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전서구로 보이는 가면올빼미 한 마리가 기숙사로 날아왔다. 아마도 저에게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날아온 것일 터였다. 가문 내에서 제게 편지를 보낼 사람은 할머님과 큰아버님밖에 없을 텐데. 할머님께서 제게 편지를 보낸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할머님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전서구는 편지만을 전한 채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편지의 주인은 큰아버님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진한 피를 물려받은 저를 종종 심부름이나 대용품으로 사용하시곤 했다. 딱 물려받을 건 다 물려받았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인형인가. 어차피 대외적으로 저는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걸 이용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시키려는 생각인건지.
“음, 왜 그러나요?”
잠시 편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중 오로치가 제 옷깃을 물고 늘어지며 저를 바라봤다. 배가 고픈 건 아닌 듯 했다. 삐익, 오로치는 바깥을 바라보며 울었다. 처음 보는 바깥세상에 흥미가 일었나보다. 마침 아스타도 심심해보였으니 잠시 바람이나 쐬러 나가볼까.
밤이라 그런지 주위는 한산했다. 아직은 겨울이라 날이 추웠기 때문에 아스타는 망토모자 속에 들어가 있었고 오로치는 제 주머니 속에 들어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잠시 기숙사를 나와 바람을 쐬니 복잡했던 마음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좀 걸어볼 생각으로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곧 있으면 기숙사 내로 들어가야 될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래 걷지는 못하겠지만 잠깐의 운동정도로는 충분했다.
정말로 그렇게 여기며 말하는 게 어려울 뿐. 뭐가 나올지 뻔했기에 보가트든 바다악사든 내게 있어 공포의 대상인건 변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하는거야 간단하였으나, 일단 비추게 되는 순간 돌이킬수 없다. 이해 못하겠다는 네 말에 못해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농은 그저 농일 뿐이니 한 귀로 한 귀로 흘려도 그만인 것.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지, 큰 일은 없겠지. "
스스로에게 되묻듯이 나직히 말을 던졌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 여기고 싶진 않았다. 이 학원은 안전하다 여겼으니까. 안전해야만 했다. 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관심있다기엔……그래. 관심있다 치자. "
진로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분야는 아니었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무조건 그쪽이 아닐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약 역시 놓칠 수 없는 분야였기에 고민되지 않을 수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만약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면 나는 병원에 일을 얻고 싶었다. 치료사만큼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 어디 있다고. 여러모로 현무다운 선택이었다만. 안내해달라는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내는 무슨, 나도 잘 돌아다니진 않는데. 기껏해야 숲을 산책하거나 새 모이를 주거나, 그마저도 대부분이 숲에서 이뤄지는 일이었다.
"미안, 내가 너무 짧게 말했어. 넌 어디 지원하고 싶냐고 말하려 했는데. "
내가 너무 무뚝뚝하지,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위화감이 없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도 되지 않은 시간이니만큼 그리 늦은 때는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방 안에만 처박혀 있기에는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야외는 지나치게 춥고, 거기에 더해 어둡다. 막 밖으로 나설 때만 해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던 사이카는 문을 열자마자 불어오는 강풍에 얌전히 문을 닫았다. 음. 인간적으로 이 정도면 포기해도 되는 거 아닐까. 나갔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손해다. 적당히 합리화를 하고는 뒤돌아 복도로 돌아왔다. 바깥이 아니라면 달리 갈 곳은 휴게실 아니면 연회장 뿐이었다. 휴게실은 당연히 가기 싫다. 제 기숙사의 미친 학생들이 또 무슨 장난을 칠지 모른다. 자연히 목적지는 그곳으로 정해졌다.
자정이 가까워진 연회장은 고요했다. 저녁 식사 시간은 이미 끝난 지가 오래고, 오늘은 특별한 행사나 공지 사항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람 없는 넓은 공간은 적막한 만큼 싸늘했다. 후끈한 열기가 식고 난방마저도 약해진 연회장은 의자까지 차갑게 식어 있어서, 사이카가 막 이곳으로도 괜히 왔다는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아."
익숙한 목소리다. 인삿말이 조곤조곤한 말씨로 차분하게 울린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있는 사람은 역시 그였다. 자신이 외면했던 옛 친구. 다시는 모른 척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자신은 어리석게도 그를 보고 도망쳐버렸다. 멍청하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은 그러면 안 되었다.
