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왈츠는 즐겨듣는 편이 아니라서, 춤에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말이야. 음악 정도는 들어봤으니, 한 번 맞춰보도록 해볼게?
그녀는 날 무시하려는건지, 별로 위협을 못느낀건지. 그저 자신의 드레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얕보이는건가. 얕보이는 남자는 인기 없는데 말이야. 내가 너무 머저리같이 살아서 그렇겠지 뭐. 긴경쓰지 말자.
" 뭐 그럼, 먼저 가보도록 하지. "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나뭇가지에서 용수철처럼 몸을 튀겨 그녀의 바로 옆으로 착지했고, 몸을 멈추지 않고 그녀와 얘기했듯이 마치 춤을 추듯 곡선을 그리며 해체용 칼을 움직였다. 칼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살갗을 노리고 있었지만, 자금 우리가 추는 춤의 곡은 아마, 진혼곡일지도 모르니.
싸늘한 국경지대, 그중에나마 왁자지껄한 정취가 풍기는 인간들의 여관으로 요리미츠는 발걸음을 돌렸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몇몇 일행을 기다리던 자들은 그를 바라본다. 반면 환담에 취해, 시끄러운 이곳의 분위기에 취해 저마다의 테이블의 분위기에 취한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 요리미츠의 분류를 정하자면 그 어느것도 아닌 소음의 숲에서 쉬고자 하는 외톨이 쪽에 가까웠다. 등에 매달린 큼지막한 태도를 흘낏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상당히 큰 키가 주목을 더 끈 것 같지만, 이러한 시선을 받는것도 그에겐 하루이틀이 아니다. 여관장이 있는 바 앞에 앉자 터프하다는 인상을 주는 수염이 인상깊은 주인장의 인사말이 들려왔다.
- 이것참, 덩치가 큰 선생이구만, 대실이요? 아니면 그저 먹고 떠나는 쪽이요?
요리미츠는 대답대신 품안에서 세련되 보이는 수통을 꺼내곤 자연스레 따서 벌컥벌컥 마신다. 뚜껑을 열자마자 주위에 퍼지는 술냄새로 미루어보아 저안에 든 것은 필시 왠만한 술고래도 뒷걸음질 칠 물건일테지 하면서 주인장은 피식 웃었다. 한모금 목을 축이고 나서야 요리미츠는 담백한 저음으로 이야기했다.
"감자 스튜 하나에... 그래 적당한 고기류 하나를 부탁하지, 그리고.."
요리미츠는 다시 한번 술을 한 번 마시곤 이야기했다.
"이삼일치 돈을 낼테니 방을 하나."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서 요리미츠는 품에서 돈을 테이블위에 올려두더니 또 다시 술을 마신다. 그러자, 주인장은 한숨을 쉬며 열쇠 하나와 물 한잔을 그에게 건내곤 이야기했다. 정말 그의 눈엔 요리미츠가 그저 흔한 술 주정뱅이 나그네로 보였던듯 했다.
- 2층 제일 안쪽 방이요. 것참 주정뱅이인것도 정도가 있지 그 수통의 술,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냄새 맡는걸로도 코가 비뚤어 지겠슈, 제발 선생 사고 치지 말고 이거라도 마셔서 취하지 않게 하쇼.
주인장이 건낸 물잔을 뚫어져라 쳐다 보던 요리미츠는 미소를 지으며 그 물을 원샷 했다. 그러더니 약간 어이 없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 내가 술이 길지 못한걸로 보이나? 나는 술에 먹히진 않아, 술을 삼키지. 주인장 걱정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살면서 딱 한 번 취했다. 그래, 딱 한 번 그 정도면 충분하지. 걱정일랑 하지말고 시킨거나 가져다 주게"
이야기하자면 그 이후로 난 계속 취해있다....딱히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다.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모든 걸 말할필요는 없다 생각한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곤 주인장에게 식사를 재촉했다.
