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복을 벗지 않은채로 방의 끝자락인 창가 쪽의 자신의 좌석까지 익숙한 발걸음으로 걸어가서는 서류가방은 책상의 한 귀퉁이에 올려두고 찬장에서 찻잎을 찾아 물을 끓인다.
"긴장 풀어, 너는 간단히 말하자면 초대 받은 입장이야. 그리고 실제로 이 무도회장으로 왔고, 긴장하기 같은건 아쉽게도 초대장에 없는 이야기야. 파티에 허락된 건 딱 하나 밖에 없어."
레오닉은 물이 끓는 것을 기다리면서도 시이를 향해 문제를 해설하는 듯한 단정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고, 손짓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레오닉의 해설을 듣노라면 누군가는 메타포를 좋아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홍차를 담은 찻잔을 마치 웨이터의 그것과 같은 폼으로 옅은 미소를 머금고 슬며시 시이의 앞에 서빙하고는 말한다.
"즐기는 거지."
그러고는 내가 더 즐기는 꼬락서니라며 멋쩍은 듯이 자리로 돌아가는 레오닉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개중에는 귀족정이나 에버초즌 그 자가 있다는것 정도는 알고있습니다. 다만 제가 왜 물었겠습니까. 애초에 다 알고 있으면서 그 자리에서 쏴죽이던지 추방을 했겠지요."
리코는 마치 뱀의 눈을 한것처럼 날카롭게 시이를 바라보고는 기분나쁘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고있는 모양세였다.
"아뇨.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대신 당신도 지금부터 하는 말은 입밖에 내지말아주세요. 안그럼 지금 이자리에 있는 둘다 모가지가 뎅겅 잘려나가버릴테니까."
다만, 리코는 방금전에 말이 상당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도망이라. 그걸 누가 허용한다고 했던가. 사방이 새벽과 태양의 손아귀속인데 도망이라는 말자체가 허용이나 된다는 것인가.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고 리코는 정말이지 딱하게 여길뿐이었다.
"나는 표면적으론 강경파지만, 실은 다른 목적이 있답니다. 다만, 여기서 부터 듣는 내용에 따라 당신은 알맞은 절망의 운명을 걷게됩니다만, 어디까지 들려줘야할까요? 안전한게 좋겠습니까? 운명에 휘말리겠습니까? 다만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면 저는 당신을 보호해줄 방법이 없답니다. 운명에 휘말린다면 제가 당신을 보호할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목숨은 각오 하셔야겠지요. 만약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하시면 정말로 저는 강경파로서 대할테고요."
아무튼 뭐 시이 과거사 이참에 화끈하게 털죠. 시이는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내오던 환상종이 있습니다. 환상종에게 친근한 것도 그 때문이죠. 본인은 그 대상을 기억하기 싫었기에, 거의 기억하지 않고 무의식속에 어렴풋이. 정말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얼굴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그 애는 14살까지 그 집에 있었고, 14살에 시이가 나가서 안 돌아오는 틈을 타 시이의 어머니를 (검열삭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표현하기엔 너무 잔인해서 뭐라 못 하겠네요.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고 간단하게만 한다면 食. 입니다... 아무튼 그 상태에서 시이는 돌아왔고, 돌아와서 보인 그 풍경에 멍하니 있다가 자신까지 살해당해 먹힐 위기에 처하자 근처에 있던 포크와 나이프 등등으로 푹푹 찔렀습니다. 최초의 살해였죠.
비비안은 즐거운듯 코웃음같은 흥겨운 감탄사를 흘렸다. 지팡이검을 휘두른 그상태로,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베싯 웃는다. 그녀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되려 그 알수없는 과장스러운 제스처, 마치 검을 쥐고 춤이랃느 신청하는 것 같은 괴상한 자세를 잡고 비비안은 장갑을 낀 손 검지를 제 입술에 대고 가볍게 훑었다.
"불건전하면 혼낼 생각인가요! 아, 좋아요. 결정했어요 미스터 데릭!!"
비비안은 나무에 그대로 몸이 틀어박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신과 거리를 좁히기위해 달려드는 데릭을 향해 깔깔, 소리를 높혀 웃어재꼈다.
"당신은 어떤 맛일까?"
그러니까, 저 시마가 사알짝만 맛봐도 되요? 코앞까지 들이닥친 데릭의 모습에도 그녀는 검을 휘두르기는 커녕 아주 즐겁고 유쾌하다는 연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흥격운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고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시이는 매우 당황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내가 아예 다르게 대했겠지. 에이, 잠깐만. 말도 안돼. 그럼 내가 아는 그 셋 중에서 에버초즌도 있고 귀족정도 있다고? 진짜로? 알고 있는 환상종이 셋 뿐인데 그 셋 중에서 에버초즌과 귀족정이 있다니 이건 무슨... 일단 그녀는 리코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듯 들었다.
"......네. 일단, 그 말 잘 이해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제가 할 대답은. 운명에 휘말리되, 당신의 보호는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유는 묻지 말아주세요, 그저 나에겐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럴 뿐이니까. 전 저로서 저답게 행동하고 싶어요. 남의 보호를 받는다는 건, 곧 제 권리가 그만큼 없어진다는 것도 의미하니까."
일단 시이의 상태는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으로인해 그녀ㅢ 두뇌가 본능적인 자기방어 기재로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심층 무의식 속에 잠궈버렸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잊는 거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뇌가 현실을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서 정신이 무너지 않도록 반발력을 내는 걸껍니다.
오늘도 그는 정처없이 국경 지대 지역을 떠돌아 다닌다. 얼마전, 라이칸-슬로프 새끼를 구해주면서 알게된 이상한 녀석이 있던 도시는 이미 등진지 오래다. 여관에 치른만큼 숙박도 했겠다. 당분간은 또다시 유랑 생활의 연속이 될터이다. 애초에 여관비를 받은것도 라이칸-슬로프 어미에게서 미리 감사하다며 받은 선금 비슷한 물건이니까. 참고로 아이를 되돌려주고 수상한 인간과 헤어진뒤 나중에 다시 어미가 그에게 찾아와 식료품도 선물 해주었다. 이런걸 본다면, 인간일 시절 알지도 못했던 환상종의 모성애도 알 수 있었다. 그 시절 그에겐 환상종이란 맹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인과 응보란 이야기인가."
그는 자신이 한 혼잣말이 웃기기라도 한지 훗 하며 웃으며 품안에서 수통을 꺼내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식도를 긁고 지나가는 술이 사고를 일시적으로 일그러트린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해서 자살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형용하기 힘든 이형의 환상종에게 습격당하는 인간들을 보왔다. 그에게 생각할 시간이란 없었다.
-히이익!!! -도망쳐!!! -무서워!!!
"하아...하아..."
한평생 그가 사용하던 태도에는 환상종의 피가 가득 묻어있다. 도망치는건 자신의 뿔을 보고 도망치는 인간들이었다. 이런 수라장을 살기로 결정했을때부터 겪어왔던 일이다. 몇백년간 겪어왔지만 인간에게 거절받는 일은 그에겐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