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답에 태연하게 그녀는 되돌려 준다. 열어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 문을 직접 열어보려할 것만 같은 그녀의 성품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발언이 그저 겉치레가 아니라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다. 뒤로 부터 껴안 던 그녀는 나를 이리저리 살며시 꾸준하게 어루어만진다. 그녀의 신체로 부터 풍겨오는 높지도 낮지도 않는 묘한 차가움에 조금씩 몸이 살짝 살짝 움찔하고 반응하게 된다, 딱히 그녀의 손길이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그런 것 뿐이다. 예컨데, 반사적인 행동이랄까.. 뭐, 그런 것이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 내게 그녀 또한 마음에 들었는지 미성으로 흥얼거린다. 그러면서 그녀는 계속, 내 몸을, 특히 얼굴을 어루어 만졌다. 사실, 지금은 어루어 만진다기보다는 비비고 있다는 묘사가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그녀의 행동을 그대로 두었다.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정색하기도 좀 그렇고 딱히 싫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감사받을 만큼의 일을 아니에요..."
그녀는 내게 간단한 감사의 말을 전하자 나는 그렇게 답하고는 그녀가 언제까지고 이 부비적거림을 계속할 것인지 생각했다. 다만, 그녀 역시 이점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제서야 앞으로 해야될 것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듯이 그 일련의 행동을 멈추었다. 뭔가 아쉬워 보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예...그러면 장소를 옮길까요..."
그녀가 장난끼가 오른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엉켜붙은 그 신체를 떨어트려주자 바로 나는 그녀의 태도는 별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난다. 내가 일어난 그 순간 그녀는 정중한 태도로 허나 말은 여전히 장난끼가 든 상태로 내게 마치 멋진 신사가 숙녀에게 권하긋 내보이는 그 행동에 나 또한 응하기로 해주었다. 그때 순간 그녀의 탐스럽게도 붉은 빛이 도는 앵두와 같은 입으로 부터 흡혈귀 특유의 날카로운 보인다.
"예... 부디, 그러도록..."
나는 한번 그녀과 같이 정중한 태도로 치맛자락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동시에 고객을 숙인다. 그리고 치맛자락을 놓고 고개를 다시 들어올려 그녀를 바라보며 살며시 그녀에게 다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손바닥이 보이도록 뻗는다. 본래라면 내가 그녀를 안내할 위치였겠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는 경험이다.
그가 한탄이라도 하듯 중얼거린다. 그 고충을 레이첼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한때 노토스의 사냥꾼이었던 몸으로서, 그런 비극을 잘 알았으면 알았지 절대 모를리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것도 이제는 지난 일에 불과할 뿐이다. 이내 그는 입을 열어 답했고, 둘 다 알고 있었다.
"전자는 먹혔다. 후자는 내가 베었던 상대로군."
아무도 모르게 흘러들어와 사람의 육신과 마소를 탐하는 또 다른 환상종에게 먹혔을것이다. 인간의 앞에서 인간의 죽음을 고하는건 꽤 잔혹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 그게 그 두 종족의 관계였고, 때문에 일말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억양으로 찾아갈 수 있는 시체는 하나 뿐이라고 말해준다. 그것조차도 행운이라면 행운일테다. 레이첼은 땅에 꽂혀있던 검을 들어올렸고 도신을 제 어깨위에 얹히며 길을 열어주듯 옆으로 한 발짝 물러난다.
꺄~. 비비안은 정말로 거의 장난에 비슷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리시아에게서 굉장한 맞장구가 들어오자 그녀는 매우 즐겁다는 듯이 깔깔 소리를 높혀서 웃음을 터트리고는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슬그머니 훔치며 과장스럽게 악센트를 집어넣으며 희극적인 목소리로 감탄했다. 치맛자락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인다. 알리시아는 완벽하게 신사에게 에스코트를 받는 숙녀의 인사를 건넸고 손까지 내밀었다.
내가 이러니 알리시아를 좋아하지! 물론 그녀의 멋진 차와 달콤한 케이크, 과자도 망므에 들지만! 비비안의 웃음은 쉬이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키득키득 잔재처럼 남은 웃음까지 털어내고 나서야 비비안은 손바닥을 내민 알리시아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 따뜻한 체온이 검은색의 얇은 실크 장갑을 통해 전해졌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그녀는 이미 알리시아의 집 구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거침없이 그녀를 에스코트 했다.
웃음을 터트리면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도, 비비안은 과거, 인간이였을 적 봤던 신사들의 에스코트를 그럴싸하게 따라하며 알리시아를 응접실까지 안내하고 그 응접실에 있는 의자까지 빼서 장난스럽고도 정중하게 자리를 권한다.
"도착했답니다~ 아름다운! 레이디~"
비비안은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탁 하고 바닥에 부딪히고 과장스럽게 자신이 잡고 있던 알리시아의 손을 어깨높이까지 들어올리고 다시금 에스코트를 제안할 때처럼 허리를 깊게 숙이며 키득거렸다.
시이는 그저 평범하게, 그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굳이 이유를 만들자면... 그래, 그 전에 시몬이 탈주한 것 때문일까. 시몬이라면 분명 이 쪽으로 갔을 것 같으니 그 쪽으로 간다, 라는 심플한 이유 하에 그녀는 돌아다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탈주하지 않게 찾아서 제 자리에 앉혀야 하니까. 그녀는 본인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을 그다기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 진짜 어디 계신거죠..."
시이는 허공에 대고 그리 말했다. 그런다고 나오지도 않겠지만, 그냥 그렇게 해 보았다. 그렇게 하면 뭔가 좀 나올 지도 모르니까. 뭔가가 든 걸로 보이는 첼로 가방을 메고 있는 그녀는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그저 시몬을 찾을 뿐이었다. 주교님, 어디 계세요.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찾으면 일단 숟가락으로 한 대... 가 아니지. 나 지금 뭘 생각한 거야. 그건 거의 하극상...
한번 더 레오닉은 그 문장을 되짚는다. 그 소녀는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였지만 사리가 깊었다. 어느 이름 있는 부호의 손녀로 흔히 높으신 분의 총애로 가져질 법한 오해들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기에 장차 집안의 기반과 성정으로 뭇 인간들의 귀감이 되리라 예상했었다.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것에 대해, 레오닉은 자신의 지팡이를 으스러뜨릴 듯이 움켜쥐었다.
"나 혼자 간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즉각 신호탄을 쏘도록."
레오닉은 마차의 실내에 걸쳐 서서 그리 일러두고는 큰 자루를 하나 들고 내렸다. 땅에 쓸리듯하는 거대한 자루를 한 쪽 어깨에 짊어지고서 레이첼의 발걸음을 따라 숲 속으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