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캔과 함께 고맙단 인사를 건넨다. 오늘따라 폐가 되는 행동만 하는 거 같다는 느낌에, 유혜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미니 초코바 하나를 유안에게 건네준다.
“ 자, 이건 유안씨한테 고마워서 주는 거예요. “
다시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유안을 보더니 유혜가 옅은 웃음을 짓는다.
“ 복사기 누님이라 부르면서, 기계가 되고 싶냐는 질문은 안아울려요. “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던 유혜가 ‘ 아. 별명이 마음에 안든단 이야기는 아니에요. ‘ 라는 말을 덧붙여낸다. 진솔한 이야기를 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을 더듬어도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익스퍼가 된 날 이후로부터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리도 진솔히 내 마음을 털어놓았던 일 말이야.
“ 그렇네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으면 다짜고짜 목부터 조르던, 메치던 했겠죠. “
이제는 제법 농담을 곁들일 여유가 생겼는지, 유혜가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도 다행이네, 극한까지 내몰리기 전에 뒷걸음질을 칠 수 있어서. 그녀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더니 다시금 고개를 들며 생각했다. 잠깐 유안의 미소가 스친 듯 했지만, 또다시 그 미소는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캔을 받아 쓰레기통으로 가볍게 던졌다. 총기류가 아닌 이상 명중은 자신없는데, 다행히 들어가주었다. 귀찮게 일어나서 다시 주워넣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유안은 안도의 한숨을 옅게 쉬었다. 그러다가 유혜가 고마워서 주는 거라며 미니 초코바를 하나 건네왔다. 멍청한 표정으로 잠시 초코바를 응시하다가 숨을 내쉬며 방금 캔을 버린 손으로 받았다.
"놀랍게도 옛날에는 그 복사란 걸 필사로 했죠. 그 점에서 아날로그와 관련 짓죠. 뭐, 사람은 복사하지 못했지만."
무게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유헤의 농담에는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냥 방금 받은 초코바의 포장을 벗겨서 드러난 간식을 입안에 넣는 것이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리고, 유혜의 질문이 왔다. 다 듣자마자 유안은 난데없이 "아, 초코바가 질기군요"라는 투덜거리는 말을 나지막히 흘렸다. 설마, 이런 질문이 올 줄이야. 초코바를 씹으면서 이마에 손바닥을 짚었다. 스스로에게 모진 이유라. 난감한 기색을 잠시 무표정에 비추었다. 이건 숨기려고 했는데 답하게 됨으로써 보이는 기색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하는 거지ㅡ에 가까웠다.
"...누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아니, 사실 제 자신의 일부가 싫습니다."
아까 유혜에게 진지하게 달변으로 말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느릿한 말투였다.
"무엇만 하면 부정적으로...포기부터 하려는 제 자신의 일부요. 그 일부는 사람도 싫어하고 자신도 싫어합니다. 엄청나게요."
이마에 대던 손바닥을 떼었다.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사실, 저는 언제나 제멋대로인 거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하지만 전에 말씀드린 그 사건 이후로, 방금 말씀드린 그런 일부가 저에게 생긴 것이죠. 거만했던 저는 그 일부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부를 혐오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이중인격 같다.
"웃기는 일이죠. 일부는 자신을 싫어했고, 본래의 자신은 그 일부를 또 싫어했습니다. 스스로를 좋게 대할 수 있을리가."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내렸다. 표정은 씁쓸했다.
"...저도 스스로가 확실치 않은 사람입니다. 본래의 저와 그 일부의 생각은 언제나 부딪치죠. 언제나, 불안정합니다."
아, 설명하기 참 어렵군요ㅡ투덜거리면서 하얀 김을 지켜보았다. 초콜릿은 맛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유안주도 머리 아팠다... 어쨌든 비설 하나 더 풀었다! 예!!(???)
