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숲으로 나갔습니다. 날이 오늘따라 좋아서 말이죠. 그렇게 산책하듯 계속 걸었습니다. ...아 물론 혹시 몰라서 무기도 챙겼습니다. 위험한 것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숲을 걷다 보니, 타박타박하는 제 발소리가 아닌 타인의 것이 분명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
누구인가, 싶어서 일단은 스푼을 들었습니다만 그 곳에서 보인 건 분홍빛 머리의 남성입니다. 희야군요. 어릴 적부터 만나온 사람이라서 그럴까 이젠 익숙합니다.
오늘따라 날이 좋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름 없이 햇살은 내리쬐고 하늘을 푸르렀지만, 오늘은 참 날이 좋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 날이 좋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희야는 오늘도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자신과 같은 환상종들의 하루를 지켜보고 자신의 화원으로 나가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똑같이 반복하는 일상은 특별한 사건을 원할 여유 조차 없었다. 그에게 특별한 사건따위는 과분한 사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숲은 희야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나무와 꽃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바람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늘 그렇듯, 희야는 숲에서 누구도 신경써주지 않는 아름다운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있었다.
“ 아, 시이? 오랜만에 온 거 같네. “
너른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희야는 늘 그랬듯 풀밭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이름 모를 꽃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그의 존재를 인정받는 시간이었다. 희야는 천천히 눈을 뜨고 제 앞에서 스푼을 들고 서있는 시이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38 공적인 자리에서 오빠라 불렸다 희야 : 아니에요... (에오스 눈치보기 참, 시이는 희야가 과거에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나무였고 인간이 된 지금의 나이도 셀 수 없이 많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걸로 할까, 아니면 그냥 잘 몰라서 외모 나이로 때려맞추고 어련히 이십대겠구나~~ 하는 걸로 할까!?
날이 좋은 오늘, 그녀는 희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스푼을 거두곤 희야와 이 자연의 모두에게 웃으며 목례한다. 아아, 오늘도 날이 좋구나. 오늘도 즐거운 날이 될 것 같아.
"나무가 겁먹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건 거둘래요."
시이는 그렇게 말하며 희야의 곁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조심조심 앉았다. 혹시 자연이 내 무게에 아파하진 않을까 조심하며, 나에 의해 깔려죽어버리는 꽃이나 풀잎이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앉은 곳은 마침 아무도 다치지 않을만한 곳이었다.
"오늘은 별 이유 없이 그냥 와봤어요. 산책이라고 할까요."
조금 사느랗다 싶은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였다. 바람도, 날도 좋아서 이대로면 훌쩍-, 어딘가를 떠나가고 싶었다. 내가 있을 곳을 향해 떠나가고 싶어서 온 곳은 언제나 숲이었다. 나는 숲도 바람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곧고 곱게 뻗은 나무들이 흐드러진 꽃들이 다정하게도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서 와, 라고.
희야가 연한 보랏빛 눈동자를 빛냈다. 그 시선의 종착점은 시이였고, 그는 시선을 다시 제 옆의 나무로 옮기며 다시금 미소를 피워낸다. 오늘은, 드물게도 기분이 좋은 날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일까.
“ 고마워, 이 아이들도 너를 보고 싶어 했어. “
희야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울려퍼져 안개처럼 녹아 내린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자신의 옆에 앉은 시이를 바라보았다. 혹여나 자신에 의해 희생되는 자연이 있을까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니 살풋 미소가 떠오른다. 재잘거리는 웃음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 작게 대답을 중얼이자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 그래?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으니까. “
‘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환상종의 우두머리 ‘는, 그들에게 있어서 별 쓸모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의 눈을 피해 유유자적히 숲에서 자연을 돌보며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평화를 그려내는 것, 그것이 그의 고작이자 전부였다.
“ 앞으로는 더 자주와, 이 아이가 널 보고 싶대. “
손을 천천히 뻗어 제 옆의 풀들을 부드럽게 쓸어내자 곧 아름다운 장미가 몇 송이 피어난다. 희야는 여전히 그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맙네요. 절 보고 싶어한 아이들이 있다니. 앞으론 더 자주 올게요. 더 자주 와서, 희야 오빠도 보고 이 아이들도 보고. 꼭 그럴래요."
그녀는 그리 말하곤, 주위를 가만히 살피다가 언제나 여기에 있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곤 말합니다.
"저도 언제나 이런 평화로운 곳에 있고 싶지만... 그건 역시 힘들까요. 저는 이단심문관, 이니까... 원래대로였다면 환상종인 희야 오빠랑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안돼는 거였겠죠?"
시이는 그렇게 말하곤 한숨을 쉬고는 바람을 손에 쥐어 보려는 듯이, 잡히지 않는 바람결을 제 손에 담아 보려는듯이 손을 살랑, 또 살랑살랑 공중에서 천천히 젓는다. 앞으로는 이 곳에 더 자주 와야겠다, 역시. 이렇게 따뜻하고 온화한 자연이 날 맞아주는데, 오지 않을리가 없는걸. 이런 평화가 난 너무나도 좋은 걸. 그러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시이가 일을 하다 지쳐버리면, 평범한 10대 소녀로서의 시이로 이 곳에 오는거야.
희야가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느샌가 제 주위로 날아온 노란 나비를 바라보더니, 다시 제 옆에 앉은 시이를 바라본다. 희야는 시이의 말에 두 입술을 앙 다물었다. 다만 지그시 눈을 감고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무거운 침묵을 흘려보낸 뒤에야 천천히 입술을 떼내고 만다.
“ 어쩔 수가 없으니까, 넌 인간이고 나는 환상종 이니까... “
내가 외치는 평화는, 과연 무엇일까. 표면적인 평화라면 지금도 별반 다르진 않을 것이다. 아니, 나는 모두의 화합을 바란 거였는데, 이 꽃과 나무들처럼 공존하기를 바란 거였는데..., 희야가 고개를 살며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알겠지, 이 상황의 해답을.
“ 하지만, 너는 나를 환상종이 아닌 친구로서 대해주고 있잖아? 그거면 되는거야. 우리는 모두 같은 소중한 생명이고, 너와 나는 친구이니까... “
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바라는 평화와, 네가 바라는 평화. 달콤하고도 씁쓸한 목소리가 희야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희야는 그저 커피의 뒷맛같은 미소로 당신을 위로할 뿐이었다.
“ 요즘 안좋은 일 있었어? 얼굴이 안좋네. “
느릿한 말투, 희야가 아까와 같은 흐릿한 미소 아래에서 방금 자라난 꽃 몇송이를 내밀었다. 각각의 아름다움이 생생한 꽃은, 생명을 머금고 있었다
희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느릿한 목소리 사이로 희야의 흐릿한 미소가 엿보일지도 모르겠다.
“ 응, 그렇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들의 싸움에 말려든 우리는 아무리 애를 쓰고 죽을 만큼 싸워도 승기를 잡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이. 그렇게, 체스판에 선 말들과 같이 제 몸을 버리며 주인을 위해 헌신하다 박스 안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어버릴 거란 생각이. 아, 잔인하신 분들이여. 그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할 싸움을 이기기 위해 악을 쓰는 어린양들이 보이지 않으시는건가요.
“ 이런, 불면증? 피로를 풀어주는 풀이... “
희야가 천천히 두 눈을 깜빡이더니 왼 손을 뻗어, 두 손을 오므렸다 천천히 펴낸다. 새하얀 그의 손아귀 속에는 석창포라는 초록빛 생기를 머금은 풀들이 한움큼 쥐여져 있었다.
“ 베개 아래에 두고 자거나, 차를 끓여 먹어도 좋아. 잠이 잘 오고 마음이 진정되는 풀이야. “
물론, 머리맡에 라벤더 같은 향이 좋은 꽃을 두고 자는 것도 좋아. 희야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 요즘에는 따로 키우는 식물이 있어? “
문득, 처음 만났을 때 시이가 쥐고 있던 화분이 생각났다. 말라 죽어가던 그 아이는, 지금 빛나는 생명을 품고 있겠지. 아릅답게 빛나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의 눈은 인류라는 대국의 정부 사옥이라는 귀티나는 사무실보다 더욱 화려하고 기품 있는 금발벽안의 훤칠한 청년으로 향했다. 이전에 얼추 마주쳤던 때에 비하면 쾌활한 왕자님의 아우라는 조금 덜해졌지만, 자욱한 커피향과 가득한 서류 뭉치를 보고 나서는 더없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레오닉은 자기 앞의 주교를 향해 헬리오스를 신봉한다는 의미의 성호경을 흘리듯이 그었다. 다분히 의례적인 행위로, 그는 신심은 해이함과 성실의 그 사이 어딘가였다.
피곤한 듯 눈가를 비비다가, 하암 하고 하품을 한 번 한다. 그러다가 이내 석창포를 한 움큼 쥐고 있는 그를 보더니 웃는다.
"...네? 아아, 그렇구나... 고마워요. 그러면... 음... 계속 머리맡에 두고 잘래요. 그보다 요즘은 따로 키우는 식물이라... 있어요. 방 안에 화분 투성이인걸요. 헬리오트로프, 개망초, 그리고 딱히 키우는 건 아니지만 제가 사는 곳 근처에 클로버도 있길래 물도 주고 있고."
주교. 이 인간의 땅 노토스를 움직이는 양광신성회의 거물들. 그 중의 둘이 만났다면, 셋 전원이 만나는일도 그리 우연은 아닐터였다. 라기보다 지금 이렇게 뚜벅뚜벅걸어 사법을 담당하는 주교의 방문을 걸어오는 여자, 누군가는 피안의 뱀으로, 누군가는 희망의 성녀로 부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면모를 가진 리코에게 있어 슬슬 시몬과도 만날 겸해서 미리 행정을 담당하는 레오닉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은 친선을 도모하려고 몰래 준비해둔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다들 안녕하신지?"
리코는 복도의 창가로 바람이 불어 나부끼는 물빛의 머리를 정돈하고는 두 남자에게 예의바른 인사를 한다. 말로만 희망의 성녀가 아닌것인지, 그 면모에있어 결점하나없는 예법을 따른 그자체였다.
"그러고보니까 저 라일락이랑, 기린초 같은 것도 키워요! 기린초는 노란 별 같은 게 너무 예쁘거든요. 라일락은 향이 너무 좋고요..."
시이는 그리 말하며 방실방실, 어릴 적의 그 소녀 마냥 웃어보입니다. 그러다가도, 희야에 말에 부끄러운 듯 모자를 벗어 그 모자로 얼굴을 포옥, 덮습니다.
"꼬마라니. 갑자기 왜 어릴 적 얘기를 꺼내요, 희야 오빠..."
시이는 제 얼굴에서 모자를 치웁니다. 모자를 얼굴에서 치우자 나온 얼굴은 어쩌면 삐진 것도 같아보이는 모습입니다. 입을 비죽이며, 뺨을 붉히고 있는 것이 꽤나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하긴 갑자기 어릴 적의, 식물 다룰 줄 모르던 꼬마 시절 얘기가 나오니 조금 부끄러울 만도 했겠죠.
"...그보다 그늘이요? 음... 하긴, 햇볕이 좀 세긴 하네요. 그늘, 만들어주신다면 고마울 것 같아요. 희야 오빠."
