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은 늑대의 말에 어린아이처럼 꺄르륵 웃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지팡이로 바닥을 짚은 채 서있는 상태로 비어있는 장갑을 낀 손으로 털을 여전히 쓰다듬고 있었다.
"세에상에!! 달을 삼킨 늑대라니! 명칭이 아주 멋드러지는데요!!! 한번 숲의 모든 동물들을 죽여볼까요?"
듣기만해도 등골이 선득해지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과장스러운 제스처로 말하던 그녀가 주둥이로 자신을 밀치는 행동에 간단하게 뒤로 물러나서 지팡이를 가볍게 돌려서 제 오른팔에 걸쳐놓은 뒤 중절모를 툭툭 털었다. 맙소사, 늑대털. 시마, 저 털은 푹신푹신해서 기분은 좋지만 털이 날리는 건 사양이에요.
"미천한 짐승이라니요! 이렇게 멋들어진 늑대가 어디가 미천한가요! 그 발끝에도 못미치고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뱀파이어가 미천한걸요!"
장난기가 잔뜩 깃든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며 대꾸하는 늑대의 말에 비비안도 장난스럽게 대꾸하고는 짧은 하울링에 귀를 살포시 막았다. 사람보다 훨씬 큰 늑대가 하는 하울링은 늑대보다는 아니여도 인간보다는 뛰어난 뱀파이어의 청각에 크게 울린다. 그 상태로 서있던 그녀가 늑대가 인간형으로 돌아가자 털을 털어내던 중절모를 장갑을 낀 손바닥 안에서 빙그르르 돌린 뒤 다시 가볍게 은색 머리카락 위로 살짝 던져 가볍게 걸치고 꼬리를 정리하려고 하는 에일린의 목을 끌어안는다.
저번에는 시체를 찾아오라고 닥달하시더니 이번에는 환상종을 잡으란다. 아, 귀찮아. 진짜로 인간기피증이 혐오증으로 발달할 거 같다.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건 맞지만, 저런 소리를 들을때마다 내가 저런 것들이랑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환멸이 든다. 나는 커다란 나무 위에 가볍게 몸을 낮추고 앉아서, 주변을 둘렀다. 시야가 탁 트인 게 여간 장관이 아닌걸. 나는 잠시 풍경에 감탄하면서 윗선에서 잡아오라는 환상종의 생김새를 머릿속으로 되내였다.
그러니까. 저기 보인다. 나는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여서 떨어질듯한 자세를 취했지만 그저 거꾸로 매달린 채 이제까지 이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서 몇마리의 환상종을 상대하느냐고 텅 비어버린 톤파겸 산탄총에 산탄을 채워넣었다. 탄피는 이미 주워서 코트에 냅뒀지만, 그 코트가 어디쯤 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두개의 톤파중 하나를 환상종의 머리에 겨눈 뒤 방아쇠를 당겼다.
탕!
산탄총 특유의 귀가 쟁쟁한 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환상종의 곁을 스쳐지나갔고 나는 소리없이 혀를 차고 다시 겨눌 때였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고 그대로 다시 발사한다.
동물쯤이야, 인간을 사냥하는 것보다 손쉽다. 반항도 없고, 쉽게 죽고. 비비안은 아주 조금 서늘한 노을색 눈동자를 한채 여전히 에일린의 목에 매달려 끌어안았다. 시마, 시마. 뭔가를 줄게 있지 않았나요? 비비안은 잠시 멀뚱히 눈을 깜빡이면서 생각했다. 그 사이에, 들려오는 작은 갯과 동물이 내는 소리와 함께, 균형이 흐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능하게 균형을 바로 잡았다. 높지는 않은 구두였지만 아프지도 않은지 뒷꿈치를 들고 잘 매달려있는 게 신기할 정도.
"으으음, 알았어요. 그으러엄 어쩔 수 없죠!"
깔깔, 웃으면서 비비안은 자신의 포옹을 풀려는 에일린의 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풀어주면서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어느 나무 근처로 가더니 지팡이의 끝으로 바닥을 꾹꾹 눌러본다. 저번에 인간을 사냥하다가 얼떨결에 토끼를 죽인 것 같았는데. 아! 찾았다! 하며 매우 기뻐하며 손가락을 튕기더니 에일린을 향해 손짓한다.
"저번에 식사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도망가던 불쌍한~ 토끼씨를 아이쿠! 해버렸지 뭐에요~"
슬펐답니다. 라고 말하면서 비비안은 장갑을 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흑흑 우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지팡이로 다시 그 근처의 바닥을 톡톡 두드린다. 가늘게 뜬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있어서 저 슬퍼하는 것이 절대로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그으래서어! 비비안은 다시 지팡이를 제 오른팔에 걸치고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이렇게 묻어줬어요! 하지만 이 토끼씨도 이렇게 땅에 묻혀서 썩고 썩어서, 백골만 남아 양분이 될 바에야 어느 아름다운 은백색 털을 가진 늑대의 한입 간식거리가 되는게! 더 ! 낫겠다 싶어서!"