저의 질문에 뜬금없이 초코바 이야기를 하는 유안을 보며, 유혜가 고개를 살짝 까딱인다. 살짝 난감한 듯 이마를 손으로 짚는 유안을 보며, 잠깐 괜한 질문을 한 것인지 자책하는 것 또한 빼먹지 않고. 자신의 일부- 라는 말에 유혜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곤 곧 뒤이어지는 말들에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느릿한 말투에서는 꽤나 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묻어나왔고, 그는 이마에 두었던 손을 내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 나는 유안씨처럼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말을 해줘야할지 고민이 되네요.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많이 힘들었겠어요. 그동안... “
몇 문장을 말하기 위해 속으로 수 많은 단어들을 생각해냈다. 어떤 단어가 적절할 지, 그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지. 생각해보면, 본인이 아닌 이상 어떠한 단어가 상처로 다가오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 나는 좋은 상담사도, 유안씨 본인도 아니여서 유안씨의 고통을 전부 헤아릴 수 없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지금만 해도, 내가 내뱉는 말이 혹여나 유안씨에게 상처가 될까 무서운걸요. “
수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어쩌면, 동질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차마 다 헤아리지 못 할 동질감.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유안씨가 말해줬듯 사람들은 모두 모순적이에요. 방금전 나만 해도 그렇고. ...나는 그냥 유안씨가 원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괜한 감정들은 다 내려놓고. 죄책감 같은 것도 내려놓고. 모든 것은 유안씨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
유혜가 차분히 숨을 골랐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하늘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확실치 않은 사람이니까요. ...내가 한 말이 유안씨에게 어떻게 와닿을 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런 유안씨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유안씨가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고. 아, 말이 많았네요. “
ㅡ역시 말하는 일은 제 전문이 아니에요.ㅡ 짧은 말을 덧붙여내며, 문득 눈에 들어온 성류시의 밤하늘을 마음에 새겨넣는다.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당신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모르죠.
자신이 지금껏 받아온 모든 걱정어린 시선과 말. 유안은 매정하게 돌아섰다.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필요 없다고. 어쩌면 그 말은 그저, 심리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자기자신을 향해 되뇌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야말로 모순으로 뭉친 인간이다. 사람다운 모순의 수준을 벗어나버린 추악한 모순. 그런 스스로가 또 싫었다. 혐오가 혐오를 낳는 악순환이었다.
어쩌면 유혜의 질문을 무의식 중에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의식 중에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솔직히, 힘들거든. 하루하루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않을 거라고 어린 나이에 연신 다짐은 했지만, 힘들었다. 아무리 스스로를 싫어한다고 해도. 아무리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한다고 해도. 인간이잖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내는.
두 사람의 죽음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한 명은 형이었고, 다른 한 명은 고등학교 선배였다. '이 둘은 자신을 비뚤어진 형태로 사랑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게다가 한 명은 자신이 죽음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한 번이면 모를까, 연달아서 두 번이나 그런 일이 터지니까 겁쟁이인 애송이는 더욱 두려워졌다. 정말로, 자신은 사랑 받아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고야 말았다. 덤으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이런 불안정한 자신이 누구를 사랑해도 괜찮을리가.
그렇게 유안은 '자신'을 형성하였다. 언제 힘없이 무너질지 모르는 형태로.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결국 모두 자신이 초래한 일이었으며, 그것은 자신을 더욱 혐오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악순환의 반복이다. 자기혐오란 원래 그렇다. 유안이 말하는 '일부'가 자신은 언제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다고 자포자기식으로 중얼거리다가도 본래의 자신이 놀라버려 그 '일부'를 향해 조소를 터뜨린다. 그리고 결국은 그런 '일부'를 가지게 된 자신을 책망한다. 매일매일이 엉망이다. 본래 가졌던 제멋대로에다 거만하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불안정한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그러나 속의 불안정한 실체가 견딜 수 있을까. 현재.
"...아, 그렇군요. 누님의 생각은 그렇습니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래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쩐지 쓸쓸했다. 공허한 느낌은 아니었다.
"위로를 받는 입장이 되는 건..."
서툴러서ㅡ라는 말을 입밖으로 미처 내지 못했다. 고개를 살짝 들더니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추었다. 벤치에 다시 등을 기대더니,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듯 싶었다.
"...질기지만 맛은 있군요, 초코바."
결국은 다른 소리를 내뱉고 만다. 유혜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이 도시는 밤하늘에 별이 이렇게 잘 보인단 말이지. 위화감 들게.
//좋아 이제 유안이는 정말로 숨길 거 별로 없어졌어!! 이번 레스에서 있는 거 다 털어놔버렸어!!(동공지진) 새벽이란 무서워...후덜덜... 이제 극복하는 일만 남았는데...이번 레스에서 보이다시피 유안이가...(흐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