그러고보니까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게, 희야는 벚꽃색의 고운 머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고운 색입니다. 평생을 지나도 갖지 못할. 모두들 너무나 예쁜 색을 가졌는데, 저는 그다지 예쁘지 못한 것 같아 잔잔했던 호수에 작은 돌이 던져져 파문을 일으킨 마냥 고요했던 기분이 흔들흔들 변해가는 느낌입니다.
희야가 다시 한 번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에는 그 어떤 그림자와 부정도 없었다. 정말 깨끗한, 자연과 같은 웃음이었다. 꽃이라면 어떤 아이던 안좋아하겠냐만은 라일락은 그가 특히나 더 좋아하던 꽃이었다. 라일락이 잘 어울리는- 아, 그만. 희야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시 그 너른한 눈으로 시이를 바라본다.
“ 십년이면 엊그제 이야기지. 그때는 희야오빠, 희야오빠 하면서 따라 다니는 게 정말 귀여웠는데. 아, 물론 지금도 귀여워 “
부끄러워진 듯 모자를 푹 눌러쓰는 시이를 보며 희야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다시금 모자를 치워내자 장미꽃 색으로 물든 두 뺨이 햇살에 비추어진다. 희야는 그런 시이를 보며 쿡쿡, 장난스런 웃음을 그려낸다.
“ 으음, 잠시만... “
희야는 천천히 몸을 펴 일어난 뒤 시이에게서 두세 걸음 정도 떨어져서는 느긋히 그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두세걸음도 채 되지 않을 공간을 잠시 빙빙 도는 가 싶더니, 나무 한 그루 정도가 있으면 좋을 듯한 공간을 발견해냈다. 여기가 좋겠네, 볕도 잘 드는 자리이니 나무가 더 자라나기에도 나쁘진 않을 작은 공간. 희야는 몸을 숙여 햇빛에 반짝이는 풀들을 한 번 쓰다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시이의 옆에 풀썩 앉아버렸다.
“ 자, 신기한 거 보여줄까? “
그늘을 만들어준다던 사람은 어디가고, 희야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는 시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는 시이의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살짝 손가락을 퉁겨냈다. 방금 전 희야가 손으로 쓸어내렸던 자리에는 아까까진 보지 못했던 작은 새싹 하나가 피어 올라 있었다. 너무도 작고 여려서, 금방이라도 짓밟힐 것만 같은 새싹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가 들려오자, 새싹은 푸르른 빛을 머금더니 마치 시간을 빠르게 돌리는 듯 자라나기 시작했다. 작고 귀여웠던 새싹은 어느새 꼬마아이의 키 정도로, 그리고 또 다시 성인 남성의 키 정도까지 올라오는 어린 나무로, 그리고 또 다시 자라나 어엿한 벚나무로. 몇 십, 몇 백 년을 걸쳐 일어날 나무의 성장은 채 오분도 되지 않을 시간에 마침표를 찍어냈다. 그 과정을 보는 기분은, 신비하면서도 어딘가 석연찮았지만. 하지만 어떠하랴, 만개한 벚꽃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의 장난에 흩날리는 꽃비는 당신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추억 조각이었다.
"옛날 이야기 하지 말아요... 자꾸 부끄러워지잖아요. 난 오빠의 어릴 적을 하나도 모르는데 오빠만 내 어릴 적 일을 다 알고 있으면, 뭔가 불공평하다구요."
시이는 그렇게 말하곤 포옥 한숨을 쉬다가, 그래도 그만큼 친했기에 이 사람이 제 옛날을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이렇게나 친하게 지낸 사람이, 대부분 죽어나가서 없거나 하니까. 그보다 왜 나한테 귀엽다고 말하는 걸까, 이 사람. 내가 귀여울 리가 없는데. 귀여움은 이미 옛날 옛적에 저버렸는데. 이젠 조금 어른스럽게 보이는 게 내 이미지엔 낫지 않을까. 이젠, 그때의 울보에 이기적이었고 순수했던 꼬마가 아니니까.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
"네? 신기한 거라니... 뭔데요, 희야 오빠?"
시이는 이내 신기한 것, 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희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꽤나 짧은 시간에 새싹이 작은 분재 수준의 크기로, 더 커져서 제가 어릴 적일 때의 키만하게, 더욱 더 커져서 제 키보다 크게, 그리고 나서 아예 성숙한 벚나무가 되어 화려하게 몸을 일으킨 뒤 벚나무가 제 꽃망울을 열자 그 장관에 그녀는 홀린 듯 가만히 그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름, 다워요......"
시이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그것을 보며 말했다.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홀려버린 것만 같았다. 봄의 소낙비 마냥 하늘하늘 꽃이 내렸다. 그것은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던, 추억 이상의 것이 되어 제 마음에 남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확실했다. 어린 새싹이 고작 5분도 안 돼는 시간만을 거쳐가 완연한 벚나무의 모습을 드러낸 뒤 꽃비를 뿌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너무, 너무 예뻐요. 정말로. 고마워요 희야 오빠. 답례... 라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이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희야에게 말했다.
나를 포함해서, 희야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찰랑이던 말 한마디를 삼켜내었다. 대신, 미소로 화답할 뿐. 십 년은 그의 시간 속에 있어서 물방울 정도의 시간이었다. 마침내 강을 이룬 그의 삶 속에서, 십 년이란 그리도 짧고 하찮은 시간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아직도 그의 눈에서는 어리고 귀여운 아이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 멋있지? “
비록 그의 손아귀에서 탄생한 생명이었지만. 그가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시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제 머리색과 같은 꽃망울을 머금고 태어난 아주 작은 생명을 보며 희야는 무슨 생각을 그려냈을까.
“ 으음, 답례라... “
그가 말꼬리를 늘이며 작게 대꾸했다. 답례를 바라고 생명을 싹틔운 것은 아니었지만-
“ 그러면, 여기에 더 자주 와줘. 나는 늘 여기에 있을테니까. 자주 온다면, 더 예쁜 것들도 보여줄게. “
물질적인 답례를 바라진 않았다. 그저, 물방울과 같은 가치의 시간을 함께 보내줄 친구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데릭-파쿠르 멋있다! 몸이 날랠 것 같으므로 날데릭쥐라 칭한다(?) 시이-크고 아름다운 것은 늘 정의이자 진리다(근엄) 희야-미안합니다 해야 생각났어요..바람타고 날아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리치-귀를 만져보고 싶지만 불가능할 것 같다. 메0플스0리 레이스가 생각남. 알리시아-트윈테일!! 트윈테일이라는 걸로 설명을 끝맺는다 슈그-언데드 소환도 하나요 불사의 군대 만들 수 있나요(안됨) 선율-문신이 마음에 든다. 털 달리고 후드 달린 곰돌이 잠옷은 어떠신가요 레온-머리카락 색이 참 예쁘다. 조금 더 머리를 길러서 레푼젤이..! 시몬-대형견과 저격총이라..(흐뭇) 좋은 조합이군요 리코-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 역시 흑막 캐릭터는 겉과 속이 달라야지. 아나이스-(절레절레)
어색한 대화도 이쯤하면 되었다. 실은 리코에게 있어서 다른 의도가 있었기에 이 모임을 주도한것이었다. 보레아스와의 전쟁선포. 그리고 잇다른 폭동사태. 그것을 이어가면 결국 이 나라의 정세. 그리고 치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에버초즌. 그 새벽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것도 그렇거니와, 귀족정의 모습을 제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것은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것이겠지요."
요컨데 지금의 업무도 업무지만 앞으로 대비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혀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것이다. 정말로 전 국토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을 수가 없었던것이다. 당장의 불씨는 꺼뜨리는데 성공했지만, 지금 분쟁이 일어나는건 이쪽에서도 사양이었다. 플랜에 큰 차질이 되는 것이니까.
"강경파들은 언제든지 칼을 갈고 총구를 닦아 전장에 설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파들의 경우의 의견을 듣고싶군요. 그건 후일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랬다. 사실 이 모임에 의도는 강경파, 중립파, 온건파 셋의 의견을 듣기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내가 못 만들어 먹을 뿐이지. 희야가 시이의 말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맛있는 걸 먹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기분도 좋아지고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도 느끼고, 무엇보다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나누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 나 달콤한 거 엄청 좋아해. 근데 그런 음식을 파는 곳이 별로 없기도 하고, 난 요리를 못해서... “
이참에 요리라도 배워볼까, 넘쳐나는 것이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시도하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람. 그게 바로 희야였으니까. 아이처럼 웃는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시이를 보며 풋, 하고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시이의 왼편 볼을 쿡 찔러넣는다. 살의 감촉은 부드러웠고, 온기가 있었다. 한없이 차갑기만 한 제 손가락을 바로 떼어낸 희야는 다시금 희미한 미소를 지어낸다.
“ 이제 시이가 오빠를 놀리는구나. “
입꼬리를 올리며 웃던 희야가 팔을 뻗어 시이의 모자를 잡은 뒤 푹, 눌러버린다. 장난스런 웃음이 바람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러지 마. 난 그저, 이 숲에서 널 인간의 땅으로 돌려보내 주려고 하는것 뿐이야. 무의미한 살생은 관두자, 인간아." "가까이 다가오지 마. 이 괴물놈... 네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것같아?"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
탕, 귀를 먹먹하게 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 어깨쪽에 그대로 박혔고, 왼팔은 또 망가져들어갔다. 아직 이전에 대신 짊어진, 몸이 뒤꺾여들어가는 저주가 아팠다. 부정으로 기껏 모양을 잡아둔 왼쪽 팔이, 심하게 요동치며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인간은 비명을 질렀고, 뭐라뭐라 말했다. 자세히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분명 괴물이라고 칭하는거겠지.
"la pastenta, ill kuse."
쉿, 조용히 해. 너를 어두운 눈으로 노려보자, 곧 너는 조용해졌다. 소스라끼치게 놀란 탓인지, 입을 마구 더듬고 목소리를 내려고 몇번이고 입을 뻐끔거리는 너였다. 말을 못하게 되면 저런 반응인가. 잠시 유심히 쳐다보다가, 네가 총을 움켜쥐자 다시 말했다.
"한번 더 쏘면, 널 죽이겠어."
너는 그 말에 망설이지 않고 또 나를 향해 쏘았다. 탕, 이어지는 총성이 또 귀를 먹먹하게 했고, 이번에도 왼손이었다. 퍽, 하고는 어깨가 축, 하고 늘어졌다. 아, 어깨가 빠진걸까. 자세히는 모르겠다. 난 죽지 않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신체가 수복되면 낫지 않고, 죽는다. 그걸 부정으로 잡아둬서, 이미 썩어 들어가고, 뒤틀린 내가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것 뿐. 괜히 또, 나 자신의 처지에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자."
la husa, huzi' penaagos.
숲의 양분이 되어라. 넌 조용히 발치부터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또 희야에게 혼나겠네. 음, 어쩌지. 오른손밖에 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무덤은 만들어 줘야겠지. 이걸로 몇번째이지? 인간에게 공격받고, 인간을 죽인 건. 그들은 뿌리깊이 우리를 싫어한다. 우리와 전쟁을 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고 싶지만, 아마 그럴수 없겠지. 우리를 싫어하는 인간이 단 한명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 감정은 급속도로 모든 인간에게 퍼질수 있다. 무언가, 좋은 방법은 없을까. 천천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poppi."