슬픈 마음을 부여잡고 에일린에게 말하는거에요. 머리에 살짝 얹은 중절모를 벗고 그녀는 정중하게 신사가 하는 것같은 인사를 하면서 나무 근처에서 살짝 떨어진다. 두개의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보는 에일린의 행동에 비비안이 쿡쿡 하고 가늘고 과장스럽게 연극배우처럼 웃었다. 자아! 간식이에요! 내가 나중에 근사한 사슨 한마리도 실수인 척 가져다놓을게요!
이 넓은 숲을 단신으로 감시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계속 돌아줄 필요가 있다. 그 사이에 빈 틈이 생기는 것이고, 심문관이나 사냥꾼에게 당하는 환상종, 길을 잃고 흘러 들어오는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바로 이 숲 지킴이를 습격하러 오는 자들. 다른 지점의 숲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을때 매우 이질적인 파열음과 함께 쇳조각 여럿이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인간의 총포였다. 습격이 시작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울려퍼지는 파열음. 레이첼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 손의 검을 휘두른다. 마치 어떠한 막을 치듯이. 날아오는 총탄, 그것도 산탄을 쳐낸것이었다. 환상종이라고 할지라도 총탄을 쳐내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닐터. 운 좋게도 첫 발이 빗나갔기에 어림짐작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간이 부었군."
양 손으로 쥔 대검의 도신에 푸른 달빛이 휘감겼다. 선명하게 요동치는 월광. 그것을 횡으로 넓직히 휘두르자 초승달 같은 형태가 되어 도신을 떠나 빠르게 날아가 나무의 기둥을 갈라내었다. 정확히 헨리가 올라 타 있는 나무였다. 고작 두 번의 총성으로 이 무수한 나무 중 하나를 짚어낸 것이었다. 나무는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한다.
나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흔들리는 눈빛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뭐야 저거. 산탄을 튕겨내? 일단 이 산탄도 축복 받은 건데? 그것도 검 한자루를 가지고 튕겨내다니. 미친, 진짜 윗선들은 미친게 분명하다. 저런 환상종을 나 혼자 잡으라고 보냈다 이거지? 내가 이러니까 인간들이 싫은거야! 달빛이 휘감기는 것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 이쪽이 있는 나무로 정확하게 초승달 같은 형태의 검풍인지 뭔지 모를, 선명한 무언가가 날아와서 나는 재빨리 매달려있던 다리를 떼어내고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쓰러지기 시작한 나무의 움직임에 몸을 굴려 완전히 나무가 쓰러지면서 내는 풍압이라던가 피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그대로 몸을 튕겼다. 하나의 톤파에 산탄을 끼워넣을 타이밍은 잡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올라타고 있던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산탄을 채워넣었고, 그 상태로 검으로 산탄을 튕겨낸 환상종을 향해 두 개의 톤파를 겨냥해서 방아쇠를 동시에 당겼다.
방금 전에 튕겨낸 게 우연이 아니라면, 또 다시 튕겨낼 수 있겠지. 환상종의 눈동자가 이질적인 푸룬빛이다. 자신의 옅은 분홍색 눈동자와 지나치게 정리가 안되는 악성 곱슬인 붉은 머리카락은 숲과 대비된다. 어쩔 수 없다. 이것마저 쳐낸다면, 어쩔 수 없는 정면돌파다.
키득이던 늑대의 꼬리가 살랑였고, 비비안을 향했던 눈빛은 그녀의 지팡이가 톡톡 두드리고 있는 바닥을 향한다. 저기 어딘가에 묻혀 있는 걸까. 작게 그르렁거리던 소리를 내던 늑대는 그녀가 친 박수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꼬리를 세웠고, 이어진 말에는 동감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흐음..."
비비안의 지팡이가 두드린 땅 근처에서 발길을 멈춘 그는 몸을 숙이고 눈을 반쯤 감으며 냄새를 맡으려는 듯이 킁킁거린다. 흥분한 듯이 꼬리를 움직이며 귀를 쫑긋이던 늑대는 손을 들어 땅을 파헤쳤고, 토끼의 시체라고 추정되는 무언가를 파낸 뒤 흙을 툭툭 턴다.
"이거 먹을 수 있으려나..."
중얼거린 늑대는 시선을 토끼에게로 주며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것의 반절 정도를 물어뜯어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