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 그 반동으로 달려들며 대검을 수직으로 휘둘러 내려친다. 월광으로 거대해진 도신이 '벤다'기 보다는 '뭉겐다'라는 느낌을 주고있었다.
한계였다. 숨이 차오르고 숙달되고 훈련을 받았다고 한들, 목의 흉터로 인해 기도와 식도가 망가지고 발성기관까지 망가진 상태에서 숨을 고르는 건 힘들다. 이래서 내가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환상종이 아주 싫어. 산탄은 물론, 그 뒤를 이은 타격까지 깔끔하고 군더거기 없는 솜씨로 피해버린 환상종의 모습에 나는 넋이 풀리는 기분이였다.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 그것도 모자라 뒤로 물러나는 스텝에 브레이크를 걸더니 달려들며 대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달빛으로 물들은 대검에 맞으면 그대로 바닥에 뭉개져버릴 것 같다.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다가 그대로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역부족. 격한 움직임을 얼마나 했는지 호흡이 흐트러진지 꽤 오래되어서 눈앞이 빙빙 도는 느낌이였다. 톤파로 바닥을 짚은 상태로 숨을 몰아쉬다가 나는 톤파를 쥔 채 손가락만 이용해 간단한 약식으로 수화를 했다.
'항복이에요 단단하기도 무지 단단하고 빠르기도 빠르네요'
그것과 동시에 나는 톤파를 벨트 거치대에 걸어놓고 양손을 어깨 높이로 올렸다. 명백한 항복이였다.
저 늑대의 울음소리를 대강 번역해 보자면 ‘싫어’ 라던가 ‘웃기지 말고 가시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테다. 확실히 전달받은 의미에 웃음을 짓다가 쏘아버린 화살이 바닥에 내팽겨쳐지는 것에 아깝다는 듯이 쳐다본다. 공격이 빗나간데서 나온다기 보다는, 부러져 재활용이 불가능해진 화살 때문이였다.
“기억해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평소와는 다른 비웃음을 머금는다. 아나이스는 제 쪽으로 다가오는 에일린을 보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대강 짐작하곤 활을 양 손으로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곤, 달려드는 에일린에게 맞춰 들고 있던 활을 휘두르려 한다. 다만 에일린이 공격에 맞든 아니든 충격에 의해서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엔 없었지만.
“꽤나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운이 좋네. 설마 내가 혼자 여기서 돌아다니고 있겠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곧 증원이 올 거야.”
완벽히 피하지 못한 에일린의 발톱에 긁혀 찢긴 옷 소매 틈 새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온화하게 미소짓는다.
“흠, 생각해보니 좋은 거짓말은 아니였던 것 같아. 접근하면 냄새로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
거리를 벌리면 화살이 에일린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다 알아차리고 피해버릴 것 같고, 줄이자니 너무 불리했다. 아나이스는 잠시 고민하다 에일린 쪽으로 갑자기 달려가기 시작해 적당히 가까워졌다 싶을 때 쯤 화살을 쏘아보낸다.
내려쳐지는 대검에 바닥의 흙과 풀이 요동친다. 간신히 피하다시피 한 그녀는 결국 쓰러졌고, 후속타를 내기 위한 레이첼이 검 끝을 겨눈채 자세를 잡자 도신이 진동하며 달빛이 모여들었다. 이대로 찌르면 폭발과 함께 눈 앞의 심문관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녀가 손을 움직인다. 공격은 아니었다. 가파르게 숨을 내쉬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그것은 '말'이다. 레이첼 또한 이내 그것이 수화임을 알아챘고, 목에 나있는 희미한 흉터를 눈치챈것도 그때였다.
'항복하는건가.'
그러자 지금 잔뜩 지친채로 쓰러져 있는 것도 이해가 가는것이다. 여전히 기이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대검. 레이첼은 고민했다. 이 인간을 침입자로 보고 여기서 끝내야 할지, 환자로 보고 돌려보내야 할지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숲 지킴이가 할 일이란 물론 적대의사를 보이는 인간을 배제하는것. 여기있는 그녀 또한 그랬고, 시체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하지만...