곧 발치에서 문이 열리며, 멍! 하고 검은 덩어리가 나왔다. 뽀삐였다. 오늘도 귀엽네. 흐뭇하게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무덤을 같이 만들자. 왼손을 못 쓰니까 좀 도와줄래?"
부정으로 잡아두고 움직이려면 움직일수야 있겠지만... 글쎄, 덧나지 않을까.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것같긴 했다. 무덤을 만들어주고 나면, 희야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천천히 인간이 죽은곳으로 가서, 뽀삐와 함께 흙을 끌어모아 무덤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뽀삐와 한참 무덤을 만들고 있는 도중에, 뭔가 소리가 들려 뒤를 바라보았다. 또 다른 인간이네. 유심하게 쳐다보다가, 그르렁거리는 뽀삐를 쉿, 조용히 진정시키곤 천천히 일어났다.
"응."
환상종이냐는 물음에 너무나도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또 한참을 쳐다보았다. 단도가 두자루나 있네. 그리고 저건... 음, 분명히 날 찔러버리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인가? 왼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긁적이려다가, 아, 이거 빠졌지. 조용히 중얼이곤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넌 인간이지? 그리고 그걸로 날 찔러버릴거고? 그러지 마. 난 방금 인간을 죽였고, 또 무의미하게 인간을 죽이고 싶지 않아."
아,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으려나.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이 인간이 숲에 들어와서. 인간의 땅으로 돌려보내주려고 했고, 그러지 말라고 말했는데 총을 쐈어. 그러면서 욕을 하길래 조용히 시켰어. 그랬더니 또 쏘려고 했어. 그래서 나는 그러지 말라고, 날 쏘면 죽일거라고 말 했어. 그랬는데도 인간은 날 쐈어. 그래서 죽였어. 지금은 무덤을 만들어 주고 있었어. 이게 내가 왜 여기서, 녹은 인간 위에 흙을 덮어주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야. 그러니까 날 쏘지 마. 날 쏘면 너도 공격할거니까. 돌아가고 싶은데 길을 모르는거면 내가 인간의 땅 까지 길을 안내해줄게."
덤덤하고, 조용히 말했다. 충분히 설명이 되었겠지, 뽀삐? 가볍게 손을 뻗어,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뽀삐는 멍! 하고 대답했다. 그래, 좋은 설명이었던것 같아. 어디서 자랑해도 되겠는걸?
일단은 들었다. 내 앞에 서있는 환상종의 말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여튼 그는 오해라고 했다. 이 말단녀석의 난청과, 판단미스 때문이라고. 솔직히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그래도 신빙성은 있는 말이다. 그 말단이 패닉에 빠져 그를 공격했을 확률이 대충 97%. 환상종의 힘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상태의 인간이라면 너무나도 쉬운 표적이 된다.
" 내키진 않지만, 안믿고 싸웠다간 또 그녀석이 이상한 치료법을 들먹이겠지.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를 벅벅 긁고는, 그래도 싸울 의사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단도를 다시 후드 속으로 집어넣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교회로 돌아가 보고하는게 급선무이려나. 일단 무덤....을 파고있다니, 조금정도는 도와주는것도 나쁘지 않겠고.
" 그나저나 그거......개야? "
아까부터 신경쓰였다. 여기저기이쪽저쪽 다 돌아봐도 그냥 검은 덩어리 같은데.... 또 소리는 개소ㄹ.... 멍멍이 소리를 내고있다.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거지.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땅을 파는걸 조금 도왔다. 한 사람이 들어가 누울만한 크기가 되자, 파는것을 그만두었다. 이 말단 녀석은... 어떤것에 당했는진 모르겠지만 녹아있었다. 그래.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군. 무덤을 만드는 것 자체가 조금 어색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교회인으로서, 이 정도는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뭐... 돌아가는것 정도야 어떻게든..... "
대충 땅이 파진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근데 난 어디서 튀어나왔더라? 난 어디서 여기까지 도달했었지? 말단 때문에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커녕, 숲의 양분이 되어 땅 속으로 돌아가겠지.
정말로 궁금한듯, 자연스럽게 물었다. 여전히 덤덤한, 딱히 억양없는 평온하고 무덤덤한 목소리였다는게 문제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수도 있었을것같다. 뭐, 본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너는 단도를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싸울 생각은 이제 안하는건가. 그래도, 인간은 신용할수 없다. 쉽게 거짓말을 하고, 언제 저 품에서 날 찌를지 모르는 일이지. 이런데서 죽는건 나도 사양이었다.
"응. 이름은 뽀삐. 귀엽지?" "멍!"
헥헥거리면서 뽀삐는 짖었다. 너무 귀엽잖아, 정말로. 조금 미소짓는것처럼 보이면서, 뽀삐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네가 다가온다. 너는 이상하게도 땅을 파는걸 돕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그냥, 이 녹아버린것 위에 흙을 덮고 있었는데.
"왜 땅을 파? 그냥 위에 덮으면 되는데. 아, 땅을 파서 흙을 덮기 쉽게 해준거야?"
나야 고맙지. 옆에 쌓인 흙을, 한움큼 쥐곤 시체 위에 뿌리길 몇번 반복했다. 뽀삐도 흙을 차서, 그것 위에 덮기 시작했다. 얼추 흙이 쌓이자, 토닥거리면서 적당히 모양을 잡아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인간은 인간의 마을로 돌아가는게 제일 좋지. 차라리,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살면 좋을텐데."
인간은 인간의 땅에, 우리는 우리의 땅에. 널 빤히 바라보았다.
"인간, 난 널 별로 믿지 않아. 난 인간을 많이 만나본적 있는건 아니지만, 친한 척 하더니 갑자기 날 베려고 한 놈이 있었어. 네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그러니까, 나란히 걷자. 뒤쳐지지 말고 따라왔으면 좋겠어, 네 보폭에 맞춰서 걸을거니까. 아, 그리고... 이름은 뭐야?"
그냥, 통성명이나 하자고. 가볍고, 무덤덤하게 물으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입을 떼었다.
"저기, 넌 교회의 사람이지? 알아. 인간은 모두 헬리오스를 믿잖아. 그렇지만 항상 궁금했어. 헬리오스가 정말로 우리를 미워할까? 헬리오스와 에오스, 두명의 각기 다른 신이 서로를 창조했는데, 어째서 같은 신의 피조물끼리 누구는 선이고, 누구는 악이라고 규정하여 전쟁하는걸까? 전쟁을 선포한건 너희 교회 쪽이잖아? 미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거야?"
>>417 ㅋㅋㅋㅋㅋ 왜 눈을 반짝이는것이지?? 음~ 원래는 막 후배느낌나는 이단 심문관 해보려고 했는데! 인간쪽이 많아서 환상종을 해야할테고... 환상종중에서도 인간과 나름 우호적인 숲 지킴이를 해야할지 엄격 근엄 진지한 두목을 해야할지 아예 자비가 없는 달콤살벌한 망나니를 해야할지 ㅋㅋㅋㅋ... 마구마구 꼬이는 느낌이라서~
>>420 이벤트라 ㅋㅋㅋ 할 수 있을까... 진행하게되면 좋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나 설정도 잘 몰라서~ 조금 느낌 알게되면 진행할지도 모르겠네! 그리구 우리 스레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벤트 진행 가능하니까! 부담갖지 말고 생각해줘~ 아니, 해주세요 ㅋㅋㅋㅋ 부탁드립니다!!!
다친 어깨를 치료받으려면, 우선 희야한테 가야겠지. 아까 인간에게 총을 맞아서, 많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예 왼팔을 못쓰게 되는건 싫으니까. 물론 부정으로 사람행세를 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누군가의 저주가 왼팔에 걸린 저주라면 내가 대신 짊어질수 없게 된다. 우선 고쳐놓기는 해야겠다. 희야가 자주 출몰할만한곳은... 아마 숲 속이겠지? 좀 늦고, 어두운 밤 시간대지만 희야가 있으면 좋겠네. 비적비적거리면서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곧 지쳐버렸다. 귀찮았다. 솔직히 자고 싶었다. 음, 그래도... 나중에 희야에게 혼나는건 싫었다. 지금은 다치면 많이 혼내지는 않고 걱정해주겠지. 근데 말 안하고 숨겨서 덧나아가지고, 끙끙거리면서 찾아가면 완전 혼날게 뻔했다. 그러니까 찾아가자.
"dugante, pasada e'stanto."
나와라 말아. 자신의 키만한 높이를 가진 책상 형태를 띈 검은걸 소환했다. 엉기적거리면서 올라타서는, 그대로 벌러덩 누웠다.
"돌아다니자. 희야를 찾을때까지, 아마... 꽃이 많은곳에 있지 않을까?"
푸르릉. 그래그래, 네가 꽃이 많은곳이 어딘지 어떻게 알겠니. 일단 되는대로 돌아다녀보자. 천천히, 달빛을 쬐며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앞에 돌팔이도 붙여주고 싶긴 하지만, 그 신 치료법이라믄 것들이 의와로 잘 먹히니까. 가끔 실패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금방 보완한다. 유능하긴 한 놈이지. 그럴거면 그냥 의사하지 왜 이단심문관으로 온걸까? 좀 궁금증이 생기는 녀석이다.
" 어어, 귀엽.......네. "
힘겹게 말을 끝마치고 덩어리를 관찰해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귀여운 구석은 당연하고, 대체 소리 말고 어느 부위에서 저것을 '개' 라고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찰해보았지만 뭐..... 나로써는 무리인 듯 하다.
" 아니, 그 녀석을, 여기에 묻는다. "
조금 수고스럽지만 쌓인 흙과 녹아내린 녀석을 다시 안으로 옮기고, 흙으로 덮었다. 환상종들 사이에 묻히긴 했지만, 그래도 편한 땅으로 돌아간게 어디냐. 싸우다 죽은 녀석들의 대부분은 땅 위에서 썩어갈테니.
" 그래, 동감이야. 괜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야 환영이지. "
" 하지만, 서로가 그렇게 죽여대는 와중에 멈추는것도 힘든 일이거든. "
환상종들도 이유 없는 살인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들을 바에 의하면, 그들도 '살아가기 위해' 살육을 저지른다 들었다. 인간을 죽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결국 살아가기 위해 환상종을 죽인다. 누가 먼저했느냐, 누가 더 많이 죽였느냐. 그런것은 벌써 아무 상관 없는 시대가 된것이다. 그저 살아가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을 뿐.
" 뭐... 합리적인 판단이군. 이름은 데릭이다. 데릭 로이드. "
나나 상대나, 서로 적인건 변함 없다. 안내자가 되었다곤 해도, 그것이 지킴이가 되어주는 것도 아니고. 안내받는자가 되었다곤 해도, 안내받는 척 하면서 랑대를 죽이려는 속셈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긍하기로 했다.