들고 있는 종이에는 숱한 얼굴들이 가득했다. 제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모습에는 어느 이는 코가 큰 민족도 보였고 또 누구는 그로부터 시작한 한 사이클을 순환하여 다시금 옆동네의 민족으로 되돌아는 식으로 여러 얼굴들이 존재했다. 그 옆에는 짤막하거나 장황하거나 소개문구와 약력 따위가 즐비했는데 너무 깨알같이 쓰여있어 맨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단심문관의... 어쨌든 반갑다."
말을 흐리는 쪽빛의 남성은 불가항력적이었다. 명백히 공식 석상에서나 서류 상에서 보았을 법한 사이였고, 특히 비밀기관인 이단심문관은 상부측에서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의 전장에서 마주친 사이일 수도 있을테지만.
"인사평을 보는 중이지. 집무실이 지겨워서 나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날이 그닥이군 그래. 넌 어떻지?"
그렇게 그 남자의 눈동자와 눈가에 깊게 패인 그림자가 소녀를 향했다. 안경이라는 보조품에 희석 되어지고 있기는 해도 레오닉의 무기질적임이 완전히 사그라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머나, 가장 기본이 되는 춤을 모르시다니, 미스터 -. 에스코트를 할 준비가 아예 안되셨군요?"
실망했어요. 비비안은, 데릭의 말에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추슬러서 한손에 모아 쥐고는 장난스럽고 과장스럽게 두어번 스텝을 밟아보였다. 이런 스텝인데. 아쉬워라. 그녀는 끝까지 장난스러웠다. 데릭이 먼저 공격하기 전까지, 아니면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넘어올때까지. 그녀는 신랄하면서 장난스럽고 과장스러운 목소리와 행동은 계속할 생각이였다. 그녀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뭇가지에서 튕겨져 자신의 옆으로 떨어지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해체용 칼을 춤을 추는 것 같은 우아한 곡선으로 움직이는 걸, 바닥에 떨어지려는 숄을 줍기위해 우아하게 스텝을 밟으며 몇개의 궤적은 우연히라고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우연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칼에 스친 소매가 없는 드레스로 인해 완전히 드러난 팔에 깊게 상처가 몇개 나는 것을 보고 꺄르륵 - 하고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맙소사, 세상에. 이-럴-수-가. 미스터, 너무 과격한거 아니에요? 이런 춤에는 탬포 맞추기가 힘들잖아. 목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고 놀랐네요. 미스터 데릭, 내가 꽤 꾸준히 '식사'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어요?"
그녀의 베인 상처에서 곧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천천히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했고, 비비안은 제 날카로운 송곳니를 혀끝으로 살짝 핥는 시늉을 해보이며 치맛자락을 쥐고 우아하게 데릭과 거리를 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과장스러운 제스처로 그녀는 바닥에 꽂아넣었던 지팡이 검을 양손으로 들어올리자 검은 불꽃이 칼날을 감쌌다. 주력은 아니니까. 비비안은 굉장히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검은 불꽃을 감싼 지팡이 검을 양손으로 잡고 그에게 휘둘렀다.
시이는 그렇게 말하곤, 인사평을 보고 있다는 말에 잠시 의아한 듯 하다가도 가만히 레오닉을 바라보았다.
"집무실이 지겹다라. 저는, 그저... 그냥, 옛 생각이 나서. 생각을 정리할 겸 해서 나왔습니다."
옛날, 어머니가 곁에 있던 시절. 그 때는 행복했었는데, 그 때는 좋았는데. ...만약 그 때 내가 집 안에 있었더라면 나는 어머니와 함께 죽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그랬다면... 레오닉의 무기질적인 모습이, 시이는 그저 공허하게만 보인다. 차가운 한겨울? 아니, 초겨울에 가까울까. 아직 가을 같고, 춥다기엔 애매하여 두껍지 않게 입었지만 막상 나와 보니 시린 공기가 코를 타고 폐부로 들어와 허파를 찌르는. 그런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