"가라, 심문관."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결정을 내린듯,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며 제 검을 털어내듯이 허공에 휘둘렀다. 대검의 주위에 둘러싸여있던 달빛이 산산히 흩어지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신의 프라이머리를 해제 한 것이었다. 그녀의 공격은 다채로웠지만 허를 찌르거나 살기를 그득히 담고 있는 부분은 없었다. 눈 앞의 심문관이 하고자 했던것은 사냥이 아닌 명령. 거기에 노리는게 다른 환상종도 아닌 이 숲 지킴이였다면, 그것은 오히려 돌려보낼 또 다른 기회일테다.
"그리고 돌아와서 죽어라."
어쩌면 그저 나 자신에게 하는 합리화 내지는 변명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쓰러져있는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짜증 서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모습에 일부러 평온한 척을 한다. 속으로는 잘 됐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에일린과 활이 부딪혔을 때의 충격에 가볍게 아려오는 손목을 붙잡아 스트레칭하듯이 가볍게 돌린다.
“먹잇감 취급 당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리고 누가 쓰러질 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마소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도 싫어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에일린은 진짜로 먹을 생각일테니 더더욱 질색이였다. 저번에 워낙 거하게 당했던 것도 있었고. 비웃음을 보고 울컥했지만 가까스로 표정 관리에 성공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맞출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다시 또 빗나가버린 화살에 애도를 표할 시간도 없이 달려드는 에일린에 뒤로 물러서서 피하긴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닫고는 차라리 공격이라도 해 볼 요령으로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손에 쥔 뒤, 접근해 온 에일린을 향해 냅다 내리꽂으려 들며 활로 물어뜯기는 것을 방지해 보려 시도한다.
“무, 물어뜯거나 발톱을 휘두르는 걸 빼곤. 할 수 있는 공격은 없는가.”
힘 차이도 있었고, 게다가 한 손만으로 에일린을 밀쳐 내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비꼬듯이 중얼거린다. 이빨에 물린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수화를 못알아듣는건가. 아니 헨리 하이드 이 멍청아, 지킬이 들으면 등짝을 후려맞을 생각을 하고 있네. 네 수화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는데, 환상종이라고 알아듣겠어? 나는 톤파로 바닥에 필담이라도 적을 걸, 하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환상종은 대검을 내 쪽으로 겨누고 다시 그 빛인지, 달빛인지 알수 없는 것들을 모으고 있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죽나. 아, 인간을 일찌감치 때려칠걸. 헬리오스시여. 너무 자연스러운 생각을 이어가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추슬러서 그 공격에 쉽게 당해줄 수 없다는 뜻을 보이려 했다.
가라 심문관. 이라는 말과 함께 허공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는 환상종의 행동에 당황한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공격안하는건가. 일단은 살았나? 나는 그런생각을 하면서 톤파에 기대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선은 환상종을 바라보면서 아주 천천히. 산탄이 떨어진 두개의 톤파를 벨트 거치대에 걸어놓고 환상종의 발치에 떨어진 엠블럼을 바라봤다. 천은 베어져나갔지만, 저건 주워가야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니까.
나는, 환상종을 향해 한손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가 핀 뒤 그 발치에 있는 엠블럼을 가리키고 자신을 가르키려다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감. 사. "
간신히 말을 뱉은 뒤, 나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다시금 방금 전에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을 가르켰다. 바닥에 있는 엠블럼이 자신의 것이니 주워주면 고맙다는 뜻이였고, 당신에게 갔다가는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행동이기도 했다.