" 난 높은 사람이 아냐. 나한테 물어도 만족할만한 답은 나오지 않아. 교회에서는 너희들이 인간을 사냥했다고 했다. 나 역시 그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대항했다. 이게 다야. "
" 애초에 난 이 이상한 것들에 대하서 궁금증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지.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 내가 답을 찾아낸다면. 들려주지. "
이 곳은, 달빛조차 잠든 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 분쟁과 배척에 얼룩져 불신이 싹트는 땅이지만, 밤하늘 만큼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희야는 그런 밤하늘을 좋아했다.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이 사랑하던 평화가 저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아서, 반짝이는 별빛들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서. 물론, 어둠 사이로 빛나는 벚나무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말이지. 이 야밤에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곤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희야였기에, 오늘은 숲 속 깊은 곳에 나무 덩쿨들을 만들어 그 위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한 눈에 들어오는 밤하늘이 예뻤기 때문일까. 그 덩쿨 침대 근처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서일까, 갑작스레 느껴진 인기척에 희야가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인간인가? 인간이라면 수상하단 이유로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희야는 몸을 약간 움츠리며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어어, 리치...? "
경계태세로 노려보던 숲모퉁이에서 나타난 것은, 리치를 태운 검은 말. 희야는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눈에는-
" 리치? 왜 이렇게 다친거에요? "
엉망이 된 왼팔을 내려다보며, 희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의 공격이군요. 희미하게 나는 탄약냄새에 희야가 조용히 중얼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깜빡 졸았는데 희야의 목소리가 들려서 깼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아직 잠도 덜 깼고.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왕한테 가자."
푸르릉. 너는 대답했고, 곧 너와 가까워지자 네 목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렸다. 너는 키가 커서, 네 얼굴이 환히 보였다. 음.... 달빛이 너무나도 부시고, 넌 달빛을 등지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얼굴이 훤히 보일지도 모르겠구나. 좀 보여주기 부끄럽고, 싫네. 슥,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리곤 로브의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이제 좀 안심이야.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난 원래 많이 다쳤잖아? 알면서. 이정도 다치는건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진심으로 이야기하며, 네가 인간의 공격이군요,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내 숲에 들어와서 돌려보내주려고 했는데, 날 쐈어.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쐈어. 그래서 조용히 시켰더니 인간이 총을 들었어.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그러면 죽일거라고 말했는데 또 날 쐈어. 그래서 죽였어. 그래서 다쳤어. 아, 그런데 누굴 만났어. 데릭이라고 하는 인간이었는데, 내가 무사히 숲 바깥으로 돌려보내줬어. 그 인간이랑은 얘기가 통해서 더 안 다쳤어. 어깨가 빠진것같아. 덧나면 더 혼날까봐, 치료해달라고 널 찾아왔어."
훌륭하게 설명을 끝마친것에, 뿌듯한듯 가볍게 미소지어보였다.
"근데, 그렇게 빨리 치료 안 해줘도 돼. 오늘은 달빛이 예쁘네, 좀 이야기 하고 싶기도 하다. 왕님,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
리치의 검은 말은 천천히 희야에게 다가왔다. 리치는 막 잠에서 깬 듯 보였고, 희야가 리치의 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제야 일어나 로브의 모자를 푹 써버렸다. 희야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런 리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 다치는 게 괜찮은 사람이 어디있나요. 아플텐데... "
희야가 후우, 숨을 내쉬었다. 또 하나의 생명이 다쳤다. 내가 바라던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는데, 내가 기도해왔던 세상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고통이 심할텐데도 괜찮단 말을 건네는 리치를 보며 희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런가요? 그 인간과는 말이 잘 통했어서 다행이에요. 상처가 덧나면 제가 혼을 낼까봐 온거예요? "
희야가 옅은 미소를 피워냈다. ' 리치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거예요. ' 라는 말을 덧붙여내며, 상처에 좋은 식물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선은, 기본적인 상처 치료부터 해야겠지만. 가볍게 지어낸 미소에 희야 또한 옅은 미소로 화답한다.
" 이런,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더 아플텐데요. 그래도 괜찮다면... "
희야가 힐긋 리치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희야 자신이었다면, 소리를 지르며 아파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텐데도 무덤덤한 리치를 바라보며, 희야는 씁쓸한 미소를 피워냈다.
" 저야 늘 비슷한 하루죠. 산책을 하고, 식물들을 돌보고. 참, 오늘은 시이라는 친구를 만났네요. 커다란 벚나무도 심어두고, 꽃들도 주변에 많이 피워두었는데. "
여기서 조금 가면 나오겠네요. 희야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달빛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리치에게로 시선을 옮겨낸다. 그러곤 왼손을 쥐었다 피고는 어느새 제 손아귀에 쥐어진 장미꽃 한 송이를 리치에게 건네며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 자, 선물이에요. 치료 받기 위해 저를 찾아와서 드리는거예요. 저는 치료마법은 잘 못다루지만..., "
치료마법을 좀 더 공부해야겠다 느꼈다. 비록 마법은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만 말이지.
" 리치는 어땠나요? 아, 인간을 만나기 전의 하루를 얘기해줘요. 오늘은 리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있었나요? "
" 뭐... 그건 다 다른거 아닐까. 언젠가는 벽(Wall)이랑 결혼한 여자도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하나 전부 다르니까. "
환상종들도 뭐... 근본 자체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으니, 다들 비슷하겠지. 어떤 자에게는 기계 장치가 귀여워보일 수도 있는거고, 누군가는 동물들이 귀여워 보일 수도 있는 법.
" .......밖에 있으면, 춥잖아. "
짧고 무심하게 중얼거리고는 묻어있는 흙을 말끔하게 털어내었다. 밖은 춥다. 적어도 땅 속에 있으면, 밖보다는 덜 춥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서 묻어준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말단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동료였다. 이 정도는 해줘야 그래도 동료였노라고, 얘기할 수 있을것 같았다.
" 그건 인간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야. 얘기를 들어줘야 대화가 성립하거든. 얘기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건 대화라고 보기 힘들어. 그런건 괴롭힘이다. "
또는 강요라고도 불리지. 환상종 입장에선... 말도 안듣고 죽이려고만 드니까, '죽음의 강요' 인가?
" 그게 가능한지 못한지의 여부는 둘째치고, 그랬다간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상당히 힘들어진다. 너희들의 터전에서 얻을 수 있던 자원들은? 우리들의 터전에서 얻을 수 있던 자원들은? 동물들의 터전은? 나누는것은 무모한 짓이다. 어느 한쪽이... 아니, 어쩌면 양쪽 다 괴멸할 수 밖에 없는 선택지야. 아마 그건 최후의 최후까지 보루로 남겨둬야겠지. "
특히 교회쪽은 이제 발전이 술술 풀려나가는 참인데, 그렇게 되면 큰 곤란이다. 환상족 측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그들은 이 환상종의 말을 달가워할까?
" 그래.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어느쪽이 미워했냐, 어느쪽이 먼저 시작했냐로 따질 것들이 아니야. 이건 100% 내 생각이지만, 아마 '누가 먼저 끝을 내었는가' 이게 가장 중요해질것 같다. "
끝을 낸 자라는건 곧, 승전보를 울린 쪽이겠지. 그게 평화적이든 폭력적이든 다름은 없을거다. 만약 지금 이대로 이어진다면 말이지.
" 전쟁이 끝나면 밥이나 한번 사지. 그때는 천천히 얘기해주마. 끝난다면 말이야. "
피식 웃음지었다.
" 아, 그래. 이번에 한 번 빚졌으니, 다음에 곤란한 일 생기면 딱 1번. 내 선에서 도와주마. 기억해둬서 나쁠건 없겠지. "
"음, 난 네가 슬퍼하면 더 아파. 몸이 아픈건,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도 안나서 괜찮은데... 네가 한숨쉬고, 걱정해주면 마음이 아파. 그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너무 아파.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 안해줘도 돼. 우리의 왕아, 우리는 지금 슬프지만 전쟁중이야. 나는 다쳤지만 살아있고, 많은 우리들이 죽어가고 있어. 그건, 내 다친 상처처럼 고칠수가 없잖아. 넌 이런것에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면 안돼. 우리의 왕아, 네가 걱정해야 할건, 언젠가 죽을 내가 아니라 많은 우리야."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네게 그렇게, 무덤덤하고 조용하게 말해주었다.
"잘 통하는건 아니었던것같아. 잘 통하는건.... 너랑, 시이일까? 그정도, 밖에 지금은 떠오르지 않네. 왜 전쟁하는거냐고 물어봤지만, 자기는 말단일 뿐이라 대답을 들려줄수 없다고 했어. 언젠가 대답을 들려줄수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도 그러면 좋겠다고 말해줬어. 왜 우리는 이렇게 죽고 죽이게 된걸까? 인간은 정말로 우둔해. 같은 신의 피조물들일 뿐인데... 자기와 다르다고 전쟁이라니. 인간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서, 많은 종족들 중 하나일 뿐이란걸 깨달았어야해. 그러면 지금같은 세상이 아니라, 네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이 있었을텐데. 물론 개개인의 사사로운 분쟁은 있겠지만, 너같은 왕이 있다면 분명 그들도 전부 미안하다고 서로 사과하고, 다시 친해질수 있을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긴 말을 끝마치고, 네가 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거에요. 하고 말해주자 곧 슬픈듯 고개를 떨구었다.
"난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지? 그래서 기뻐.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좋겠어. 많은 사람들을 저주하고 잡아먹은 과거가 없었으면 좋겠어. 그랬더라면, 나는 평범하게 너에게 응석부리고 어리광부리며 행복하게 지낼수 있었을까?"
대답은 굳이 안해도 된다는듯, 길게 침묵했다. 그러다 네가 내 왼팔을 바라보며,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더 아플텐데요... 라고 말하자, 곧 너를 덤덤이 쳐다보았다. 넌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마음이 아픈걸까.
"그러면, 치료하면서 말하는걸로 하자. 사이좋게, 반씩 해서."
좋은 대안이지? 물어보다가, 네가 시이를 만났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시이를 만나고 싶네. 우리 집 앞에 심어둔 꽃이 요즘 영 상태가 별로인것 같아. 너도 함께 와서, 같이 식물을 가꾸면 재밌을것같아. 애벌레가 꽃을 타고 올라가는걸 보는건 재밌어. 네 나비를 보는것도 재밌고, 널 보는것도 재밌고, 시이를 보는것도 재밌어."
그래서, 즐거워. 희미하게 미소를 짓곤, 여기서 조금 가면 나오겠네요,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싶네."
가볍게 중얼이다가, 네가 왼손에서 장미꽃 한송이를 피워내자 소중하게 오른손으로 받들었다. 양손으로 받고 싶었지만, 어깨가 빠져 팔이 축 늘어진 모양이어서. 로브자락 위에 얹어진 장미꽃 한송이를 유심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널 쳐다보았다.
"고마워. 널 찾아온건, 다친걸 말하고, 날 치료해줄 사람에게 데려다줄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왔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것같아. 이미 자고있으면 자게 냅둬야지. 네가 원하는만큼 치료해주고, 내일 같이 찾아가서 치료를 받자."
간단하게 말한뒤, 진심으로 고마워.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글쎄, 잘 기억이 안나. 하루가 일주일같고, 일주일이 하루같으니까. 시간 감각이라는건 참으로 애매해. 우리처럼 수명이 긴 종족에게는 특히 말야. 그래도, 오늘 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널 만난것같아. 그게 오늘 하루의 행복한 일이야."
정말로 순수하게, 진짜로 궁금한듯 물어보았다. 벽이랑 결혼을 어떻게 하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벽은 인간을 아내로 맞을것을 약속합니까? 라고 교회의 인간이 물으면 벽은 대답을 못할텐데."
정말로 정말로 궁금한걸 찾았다는듯이 말했다. 그리고 너는, 짧고 무심하게 말했다.
"슬프니?"
간결하게 물어보았다.
