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는 짧게 짧게 단답으로 말하는 경우가 잦았으니, 때때로 이런 답변이 돌아오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별로 신경쓰던 일은 아닌 터라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곤 이어지는 말에 나직히 속삭였다. 어조에 있어 변한 점은 없었다.
"그런가, "
초콜릿을 한동안 안먹고 있었다는 걸 깨닫곤 포장을 까 한 입 베어물었다. 적당한 달콤함과 쌉싸름한 끝맛이 어우러졌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 쪽에서가 아닌 후배쪽에서였다. 곰곰히 생각하고 있던 거겠지. 그에 걸맞게 이어지는 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어서? 아니,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어떤 답이 있으리란 것 자체를 예상한 적이 없었으니 그럴 필요도 없지. 고개를 도리저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됐어, 사실 나도 뚜렷히 생각 안해봤어. "
어느정도 사실인 얘기를 했다. 어차피 너나 나나 아직 인턴이 코앞으로 다가오진 않았으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게 당연할 터. 실제로 나는 그저 잘 버티다 졸업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 후배의 프라이빗을 알지 못하는 나로써는 그저, 아직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정도로 판단할수밖에 없다.
"우리 얘기한게 무거운 얘기인 것 같진 않은데. "
분위기도 그닥 무겁진 않았고. 손을 도리젓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신경 안 써 난, 어쨌든 넌 대답을 했잖아.
묘하게 분위기가 누그러진 듯 소년은 미미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프라이빗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저 적당한 위치. 나쁘지 않은 사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중얼거렸다.
침묵이 긴 사람. 소년은 그저 평범하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졸업하면 어찌될지 모르니까. 초콜렛을 까는 영을 보다가 소년은 입안의 초콜렛을 녹였다.
"편합니다. 선배님과 있으면 말입니다."
소년은 성실하게 입을 열고 말을 뱉었다. 영이 걸음을 옮기는 것에 이번에는 나란히가 아닌 조금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소년이 초콜렛 포장지를 벗겼다. 이상한가? 그렇지만 단순히 편한 사람은 맞다. 본인은 말수가 없다고 하지만 소년은 그게 더 좋았다. 침묵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아니였으니까.
"예.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였습니다."
소년은 천천히 초콜렛을 입에 넣고 반듯한 자세로 영의 대각선 방향에서 영보다 한템포 느리게 걸음믈 내딛였다. 자정을 넘겼는지 하늘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히노키. 자신이 어리고 또 어렸던 때에는 그 이름을 부를 때면 마음이 들뜨곤 했었다. 그는 그만큼, 당시 헤이타 외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어리석었고.
"그렇구만. 나도 그렇지."
사이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바람도 쐴 겸 바깥 구경이나 시켜주려고...... 응? 바깥 구경을 시킨다고 했었나? 누구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 물으려 몸을 일으켜 앉던 차에, 그의 주머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삐이익. 거미가 소리를 내던가? 사이카의 시선이 그의 주변에 있을 거미를 찾았지만 소리의 근원은 아스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늘이 덮인, 부리 달린 뱀과 같은 생물이 거기에 있었다. 오캐미였다.
"음. 그러게. 오랜만인데... 요즘 어떻게 지내?"
그가 원래부터 오캐미를 키웠던가? 짙은 의문이 사이카의 머리를 스쳤다. 히노키에 관한 이런저런 상념이 주머니 속 작은 생물의 등장에 잠시 흐려졌다. 그것보단 어린 것 같은데, 새끼 오캐미는 어디서 데려온거야? 같은 생각으로.
"나는 뭐, 엄청 재밌었지. 닌텐도로 게임 했어."
머글 연구 수업을 들었고, 게임을 즐겁게 했지만 결국 게임기는 반납했다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어냈다. 슬펐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들었던 수업 이야기에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으, 바다 악사라니. 나 걔 완전 싫어하는데. 그냥 얌전히 게임이나 해서 다행이야. 그런데 그건 그렇고 걔는 누구야?"
결국 사이카는 끝내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했다. 히노키의 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이카는 오캐미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귀여우니까.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초콜릿을 하나 더 깠다. 어느정도 사실인 이야기이니 더 물을 거야 없었다. 초콜릿 하나를 더 입에 갖다댈 무렵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갸웃였다. 편한 사람인가, 편한 사람이라. 대답하는 목소리만으론 후배의 말에 의문을 품었는지 아닌지 알수없었다. 그저 나는 그렇냐고 대답했을 뿐이니까.
"그런가, "
이야 하영 완전 사람 다 됐네. 이제 말도 제대로 할 줄 알고. 다른 기숙사 후배한테는 편하단 말도 듣고. 그런데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어쩌면 서서히 변했을지도 모르지. 아마 상당부분은 담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변한 부분 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표정은 그랬다.
"그럼 된거야 그걸로. "
어느 쪽으로 걸었던가, 북쪽으로, 남쪽으로? 기숙사가 보이기 시작한 걸 보니 북쪽인 것 같다. 방향 감각을 헷갈리면 곤란하다. 자칫하다 후배를 먼저 기숙사에 보내줄 뻔했다. 시간도 슬슬 자정을 넘긴 터라 빨리 보내주는 게 옳다고 여겨 네게 고개를 돌리곤 말했다.
"너 기숙사 제때 들어갈 수 있겠어, 시간이 시간인데. "
슬슬 기숙사도 가까워졌고 해서, 그만 따라와도 좋다는 뉘앙스로 던진 말이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사건이 좀 많기는 했지만요. 사이카는 어떻게 지냈나요? 저도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있었던 많다면 많은 일들을 제외하면 그닥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큰아버님의 편지도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잊을 만 하면 오는 것이었기에 그것도 특별한 축에는 끼지 않았다.
“닌텐도라, 오랜만에 듣네요.”
하하, 게임 정말 좋아하나 보네요. 슬펐다 말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며 생각했다. 아직 가문에 들어가기 전 저도 한 번 해봤던 게임기였지. 아버지가 여러 칩들도 사줘서 여러 가지 게임들을 경험해봤었다. 그 중 마음에 들었던 건 ㅍ켓몬이랑 닌텐ㄷ스였다. 가문에 들어오고 나서는 하기는커녕 모습을 보지도 못한건 당연한 이야기고.
“흥미가 가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 비린내는 좀 그렇죠.”
그녀의 말에 대답하던 중 그녀가 주머니 안의 오로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긴 그녀는 처음 보는 것일 터였다.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간간히 볼 테니 그녀에게 소개시키는 게 좋겠지. 오로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