"Hi, 여긴 무슨 일?"
그럼에도 겉으로 건네는 인사는 친근했다.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다리를 얹어놓고는, 사이카가 입가에 피식 웃음을 덧대었다.
언제나 나는 짧게 짧게 단답으로 말하는 경우가 잦았으니, 때때로 이런 답변이 돌아오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별로 신경쓰던 일은 아닌 터라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곤 이어지는 말에 나직히 속삭였다. 어조에 있어 변한 점은 없었다.
"그런가, "
초콜릿을 한동안 안먹고 있었다는 걸 깨닫곤 포장을 까 한 입 베어물었다. 적당한 달콤함과 쌉싸름한 끝맛이 어우러졌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 쪽에서가 아닌 후배쪽에서였다. 곰곰히 생각하고 있던 거겠지. 그에 걸맞게 이어지는 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어서? 아니,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어떤 답이 있으리란 것 자체를 예상한 적이 없었으니 그럴 필요도 없지. 고개를 도리저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됐어, 사실 나도 뚜렷히 생각 안해봤어. "
어느정도 사실인 얘기를 했다. 어차피 너나 나나 아직 인턴이 코앞으로 다가오진 않았으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게 당연할 터. 실제로 나는 그저 잘 버티다 졸업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 후배의 프라이빗을 알지 못하는 나로써는 그저, 아직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정도로 판단할수밖에 없다.
"우리 얘기한게 무거운 얘기인 것 같진 않은데. "
분위기도 그닥 무겁진 않았고. 손을 도리젓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신경 안 써 난, 어쨌든 넌 대답을 했잖아.
묘하게 분위기가 누그러진 듯 소년은 미미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프라이빗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저 적당한 위치. 나쁘지 않은 사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중얼거렸다.
침묵이 긴 사람. 소년은 그저 평범하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졸업하면 어찌될지 모르니까. 초콜렛을 까는 영을 보다가 소년은 입안의 초콜렛을 녹였다.
"편합니다. 선배님과 있으면 말입니다."
소년은 성실하게 입을 열고 말을 뱉었다. 영이 걸음을 옮기는 것에 이번에는 나란히가 아닌 조금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소년이 초콜렛 포장지를 벗겼다. 이상한가? 그렇지만 단순히 편한 사람은 맞다. 본인은 말수가 없다고 하지만 소년은 그게 더 좋았다. 침묵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아니였으니까.
"예.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였습니다."
소년은 천천히 초콜렛을 입에 넣고 반듯한 자세로 영의 대각선 방향에서 영보다 한템포 느리게 걸음믈 내딛였다. 자정을 넘겼는지 하늘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히노키. 자신이 어리고 또 어렸던 때에는 그 이름을 부를 때면 마음이 들뜨곤 했었다. 그는 그만큼, 당시 헤이타 외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어리석었고.
"그렇구만. 나도 그렇지."
사이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바람도 쐴 겸 바깥 구경이나 시켜주려고...... 응? 바깥 구경을 시킨다고 했었나? 누구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 물으려 몸을 일으켜 앉던 차에, 그의 주머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삐이익. 거미가 소리를 내던가? 사이카의 시선이 그의 주변에 있을 거미를 찾았지만 소리의 근원은 아스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늘이 덮인, 부리 달린 뱀과 같은 생물이 거기에 있었다. 오캐미였다.
"음. 그러게. 오랜만인데... 요즘 어떻게 지내?"
그가 원래부터 오캐미를 키웠던가? 짙은 의문이 사이카의 머리를 스쳤다. 히노키에 관한 이런저런 상념이 주머니 속 작은 생물의 등장에 잠시 흐려졌다. 그것보단 어린 것 같은데, 새끼 오캐미는 어디서 데려온거야? 같은 생각으로.
"나는 뭐, 엄청 재밌었지. 닌텐도로 게임 했어."
머글 연구 수업을 들었고, 게임을 즐겁게 했지만 결국 게임기는 반납했다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어냈다. 슬펐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들었던 수업 이야기에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으, 바다 악사라니. 나 걔 완전 싫어하는데. 그냥 얌전히 게임이나 해서 다행이야. 그런데 그건 그렇고 걔는 누구야?"
결국 사이카는 끝내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했다. 히노키의 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이카는 오캐미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귀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