"죽으면 춥지 않아. 덥지도 않고. 죽으면 그 자체로 끝이야... 데릭이라는 인간은 더이상 존재할수 없어. 영적으로 따지면 다를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데릭이라는 인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 알고 있어? 우리가 하고 있는건 그런 거야. 전쟁이라는것은 그런 거야. 그걸 너희 인간이 먼저 하자고 말했어. 너희 인간은, 인간을 죽이면 그 인간을 죽여. 죽인다는 행동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것에 한해서 말하고 있어. 너희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그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아. 너희 인간은 우리를 죽이면서 나쁘다고 말하지 않아. 나도 우리가 죽으면 슬퍼.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해. 인간의 오만함을 모두 깨달아야 해. 우린 조금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해."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좋은걸 알았네."
기억해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나는 적어도, 인간의 땅에 발을 딛지 않아. 죽으니까. 나는 죽지 않는게 아니야. 나는 살아있는 생명이야. 그러니까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어. 많은 우리들이 그걸 알고있어. 인간의 땅에 함부로 발을 디디는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한 없어. 죽음보단, 자원이 없어지고, 동물들의 땅이 제한되는게 더 이로워. 동물들은 진화할것이고, 새로운 영역에 적응할거야. 우리도 마법으로, 그 자원을 대체할 방법을 찾을수 있을거야. 너희 인간들의 멸망은 상관하지 않아. 우리 땅에 있던것은 우리의 것이고, 인간 땅에 있는것은 인간의 땅이니까. 오히려, 이 방법이 파멸을 불러오는게 아니라, 가장 최선의 방법일거야."
너희의 강요에 의한. 그래, 네가 알려준 강요라는걸 이 상황에서 쓰게 되겠네.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래. 그리고 그건 아마 우리가 죽든, 인간이 죽든간에 하나의 선택지가 되겠지.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든, 네가 존재하지 않게 되든... 그렇게 될거야. 나 또한, 단 한명의 인간이라도 살아있으면,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으니까. 너희 인간도 마찬가지겠지."
그 날이 되면, 밥을 얻어 먹지도 못할것같네. 슬프게 이야기했다.
"그러게. 혹시 인간에게 잡혀가면 너에게 살려달라고 말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네. 그 약속은 지켜줬으면 좋겠어. 거짓말이 아니기를 빌어."
" 그래요, 리치가 아프다면 슬퍼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리치도 우리 중 하나이니까, 걱정 되는거예요. 나는 모두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
희야가 처연히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리치, 당신도 소중해요. 라는 짧은 문장을 덧붙인 뒤에야 희야는 다시 슬픔을 털어 낸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그렇군요. 그러게요, 왜 우리들은 싸우고 죽이게 된 걸까요. ...답은 하늘만이 알겠죠? 인간도, 우리도 모두 같은 생명인데. 왜 누군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
에오스, 당신은 알죠? 희야가 검게 물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그때처럼, 내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줘요. 하지만 검게 물들은 밤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적을 다시 바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으니까. 자신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냐 묻는 리치의 말을 가만히 듣던 희야는, 무어라 대답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긴 침묵이 그 대신이 되었다여기며, 그저 리치를 향한 미소를 지어내고 만다.
" 그래요. 시간이 늦어서 제가 찾아갈 수 있는 마법사들이 없을 거 같네요, 우선은 감염이 안 될 정도로만 치료하는 게 좋겠어요. "
희야가 어둠이 내려앉은 풀들을 가볍게 쓸었다. 곧 한줌 정도의 약초들이 자라났고, 희야는 그것들을 뜯어낸 뒤 분주히 손을 움직여댔다. 대충, 병풀과 비단풀과 같은 상처 치료를 위한 약초들이었다. 붕대와 같은 물건들도 가져오지 않았고, 치유 마법을 쓰기에는 희야에게 버거울 정도의 상처였기에, 우선적으로 약초를 이용한 뒤 덧나지 않게 하기 위해 치유 마법을 쓸 생각이었다. 희야는 약초들을 한 손에 쥐었다 폈고, 다져진 모양새로 변한 약초들을 조심스레 상처 위에 올렸다.
" 잠시 올려두었다가 떼내고, 치유 마법을 쓰면 내일까지 덧나진 않을거예요. 마법사들한테 배워놓은 치유마법이 조금 있어서 다행이네요. "
비록 머리가 안좋아서일지 어린아이들도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마법 밖에 익히지 못했지만, 그나마라도 있는게 어딘가. 희야가 방싯 미소를 지어보였다.
" 그러게요, 하루가 일주일 같고 일주일이 하루 같고... 응, 우리들한테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리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저를 만난 일이란 거, 정말 기뻐요. "
희야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뒤 약초들을 떼내고 간단한 주문을 외운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마법이 제대로 안된다거나, 하진 않겠지. 라는 걱정이 약간 뒤따랐지만.
"고마워. 눈물이 나올것같이 슬프네. 그렇지만, 아직도 그때 아주 오랜 시간을 울었던게 생생해. 바로 어제 일 같아. 희야, 우리의 왕아. 내 첫 기억은 내 발 밑에 어린 여자아이가 썩어 문드러져서 녹아가고 있는거야. 그리고 그 이전을 떠올리려고 하면, 더 많은것들도 기억나. 우리의 왕아, 나는 많은 우리를 아주 처참하게 죽였어.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많은 우리를, 많은 우리의 땅을, 전부 저주하고 파괴하고 잡아먹었어. 나는 그런것들로 이루어져있어. 네가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것들이 부수고 으깨어져, 썩어 문드러져 녹아서, 내 일부가 되어있어. 우리의 왕아, 나는 아주 추악한 저주덩어리야. 나는 과연 우리중 하나일까? 네가 걱정해도 괜찮은 우리일까? 네가 날 소중하다고 말해줄만한 우리일까? 나는 그것에 정말로 자신이 없어. 너는 어째서 나를 싫어하지 않는거야? 항상 그게 궁금했어. 그리고 항상 그게 미안했어. 미안해, 미안해... 우리의 왕아. 난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어. 난 그걸 속죄하려고 해.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전쟁을 끝내고 모든 부정한것들을 짊어지려고 해."
그러니까,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를 미워해도, 난 네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거야. 말을 마치곤 조용히, 로브를 더욱 푹 누르며 고개를 떨구었다.
"인간은 그걸 알지 못해. 인간은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면서도 그걸 죄악으로 알지 않아. 그러면서도 인간이 인간을 해치는건 죄악으로 규정하고 그 인간을 죽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깊은 구멍과도 같아.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해. 악마라는것을 알아, 우리의 왕아? 그건 모든 사악한것을 의미해. 그것은 악이야. 그렇지만, 그건 인간을 본따 만든것같아. 인간은 깨달아야해, 자신의 우둔함을. 그걸 깨닫지 못하는 이상, 누군가는 아픔을 겪을수 밖에 없어.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해서, 너무나도 공격적이야. 우리의 왕아, 너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어. 이건 명백한 인간의 잘못이야. 인간이 전쟁을 선포했으니까."
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저곳에서 에오스는 무엇을 하고 있지? 곧 너는 날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개를 떨군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 너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필요가 없어. 네게 나는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 썩어문드러진 피부를, 부정으로 휘감은 나의 몸을 보여주는건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야. 너도 나를 부끄러워했으면 좋겠어. 희야, 우리의 왕아. 나는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러자."
너는 어둠이 내려앉은 풀들을 가볍게 쓸고, 뜯어낸 뒤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약초를 손에 올려 쥐었다 피고, 다져진 모양새로 변한 약초들을 조심스럽게 상처위에 올리자 곧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러게. 고마워."
진심이야. 덧붙여서 말하곤, 네가 미소를 짓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쁘네."
약초들을 떼어내고 간단한 주문을 외우자, 팔이 한결 편해진것같았다. 좀 나아진것같아, 말하곤 달이 유난히 밝다며 말하는 네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으쓱였다. 벽은 대답을 못하지만, 그녀는 들을 수 있단다. 그게 초자연적인 현상이든, 그녀의 망상이든. 분명 그녀는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는가. 거짓말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는 있겠다만, 그들도 정말 벽이 말을 했는지,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건지는 모른다. 다만 자기가 믿고싶은 것을 믿을 뿐이겠지.
" .....아니, 적어도 이건 슬픈게 아니야. 조금 다른건데... 뭐라 말하기가 힘든걸. "
난 인간이면서도 인간의 감정에 대해 완전히 아는게 아니라며 가볍게 피식 웃었다.
" 흐음. 굳이 사실을 콕 집어서 얘기해버리면 좀 귀가 아픈데. "
" 흠.... 그나저나 말이야. 그건 조금 틀렸어. "
잠시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하고,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 그 '인간'을 '교회'로 바꿔. 그럼 수긍하지. 너희들을 죽일 수 있는것은 교회고, 죽여 왔던것도 교회다. 너희들이 악이라고 판정한것도 교회고. '교회를 제외한 인간'들 중에선 너희들이 나쁜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람이 있어. 너희들이 정말로 악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자도 있어. 당연한거지. 네 말대로 환상종은 인간의 땅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아. 그래서 너희들이 나쁜지 착한지는 교회의 정보를 통해서만 알 수 있지. 악역은 교회가 맡는걸로 충분해. 인간들은 전부 싸잡지 말자고. 그 사람들은 너희가 실제로 어떤지 모르면서 그저 교회의 말만을 듣는 사람들이니까. "
인간의 땅에 오지 않았던 이 녀석은 이해하기 힘든 말일지도 모르겠다.
" 그래. 그것 또한 맞는 말이군. 분단된 후에, 혹은 분단된단 소식을 들었을 때 교회의 공격이 얼마나 더 거세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게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되면 너희 대장에게 건의해봐. 적어도 너희 대장은 나보단 똑똑할거 아냐? 뭔가 말을 해주겠지. "
아무것도 아니면서 대장노릇 하고있는건 아닐테니. 난 대장같은거랑 안맞는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통솔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단독행동을 좋아하고. 난 그냥 머저리인가?
" 글쎄. 앞날은 아무도 몰라. 정말 어쩌면 공존이라는 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는거고, 자멸할 수도 있는거고. "
" 그 일은, 리치가 원해서 저지른 일이 아니었을테니까요. 죽어간 생명들이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그 생명을 꺼트리는 일은 리치의 의지가 아니었을테니까요. 나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리치는 나에게 소중하니까요. "
희야가 흐릿한 미소를 지어냈다. 어떤 말로도 리치를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나도 상처받았고, 그걸 익숙히 여겨서. 희야는 어떠한 말도 이을 수 없었다. 그저 리치를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 밖에는.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들은 너무나도 공격적이어서, 희생 된 생명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소중한 나무를 베고, 식물들을 죽이고, 굶주림을 위해 생명을 죽이고. 그리고 우리들을 죽이고. 언제쯤이면 인간과 우리가 손을 잡고, 더이상 생명을 해치지 않게 될까요? "
그 순간이 오는 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헛된 질문이었다. 목구멍을 채 넘지 못 한 질문, 희야는 곧 저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리치의 말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슬픔과, 죄책이 묻어 얼룩진 미소. 나는, 그러한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의 우유부단함과 안일함이 우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걸요.
"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죽어가는 생명은 없었을텐데. "
짧은 푸념일 뿐이었다. 희야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약초를 떼내고 치유 마법을 걸며 애써 그 작은 중얼임을 잊으려 했다. 마음 한 켠을 차지해 속삭임을 멈추지 않는, 그 감정을.