'그거 주워서 돌려주면 돌아갈게요 내가 받은 건 당신을 해하라는 명렬이였지만 내가 패배했다고 하고 좀 깨지죠 뭐'
이런 식으로 취급 당하는 것은. 영 불쾌해보이는 표정을 짓다가 공격이 성공한 데에 그나마 조금 풀어진 듯이 보인다. 그래도 완전히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는 건 아쉬웠지만.
“흡..그래, 잘 봤어. 멋지네.”
방금 전까지 박혀있던 이빨이 팔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고통스러움과 동시에 꽤 별로인 느낌이라 입가를 가리며 신음소리를 삼킨다. 정작 에일린이 뭘 하려고 했던 건지는 못 보았지만 실제로 궁금한 것은 아니였는지 대강 대답한다.
“안타깝게도 날 먹는 것은 실패할거야. 그래도 더 이상 귀찮게 사냥 할 필요 없게 해 주지.”
왜냐하면 여기서 내가 널 죽일 거라서. 덧붙이며 다친 팔로 용캐 화살을 시위에 재운다. 에일린과 눈이 마주치자 싸늘하게 표정을 굳혔다가 원래의 평온한 미소로 되돌아온다.
“하필이면 팔을 다칠 게 뭐람. 공격을 제대로 할 수가 없잖아.”
투덜거리듯이 중얼거렸지만 이 정도 다쳤다고 해서 명중률이 떨어질 린 없었다. 거리가 아주 멀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가까웠고. 힘겨운 척을 하다가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상처를 신경쓰지 않는 듯 연달아 두 번 공격을 감행한다. 처음 것을 피하더라도 그 뒤의 화살에 맞도록.
겨우겨우 육성으로 낸 짤막한 말이 끝나고도 자리를 뜰 생각을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찰나, 다시 한번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손.
"현명하군."
그 말을 무리 없이 알아 들은 레이첼이 바닥에 떨궈져 있는 엠블렘을 주워올렸다. 깔끔하게 잘린 끈의 절단면이 전투 당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명령이라곤 하나 거의 죽일뻔했던 환상종에게 주워달라고까지 말하는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물건이겠지.
"돌아가라. 마음이 바뀌기 전에."
감사를 표하는 헨리에게 엠블렘을 가볍게 던져 건네곤 돌아선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느껴지는 마소의 손실감. 인간일적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익숙해 지지 않는 묘한 감각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을 먹는 것을 피하는 레이첼에게 있어서 그 공백은 크다. 마치 세포 하나하나가 인간을 먹으라 소리치는 것 같았다.
걷어차인 부근이 뻐근한지 늑대는 작게 끄응 소리를 낸다. 털이 어느 정도 데미지를 줄여줘서 망정이지, 옆구리 부근을 맞았더라면 꽤나 데미지가 있을 뻔했으니까.
[글세요, 과연 누가 죽게 될지]
웃음지은 늑대는 그가 화살을 시위에 재우는 것을 마치 해 보려면 해 보라는 듯이 가만히 바라본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양새로 흥미롭게 꼬리를 살랑이던 늑대는 연달아 쏘아지는 화살을 앞발을 들어 내려찍는 식으로 첫번째를 막고, 두 번째 화살을 자신의 꼬리를 움직여 받아낸다.
[흐음]
꼬리에 박힌 화살을 이빨로 뽑아낸 늑대는 조금 더 뒤로 점프해 아나이스와 거리를 벌렸고, 발을 꼬리로 감싸는 자세로 앉더니 한쪽 앞발을 살짝 들며 달을 향해 크고 길게 울부짖는다. 그것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희푸른 털이 안개처럼 반짝이며 흩어지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는 거대한 늑대 대신 은색 머리칼과 늑대의 귀와 꼬리를 가진 청년이 서 있었다.
"아....진짜. 이 모습은 싫은데."
짜증을 내듯이 말한 은색 머리의 남성은 아나이스를 흘끗 쳐다보더니 자신의 꼬리에 박혔었던 화살을 주워 손에 들며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것을 아나이스의 복부를 노리며 던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