" 기쁘다 하니 다행이에요. "
팔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는 리치의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지어 대답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지요. 부족한 왕이라도 노력은 한다는 걸, 당신은 알아 주고 있으니까요.
" 그런걸까요? 그런 거 같네요. 우리도 달을 만나서 기쁜 만큼, 달도 우리를 만나 기쁜걸거예요. 참, 죽었다던 그 인간은 어떻게 되었나요? 동료가 데려갔나요, 리치가 묻어주었나요? "
안타까운 생명 하나가 꺼져버렸다. ...우리를 이유 없이 공격한 생명도, 소중한 생명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나는 과연 환상종의 우두머리 자리에 어울리는 건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소름이 끼칠정도로, 무덤덤하게 웃었다. 분명 웃는 말, 그러니까, 소리였지만, 아무런 감정도, 하나의 억양도 없는 웃음이었다.
"인간아, 데릭아, 무지한 인간아.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어. 우리가 잡혀 죽어갈때 구해준 인간이 어디있었지? 뭐, 나쁜게 아닐지도 모르는 인간이 있어? 의문을 품는자가 있어? 한가지만 물어볼게. 인간아,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죽어갈때 대체 그 인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니?"
우리에겐, 교회는 곧 인간이고, 인간은 곧 교회야. 싸늘하게 말했다.
"분단은 우리의 힘 만으로는 할수 없을거야. 가능한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둘의 힘을 합쳐서 분단하게 되는거라면, 공격할 일은 없겠지. 만약 공격하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말한 분단은 완전한 분단을 의미해. 공격이 거세지더라도, 그 어떤것도 통할수 없게끔 완벽한 마법을 사용해야지. 강물과 공기만 흐르게끔 한다던가. 그리고 우리에겐 대장이 없어. 우리는 너희들과는 체계가 달라. 그리고 건의하더라도, 이건 인간의 힘도 필요한 일이야. 굳이 건의할 필요가 없지."
곧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걷다가, 숲의 끝이 보였다. 그리곤 우뚝, 서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인간아, 이대로 쭉 나가면 우리의 땅은 끝이야. 그러니까 어서 가렴. 그리고 그 말,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잘 가렴, 데릭아. 다음에 또 대화할수 있으면 즐거울것같아."
"아냐, 아냐,아니라구. 그건.... 그건 내가 원해서 한 일이었어. 태초에 나는 저주덩어리였어. 나의 왕아, 그건 전부 내가 원해서 한 일이었단 말야.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을 뿐이야. 이런것에 의미가 있나 하고. 너무 늦게 깨달았어. 너무 늦게 깨달았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이미 내가 죽여버린 우리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데."
곧 뚝, 뚝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죽여버린 소녀의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미안해, 미안해. 희야, 우리의 왕아. 미안해... 나도 할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단말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곧 로브 모자를 질끈, 쥐어잡고는 얼굴을 완전히 감추고 몸을 웅크렸다. 소리죽여 흐느껴 울면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너는 왜 이런 나를 소중하다고 말 해주는거야? 난 이렇게 추악한 존재인걸.
"인간들을 가르쳐야해.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야해. 인간들의 윗 세대는 항상 틀려왔음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해. 하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지.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해야 하니까.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미 늦은 때가 될정도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우리들은 죽고있어. 우리의 왕아, 아마 그러지 못할지도 몰라. 난 우리가 죽거나, 모든 인간이 죽는 미래밖에는 떠오르지 않아. 다른것들은.... 솔직히 그렇게 될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넌 얼룩진채로 웃었다. 나는 안다. 저것은 얼룩진 웃음이다. 네게 오른 팔을 천천히 뻗어, 네 뺨을 어루만져주려고 했다. 비록 로브 위로밖에 만지지 못하는 몸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주고 싶었다.
"희야, 우리의 왕아, 너는 우리의 왕이야. 너는 그래서는 안돼. 네 직책이, 네 그런 모습을 허락하지 않아... 너무도 슬프겠지만, 자신을 자책하면 안돼. 너는 항상 더 나은 상황을 만들 방법을 생각해야 해. 우리의 왕아, 너는 우리의 대표야. 너는 우리의 왕이야. 너는 모자라지 않아.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아니, 너를 믿는 우리를 믿어. 너는 우리이고, 우리는 너야. 우리의 왕아, 희야. 자신을 자책하지 마. 너는 모자람 없이 좋은 우리의 왕이니까."
네 부족함이 오히려 너를 완전하게 채워주고 있어. 조용히 속삭여주었다.
"다행이기는. 아, 그 인간은 내가 흙으로 덮어서 무덤을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다른 인간이 멋대로 묻어버렸어. 그러면 춥지 않을거래. 죽으면 모든게 끝인데. 자신도 누군가의 모든걸 완전히 끝내버렸을텐데. 인간은 이해하기 힘들어."
// 헉 벌써 세시네요.... 너무 졸려서 이만 자러가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내일 답레 이어드릴게요!!
" 그들은 몸을 숨겼겠지.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돕는 순간 그들은 이단이 된다. 추방당할지, 사형에 처해질지. 아무도 몰라. 다만 그들이 위험한 상황이 놓인다는것은 변함 없어. 그들이 나쁜건가? 너희들이 잡혀갈때 가만히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몸을 숨긴것이 나쁜건가?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모두 나쁜것인가? 난 그렇게 생각 안해. "
지금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겠지. 이대로는 끝나지 않는 공방이 될 것 같다.
" 그렇다면 그건 실현 불가능이겠군. 아쉽지만 말이야. "
근데 대장이 없다고...? 에버초즌인가 하는 녀석은 대장이 아니었어? 내가 잘못 알고 있던걸까. 흠.
" 뭐, 다음에 대화할 때는 조금 더 평화로운 상황이었으면 좋겠군. "
말을 마치고 숲 밖으로, 내가 사는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약속은 걱정 마. 한 번 약속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니까. "
근데 이거 윗놈들한테 어떻게 보고해야 하지... 저 녀석의 일은 빼야 하려나. 하아... 또 머리아파지겠군.
희야는 두 입술을 다물었다. 흐느끼는 리치를 어떤 감정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슬픔이 서린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이미 사라져버린 우리들에게 참회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거예요. 리치는 이제라도 깨닫게 되었잖아요, 아직까지도 리치가 깨달은 것을 깨닫지 못한 우리들도 많은걸요. “
로브를 뒤집어쓰고 흐느끼는 리치를 바라보는 희야의 눈빛은 애처로웠고, 그의 차가운 손은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로브 위로 쓰다듬을 뿐이었다. 부드러운 로브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고, 그는 온기 없는 손으로 바람을 어루어만지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인간과 우리는, 협력과 공존을 배워야해요. 어려운 일이겠죠. 우리는 적대시 하던 관계였으니, 이순간에도 많은 환상종과 인간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하지만... “
희야의 말끝이 흐려졌다. 아니, 아니에요. 고개를 흔들며 다시 그 흐릿한 미소로 리치를 바라보는 희야의 얼굴은 푸른빛의 슬픔이 서려있다. 애써 지워내기 위해 미소를 지어보지만, 그 슬픔은 지워지지 않고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빛을 반짝인다. 이내, 리치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어루어만지자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낸다. 거짓되지 않은 미소를.
“ 리치, 고마워요. -내가 어리석었어요. 우리들은 나를 믿어주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겠죠. 나는 리치의 믿음을 받는 왕이니까요, 그렇죠. “
눈물은 태초에 말라 비틀어졌다. 원망과 불신이란 감정도 썩어 비틀어진지 오래였다. 모든 경계선이 흐릿해진 감정을 붙잡고, 희야는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 나의 부족함이 나를 완전하게 채워주고 있다- ‘ 라는 리치의 속삭임에 미소 짓는 희야의 얼굴이 달빛에 반짝였다.
“ 그런가요? 리치가 묻어주려 했었는데... 아마 인간들의 문화겠죠? 환상종은, 나이가 들어 죽는다는 개념이 없다보니 전쟁터에서 죽거나 하는 경우가 많으니... “
인간은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 그리고 약하고 견고해서, 너무나도 쉽게 죽는다. 나이가 든다는 개념이 없는 우리들에게, 당신들은 어쩌면 부러운 존재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아름다우니.
“ 그렇네요. 그 인간도, 내가 모를 우리들의 모든 것을 끝내버렸을텐데... “
낮게 읖조린 한마디에는 그의 빛바랜 감정이 흘러든다.
“ 그래요. 리치, 이제 치료를 받아야겠네요. 이정도 시간이면 제가 아는 친구도 일어나 있을테고요. “
희야가 살풋 미소를 지으며 리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도 아름답게 쏟아지던 달빛은 어느샌가 희미한 빛으로 변해 아침을 밝히고 있었다.
>>535 비비안 : 우리의 왕님. 당신에 비하면 저는 왕님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존재인걸요!! 맙소사!! 우리의 왕님!! 어째서 미천한 저에게 그리 신경을 써주시나요? 저 시마,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우리의 왕께 축복을! 그러니 왕님, 당신은 그 평화의 꿈을 꾸세요! 그 꿈을 이루는 건 저 시마와 같은 일루전일테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앗, 마음에 들어해주셔서 다행이에요.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비안 얘가 좀... 흥겨워지면 좀 버릇이 없어질 수 있으니 마음껏 떼찌떼찌하세요!
>>552 어, 리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질투하지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비안이 우리의 왕님! 하고 부르는건 지극히 연극적이고 희극적인 말투라섴ㅋㅋㅋㅋㅋㅋㅋㅋ가만히 보면, 되게 막 비꼬는 것 같은데, 또 아닌것 같고 존중하는거 같은데 장난치는거 같고 그런 느낌의 우리의 왕님이라는 칭호를 쓰는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비안은 그냥 뱀파이어라서 다행히? 매력적인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저런 성격이 어딜봐서 매력적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ㅊㅋㅋ앜ㅋㅋㅋㅋ비비안ㅋㅋㅋㅋㅌㅌㅌㅋㅋㅋㅋㅋ엄청 업됐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비안 매력 터지는 아이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희야는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는 (그리고 능력이 제일) 쩌리인 아이죠...! (끄덕 비비안도 곧 느끼게 될겁니다! 세상에 능력이 자연친화가 모야!
>>55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앗 그렇군요,하지만 뭔가 굉장히 잘 어울려서..(???) 당연히 편한대로 부르셔도 됩니다(찡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치는 진짜로 왕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완전 반대네요! 앗, 괜찮다면 선관 짜보실래요..??(두근두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하는것도 그렇구 하나하나 다 매력적인걸요!!!!! 뱀파이어가 아니라 좀비였어두 매력적일것같은데요!!
>>56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째서죠 ㅋㅋㅋㅋㅋㅋㅋ왜 튕기시죠 희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일상에서 만나면 마구 널뛰기하는 비비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막 중절모 자기 머리에 얹고 지팡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희야 주변을 돌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신없게 굴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69 비비안 자체가 되게 가만히 못있어서 그래요 (?) 희극적이고 연극적인 앤데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좀이 쑤시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장기자랑하면 막 과장되게 박수 짤각짤깍치면서 대-단하세요 우리의 왕님!!!! 시마 감동했어요!!!!! 더 보여주세요!!! 우리의 왕님! 멋져!!! (?) 이럴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82 그 와중에 비비안은 투정부릴지도 몰라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리시-아, 차는 홍차로 줘요!! 홍-차! 맙소사! 이 과자는 직접 만든건가요? 부러워라- 저는 이런거에는 영 재주가 없어요! 맛있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응... 들뜬 분위기 눈에 보이는 거 너무 귀엽잖아요!!!
>>587 그렇군요, 하지만 흡혈귀라도 일단 피가 주식일 뿐이지 생체구조는 인간과 닮을 테니 기호식품 정도로는 먹을 수는 있지 않을 까요? 사실 뒷설정으로는 알리시아도 태생이 마녀(위치)다 보니 사식/사충의 술법과 흡사한 상태로 마소만 있다면 딱히 잠을 자거나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맛있으니까 먹는 거에요.
오늘은.... 그냥 조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환상종의 숲에서 조사만 할 뿐. 다른 임무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숲에 왔다만... 대체 뭘 조사하라는건지. 그냥 숲이 잘 있다는걸 확인하라는 거였나? 의도를 모르겠네.
하염없이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습격해왔다. 어떤 금속같은 막대를 이용해 내 다리를 부러트릴 생각으로 낮게 도약하여 막대를 휘둘렀지만, 맞으면 그냥 아픈걸로는 안 끝날것 같았기에, 어떻게든 뒤에 있던 나무를 발판삼아 뛰어 그것을 피해내었다.
" 위험하잖아. 싸울 생각 없어. 그런 임무도 못받았고. 그냥 조용히 있어주면 안되냐? "
자그마한 소원을 말해보았지만, 묵살되고 문답무용의 공격.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받아쳐내면서 이걸 맞서 싸워 죽여야 하나, 아니면 그냥 조사를 그만두고 돌아가야 하는가를 심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임무 외의 일은 하지 않는다는게 내 주의니까. 오늘은 조사일 뿐이다. 살육은 전달받지 못했다.
" 그냥 죽이는게 제일 편하기는 할 것 같은데... 그치만 그건 임무가 아니고... "
고뇌하면서도 공격을 피하는 도중,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내 감시역을 붙이지는 않았을테니, 다른 환상종일 터. 여기서 지원군이 오면 곤란해지는데. 도망가기 힘들어지잖아.
비비안은 오른팔에 걸고 있던 지팡이를 반바퀴 빙그르르 - 돌려서 바닥을 탁 하고 짚었다. 숄이 떨어지지 않도록, 다른 손에는 검은색의 중절모를 들고 그녀는 제 구불거리는 은색 머리칼 위에 중절모를 가볍게 얹는다. 맙소사, 이게 무슨 소란이죠? 시미는 매-우 궁금해요. 그녀는, 한번 더 지팡이를 휙휙 돌리면서 흥얼거리면서 호기심이 잔뜩 어린 노을빛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헤실 - 즐겁다는 듯 미쇠를 지었다.
맙소사. 이게 뭐죠?
"이런, 이런. 숲이 시끌벅적하길래 왔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
비비안은 붉은색 드레스의 중간부분을 , 방금 전 중절모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살포시 잡아 우아하게 끌어당기면서 하얀색과 붉은색이 섞인 후드를 입은 인간과 거리를 바짝 좁히면서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희극적인 어조로 말꼬리를 길게 늘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가 바닥을 경쾌하게 짚었다. 비비안은, 이제는 양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끌어당겨 올리며 우아한 귀부인처럼 인사를 건넨다.
"당신은 누구시죠? 누구 - 신지, 제가 물어도 될까요? 인간? 인간이에요? 인간이라고 하면 지금 내가 굉장히, 화가 날거 같은데요."
자기소개를 해보실래요? 초대받지 않은 무대에 오르신 신사분.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중간중간 악센트를 강하게 집어넣으며 비비안은 말했다. 인사를 마친 비비안은 머리 위에 얹은 중절모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을 잡고 싱긋 눈을 가늘게 뜨고 신랄한 미소를 짓는다.
"환상종들이 있는 곳에, 인간이 오다니! 무대가 아직 마련도 안됐는데 너무 다짜고짜 찾아오신거 아닌가요! 무례하시군요! 신사분?"
배우는 곤란하다구요? 비비안은 쿡쿡, 신랄하기 짝이 없는 말을, 신랄한 미소를 지은 미소를 더욱 진하게 지으며 빙글 몸을 한바퀴 돌려서 다시 인간을 바라봤다. 가늘게 뜬 노을빛 눈동자가 더더욱 가늘어졌다. 어쩔 수 없군요. 정 - 말. 비비안이 다시금 신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아한 제스처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웃음이였다.
"제가 인간에게 먼저 이름을 밝혀야할 이유는 없는데요, 신 - 사 - 분. 그리고 자고로, 인사는 신사분이 먼저 해주셔야하는 거, 아닌가요?"
존경의 키스도 함께 해주실래요? 비비안의 손바닥 위에서 중절모가 비비안의 한바퀴 돌았던, 우아한 귀부인같은 움직임처럼 부드럽게 묘기를 부리듯 빙그르르 돌았다. 그와 함께, 비비안의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도 같이 한바퀴. 정신없는 행동이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움직임이나, 과장스러운 제스처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듣기 불편하게 말 중간중간 이상한 부분에서 말끝을 길게 늘이기도 한다.
"좋아요. 무대는 아직 덜 준비됐으니 시-시-하 - 게. 인사라도 해볼까요? 비비안 - 이라고 한답니다. 신사분은?"
손바닥 위에서 빙그르르 돌던 중절모가 비비안의 은색 머리카락 위에 살포시 얹혀졌다. 한발짝 물러나는 행동에, 그녀는 한발짝 상대와 거리를 좁힌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비비안은 지팡이의 끝으로 가리키면서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처를 곁들였다.
뻥 아니다. 난 이 임무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그저 숲을 살피는 것으로 임무를 마치려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상황들은 예상 외 상황이라는 소리지. 그나저나 저 여자는... 싸우겠다는거야 뭐야?
" 난 잘 나가는 신사와는 동이 떨어진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렇게 잘 봐주면야 고맙지만, 난 그렇게 멋진 인간이 아니야. "
한번 씩 웃고는, 칼을 고쳐잡았다. 이대로면 싸워야 한다는건가. 썩 달가운 얘기는 아니구만. 그나저나 존경의 키스라. 원래라면 사람의 손등에 하는거였나? 하지만 굳이 해줄 생각 없다. 그냥 가볍게 손을 내 입술에 가져다대고, 가볍게 떼면서 키스를 날려주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 아아, 데릭이다. 말투 이상한건 굳이 신경 안쓸게. 신경 쓰이지만 말이야. "
장난스레 말하고 키득키득 제 멋대로 웃기 시작했다.
" 무대 준비가 덜 되었다는건... 아직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괜찮은거지? "
"우리에게는 여기가 무대인걸요! 신사분! 세 - 상에, 이런 농담을 못알아듣다니, 너무하는데요?"
재미없어라. 비비안은 조금 입술을 삐죽이면서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가늘게 뜬 눈 중에 한쪽만 슬쩍 평소대로 돌아가서 노을빛 눈동자가 온전히 한쪽만 드러났다. 칼을 고쳐쥐는 상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꺄르륵 - 하고 이번에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손바닥 뒤집듯, 성격 참 잘 바뀐다. 비비안은, 키스를 날리는 상대의 모습에, 조금 수줍다는 듯 몸을 베베꼬았다가, 얇은 검은색 실크 장갑을 낀 왼손바닥을 입술에 대고 그와 똑같이 키스를 날려줬다.
"상냥하기도 하셔라. 우리 신사분. 어머 ㅡ 숙녀의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신사가 되는 법인걸요? 그럼 미스터 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녀는, 지팡이의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면서, 이제는 과장스러운 제스처, 그리고 아주 과장스러운 한숨을 푹 - 내쉰 뒤 지팡이의 손잡이를 가볍게 돌린다. 칼날이 손잡이의 돌아가는 부분에서 번뜩이며 빛난다.
"아아뇨? 우리 미스터 데릭과 한바탕 즐겁게 춤을 추기에는 한참 모자란 무대지만 -"
싸울 생각이 없다는 말은 안했어요? 비비안은 쿡쿡, 신랄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팡이 검을 뽑아 양손으로 쥐고 가볍게 횡으로 휘두르려고 한다. 가볍고, 단조로운 행동이였다. 마치, 춤이라도 신청하는 제스처, 그리고 과장스러운 웃음과 목소리는 똑같았다. 횡으로 휘둘러지던 지팡이 검은 우뚝 허공에서 멈췄다. 그녀는 부드럽게 허공에서 멈춘 양손검을 빙글 돌려서 고쳐쥐었다.
"글쎄요, 소위 말하는 숙녀를 존중하고 -, 숙녀를 에스코트하는 -, 그런 쪽이 신사가 아닐까요? 여자를 밝히는 파렴치한은 저도 사 - 양이에요."
깔깔! 비비안은 악센트를 높혀서 신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비비안은 이미 칼날을 뽑아낸 남은 지팡이의 지지대 부분은 바닥에 떨어트렸다. 양손으로 느슨하게 지팡이를 검처럼 쥐고 아래로 내리고 있던 그녀가 어깨에서 흘러내린 숄을 고쳐서 걸치고, 드레스 자락을 조금 끌어올리는 등의 정신사나운 행동을 해댔다.
"신랄한 춤을 좋아한다니, 그거 유 - 감. 저는."
비비안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과장스럽고 장난기가 담뿍 담겼지만 그 의도는 신랄했다. 신랄한 춤을 즐긴다는 데릭의 말에, 비비안은 칼날을 바닥에 박아넣고 슬금슬금 제 드레스가 찢어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끌어모으려고 한다. 나무와 나무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그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어 드레스에 신경쓰는 게 그녀는 그가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모양이였다.
"왈츠를 좋아해서요. 미스터 데릭. 모든 춤의 첫 스타트는 남성의 리드로 시작되죠."
얼마나 멋드러지게 리드하는지 궁금하네요. 비비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스레 미소를 지었다. 얼마든지 원할 때 오라는 듯, 비비안의 장갑을 낀 한손이 우아하게 까딱여졌다.
교황은 으리으리한 곳에서 신관들이 내주는 만찬을 먹고 침실이랑 욕조부터시작해 편의시설에 개인극장까지 있다. 대략 쓸데없이 구민운동장만한 공간을 혼자쓴다고 봐도됨. 주교는 대략 100평 남짓되는 시설 다갖춘 오피스텔급 시설로 구비됨. 역시 신관들이 독이 있는지없는지 확인하고 가져다주는 식으로 식사문제를 해결함.
일반신관들은 기숙형대형숙소가 존재하고, 식사는 배급제. 단, 거주지가 가까운경우는 자기집에서오가는것도 허용됨.
참고로 일반신관의 식사는 맛없을땐 오지게 맛없게 나오고 맛있을땐 맛있게나오는데, 식사 당번따라서 복불복인듯. (당번제로 됨)
애초에 왈츠는 즐겨듣는 편이 아니라서, 춤에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말이야. 음악 정도는 들어봤으니, 한 번 맞춰보도록 해볼게?
그녀는 날 무시하려는건지, 별로 위협을 못느낀건지. 그저 자신의 드레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얕보이는건가. 얕보이는 남자는 인기 없는데 말이야. 내가 너무 머저리같이 살아서 그렇겠지 뭐. 긴경쓰지 말자.
" 뭐 그럼, 먼저 가보도록 하지. "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나뭇가지에서 용수철처럼 몸을 튀겨 그녀의 바로 옆으로 착지했고, 몸을 멈추지 않고 그녀와 얘기했듯이 마치 춤을 추듯 곡선을 그리며 해체용 칼을 움직였다. 칼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살갗을 노리고 있었지만, 자금 우리가 추는 춤의 곡은 아마, 진혼곡일지도 모르니.
싸늘한 국경지대, 그중에나마 왁자지껄한 정취가 풍기는 인간들의 여관으로 요리미츠는 발걸음을 돌렸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몇몇 일행을 기다리던 자들은 그를 바라본다. 반면 환담에 취해, 시끄러운 이곳의 분위기에 취해 저마다의 테이블의 분위기에 취한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 요리미츠의 분류를 정하자면 그 어느것도 아닌 소음의 숲에서 쉬고자 하는 외톨이 쪽에 가까웠다. 등에 매달린 큼지막한 태도를 흘낏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상당히 큰 키가 주목을 더 끈 것 같지만, 이러한 시선을 받는것도 그에겐 하루이틀이 아니다. 여관장이 있는 바 앞에 앉자 터프하다는 인상을 주는 수염이 인상깊은 주인장의 인사말이 들려왔다.
- 이것참, 덩치가 큰 선생이구만, 대실이요? 아니면 그저 먹고 떠나는 쪽이요?
요리미츠는 대답대신 품안에서 세련되 보이는 수통을 꺼내곤 자연스레 따서 벌컥벌컥 마신다. 뚜껑을 열자마자 주위에 퍼지는 술냄새로 미루어보아 저안에 든 것은 필시 왠만한 술고래도 뒷걸음질 칠 물건일테지 하면서 주인장은 피식 웃었다. 한모금 목을 축이고 나서야 요리미츠는 담백한 저음으로 이야기했다.
"감자 스튜 하나에... 그래 적당한 고기류 하나를 부탁하지, 그리고.."
요리미츠는 다시 한번 술을 한 번 마시곤 이야기했다.
"이삼일치 돈을 낼테니 방을 하나."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서 요리미츠는 품에서 돈을 테이블위에 올려두더니 또 다시 술을 마신다. 그러자, 주인장은 한숨을 쉬며 열쇠 하나와 물 한잔을 그에게 건내곤 이야기했다. 정말 그의 눈엔 요리미츠가 그저 흔한 술 주정뱅이 나그네로 보였던듯 했다.
- 2층 제일 안쪽 방이요. 것참 주정뱅이인것도 정도가 있지 그 수통의 술,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냄새 맡는걸로도 코가 비뚤어 지겠슈, 제발 선생 사고 치지 말고 이거라도 마셔서 취하지 않게 하쇼.
주인장이 건낸 물잔을 뚫어져라 쳐다 보던 요리미츠는 미소를 지으며 그 물을 원샷 했다. 그러더니 약간 어이 없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 내가 술이 길지 못한걸로 보이나? 나는 술에 먹히진 않아, 술을 삼키지. 주인장 걱정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살면서 딱 한 번 취했다. 그래, 딱 한 번 그 정도면 충분하지. 걱정일랑 하지말고 시킨거나 가져다 주게"
이야기하자면 그 이후로 난 계속 취해있다....딱히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다.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모든 걸 말할필요는 없다 생각한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곤 주인장에게 식사를 재촉했다.
들고 있는 종이에는 숱한 얼굴들이 가득했다. 제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모습에는 어느 이는 코가 큰 민족도 보였고 또 누구는 그로부터 시작한 한 사이클을 순환하여 다시금 옆동네의 민족으로 되돌아는 식으로 여러 얼굴들이 존재했다. 그 옆에는 짤막하거나 장황하거나 소개문구와 약력 따위가 즐비했는데 너무 깨알같이 쓰여있어 맨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단심문관의... 어쨌든 반갑다."
말을 흐리는 쪽빛의 남성은 불가항력적이었다. 명백히 공식 석상에서나 서류 상에서 보았을 법한 사이였고, 특히 비밀기관인 이단심문관은 상부측에서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의 전장에서 마주친 사이일 수도 있을테지만.
"인사평을 보는 중이지. 집무실이 지겨워서 나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날이 그닥이군 그래. 넌 어떻지?"
그렇게 그 남자의 눈동자와 눈가에 깊게 패인 그림자가 소녀를 향했다. 안경이라는 보조품에 희석 되어지고 있기는 해도 레오닉의 무기질적임이 완전히 사그라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머나, 가장 기본이 되는 춤을 모르시다니, 미스터 -. 에스코트를 할 준비가 아예 안되셨군요?"
실망했어요. 비비안은, 데릭의 말에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추슬러서 한손에 모아 쥐고는 장난스럽고 과장스럽게 두어번 스텝을 밟아보였다. 이런 스텝인데. 아쉬워라. 그녀는 끝까지 장난스러웠다. 데릭이 먼저 공격하기 전까지, 아니면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넘어올때까지. 그녀는 신랄하면서 장난스럽고 과장스러운 목소리와 행동은 계속할 생각이였다. 그녀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뭇가지에서 튕겨져 자신의 옆으로 떨어지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해체용 칼을 춤을 추는 것 같은 우아한 곡선으로 움직이는 걸, 바닥에 떨어지려는 숄을 줍기위해 우아하게 스텝을 밟으며 몇개의 궤적은 우연히라고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우연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칼에 스친 소매가 없는 드레스로 인해 완전히 드러난 팔에 깊게 상처가 몇개 나는 것을 보고 꺄르륵 - 하고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맙소사, 세상에. 이-럴-수-가. 미스터, 너무 과격한거 아니에요? 이런 춤에는 탬포 맞추기가 힘들잖아. 목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고 놀랐네요. 미스터 데릭, 내가 꽤 꾸준히 '식사'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어요?"
그녀의 베인 상처에서 곧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천천히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했고, 비비안은 제 날카로운 송곳니를 혀끝으로 살짝 핥는 시늉을 해보이며 치맛자락을 쥐고 우아하게 데릭과 거리를 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과장스러운 제스처로 그녀는 바닥에 꽂아넣었던 지팡이 검을 양손으로 들어올리자 검은 불꽃이 칼날을 감쌌다. 주력은 아니니까. 비비안은 굉장히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검은 불꽃을 감싼 지팡이 검을 양손으로 잡고 그에게 휘둘렀다.
시이는 그렇게 말하곤, 인사평을 보고 있다는 말에 잠시 의아한 듯 하다가도 가만히 레오닉을 바라보았다.
"집무실이 지겹다라. 저는, 그저... 그냥, 옛 생각이 나서. 생각을 정리할 겸 해서 나왔습니다."
옛날, 어머니가 곁에 있던 시절. 그 때는 행복했었는데, 그 때는 좋았는데. ...만약 그 때 내가 집 안에 있었더라면 나는 어머니와 함께 죽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그랬다면... 레오닉의 무기질적인 모습이, 시이는 그저 공허하게만 보인다. 차가운 한겨울? 아니, 초겨울에 가까울까. 아직 가을 같고, 춥다기엔 애매하여 두껍지 않게 입었지만 막상 나와 보니 시린 공기가 코를 타고 폐부로 들어와 허파를 찌르는. 그런 느낌이야.
신의 지팡이는 한때 미국에서 기획했던 궤도 병기로 텅스텐-카바이드를 통한 질량체 투사 병기입니다. 이론상 강력한 질량 가속도로 붙은 막대한 에너지로 인해 핵폭탄급의 위력을 낼수 있으며 단순이 공격 방법은 그저 고속으로 떨어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표적이 된 환경이 싹 쓸려나간다는 것 이외는 청정(?)한 무기입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취소 되었습니다. 또한 국제조약으로 위성병기는 만들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술에 상당히 목마르다. 거의 몇백년간 장복한게 술이다. 취기가 없으면 요리미츠에겐 정상적인 사고방식에 지장이 생긴다. 말하자면, 어두운 면에 잠식된다고 할까, 술이 없다면 쉽게 우울해진다. 그렇지만, 필시 그가 즐겨 마시는 그것의 뚜껑을 열면 자신의 품의 아이는 취해 인간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도시밖 2시간 거리정도 되는곳에 여관이있기에 대부분의 짐은 두고 왔기에 어딘 가의 건물내에서 변신시키는건 힘든 일이었다. 애시당초 다시 늑대로 돌아가면 말짱 도무룩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길을 걷던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요리미츠가 슬쩍 내려다 보자. 그곳에는 후드를 쓴 불신자가 있었다.
의심 받는건가- 라고 그는 생각했다.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 이럴땐 그저 눈앞의 자가 내비치는 호의에 응하도록 할까.
"뭐, 그것도 좋지. 혹시라도 이 늑대의 어미가 날 공격하면 두팔이 묶여서야 힘을 제대로 못쓸테니까."
혼자서 이도시에서 살아나갈 자신은 그에게 있지만, 한 생명을 품안에 두고선, 그에겐 자신이 없었다.
의심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였으나, 정체가 밝혀졌을 때가 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그저 의심하게 두는 쪽을 택할 것이다. 오히려 슈텐이 그를 믿어주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수상할 테고. 그저 지나가는 길에 만난 마음 약한 도우미 정도로 생각되었으면 좋을 따름이였다.
“그건 확실한 이정표가 되겠네.”
활을 쏘는 만큼 시력에도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늑대 무리가 모여 있다면 눈에 띄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일 테고, 그때 놓아주기만 하면 된다는 심플한 계획이였다.
“...키가 크다고 해도 나랑 몇 센티 차이도 안 나는데.”
몇 센티 정도보다는 더 많은 차이가 났지만. 그래, 키 커서 좋겠다. 물론 이걸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굳이 새끼 늑대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놓아 줄 이유가 따로 있어?”
그저 평범한 동정심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순수한 궁금증이 든 것도 있었지만 떠 보려는 속셈이 아예 없다고는 못했다.
망설임 없이 활과 살을 겨눠 자신을 노리는 눈앞의 남성에 대하여 요리미츠는 씁쓸한 감상마저 느꼈다. 그를 마냥 비판할수 없다. 언제나 자신을, 환상종을 노리는 인간을 대해 생각하는건 비슷했다. 오히려, 도와준다는 거짓말을 치지 않고 당당히 자신에게 맞써는 영웅에 대하여 존중까지 보일수 있었다.
조금 서늘한 저녁. 길거리를 걷던 그는 옷을 조금 더 여몄고, 품 속에 들어있던 것이 몸을 들썩이며 움직이자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야옹. 하고 품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그의 노력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고개를 불쑥 내민 작은 생명체를 표정을 바꾸지 못한 채로 내려다보던 그는 작게 끄응. 하며 침음성을 흘린다.
'귀찮다.'
머리 한 구석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는 접어 구석에 밀어넣는다. 불쌍하잖아. 이런 날씨에 밖에서 돌아다니는 건 얼어 죽을 수도 있고, 생명체가 가여우니까. 같은 것을 중얼거린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쉰다. 감성과 이성이 싸우는 것만 같은데.
품에 안은 생명체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약하게, 야옹. 하고 울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치킨시키고왔져요!!!